고대 유럽의 정복자 켈트족은 여러 지역으로 분산되며 B.C 5세기경에 아일랜드를 위시한
브리튼 제도에 정착을 하고 A.D 40년경에 로마의 군대가 브리튼제도를 점령하지만
아일랜드만 온전히 로마군의 공격을 받지 않고 켈트인의 땅으로 남을 수 있었다.
아일랜드 문학이 켈트전설의 산 증인이 된 것은 그러한 이유로 보아도 무난할 것이다.
고대 켈트인들에게는 신들이 살고 있는 숲에 대한 이야기와 하늘, 별, 땅, 산과 언덕, 숲과 빈터, 특이한 나무까지,
강, 호수, 바다, 그리고 특별히 상징적인 동물들 같은 자연을 숭배했다.
켈트인들은 용감했고 그 영웅들의 무용담이 마치 전설처럼 전래되어 내려온다.
아일랜드에서는 매우 일찍부터 전래된 이야기들을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시(詩)는 6세기에,
이야기체의 산문시는 7 세기말에 글로 옮겼다. 영웅들의 무용담, 전설적인 왕들, 신화적인 인물들의 잉태와 출산,
다른 세계를 정복하기 위한 원정, 매력적인 모험들과 전쟁들, 마침내는 모범적인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장 유명한 서사시로서는 얼스터 전설을 들 수있다. 이 서사시의 영웅인 쿠 쿨린은 신의 아들로, 젊어서 영광스럽게 죽었다.
그는 자신의 무용담이 영원히 전해지기만 한다면 하루 낮과 밤만 살아도 괜찮다고 했다.
수많은 적을 죽인 뒤, 그는 최면상태에 빠졌다. 그는 죽을 때까지 환한 빛에 휩싸여 있었다고 한다.
7세기에 나타났던 또 다른 아일랜드 전설인 페니언 전설은 중세 말의 유럽사상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전설은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왕국을 보호했다는 탁월한 족장 핀 매쿰하일이 이끌던 전사 사냥꾼 집단이라는 켈트구전에서 유래했다.
웨일스에서는 이 주제에다 아서왕의 전설을 덧붙여 광범위하게 구전되었다. 이 전설은 앵글족(5세기에 브리튼을 침략했던 게르만족)의
전쟁에 대한 끝없는 이야기에 자극을 받아 6세기에 이르러 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즉 초자연적인 물질과 상상의 동물 즉 드래곤(용)과 영웅과 그들의 모험담들은 모두 켈트인의 주제였다.
그것에 북유럽의 신화인 오딘 숭배사상까지 합쳐져 유럽의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아서왕은 영국의 국민적인 영웅이 되었고. 12세기에 노르만족은 아서왕의 전설을 시칠리아로 전했고
크레티엥 드 트루아는 아서왕의 업적을 이야기로 옮겨 놓는다.
엑스카리버;
아서는 소년시절 마법에 의해 돌에 박혀 있던 이 칼을 혼자 뽑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아서의 전설을 다룬 토머스 맬로리 경의 15세기 산문에 실려 있는데, 같은 작품 속의 또 다른 이야기는 호수의 미녀가 이 칼을 아서에게 주었으며 아서는 마지막 전투 후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누워 있을 때 심복인 베디비어 경을 시켜 칼을 물 속에 던지게 했다고 적혀 있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물 속에서 팔이 튀어나와 칼을 잡고 3번 휘두른 다음 사라졌다고 한다. 아일랜드 전설에 '칼라드볼그'라는 유명한 칼이 나오는데, 몬머스의 제프리가 〈영국사 Historia regum Britanniae〉에서 그 이름을 본떠 아서의 칼을 '칼리번'이라 불렀고 여기서 엑스카리버라는 이름이 나온 것이 확실하다. 맬로리는 엑스카리버가 '쇠를 자르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아서와 그의 왕실에 관한 이야기는 11세기 전에 웨일스 지방에서 큰 인기가 있었다. 이 이야기가 유럽에서도 유명해진 것은 몬머스의 제프리가 〈브리튼 왕 열전 Historia regum Britanniae〉(1135~39)을 쓰면서부터였다. 이 이야기는 동부 프랑스에서 로마군을 무찌르고 영광스럽게 개선했으나 조카 모드레드가 이끄는 반란군과 싸워 치명상을 입은 한 왕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제프리가 쓴 이야기의 일부분은 아주 그럴 듯하게 꾸민 허구이며, 켈트족의 이야기를 다룬 몇 군데는 봉건시대의 상황에 알맞게 고쳐 썼다. 아서를 세계 정복자로 보는 것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나 샤를마뉴 대제와 같은 위대한 제후들의 전설에서 그 영향을 받았다. 저지의 웨이스나 라야몬을 비롯한 후대 작가들은 특히 아서와 기사들 간의 우정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를 손질했다.
17세기에 아서 왕 전설은 영국 내에서 인기가 있었으나 18세기에는 단지 옛 것이라는 정도로만 여겨지다가 빅토리아 시대의 문학에서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 예가 앨프레드 테니슨의 〈왕의 노래 Idylls of the King〉이다. 20세기 들어 미국의 시인 에드윈 앨링턴 로빈슨이 아서에 대한 3부작을 썼으며, 영국에서는 T.H.화이트가 아서의 이야기를 개작하여 〈영원한 왕 아서 The Once and Future King〉(1958)라는 소설집을 냈다. 앨런 러너와 프레데리크 뢰웨는 화이트의 작품을 토대로 〈캐멀롯 Camelot〉(1960)이라는 뮤지컬을 만들었다.
여러 중세 작가 특히 프랑스 출신의 작가들이 아서의 출생에 대한 일화, 기사들이 벌이는 모험, 왕비인 귀네비어와 기사인 랜슬롯 경의 불륜의 사랑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한 뒤 아리마태아의 요셉에게 주었다는 성배 탐색, 귀네비어와 랜슬롯의 불륜의 사랑 때문에 결국 기사들 사이의 우정은 깨지고 아서는 죽으며 왕국도 파멸을 맞는다.
이 전설의 중요인물은 아서와 왕비 귀네비어와 랜슬롯경이다. 랜슬롯은
아서 왕의 왕비인 귀네비어의 애인이며, 성결한 기사 갤러해드의 아버지이다.
랜슬롯의 이름은 12세기 크레티앵 드 트루아의 로맨스 〈에레크 Erec〉에서 아서 왕의 기사들 가운데 하나로 처음 등장하며, 후에 같은 작가가 〈수레를 탄 기사 Le Chevalier de la charette〉에서 그를 주인공으로 했다. 이 작품은 귀네비어의 납치에 대한 기존의 전설을 바탕으로 하여 랜슬롯을 그녀의 구출자이자 애인으로 만든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랜슬롯이 호수의 요정에 의해 키워졌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독일 시 〈란첼레트 Lanzelet〉에서 더 자세히 다루어지고 있다. 귀네비어의 납치와 랜슬롯의 어린시절이라는 이 2가지 주제는 13세기의 통속연작(vulgate cycle)을 구성하는 산문소설 〈랑슬로 Lancelot〉에서 더욱 발전했다. 이 작품에 의하면, 아버지 밴 오브 베노익(방 드 베노이크)이 죽은 뒤 랜슬롯을 데려가는 것은 마법사인 호수의 여왕 비비언이며 때가 되자 그녀는 그를 아서의 궁정으로 보낸다. 랜슬롯이 그녀로부터 받은 세심한 교육은, 귀네비어에 대한 사랑으로 고취되는 힘과 더불어 기사도의 전형 그 자체인 기사를 만들어낸다.
연작의 후속 지편(枝篇)들에서는, 영적인 사랑에 의해 고취되는 기사도가 세속적인 기사도를 능가하게 되어, 랜슬롯이 성배의 전수자 펠레아스 왕의 딸인 엘레인에게서 낳은 아들 갤러해드 경이 그를 대신하여 완전한 기사의 위치를 차지한다. 나아가 여왕에 대한 랜슬롯의 사련(邪戀)은 그로 하여금 성배 탐색에서 실패하게 하며, 원탁의 기사들의 우의를 깨뜨리게 되는 일련의 치명적인 사건들을 일으킨다.
중세 영국 문학에서 랜슬롯은 14세기말의 〈아서의 죽음 Le Morte D'Arthur〉을 통해 주요한 역할을 한다. 이 작품은 아스톨랏의 아름다운 엘레인이 랜슬롯에게 품은 이루지 못한 사랑과, 랜슬롯의 귀네비어에 대한 사랑의 비극적인 종말을 그리고 있다. 그는 또한 맬러리의 15세기 산문 작품 〈아서의 죽음 Le Morte Darthur〉에서도 중심 역할을 하는데, 여기에서는 무엇보다도 랜슬롯의 귀네비어에 대한 사랑과 그의 주군(主君)에 대한 충성 사이의 갈등이 아서 왕의 "고통에 찬 죽음과 이승에 대한 하직"의 원인이 된다.
Guinevere
영국의 전설적인 왕 아서의 아내.
아서 왕을 주제로 한 로맨스에서 아서 왕의 기사(騎士)인 랜슬롯 경이 그녀에 대해 품은 사랑으로 유명하다. 초기의 웨일스 문학에는 '그웬위바르'(Gwenhwyvar)가 브리튼 섬의 왕비였다고 전해진다. 몬머스의 제프리가 쓴 다분히 상상적인 역사책 〈영국왕 열전 Historia regum Britanniae〉(12세기초)에는 구안후마라(Guanhumara)로 나오며 로마의 여인으로 묘사되어 있다.
또 어떤 문헌에는 그녀가 아서 왕의 2번째 아내였다고 전해진다.
귀네비어는 유괴나 배신을 다룬 초기의 전설에 둘러싸여 있다. 11세기말이나 12세기초에 나온 〈길다의 생애 Vita Gildae〉에 따르면 귀네비어는 아에스티바 레기오(Aestiva Regio:여름 왕국이란 뜻)의 왕인 멜와스에게 유괴되어 아서 왕과 그의 군대에 의해 구조된다.
12세기말 크레티앵 드 트루아가 쓴 로맨스 〈수레를 탄 기사 Le Chevalier de la charette〉(12세기 후반)에서는 멜레아강이 그녀를 고르 땅으로 납치해가지만 랜슬롯(크레티앵이 앞서 아서 왕의 기사들 중 하나로 언급했던 인물)이 구해낸다. 이 이야기는 13세기의 산문으로 된 '통속연작'(Vulgate cycle)에도 들어 있다. 크레티엥은 기네비어를 궁정연애 서정시에서 찬양하는 귀부인들식으로 사랑을 받아들이거나 또는 거절하는 여인으로 묘사하였다. 〈수레를 탄 기사〉와 통속연작의 전반부에서는 랜슬롯과 기네비어의 열정적인 사랑을 주제로 한 궁정연애가 찬미되었다. 그러나 '통속연작'의 엄격히 영적인 부분, 즉 〈성배탐색 Queste del Saint Graal〉에서 그들의 외설적인 사랑은 정죄 당하며, 랜슬롯은 죄의 대가로 성배를 바로 볼 수 없는 것으로 나온다.
초기의 연대기와 후기의 아서 왕 로맨스에서는 귀네비어를 아서 왕의 조카(어떤 것에는 아들로 되어 있음)인 모드레드가 유괴하며, 그 결과 아서 왕의 죽음과 원탁 기사도의 종말이 닥치게 된다. 그러나 토머스 맬로리 경이 15세기말에 쓴 산문 〈아서의 죽음 Le Morte Darthur〉에서는 랜슬롯에 대한 귀네비어의 사랑이 그런 불화를 야기시켜 궁극적인 재앙의 원인이 되기는 해도, 모드레드에 관한 한 그녀는 불행한 희생자로 그려지고 있다.
성배; 아서 왕 이야기에서 기사들이 찾아다녔던 전설의 물건.
정확한 어원은 알 수 없으나 이 말은 입구가 넓거나 깊이가 얕은 그릇을 가리킨다.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와 켈트 신화에는 풍요의 뿔이나 생명을 되살리는 마술 가마솥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한데, 이것의 영향을 받아 성배에 신비롭고 거룩한 물건이라는 그리스도교적 의미를 부여한 현존하는 최초의 원본은 12세기말 크레티앵 드 트루아의 미완성 소설 〈페르스발 Perceval〉또는 〈성배 이야기 Le Conte du Graal〉이다. 이 이야기에는 정직하고 순박한 시골기사 페르스발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종교적·공상적 요소가 뒤섞여 있다. 13세기초 로베르 드 보롱의 시 〈아리마태아 요셉 Joseph d'Arimathie〉과 〈성배 역사에 관한 이야기 Roman de l'estoire dou Graal〉는 이 전설의 그리스도교적 의미를 확대했다. 볼프람 폰 에셴바흐는 서사시 〈파르치발 Parzival〉(그는 성배가 하늘에서 떨어진 보석이라고 썼음)에서 이 전설을 심오하고도 신비스럽게 표현했다. 로베르 드 보롱이 쓴 작품의 산문본은 성배 이야기를 아서 왕 전설에 더욱 가깝게 연결시켰다. 13세기 독일의 소설인 〈왕관 Diu Krone〉에서는 가웨인 경을, 〈성배 탐색 Queste del Saint Graal〉(이른바 〈랜슬롯 Lancelot〉 산문, 즉 불가타 詩歌의 일부)에서는 갤러해드 경을 성배를 찾은 영웅으로 등장시켰다. 〈성배 탐색〉은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받았으며, 15세기말 말로리의 산문 〈아서 왕의 죽음 Le Morte Darthur〉을 통해 여러 영어권 독자에게 전해졌다.
로베르 드 보롱의 시에서는 성배의 초기 역사를 상술하면서 이것이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 때 사용한 잔이며, 후에 아리마태아 요셉이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상처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받기 위해 사용한 잔이라고 했다. 〈성배 탐색〉에서 작가는 새로운 주인공, 즉 갤러해드 경이라는 순박한 기사를 등장시켜 성배를 찾아다니는 행위를 하느님과의 신비로운 합일을 추구하는 행위로 그리고 있다. 오직 갤러해드만이 직접 성배를 보았으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룩한 신비를 보았다고 했다. 이 책은 분명히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두스의 신비주의적인 가르침에 영향을 받았으며, 이 책이 묘사하는 은총의 상태는 성 베르나르두스가 말하는 신비적인 삶의 완성에 이르는 단계들과 일치한다. 또한 거기서는 갤러해드를 랜슬롯의 아들로 그림으로써 인간의 사랑(랜슬롯과 귀네비어 사이의 사랑)에 영감을 받은 기사도 이야기와 신에 대한 사랑(갤러해드와 하느님 사이의 사랑)에 영감을 받은 이야기를 대조시키고 있다. 불가타 시가의 끝 부분에서는 마지막 재앙 때 은총의 상징인 성배를 거두어들여 이 땅에서 다시는 볼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성배는 아서 왕 이야기의 절정을 이루었으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문학에서 하나의 풍부한 주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아서왕의 전설을 아일랜드의 유명한 감독 존 부어맨은 약간의 수정을 하여 영화 "엑스카리버"는 만들어지고 칸느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합니다. 지금은 유명한 감독이 된 닐 조단이 시나리오 작업에 동참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재미있는 것은 위급한 장면에 아서왕이 그의 무리와 등장할 때 나오는 음악이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의 서곡(序曲)이라 할 수 있는 합창이 나오는데 이 음악이 가장 멋들어지게 사용되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용이 상징적인 존재로 부각된다. 용은 동양이나 서양에가장 높은 권위의 상징으로 자리 매김을 하는 데
초자연적이면서 모든 사물과 어우러짐 속에 있는 신(神)적인 권능을 가지고 있으면서 지배의 내면적 얼굴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법사 멀린과 왕과 엑스카리버라는 전설의 검과 아서의 아들로 나오는 모드레드의 욕망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인간과 자연의 질서관계를 횡적이면서도 종적인 의지의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켈트족뿐만이 아니라 여러 나라의 신화나 전설에 나오는 영웅들의 태어남과 죽음 그리고 회귀와 인간관계 속에 피어나는 사랑의 거대한
움직임 이런 것들은 언제고 전해 내려오면서 세계의 구원이라는 꿈을 화자하고 그 꿈을 꾸는 현실의 적나라한 법칙을 이야기합니다.
마치 바그너가 인생의 말년에 쇼펜하우어의 모든 본질은 하나이다 하는 사상에 심취하여 불교의 영향을 받고 그러한 배경에서
악극 "파르지팔"을 만들었듯이 존 부어맨은 아서의 전설에 마지막 부분은 성배가 가져다 주는 신비주의적인 힘에 이끌려 용서와 화해의
어우러짐을 사랑이라는 커다란 둘레에 담아두고 초반 도입부의 드래곤의 신비적인 초자연적인 힘과 인간적인 사랑 속에서
잉태되었던 욕망과 파멸의 과정을 대비시켜 종국에는 구원이라는 이름아래 신과 인간과의 사랑을 약속하고 어느 영웅들의 태어남과 죽음을 통하여 인류가 가야할 길을 예언하는 듯한 장대한 드라마를 마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