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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의 피로를 덜기위해 행띄우기를 한점 이해하십시요.
동전 세 닢
(그 날) 오후 4시경, 나는 한남대학교 앞 버스정류장에 서 있었다. 건너편 문방구엔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이고, 크고 작은 카드들이 손짓하듯 가볍게 흔들리고 있다. 날씨가 추운데다 어제 출판된 동인지 열 권을 들고 있어서 택시를 탈까하고 망설이는데, 마침 버스가 도착하였다. 방학 중이라 그런지 버스는 한산했다. 나는 운전기사 뒤쪽 세 번째 좌석이 빈 것을 보고 막 앉으려 하는데 의자 위에서 하얗게 반짝이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오백 원짜리 동전 두 개와 백 원짜리 동전 한 개였다. 별 생각 없이 동전을 주워 손에 들고 자리에 앉아서 동전 주인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서 있는 사람은 물론 좌석을 옮겨 앉은 것 같은 사람도 없었다. “누구 동전 떨어뜨린 사람 없어요?” 하고 물었지만 대답하는 사람도 없다. 엉거주춤한 기분으로 나는 동전 세 닢을 쥐고 동구지역을 빙빙 돌아서 우리집이 있는 유천동까지 왔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릴 때처럼 운전기사에게 갖다 주기도 좀 이상하였다. 조금 더 큰돈이거나 아주 적은 돈이었으면 신고를 하거나, 주머니에 넣거나 양단간에 결정을 해버릴 텐데 백 원을 보태면 시내버스를 두 번 탈 수가 있고, 공중전화를 걸면 스물두 통화를 할 수가 있으며, 세일하는 요구르트 스무 개를 사고도 백 원이 남는 금액이다.
나는 이상하게 이런 경우를 흔히 겪는다. 어제만 해도 태평시장에서 오천 원 내고 천오백 원어치 꼬막을 샀는데 주인이 팔천 오백 원을 거슬러 주는 것이다. “아저씨! 이거 계산이 안 맞네요.” “맞잖아요. 만원에서 천오백 원 빼면 팔천오백 원, 아줌마 빼기 못해요?” 주인이 큰소리로 핀잔을 하였다. 사람들이 재미있다는 듯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창피한 생각이 들고 약이 올라서 그냥 갈까 하다가 “아저씨 제가 오천 원 냈어요. 아저씨가 더 거슬러 주신 거예요. 계산은 아저씨가 못 하잖아요” 했다. 그제야 그는 “어이구 이런” 하면서 오천 원을 받는 것이었다.
버스 승차권을 사다가, 고기를 사다가, 꽃을 사다가 정말 묘하게도 이런 일을 자주 당하게 되니까 이제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나를 시험하는 것 같은 생각이 나서 영 기분이 좋지 않다. 또 무심히 받고 집에까지 왔다가 돌려주러 갈 때는 속이 상하기도 하다.
(다음날) 논산서 후배들 몇과 점심약속이 있어서 직행버스를 타고 논산을 가고 있는데,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다시 동전 세 닢이 손에 잡혀 내내 찜찜한 기분이 되었다. 깨끗한 식당에서 모처럼 마음 맞는 후배들과 편하고 즐겁게 식사를 하고, 다시 대전 오는 버스를 탔는데 이놈의 동전 세 닢이 또 마음에 부담을 얹어준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여러 번 생각하다가 달리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서 구세군 자선냄비에 넣기로 작정을 하였다. 집에 돌아와 저녁 준비를 해놓고, 명예퇴임을 하는 후배의 송별회 참석차 ‘극동대반점’으로 향하면서 갤러리아 백화점 앞의 자선냄비에 동전을 넣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버스가 서대전 네거리에서 신호대기를 여섯 번이나 받다보니, 시간이 늦어 자선냄비는 생각도 못하고 급하게 행사에 참석을 하고 말았다. 동전은 여전히 오른쪽 주머니에 머물고 있는 상태다.
(그 다음날) 몹시 바쁜 날이다. 후배의 사무실 개업이 있고, 미루어 오던 신부님 면담도 해야 하고 고백성사도 보아야 한다. 또 내일은 친구아들의 결혼으로 보령에 가야하므로 집안일도 대충 해놓지 않으면 안 된다. 이래저래 오늘은 동전여부는 생각할 틈도 없었는데 잠자리에 드니 또다시 생각이 나고 속이 상하다. 이놈의 동전은 눈 밝은 학생들 다 제치고 왜 하필 내 눈에 띄어서 나를 힘들게 하는지…….
(성탄전야) 9시 30분 버스로 친구와 보령을 향하였다. 오랜만에 만나도 어떤 대화를 해도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 밀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순식간에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우린 서울에서 혼자 내려오는 숙이를 마중하기로 하고, 역으로 걸어가는데 무심히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다시 동전이 손안에 들어와 약을 올린다. 왈칵 짜증이 난다. 눈 딱 감고 써버리고 말까? 아니면 길바닥에 모른 척 내버릴까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예식 후에 시간이 남아서 잠깐 시장구경을 하다가 나는 남편이 좋아하는 국산 박대를 열 마리 샀다. 친구들은 좋은 찻집을 찾는다고 앞서 가는데, 뒤를 따르는 내 귀에 “쨍그랑!” 하는 고운 방울소리가 마음을 당긴다. 구세군 자선냄비였다. ‘아 아~ 이제 살았다!’ 내가 그 지겨운 동전을 꺼내서 얼른 냄비에 넣고 그곳을 떠나려는데 “감사합니다. 은총 많이 받으세요.” 하는 축복의 말이 내 뒤통수를 후려친다. 내가 도대체 무슨 좋은 일을 했다고 이런 덕담을 듣는가 싶어 민망하기 그지없고, 또 다시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하였다. 나흘 동안의 불편함에서 이제 겨우 벗어나는가 싶었는데 이건 또 무슨 조화인지 모를 일이다.
(성탄절) 해마다 성탄절이면 행복한 많은 사람들 속에서 어려운 이들의 아픔은 더욱 크고, 보이는 곳에서 또 안 보이는 곳에서 그들을 돕는 사랑의 손길도 줄을 잇는다. 그러나 나는 자선냄비의 방울소리가 눈앞에서 울릴 때에도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잔돈이 잡히면 냄비에 넣고 없으면 말고 하였다. 그저 분별없이 성탄의 기쁨에만 들떠서 성당에 가서 미사를 보고, 가까운 친지들에게 카드나 선물을 보내며 가벼운 마음으로 성탄시기를 지내어 왔다.
이번 일로 나는 잘 읽지도 않는 성경의 한 구절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주인에게서 1데나리온을 받아서 땅에 묻었다가 그대로 내놓은 사람의 이야기는 바로 나 자신의 이야기였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예고 없이 주어졌던 하얀 동전 세 닢은 겉으로만 신자라는 이름표를 달고 살아온 내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하고 반성하게 하였다.
21세기 첫 번 성탄절에 나는 하느님으로부터 하얀 동전 세 닢을 선물로 받았다. 그러나 어리석은 나는 아무런 답례도 하지 못하였다. 2001.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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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지요. 근데 저는 그날 지하도 입구 계단에 쭈구리고 앉아 구걸하는 노인을 만나서 그의 바구니에 담아줄 수 있었지요. 공짜는 웬지 남의 옷을 입은 듯 불편하지요? (지난 30일 수원에서 뵐 수 있으리란 기대를 했었는데...)
미안해요. 꼭 보고 싶었는데, 시 동인지 원고가 마무리 안되어서 못갔답니다. 올해 수필 쓴답시고 시를 전혀 안써서 잊고 있었지요. 그런데 제 시 원고가 안들어가서 총무가 시청에 가서 출간 일자를 한 달 더 연장하는 일이 생겼대요. 이미 문예진흥기금을 받아놓은 것이라 죽어도 올해 안에 책은 나와야 하거든요. 갑자기 열편을 쓰려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답니다.
구성기법도 독특하고, 자신을 돌아보게하는 글을 잘 읽었습니다. 답례의 의미를 많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도 여전히 받기만 하고 삽니다. 부활절이나 성탄절이 오면 열심히 봉사하는 자매님들 보기 민망해서 신앙에서 도피하고 싶어집니다.
선생님의 등단작이라니 좀 놀랬습니다. 한참 무르익은 글 솜씨에 놀랐는데, 선생님의 등단작이라니... .
에이, 엄청 부끄럽네요. 사실 이글은 오교수님 강의 듣기 전에 쓴 글입니다. 동아문화센터에 등록하고 나서 얼마후에 가지고 왔더니, 교수님께서 곧장 등단작으로 하시겠다고 하셔서 얼떨결에... 지금보니 아쉬운 부분이 많네요. 20:06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등단작을 만나볼수있어 영광입니다.
독특한 외형의 글, 잘 보았습니다. 동전 세 닢에 그렇게 쩔쩔매시다니......
뉴님, 동전 세 닢 그건 돈이 아니라는 걸 이제 아셨죠? 전도(선교)하라는 일화 입니다.
요즘 어찌 지내세요?
엄청 궁금했는데, 사목 활동은 잘 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