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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 요인과 프란치스칸 접근1)
배의태 (요셉) 형제
(작은 형제회, 프란치스칸 사상 연구소장)
A. 서론
12과의 주제, 즉 “관계성과 상호성: 프란치스칸 유대와 상호 연대에의 도전”이란 주제는 CCFMC의 교재 중에 새로운 것이고 이 교재가 아직 정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올바른 노선과 방향으로 말씀 드릴 수 있는지 모르겠다. 원래 이 교재는 24과로, sexism, 즉 “남녀 차별주의에 대한 프란치스칸 도전”이라고 불렸다. 이번의 새로운 교재는 보다 긍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성에 근거한 편견이나 구별”에서 유래하는 차별뿐만 아니라 인간을 “관계성과 상호성에서”소외시키는 온갖 차별과 억압과 착취의 요인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범위가 상당히 넓어진 것이다. 오늘날 다행히도 여성 해방 운동을 통하여 여성이 당해 온 차별과 억압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으며 여성은 사회의 여러 계층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해도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즉 여성 남성 구별 없이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인간이 인간다운 생활을 못하게 하는 온갖 종류, 즉 종족, 종교, 피부색,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불평등 등에서 오는 차별과 억압과 착취와 소외 요인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인간은 인권과 자유를 누리도록 되어 있지만, 그렇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어서 모든 사람이 평등한 자격으로 관계성과 상호성 안에서 살기에 방해가 되는 요인을 간단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B. 본문
1. 강자의 힘(신자유주의-neo liberalism; 신자본주의-neo capitalism)
1.1 개요
신자유주의의 최고의 가치는 돈이다. 이 세상에서 누가 승리하고 출세하느냐는 돈주머니를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오늘의 세계에서 이것은 손으로 만지는 돈주머니가 아니라 전파를 타고 세계 어디로든지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은행, 증권, 재벌에서 투자되는 주식으로 계산되지만 말이다. 그런데 가장 큰 속임수는 돈이 순수한 것으로 여겨지며 모든 이에게 복지를 가져다주는 것으로 간주되기에 다른 모든 가치가 돈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다. 이렇게 해서 돈의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성격을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 오늘의 세계를 정복하는 신자유론의 이데올로기는 “새로운” 가치를 선포하는 것인데, 이것은 어디보다도 경쟁이 가장 심하고 나라 경계를 넘어서는 다국적(multinational) 기업에서 현실화된다. 경제의 가치는 동정을 모르는 유일한 원칙이다: 경제적으로 볼 때 유리하고 좋은 것이라면 무조건 좋은 것이 되고, 가는 길에서 쓰러진 사람을 내버리는 일이 있더라도 다 정당화된다. 누가 넘어지든 상관없이 시장 경쟁의 가치는 구조적인 만병 치료제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생각할 때 할 수 없이 이 급류에 휩싸여 살아가면서 손해를 보는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신자유주의 원칙이 가정의 가계부부터 나라의 경제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가 뻔뻔스럽게 서도록 만들었다. 이제 자본주의는 겁없이 머리를 들고 경쟁자가 없으며 죄의식도 느끼지 않고 스스로 정당화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1.2 설명
경제 신자유주의는 하나의 사상과 삶의 구조이며(이데올로기) 서로 연결되고 굳게 뭉쳐지는 다음의 요소로 구성된다: a) 돈의 근본적인 가치, b) 정보- 경제적인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 c) 가난한 자를 위한 원조- 구조적인 불의에 대한 절감 도구보다도 통제 도구, d) 효율성- 절대화된 경쟁의 전제 조건, e) 인간을 기계 부속과 같이 갈 수 있는 것으로 여김, f) 사법 제도를 본구조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여기는 사고, g) 불평등한 조건하에 이뤄지는 대화 등이다.
여기서 두 가지 결정적인 결과가 나온다: 하나는 시장의 정복이고 또 하나는 수익의 증가로써의 기업의 확장이다. 시장의 정복은 생산과 자본의 정복을 초래한다. 그래서 시장의 법칙은 아무도 저항할 수 없는 인정 사정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경제를 인간에게 이바지하는 것으로 만드는 노력에 있어 가장 큰 장애 요소가 된다. 기업과 공장을 제3세계로 이동시키는 일을 하나의 예로 들 수 있다. 기업의 이동은 경제적인 손해 때문이 아니라 수익 증가의 결과이다. 그리고 그 이동으로 인하여 생기는 산업의 황폐 문제, 엄청난 실업 문제, 직업으로 인한 이민 문제 등은 고려하지도 않는다.
결과적으로 세계 인구 중에 18%가 세계의 생산력을 소유하고 독점하는 현실에서 경제의 세계화를 말할 수 있겠는가? 배타적인 성격을 지니는 이러한 구조는 세계 인구 중에 1/4에게만 유리한 것이고 이들만이 사회 복지를 누릴 수 있다. 결과적으로 배타적이고 불평등적이며 차별을 초래하는 이러한 구조는 강자들의 돈주머니를 채우고 있지만 인류의 대부분을 희생자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그리스도에게 믿음을 두고 가난한 프란치스꼬에게 눈을 돌리는 사람의 양심을 거스른다. 그럼에도 이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살 수 있는 공간은 비록 좁으나 공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1.3 프란치스꼬의 길
경제적인 삶의 형태는 각자가 하는 계급 선택에서 나타나기 마련인데, 프란치스꼬는 복음적 생활을 살기 시작한 초기부터 나환자들 안에서 잘 드러나는 패자의 계급을 선택하였다2). 프란치스꼬 회개의 핵심적인 순간은 가난을 발견했을 때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고 소외자들의 계급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소외자들의 세계를 선택했을 때이다. 이러한 가치관의 변화를 통해 프란치스꼬는 승자와 패자를 분리시키는 승자들의 이데올로기에서 해방되었다. 또한, 상호 연대는 오직 자신의 이익을 포기할 것을 전제 조건으로 하기에 프란치스꼬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난을 고수하면서 자기와 형제를 위해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길을 택하였다3). 소유욕은 돈과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므로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며 무기 투쟁, 전쟁, 실업, 굶주림, 남의 착취, 강도, 싸움의 주원인이다. 그리고 부귀는 인류를 주인과 종, 섬김 받는 사람과 섬기는 사람으로 분리시킨다.
프란치스꼬와 글라라는 오히려 타인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환대하는 것과 그리고 다양성과 나눔과 대화가 꽃피는 형제애와 형제 공동체를 내세운다. 또한, 프란치스꼬와 글라라는 “작음성”을 통해 모든 이의 평등성을 부르짖고 있으며 약자를 억압하고 하인으로 삼게 하는 소비주의 바퀴를 타지 못하게 가르치고 있다4). 우리는 프란치스꼬와 글라라의 근본적인 삶의 양식과 가르침에서 경제적인 거래가 사람을 위하고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의 가치에 이바지하는 새로운 비전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다.
1.4 프란치스칸 접근과 도전
신자유주의적인 사회는 거미줄과 같아서 그 줄에 잡히지 않도록, 또한 우리를 유혹하는 소비주의는 바다의 요정과 같아서 그녀의 상냥한 노랫소리에 속아넘어가지 않도록 우리는 이 급류에 강하게 저항할 수밖에 없다. 경제적인 신자유주의의 무책임한 조직은 강한 급류물을 통해 한 개인의 사상과 개성을 마비시키려고 한다. 이 급류에 역행하는 프란치스칸 접근은 한편으로는 돈에 대한 욕심의 절제와 소비품 구입의 조절이고, 다른 편으로는 물질적인 부족함 가운데서 삶의 즐거움을 보여주며, 특별히 약자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프란치스칸은 약자의 편을 들어서 그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새로운 양식을 제시하며, 압제적인 정보의 횡포에 귀를 막아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다른 종류의 생활관을 소개한다. 어려운 작업이지만 오늘도 비인간적이고 혼잡한 경제 제도를 맞서는 지혜롭고 깨어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개인적인 노력으로는 충분치 않다. 신자유주의는 “분열하라. 그러면 이기리라”는 전략을 쓰기 때문에 프란치스칸 형제 자매들도 개인 이익을 떠나 힘을 합쳐 합동으로 일하며 합동 전략을 써야 한다. 공동 협력과 연대성을 통하여 성장하는 공동체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나의 문제만 해결하면 되고 이것으로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으면 된다는 이기적인 태도는 건전한 프란치스칸 사상과 맞지 않는다.
신자유주의라는 큰 괴물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아무리 이상이 높고 행동 방식이 순수해도 결국은 혼자 투쟁할 때는 실망해 버리기 쉽고 항복하고 만다. 행동 방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힘을 합치고 조직을 형성하는 것이다. Group dynamic을 통한 힘이 불어날 때 지속적으로 효과를 낼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승리를 보장하고 강자를 무력하게 만드는 힘이다. NGO 발하는 힘을 생각할 수 있다. 연대성을 통해 밀접히 결속된 집단에 속하는 회원들의 지혜로운 삶, 즉 검소하고 절제하며 명쾌한 삶은 만사가 계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통념(myth)을, 척척 맞아 들어가는 장사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은 소용이 없고 가치가 없다는 통념을 거슬러 성공적으로 투쟁한다. 사실 경제적인 분야는 마케팅과 경쟁 생산에 한정될 수 없고 깊은 인격적인 관계로 엮여져 있는 세계다.
성 프란치스꼬의 자녀들은 평화와 존중함과 관상의 가치와 더불어 약자를 위한 정의와 고통을 당하는 이에게 가까이 다가감과 사회적으로 볼 때 비생산적인 사람들을 환영함의 가치들이 참으로 경제적인 재산이기에 인간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믿는다. 실제로 여러 국제 기관에서도 신자유주의가 제공하는 가치들의 공허함을 염려하며 연대성과 자유와 참된 행복 및 정의를 추구하는 유토피아를 요청하고 있다5)
2. 조난자의 세계(소외자의 세계)
2.1 개요
이 세상을 바다로 비교하여 이 바다를 순회하는 원양 고급 여객선이 있다고 상상하자. 시설이 잘 갖추어지고 장식이 빛나며 음악과 축제의 분위기가 가득 찬 호화로운 고급 유람선이다. 그러나 이 배를 타고 있는 사람이 뱃전에서 밖을 내려다보면 캄캄한 밤 물 속에 수많은 표류자가 몰려 있어 물에 빠져 죽는 사람, 도움을 청하는 사람 등 수많은 조난자를 보게 된다. 이들은 고급 여객선을 타지 못한 사람들이며, 심지어 배에서 쫓겨난 사람들도 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세계의 험한 모습이다. 이 표류자의 무리는 처음부터 시장과 마케팅의 무자비한 폭풍으로 인해 소외되었으므로 경제적으로 조난된 사람들이며, 조난에서 구조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문화의 문이 이들에게 막혀져 있기에 조난에서 구조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외에도 심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조난된 무리, 고독과 마음의 슬픔 속에 사는 무지한 사람들의 세계가 있다. 이들은 냉정한 세계에서 추위에 떨고 있으며 포근한 것을 모르고 산다.
2.2 설명
사람을 소외시키는 요인, 사람이 소외당하는 요인들은 가지각색이지만 정확한 정보 자료를 가지고 몇 개만 지적해 본다.
a) 생산품에서 이익을 보는 사람은 세계 인구 중에 18%에 한정되며 나머지는 배제된다6).
b) 미국 같은 부유한 나라에서는 학생 1인당 매년 5백만 원이 할당되는 반면에 남미에서는 십이만 원의 액수만 할당된다7).
c) 물질적인 가난과 문화적인 가난에다가 미성년자의 비보호와 전쟁의 불행을 당하는 소외자의 무리가 제일 크다. 최근 몇 년 동안 전쟁으로 인하여 2백만 어린이가 죽었고, 5백만 명이 불구가 되었으며, 천 2백만 명이 집을 잃었고, 백만명의 고아가 생겼으며, 2천 5백만 명의 어린이가 군인으로 이용당하였다.
그러나 가장 모순적이고 슬픈 것은, 소외의 가장 기초적인 요인이 되는 세계적 가난의 상황을 볼 때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가 갈수록 심해진다는 사실이다. 60년대에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가 1/30%이었다면 90년대는 1/60%로 늘었다. 어떤 경제 학자들은 기술적이고 경제적이며 상호협조의 정책과 인구 제한 등의 개선 정책을 적용하면 차이를 좁힐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오늘날 세계의 구조는 소외자의 무리를 증가시키면서 상호간에 차이점은 넓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는 오히려 가난한 자와 소외자 무리에서 많은 좋은 점을 발견하게 된다. 소외자들은 세상의 죄를 짊어가면서 우리에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영감과 용기를 제공해 주고 있다. 무의식적으로나마 이들은 유토피아를 살아가고, 창의력을 촉진시키며 새로운 경제 세계를 향해 걸어가며, 무엇보다도 헌신적인 마음과 용서의 증거를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조난자들의 어두운 세계속에 이와 같은 불빛을 보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연대성의 다리를 통해 구조의 손을 내밀려는 마음이 생긴다. 결과적으로 소외자들은 우리의 정체성을 자문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2.3 프란치스꼬의 길
프란치스꼬가 살았던 사회적 경제적 테두리는 오늘날 우리가 사는 복잡한 구조와는 틀림없이 상이점이 많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는 일치점도 발견할 수 있다. 동냥하러 다닌다는 것은 당대 수도 생활에 있어서 매우 새로운 요소였다. 그리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라”8)는 것과 “재산 없이 산다”9)는 생활 양식은 프란치스꼬와 글라라에게 타협이 있을 수 없는 원칙들이었다. 이 점은 당대 사회에서 새로운 경제적인 형태를 택하여 살려는 것 이상으로 소외자의 삶을 실제로 체험하는 생활 양식 이었음에 틀림없다. 이 두 분 성인들은 소외자의 삶을 소외자와 같이 살 때는 복음의 핵심적인 길을 따르고 있음을 확신하였다.
요즈음 어떤 작가들은 프란치스꼬가 참으로 소외자의 삶을 살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프란치스꼬는 자기가 속해 있었던 사회적 경제적 세계로부터 소외와 모용을 당했고, 가난한 무리가 설 자리 없는 시당국으로부터도 소외를 당했으며, 그의 근본적인 선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제도적인 교회로부터도 소외를 당했으며 심지어 그의 예언적인 가난에서 멀어지는 생활 양식으로 기울어진 그의 형제들로부터도 소외를 당하였다. 그리고 글라라와 그녀의 자매들은 자기들이 선택한 극단적인 행동 방식을 거부하는 가까운 시민들로부터 오해를 샀던 것이다10). 오늘날에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쉽지만, 프란치스꼬와 글라라는 몸과 마음에 당한 모욕의 상처와 쓰라림을 극복하기 위해 풍요로운 내적인 균형과 복음의 강한 양식이 필요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란치스꼬에게 있어 당대 소외자들 가운데서의 삶의 역겨웠던 것이 깊은 즐거움의 계기가 되었고11) 형제들에게도 같은 길을 장려하고 있다12).
2.4 프란치스칸 접근과 도전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정의의 소리가 들리는 공간이 있는 곳에 프란치스칸은 함께 한다. 이와 동시에 소외자가 사는 세계로 다가가는 것, 소외자의 외침에 대한 민감한 마음, 약자에 대한 책임에 깨어 있는 정신, 고통을 당하는 사람의 암흑으로 뛰어드는 행동, 소외 요인을 몰아내기 위한 구조 작업에 참여함으로써 유토피아를 생생하게 간직하는 것, 이 모든 것은 보람된 일이며 프란치스꼬의 아들딸들은 이것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불의한 사회 경제 구조를 비판하고 고발하면서 구체적인 공동 해결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
프란치스칸은 불평등의 현실을 고발하려고 노력한다. 신자유주의적인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이상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불평등이 없다고 속이려고 한다. 예를 들어 이런 사회는 거지들을 길거리에서 안보이는 곳으로 추방시키고 나서 거지들의 문제를 덮어 버리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프란치스칸은 불평등을 고발하는 행동은 물론이고 불평등한 사회의 무거운 짐을 져야 하는, 약자를 위한 분명하고 실질적인 행동 투신이 따라야 한다.
프란치스칸은 조난자, 소외자, 약자, 패자 등 가까이 할 수 있는 체험 분야가 많다: a) 모든 것을 잃고 낮이나 밤이나 길거리를 방황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곳(빈민 식당, 지하철 역, 도시 정원 )에서 따뜻한 음식과 미소를 제공하는 것, b) 백번이라도 사회 적응을 시도하는 사람들(가출자, 출감자, 마약자, 불구자 등)에게 지원과 일자리와 지붕을 마련하는 일, c) 능력과 기술이 부족하고 사회에서 “빽” 없는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모색하는 것, d) 살기 위한 방편으로 여성으로서 품위를 잃을 정도로 사회의 이용을 당하면서 매춘 세계에 사는 여성들에게 품위를 되찾게 하는 것; 프란치스칸은 이외에도 노숙자와 노인 세계, 길거리의 어린이 세계, 실직자들의 세계, 약자들의 세계, 장애자들의 세계, 마약의 세계 등 헤아릴 수 없는 가지각색의 소외자 가운데서 투신할 수 있다. 세계의 조난자와 소외자 가운데서 투신하는 프란치스칸에게 요청되는 것은, 이들을 동등한 자격으로 환영하는 마음과 오늘날 사회의 구조를 대처할 수 있는 보다 인간답고 복음적인 새로운 구조가 가능하다는 데에 대한 강하고 끈질긴 믿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같은 믿음을 지니는 선의의 사람들과 연대성을 통해 힘을 합칠 줄 아는 것이다.
3. 평화의 금속성의 소리(평화주의와 반군국주의)
3.1 개요
군국주의자가 목적하고 정당화하는 평화에는 금속성의 소리, 무기의 소리, 폭탄의 소리가 들린다. 실제로 군국주의가 목적하는 것은 평화를 유지하는 것보다 강자의 권력, 특히 경제적인 권력을 통제하는 사회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다. 결국 군사 제도는 인간관계를 승자와 패자, 억압하는 사람과 억압을 당하는 사람, 통제하는 사람과 통제를 당하는 사람이 사는 사회 구조로 지탱시킨다. 나라를 지키고 국민들을 외부 침략에서 보호하기 위해 군대가 필요하다는 개념은 아직도 세계적으로 지배적인 것이다. 실은 요즘도 세계 여러 군데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나라마다 자기 군대를 가지고 있다. 가난한 나라에서도 군인들은 일반 시민들보다 좋은 대우를 받는다. 그러나 감히 건드리지 못하게 되는 군국주의에도 금이 생기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양심수 문제나 군대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 제기나 군대가 지탱하는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의식이 그렇다.
3.2 설명
군국주의나 이와 관련되는 분야는 너무 광범위해서 몇 개 문제만 골라서 관찰하고자 한다. 이것들은 국가의 국방 예산, 무기 매매 산업 그리고 의무적 군복무이다. 국민들은 국방의 예산, 주로 군대의 전문성과 현대화에 소비되는 비용을 볼 때 걱정하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가들은 군전문성을 언급하지만 실제 문제는 군의 현대화이다. 잘 방비된 군사력을 갖추려면 매년 낡은 군비를 대처하면서 새로운 군비를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무기 확장 경쟁은 끝이 없다. 그리고 새로운 무기 가격을 감당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국민들의 세금에서 경제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의 복지를 위해 쓰여져야 할 국가의 많은 예산이 군대 현대화를 위해 할당되는 것은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며칠전에 국가 전체 연구비 중 반이상이 새로운 무기 연구에 들어간다는 신문 보도가 있었다.
한편, 무기 판매는 군국주의의 가장 사악한 면을 보여준다. 무기 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세력이 강하면서도 불투명한 시장이다. UN 상임위원회 국가들이 무기를 가장 많이 수출한다는 사실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UN의 평화군이 세계 어디로든지 파견될 때 실은 자기들이 지른 불을 끄려고 가는 셈이다. 무죄한 생명을 위협하고 빼앗아 가는 지뢰 문제도 여기에 해당된다.
마지막으로 의무 군복무를 들 수 있다. 양심수와 입대를 거부하는 젊은이들의 수가 매년 늘어가는 추세이다. 이는 군국주의 자체가 목적하는 바를 반대해서만이 아니라 군국주의와 관련되는 문제를 의식하고 군국주의가 지탱하는 사회 구조에 도전하면서 새로운 세계 질서를 갈망하는 결과로 봐야 한다.
3.3 프란치스꼬의 길
프란치스꼬 자신이 매우 군대화된 문화에 속했기 때문에 우리는 최초 프란치스칸 영성에서 오늘날 제기되는 반군국주의적인 비전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프란치스꼬의 삶과 말씀에 좋은 씨앗을 모을 수 있다. 첫째로, 프란치스꼬 자신이 겪은 두 차례 전투의 사건은 그에게 쓰라린 체험이었다.13) 둘째로, 프란치스꼬는 극단적인 평화주의의 길을 택하였고 세상을 다니는 형제들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라고 회칙에서 명하였다14). 그리고 어떤 형제들이 자기들을 의심스러운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기 때문에 평화스러운 태도가 신변 보장에 도움이 안된다고 불평했을 때도 프란치스꼬는 예언적인 비전으로 평화의 길을 고수하였다15). 이 모든 것은 프란치스꼬의 비전이 평화를 기초로 하는 생활 태도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말해 준다.
또한, 이 관점과 관련하여 성프란치스꼬가 1219년에 성지로 한 순례 여행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참으로 평화와 반군국주의의 예언적인 표지였기 때문이다. 프란치스꼬는 형제 한 명과 함께 십자군이 포위한 다미에따 성에 도착한다. 매우 끔찍하고 포악한 상태인데도 프란치스꼬는 무기 없이 말씀과 형제적 태도를 가지고 평화의 사람으로 행동한다. 믿을 만한 증거에 의하여 그는 Mebek- al-kamel 술탄을 만날 수 있었고 군주와 평화스러운 유대를 이루었다16).
결과적으로 프란치스꼬는 무기를 대처할 수 있는 평화의 길을 제시하였다. 그는 제1회칙 14장에서 평화의 비결을 풀어 준다: a) 물질에서 해방(1),; b) 안팎으로 평화를 간직함(2-3), c) 복음적 사랑의 실천(4-5), d) 온갖 싸움을 피할 것(6).
3.4 프란치스칸 접근과 도전
프란치스칸은 우선 군국주의 문제에 관련되는 사회적인 문제를 의식하고 군국주의 문제는 모든 이에게 가까이 해당되는 문제인만큼 적극적인 반대 태도를 취해야 한다. 군사를 사회의 일부 구성 요소로 생각함으로 말미암아 미쳐지는 영향을 비판할 용기를 갖고 무기 없이 사회 구조 형성을 꿈꾸는 선의의 사람들과 힘을 합친다.
프란치스칸은 온갖 폭력 형태를 반대하면서 평화의 대화가 꽃피도록 여러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다: 1) 양심수의 입장과 군입대를 거부하는 행위를 복음적인 빛으로 조명하는 정보 활동에의 협력; 2) 국가 국방 예산 정책에 대한 반대 표시와 이와 관련된 국민 세금 부담 반대 활동에의 협력; 3) 국제 평화 정책 전략에 대한 후원; 4) 모든 차원-가정, 학교, 직장, 교회 공동체, 국가 정책 등-에서 온갖 폭력 행위 제거; 5) 비폭력 표시-시위, 서명 운동, 대화 광장, 국내 및 국제 평화 기구-에의 적극적인 참여 등이다.
결론적으로 무기에 지탱하는 사회 구조가 무죄하고 선량하며 약한 자들을 소외시키고 이들에게 손해를 입히는 원인이 되므로, 성 프란치스꼬의 아들딸들은 보다 새롭고 인간다운 사회 구조의 기초로서 근본적인 평화주의의 봉화를 높이 들어야 한다.
4.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남녀 차별)
4.1 개요
삶을 여성의 눈으로 바라보는 비전이 갈수록 필요하다. 오늘의 사회는 여성이 사회 모든 분야에서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한다는 것에 익숙해져 가는 동시에 종교 세계에서도 여성의 예언적인 가능성과 역할이 인정되어진다. 물론 프란치스칸 접근 증명에서 이 주제를 논의할 때 제1세계의 여성과 제3세계의 여성의 위치가 매우 다르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예들 들어 제3세계에서는 80%의 여성들이 단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문화의 문이 막혀져 있는 반면에 노르웨이의 여성은 국가의 운영권과 권력을 잡아 지배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세계 어디서나 남녀 차별이 심하고 여성들의 인권이 짓밟히고 있다. 그런데 가장 온순하고 평화스러운 모습으로 인류의 품위를 회복시키려면 세상을 여성다운 눈으로 바라보는 시기가 와야 할 것이다.
4.2 설명
여자가 세계적으로 처해 있는 상태를 파악하고 이에 대한 통계를 모으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떤 사회라도 여성은 남자에 비해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여성 실업자가 더 많으며, 받는 봉급도 25% 더 낮다. 또한,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 중에 70%가 여성이고 세계 문맹자 중에 2/3가 여자라는 통계가 있다. 그리고 여성이 속해 있는 사회적 위치와 계급이 낮을수록 여성 착취, 매매, 매춘, 이용, 침묵당함, 모욕의 비율이 높아진다는 것은 누구나 다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결론은 분명하다. 여성은 일반적으로 오직 여자로 태어난 그 사실 때문에 모든 여건에서 남자보다 하위 취급을 받고 있으며 이것은 여성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체험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하고 질문을 한다면, 그 이유와 답은 인류 역사와 사회 구조 배경에 숨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교회도 이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새로운 의식과 깨달음을 얻은 현대인은 여성을 소외시키는 차별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나열한다: 1) 여성은 무엇을 위한 받침 역할을 하도록 교육 받았으며 그녀에게 개인 성취를 위한 계획과 길이 허용되지 않았다.; 2) 여자가 사회로부터 취급받는 불균형, 즉 남자에 비해 놓이게 된 불균형에 있어, 그녀로 하여금 이 불균형에 스스로 맞서고 스스로 해결하기에 필요한 도구가 여자에게 허용되지 않았다.; 3) 여성이 고유한 자기 원의와 열망을 가지고 추구한다는 그 자체가 부정적으로 여겨졌다.; 4) 여자에게 독립성과 관계성 간의 건전한 균형을 유지할 길이 막혀져 있었다.
이 결과로 여성은 소외를 당하는 희생자가 되는 동시에 자기를 지배하는 남자에 의존하면서 이 소외감을 이용하는 공범자도 된다. 그리고 희생자인 동시에 공범자가 된다는 순환 세계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도 오늘날에는 여성으로서의 고유한 면을 지니는 여성의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여성의 고유한 면들은 서로 구분되는 것보다 동시에 연결되어 있으므로 다양한 관계성을 이루기 위해 유리한 점이 많다. 이렇게 볼 때 인간 발전을 위한 여성의 기여는 틀림없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지고 온다.
또한, 여성은 상대 공격을 대처할 수 있는 강한 저항력(인내심)을 갖추고 있다. 이 저항력이 현대 문화에서 나타나는 투쟁 분야는 주로 정서적인 관계성과 노동 세계에서의 평등성이다. 그리고 이 투쟁을 통해 여성은 이미 많은 사회적, 법률적인 성과를 얻고 있다. 또한, 이와 같은 저항력 때문에 여성은 지도력과 통솔력을 맡기에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여성의 사회적 정치적 지도력은 오히려 국가들간의 보다 인간화적인 상호 관계를 맺기에 소중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여성의 교회 행정 참여에도 해당된다. 아무리 교회의 체제와 행정이 이 분야에 대하여 제재를 하려고 해도 동등한 자격으로서의 교회 여성의 참여는 멈출 수 없는 운동이다. 이것은 차차 평등적인 사회를 부르짖는 외부 세계의 요청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정의의 원칙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강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4.3 프란치스꼬의 길
오늘날에 여성의 불평등이 담고 있는 인간학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를 성 프란치스꼬와 성녀 글라라의 시대로 옮기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지만, 성 프란치스꼬가 여성에 대해 취한 태도를 관찰하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성 프란치스꼬의 글에 나타나는 대로, 프란치스꼬는 여성에 대해 매우 친절하고 정중한 마음을 지녔고 당신 삶의 체험을 글라라와 그 자매들과 나눌 줄 알았다17). 프란치스꼬도 자기 시대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특히 회칙에서 여자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형제들에게 경계를 지키라고 명하고 있지만18), 세떼 솔리의 야고바와 특히 성녀 글라라를 대하는 그의 태도를 보면 깊이 사랑하고 평등하게 대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프란치스꼬는 처음부터 자기가 시작한 생활 양식에 여성을 포함시킬 생각이 없었으며 더군다나 자신과 형제들을 위해 스스로 택한 소외자의 계급을 여성들을 위해 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프란치스꼬와 글라라 사이에 깊은 영적인 관계가 맺혔을 때에19) 글라라와 자매들이 모욕과 소외를 당하지 않도록 스스로 대책을 모색하면서 그녀들을 평등한 자격으로 복음적 길로 받아들인 것이다. 성녀 글라라의 프란치스칸 생활 양식은 등급이 더 낮은 것이 아니라 프란치스꼬 형제와 동등한 자매가 되는 수준이다. 프란치스꼬가 성 다미아노 자매들에게 쓰신 글들을 읽어보면 이것은 분명하다. 프란치스꼬와 글라라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프란치스꼬는 개인적인 어려움이나 수도회에 관한 위기가 있을 때 글라라의 보호와 지탱을 받았고20), 글라라도 마찬가지로 성 다미아노의 최초의 힘든 시기와21) 같이 프란치스꼬가 돌아가실 때까지 끊임없는 도움과 보장을 받았다.
4.4 프란치스칸 접근과 도전
현대를 사는 프란치스칸 형제 자매는 남녀 관계에 있어 최대한 포용적이고 균형이 잡혀 있으며 형제적인 비전을 갖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과거의 정서적인 역사나 이성적인 경향 때문에 아무도 소외시키지 않는 포용적인 태도, 이성이나 다른 피상적인 관계 때문에 아무에게도 도움이나 구원을 거두지 않는 균형이 잡힌 태도, 모든 인간적인 관계 세계를 친절하게 환영하는 형제적인 태도 말이다. 인간 앞에서의 프란치스칸 반응은 따뜻한 환영과 평등성과 정의에 대한 민감성과 존중함이라야 한다. 여기서는 어떤 차별도 설자리가 있을 수 없다.
프란치스칸은 또한 성 프란치스꼬에게 “기사도 정신”을 유산으로 받은 사람으로서 여성에 대해 어떠한 형태이든 폭력을 행하거나 행할 것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에 대한 실질적인 실천 방법은 a) 상처 입히는 언어 사용의 삼감; b) 조심스럽고 존중한 생활 태도; c) 남녀 차별이 보이는 곳에서 여성의 편을 들음; d) 힘든 남녀 관계가 있는 곳에 긴장 해소로서의 여유로움과 다정함의 분위기 조성 등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욱 깊은 차원에 들어가서 성 프란치스꼬의 자녀들은 여성의 목소리를 예언적인 목소리로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 버려진 길가로부터 들리는 목소리, 고통스러운 인내심으로부터 들리는 목소리, 그리고 특히 제3세계의 가난한 여성들로부터 들리는 소리 없는 목소리와 괴로운 목소리는 오늘의 사회나 교회 공동체에게는 예언적인 소리이다. 여성의 목소리로 들리는 이 소리에 우리는 귀를 막아서도 안되고 눈을 피해서도 안된다.
마지막으로 프란치스칸은 우리 사회의 암흑에서 사는 여성들을 자비로운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문화적으로 불평들을 떠나지 못한 처지에 있는 여성의 무리, 정서적인 욕구 실패로 상처받아 애정 결핍으로 침묵과 고독속에 지내는 여성들의 무리, 한때 그리스도를 위해 열성을 다 바쳤지만 오늘날에는 물질 세계와 안락주의에 빠져 무의미하게 방황하는 젊은 여성들의 무리, 메스컴이나 통계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온갖 억압을 당하면서 도시 변두리나 그늘진 거리에 사는 여성의 무리들이다. 이들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며 우리의 자비롭고 해방적인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
5. 무지의 어리석음 (인종 차별)과 타국인 혐오(racism, xenophobia)
5.1 개요
어떤 시인이 말했다: “어떤 국민들은 알지 못하는 것은 멸시한다”. 타국민에 대한 혐오와 그 중에도 가장 무서운 표시인 인종 차별은 타인을 알지 못하는 무지의 결과며 가장 어리석은 짓이다. 타인이 나하고 탄생지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고, 인종이 다르다고 해서 그를 배척하고 낮추어 보며 소외시키는 것은 근거 없는 편견과 차별의 표시이며 결국은 연대성을 모르는 이기주의적인 행동 방식이다. 그리고 오늘과 같은 경제적인 세계화 시기에 인종 차별의 문제는 더욱 심하게 일어나고 있다. 코소보, 인도네시아, 인도,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소수 민족의 학살과 절멸은 현대인에게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민의 현상도 이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이 문제도 역시 중세기의 프란치스꼬와 글라라의 영성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그들은 인간과 국가들 간의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형성할 노선을 제공해 준다. 프란치스칸 생활 양식은 초기 때부터 선교 활동을 통해서 다양한 문화 속에 삽입되고 뿌리가 박힌 역사를 지니고 있다.
5.2 설명
인종 차별에 대한 태도는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제도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의 매일 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소수 민족의 권리들이 짓밟히는 일들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이민들이 당하는 억압과 착취의 행위들은 더 고통스러운 체험들이다.
이민자들은 고향을 떠나 낯선 환경에 살게 된 그 자체로써 심리적인 압박과 정신적인 불안을 느끼며, 거기다가 때때로 처해 있는 새로운 환경에서 사람들로부터 차별과 소외를 당한다. 그리고 이민에 관한 법에 따라 자격을 갖춘다 해도 여러 불리한 조건 때문에 자기 권리 보호를 받는 것도 쉽지 않을 뿐더러, 불법적인 이민자의 경우에는 사정없이 이용당한다: 주택과 의료 혜택과 위생 문제나 저임금, 신병 보호 문제 등이 그런 것이다. 애국주의를 지나치게 주장하는 것과 선동하는 일은 낯선 사람에 대한 증오심이나 무관심을 일으킨다. 반면에 자기 나라의 시민과 동시에 우주의 시민이라는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개방적인 마음을 지닌다.
“이제 여러분은 외국인도 아니고 나그네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같은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에페소 3,19)라는 말씀과 “여기에는 그리이스인과 유다인, 할례 받은 사람과 받지 않는 사람, 타국인, 야만인, 노예, 자유인 따위의 구별이 없습니다”(골로 3,1)라고 하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따르는 정신이 세계 곳곳에 퍼져야만 차별이 없는 건전한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
5.3 프란치스꼬의 길
우리는 성 프란치스꼬가 불쌍한 사람(IR 9,2), 이교도, 사라센인, 이단자에 대해 취하신 태도에서 관용의 정신을 이바지하는 기초와 온갖 인종 차별 추방을 위한 프란치스칸 활동의 기초를 찾아볼 수 있다.22)
또한, 더욱 깊이 들어가서 인간을 바라보고 대하는 프란치스꼬의 존중하는 마음과 관대함의 태도를 생각할 때 인종 차별이란 죄악을 배척하는 열성을 확인할 수 있다. 영적인 권고 27, 1절에서 프란치스꼬는 말한다: “사랑과 지혜가 있는 곳에 두려움도 무지도 없습니다.” 따라서 타인을 인정해 주는 따뜻한 관대함이 있는 곳에는 두려움이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타인의 삶에서 장점을 볼 줄 아는 상식과 지혜가 있는 곳에는 그 사람의 가치에 대한 무지가 사라지는 법이다. 두려움과 무지가 소외를 낳게 하는 반면에 타인에 대한 관대함과 인정은 우주적인 형제애의 문을 연다. 이외에도 “업신여기거나 판단하지 말라”23)는 성 프란치스꼬의 말씀은 성 프란치스꼬의 아들딸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생활 법칙의 길잡이다.
5.4 프란치스칸 접근과 도전
인종 차별에 대한 악습을 예방하기 위한 방편은 평등성의 문화, 다양성 가운데서 기쁘게 사는 삶의 문화, 나누기만 하면 이 세상에서 모든 이에게 필요한 것이 충분하리라는 확신의 문화, 모든 이가 모든 것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기본 사실이 받아들여지는 문화를 산다는 것이다. 작은 자는 낯선 사람이 자기 삶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도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이것이 오늘의 프란치스칸 작음성의 적용이다.
프란치스칸은 또한 이민 문제가 포함하는 인간적인 면에 민감하여 이민자들이 당하는 쓰라림과 고통을 자애로이 바라본다. 이것이 우리 양심을 흔들게 하며 우리 생활 태도를 도전하게 하는 가까운 숙제이기 때문이다. 협력의 방법으로써, a) 일자리를 구해주는 것; b) 외국 노동자들이 인권 보호를 받도록 협력하는 것; c) 이민자들의 가정의 복지를 돌보는 것; d) 전쟁 중에 있는 나라의 자녀들을 따뜻하게 환영하고 임시로 보호하고 교육시키는 일; e) 무엇보다도 이런 활동에서 종사하는 국내 혹은 국제 기구에 가입하거나 힘을 합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어떤 민족이 월등하다는 사상이나 우리가 사는 세계로 들어온 외국인이 위험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멀리하기 위해서는, 인간이면 누구나 나의 형제 자매라는 우주적인 형제애의 유토피아를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타민족, 타나라 사람의 문화와 삶 안에 들어가 서로 앎으로써 모든 것을 나누어야 한다. 이것이 무지의 어리석음을 피하는 길이다.
C. 결론
지금까지 이 세상의 급류를 타고 가는 도중 이 세상에서 만나는 구조적인 재앙, 사람을 소외시키고 사람의 가장 고유하고 소중한 정체성을 빼앗으려는 구조적인 죄악, 즉 억압이나 착취나 소외나 차별의 요인이 되는 다섯 가지의 죄악을 간략하게 지적하였다. 이외에도 소외적인 요인은 많다. 예를 들어 기아의 문제가 그 중의 하나이다. 50년대부터 오늘까지 세계의 양식 생산이 두 배, 세 배로 늘어 났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5천만 명의 사람들이 기아로 굶어 죽고, 그 중에 천 2백만 명은 어린이다. 이것은 이 세상에 음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분배 문제, 나눔의 문제이다. 그 외에 지붕 없는 사람의 문제, 갖가지 인권 유린, 불의한 무역 정책 등 다 헤아릴 수 없다.
이 어두운 장면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세상이 아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행복을 원하시며 인간의 성취가 이루어지기를 바라신다. 이 어두운 세상은 하느님이 인간을 위해 만드신 낙원과는 아주 반대 현상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선하심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부활을 통해 죄악의 세계를 쳐 이기셨다는 것을 믿는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 부활의 승리에 참여하면서 하느님 나라를 위해 투쟁한다.
프란치스꼬와 글라라는 오늘과 같은 정보 기술이 없어 넓은 세상을 모르고 살았지만, 그리스도와 복음에서 배운 지혜에 따라, 그리고 성령의 빛을 받아 자기들이 살았던 작은 세상에서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평등성과 형제애와 작음성과 나눔 및 봉사의 삶을 살았다. 성 프란치스꼬와 성녀 글라라의 아들딸들인 우리는 그들이 심어 놓은 씨앗에서 영감을 받아 오늘의 세상과 인류와 의 관계성과 상호성에서 만나는 도전에 프란치스칸 유대와 상호 연대성을 통해 응답하여야 한다.
<참고 서적>
1. Fidel Aizpurua,ofmcap, "POR QUE A TI", Editorial franciscana Arantzazu, l998
2. 프란치스칸 선교 영성, 프란치스꼬회 한국 관구
3. CCFMC Simplified Version: The Pattaya Papers, "Relationship and Reciprocity: Franciscan Solidarity", 1998
4. General Secretariate for Formation and Studies, ofm, "Our franciscan identity", Rome, 1993
5 .라자로 이리알떼, ofmcap, "프란치스카 소명", 분도 출판사, 1997
6. Javier Garrido, "La forma de vida franciscana, ayer y hoy", Editorial franciscana Arantzazu, 1985
7. Raoul Manselli, "Vida de San Francisco de Asis", Editorial franciscana Arantzazu, 1997
8. 산 디에고 Ofm 총회, 1991, “오늘의 우리 회와 복음화”, 프란치스꼬회 한국 관구
9. 아씨시 Ofm 총회, 1997, “온 세상을 그리수도의 복음으로 채우기”, 작은 형제회 한국 순교 성 인 관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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