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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6월 5일 광주시 금남로
여명이 밝아왔다. 새로운 역사를 밝히는 서광처럼 해가 무등산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서광이 비추는 무등산. 그곳은 광주인과 전라도인들의 투쟁의 역사를 담고 있는 신성한 산이었다. 임진왜란 때 김덕령 장군과 고경명 장군이 군사를 일으켜 강토를 짓밟으려 하는 왜놈들에 맞서 싸우고, 갑오년 곰나루에서 조선을 강탈하려는 청국 떼놈과 일본 왜놈에 맞서 싸우려 하였던 그 함성이 들려오는 산이었다.
함성은 계속되었다. 을사조약으로 나라가 빼앗겨 왜놈들에게 대한국 강토를 빼앗기려 할 때 의병들이 봉기하였었다. 기삼연 김태원 심남일 안규홍 전해산. 그들은 총에 맞아 쓰러지고 칼에 맞아 피를 흘리고 뼈가 부서지고 뼈가 닳도록 싸웠다. 나라가 일본에 빼앗기고 20년이 안되었을 때도 함성은 계속되었다. 일본의 식민지 교육에 반발해 조선인 본위의 교육을 요구하며 일본 제국주의 타도와 조선민족의 해방을 부르짖은 것이었다. 장석천 장재석 국채진 박오봉 등이 그 주인공이었다.
무등산이 감싸는 도청 앞 광장으로 시민군과 해병대, 각종 장비가 모이기 시작하였다. 광장은 거대한 시장통처럼 들썩거렸다. 탄약과 무기를 점검하는 여자 해병대 장교, 교통정리를 하는 시민군, 국방색 차림의 예비군복에 M1 소총과 M16 소총으로 무장한 시민군들, 광장 주변을 엄중히 경계하는 사막위장복 차림의 해병대원...
도청 지하실에 있었던 김정수 중령과 채경식 상사는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금남로 쪽으로 걸어가 도청에 걸려있는 해를 바라보았다. 새벽과 아침 사이에 해가 뜨는걸 시내에서 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았다. 고등학교 시절 학생운동 기념탑이 있는 학교를 등교할 때 그랬고 1980년 5월로 타임슬립 할 때도 그랬다.
“참 멋집니다.”
“그렇습니까?”
평생에 몇 번만 볼지 모를 이 광경. 김정수 중령은 금남로를 비추는 햇빛을 온 몸으로 빨아들였다. 이 햇빛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맘껏 느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날이 온다면 좋은 일이었다. 햇빛을 본 기쁨에 겨워 시인 심훈의 시에 나오는 표현처럼 뱃가죽을 찢어 그걸로 북을 만들어 기쁨을 노래할지 몰랐다.
김정수 중령 앞으로 누군가가 걸어왔다. 전현빈 중위였다.
“필승!”
“필승. 전중위인가? 수고가 많군. 준비는 확실한가?”
“옛. 그렇습니다.”
지금 해병대는 ‘위대한 여정’이라는 암호의 그 자를 납치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번 광주교도소 습격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병력과 장비, 차량이 동원되고, 1중대 1소대와 1중대 2소대, 3중대 1소대, 3중대 화기소대, 공병소대가 작전의 주력으로 편성되었다. 특히 저번 광주교도소 습격 때 첨병역할을 했던 1중대 2소대와 공병소대는 최정예 해병대원을 충원해 이번에도 위대한 여정을 납치하는 첨병역할을 하게 되었다.
첨병들이 수행하게 될 작전은 엄청 힘들고 위험할지 몰랐다. 자세한 정보는 알 수 없지만 노진태 중위의 RC 항공기가 수차례 전투교육사령부를 정찰하면서 며칠 사이 전투교육사령부의 경계태세가 평소보대 배로 강화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늘어난 병력과 사령부 주변에 배치된 각종 장비, 초소들. 정면으로 사령부를 공격하면 큰 피해를 각오해야 할지 몰랐다. 첨병들이 몰래 사령부에 침투하더라도 강화된 경계망에 걸리면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이봐 전중위. 자네가 갈 길이 상당히 힘들거야. 잘못하면 그곳으로 머나먼 여정을 떠나야 할지도 모르지. 유서는 썼나?”
“썼습니다. 대대장님.”
묵묵히 전현빈 중위는 군복 상의 주머니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 김정수 중령에게 건넸다. 김정수 중령은 그것을 말없이 받아들고는 비석처럼 굳은 전현빈 중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몇 년 전만 해도 해군사관학교에서 음담폐설을 했던 같은 기수의 해사 생도는 어느새 해병대 보병대대장과 보병소대장이 되어 있었다. 한 사람은 도청에 틀어박혀 작전을 지휘·검토하고, 한 사람은 광주 시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수많은 어려움과 부딪혔다.
하지만 그 한 사람은 도청에서, 충장로에서, 광주공원에서, 광주교도소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살아남았다. 도청으로 돌아오면 좆도 아니라며 희희낙락 웃기만 하였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달랐다. 지금은 누군가를 죽이는 것도 아니고 납치하러 가는 길이었다. 누군가를 납치 한다는건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그 누군가를 지키는 자들의 경계가 엄중할 때는 더더욱! 그랬다.
“젠장할... 전현빈 이 개새꺄! 뒈지지 마, 새꺄! 살아 돌아오란 말이야!”
김정수 중령은 고함을 지르고는 전현빈 중위를 세게 끌어안았다. 같은 동기를 위험한 작전에 보내는 이 괴로운 기분. 김정수 자신이 대신 가면 좋겠지만 김정수는 지금 전현빈 같은 야전 소대장이 아니었다. 대대장이었다.
“대... 대대장님.”
“잘 들어 새꺄. 내가 대대장이 아닌 해사 동기로서 이야기 하는데, 절대 뒈지지 말아라. 알겠냐? 어? 가! 새꺄.”
멀리 밀쳤다. 전현빈 중위는 재빨리 경례를 하고는 도망치듯 군용트럭 쪽으로 달려갔다. 누군가가 걸어왔다. 위장크림을 잔뜩 바른 공병소대장 이수영 소위였다.
“필승. 출동 신고합니다. 소위 이.수.영.”
“이소위? 이수영 소위. 내가 한가지 부탁을 하기 전에...”
김정수 중령은 뭔 말을 하려다 생각이나지 않은 듯 말끝을 흐렸다. 한참 생각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아니. 이수영 소위 보니깐 참 섹시하군. 위장크림 하고 군복 때문에 얼굴하고 몸매가 잘 드러나지 않지만. 흐음. 한가지 부탁만 하지.”
헛기침을 하였다.
“일단은... 살아 돌아오게. 혼자만 살아 돌아오지 말고 소대원들과 같이 살아 돌아오게. 그리고... 살아 돌아오거든 강우혁 병장의 고백을 받아들이게.”
“...”
아까 전만 해도 시끌시끌하던 주변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너무 무리한 부탁인가? 하긴. 내 생각하고 이소위 생각이 다를 수 있지. 하지만 나는 자네와 강우혁 병장이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강병장이 자네를 귀찮게 구는 것 같이 보여도 본심이 사악하지는 않을거니까. 살아 돌아오거든 절대로 강병장을 실망시키지 말게. 강우혁 병장의 자네에 대한 사랑은 전우애야. 전우애. 가식이나 허황스러운게 아니라고.”
“...”
“부디 전우애를 사랑으로 발전시키게.”
이수영 소위는 우물쭈물 하였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가게. 이소위.”
김정수 중령은 이수영 소위를 떠밀쳤다.
“알갔습네다 대대장 동무.”
연변처녀 이수영 소위 -_-
1980년 6월 5일 광주시 금남로
하나하나 군용트럭에 올랐다. 얼룩무늬 군복차림의 홍재형은 사방을 둘러보다 이상이 없는걸 확인하고는 트럭에 올랐다.
“와따. 형씨. 씨방 작전에 참가할라고 탄거요?”
“예. 일부러 자원했습니다.”
약간 삭아보이는 시민군의 물음에 홍재형은 미소를 지었다.
원래 홍재형은 항쟁이 있기 전만 해도 막 전남일보사에 입사한 신입사원, 아니, 기자였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신문에 여러 가지 기사나 생활에 도움이 될 글들을 많이 기고하였다. 그러나 공수부대가 광주시민들을 상대로 학살극을 벌이면서 신문발행이 중지되자 동료들과 뜻을 모아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유인물 제작에 참여해 광주시민들을 학살하는 신군부 세력을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지방지 신문기자가 신군부 세력에게 말미잘이네 해삼이네 호로새끼들이네 비난한다고 해서 그들이 지방지 신문기자의 글을 볼 리는 없었다. 광주시민들을 폭도라고 하고 인간 전두환이라고 전두환을 찬양하는데 미친 민족정론지를 볼게 뻔했다. 유인물 제작에 한계를 느낀 홍재형은 결국 유인물 제작을 때려치우고 시민군으로 자원하였다.
“형씨 참 통이 크구먼? 이거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는 알런가...”
“당연히 압니다. 하지만 앉아만 있을 순 없잖습니까. 싸워서 신군부 세력을 박살내야지요.”
“참 장하구먼!”
시민군은 홍재형의 어깨를 치고는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쉽게 잊을 수 없었다. 마치 도시를 적국의 도시에 진주하는 점령군처럼 들어와 대학생들을 닥치는 대로 때리고 죽이던 군인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시위대에게 총을 쏴갈긴 군인들. 아스팔트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볼 때면 분노로 밤을 지새우며 정신없이 시민들을 잔인하게 학살하는 공수부대를 비난하는 글을 쓰곤 하였다.
“근디 형씨 이름이 뭐요?”
“홍재형입니다.”
“그렇소? 아, 나는 김진형이오. 반갑소.”
스스로 김진형이라고 이름을 밝힌 시민군은 홍재형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홍재형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김진형이 내민 손을 잡았다. 김진형은 만족스러워하며 손을 꽉 잡았다.
“반갑습니다. 근데 그쪽은 무슨 일로 작전에 참가하셨습니까?”
“무슨 일? 흐음... 사실 아들놈이 며칠 전에 죽어부렀소.”
아까 전만 해도 밝은 표정이었던 김진형은 아들 이야기를 꺼내자 눈시울을 붉히기 시작하였다. 홍재형이 그걸 보고 이 상황을 회피하려 했지만 김진형이 홍재형의 팔을 붙잡았다.
“사실은 말이요잉... 내 아들놈이 공수놈한테 죽어부렀소. 겨우 여섯 살인디...”
“!”
여섯 살짜리 어린애가 공수부대한테 죽어? 홍재형은 순간 심한 충격을 받았다. 생각해보니 광주시내에 퍼진 유언비어들 중에 어린아이가 공수부대의 진압봉에 맞아죽었다는 소문이 있었던 것 같았다. 이 소문을 보고 “에이 설마~” 하겠지만, 실제로 공수부대원이 찌른 대검에 죽은 어린이아이의 시체를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5월 24일에 있었던 공수부대와 보병학교간의 오인사격 때는 저수지에서 놀던 국민학생이 계엄군이 쏜 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죽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내가 씨방... 아들놈만 생각하면 미쳐 버리겄소. 내 아들놈이 뭔 죄가 있다고 곤봉으로 머리통을... 머리통을... 힘들게 얻은 아들놈인디... 흐흑!”
“...”
할 말이 없었다. 김진형은 눈물을 다 쏟아내고는 손으로 눈가에 맺힌 눈물들을 닦아냈다.
“그라도... 울고만 있을순 없제. 아, 형씨. 아까 앉아만 있을순 없다고 하지 않았소? 그래서 말이오. 나도 앉아만 있지 않고 이 애무십육으로 공수놈들 다 쏴죽여버리고, 수류탄으로 공수놈들과 함께 뒈져버릴라요.”
“...”
“형씨. 잘해봅시다.”
김진형은 다시 한 번 홍진형의 손을 꽉 잡았다. 둘은 아까 했던 이야기를 상기하며 각오를 새롭게 하였다. 트럭으로 얼룩무늬 군복에 대위계급장을 단 시민군이 올라탔다. 시민군은 다른 시민군에게 흰색 띠를 주며 시민군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것은... 공수놈들 기지 쳐들어가는디 시방...”
1980년 6월 5일 광주시 31사단
베트남전 당시 헬기들의 기동작전
국방색 헬기가 잠자리처럼 로터를 회전시키며 날아오고 있었다. 국방색 군복차림의 해병대원들은 헬기 동체의 모양에 놀란 표정들을 지었다. 그 헬기는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미국 전쟁영화에나 나올 법한 UH-1 이쿼로이즈 수송헬기였다. 헬기는 타타타타타타 하며 운동장으로 천천히 내려앉기 시작하였다. 모래바람이 불어오고, 해병대원들은 모래바람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씨발. 이게 그 말로만 들었던 이쿼로이즈냐? 늙탱이 이쿼로이즈?”
“소대장님. 그래도 지금은 쌩쌩한 놈입니다. 소위 한국형 수송헬기라는 못생긴 놈보단 낫겠죠. 뭐.”
“좆도!”
헬기가 완전히 착륙하였다. 헬기에서 31사단 소속 장교가 내리고, 31사단 통제관은 손바닥으로 전현빈 중위의 등을 치고는 헬기로 밀었다.
“이보슈. 이게 골 때리는 놈이지만 조심만 하면 상관 없을거요. 그리고 아까 늙탱이네 어쩌네 하는데, 당신들은 이게 늙탱이로 보일지 몰라도 우리 31사단은 수리 확실하게 해놓고 굴리오. 알겠소? 탑승!”
전현빈 중위를 선두로 해병대원들은 차례대로 헬기에 올랐다. 1980년 광주로 타임슬립 하기 전 상륙훈련 때 독도함에서 러시아제 Ka-27 헬기를 타본 적이 있지만 2000년대 한국군이 더 이상 운용하지 않는 UH-1 이쿼로이즈 헬기를 타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해병대원들이 탑승을 완료하자 31사단 통제관은 헬기 조종사에게 출발신호를 보냈다.
위이이이잉! 동체가 상승하기 시작하였다. 완전 무장한 해병대 한 개 분대가 탑승해 헬기가 이륙 하는게 쉽지 않았지만 헬기는 천천히 상승하였다. 헬기가 이륙한 31사단 연병장이 멀어지기 시작하였다.
“소대장님! 기분이 이상합니다?”
“뭐라고? 뭔 소리 하냐?”
문에 기댄 채 앉아있는 해병대원은 연신 지상을 쳐다보며 감탄을 하였다. 뭐 때문에 그러는지 알 수 없지만 감탄하던 해병대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기다려라! 이문수님이 나가신다!”
“나가 떨어져라 개새야. 여기서 확 떨궈버릴라.”
동체의 해병대원들은 전현빈 중위의 유머 아닌 유머에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아까 환호성을 지르던 해병대원은 전현빈 중위의 일그러진 표정에 꼬리를 감추었다.
“뒤에 공수부대! 조용!”
갑자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상치 못한 여자의 목소리에 전현빈 중위와 해병대원들은 어안이 벙벙하다는 듯 사방을 둘러보았다. 조종석의 헬기 조종사 중 한명이 뒤로 고개를 돌렸다. 전현빈 중위와 해병대원들은 조종사를 보자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여자다!!!!!!”
“...”
해병대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은 조종사는 해병대원들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누... 누구십니까? 여... 여자에요?”
“그렇습니다만... 아, 저는 31사단 헬기 조종사인 중위 신시원입니다. 충성!”
“필... 승.”
전현빈 중위는 눈을 비비고 자신이 헬기 조종사라고 밝힌 신시원 중위를 쳐다보았다. 믿겨지지 않았다. 1980년대 초반에 여자 헬기 조종사라니? 2000년대 한국에서 여성이 헬기를 조종하고 헬기로 작전 나가는게 일반화 되어있지만 1980년대 한국군 내에서 여자가 항공기를 조종하는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한국군 내에서 여자가 항공기를 조종하기 시작한게 1980년대 중후반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여자 헬기 조종사가 전현빈의 바로 앞에 있었다. 게다가 그 여자의 군복에는 육군항공 병과마크와 함께 중위 계급장이 붙여져 있었다. 전현빈 중위는 신시원 중위의 얼굴을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헬기 조종사가 된지 얼마 안 된 듯 하얀 얼굴에 약간의 주근깨가 있었다. 그리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인형이었다. 인터넷 게시판에 사진이 올라오면 얼짱 소리 들을만한 얼굴이었다.
“근데... 진짜 여자 맞습ㄴ까? 제가 알기로 여군이 헬기조종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제가 전군에서 유일한 헬기 조종사에요. 갓 임관했지만...”
전현빈 중위는 자리에 앉아 동체 밖을 바라보았다. 동체 밖으로 허허벌판과 대규모의 차량행렬, 장갑차, 콘크리트 건물들이 보였다.
“조금 있으면 상무대에요. 준비하십쇼.”
신시원 중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병대원들은 상무대라는 말에 바짝 긴장하며 자신들이 들고 있는 개인화기들을 점검하였다. 전현빈 중위도 K2A1 소총의 탄창을 다시 확인하고는 주머니에서 M1911 권총을 꺼내 탄약을 재장전 하였다.
“다들 준비해!”
“예, 알겠습니다!”
헬기는 서서히 콘크리트 건물로 접근하였다. 전현빈 중위는 자신의 소대가 수행해야 할 임무를 다시 떠올렸다. 헬기와 콘크리트 건물 사이의 높이가 점점 낮아졌다. 신시원 중위는 헬기가 거의 바닥에 착지하자 전현빈 중위에게 사인을 보냈다. 전현빈 중위는 사인을 보고는 해맑게 웃으며 힘껏 문을 열었다.
“분대 돌격!”
1980년 6월 5일 상무대 전투교육사령부
차가 덜컹거렸다. 국방색 군복차림의 조재헌 상사는 수십미터 앞에 위치한 상무대 전투교육사령부를 주시하며 핸들을 꽉 잡았다. 문득 이라크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이라크 저항군들을 죽이고 미국인들과 함께 저항군 아지트를 탈출한 뒤, 어떻게 미군으로 갈지 고민이었다. 마침 아지트 근처에 이라크 저항군이 노획한 듯한 미제 군용트럭이 있었고, 그걸로 아지트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군용트럭으로 미군지역까지 가는건 힘든 일이었다. 미군지역으로 가는 길 중간에 매복한 이라크 저항군과 IED(급조폭발물)가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다행이도 조재헌 상사의 탈출길에 IED 같은건 없었고, 가다가 이라크 저항군을 만나면 무조건 대검으로 목을 썰어버렸다. 수십 개의 킬마크를 그린 끝에 조재헌과 미국인들은 미군 경보병부대를 만나 자유의 몸이 되었다.
지금 이라크에서의 탈출극 같은 일을 벌여야 할 판이었다. 광주에서 탈출하려고 상무대로 가는건 아니지만 상무대 입구를 지키고 있는 군인들을 죽여야 했다. 핸들을 잡고 있는 오른손으로 주머니에 들어있는 M1911 권총을 짚어보았다. 이 차가운 감촉의 권총은 조재헌 상사의 뼛속을 섬뜩하게 헤집었다.
“정지! 발동 꺼!”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군인이 고함을 지르며 조재헌 상사가 탄 트럭을 막아 세웠다. 조재헌 상사는 군인을 보자 브레이크를 밟아 트럭을 세웠다. 군인은 조재헌 상사에게로 가 간단하게 거수경례를 하고는 조재헌 상사에게 신분증을 요구하였다.
“신분증 제시해 주십쇼.”
“여기.”
군인은 조재헌 상사가 넘긴 신분증을 보고는 이내 다시 돌려주었다.
“무슨 일입니까?”
“병력지원. 중요한 분이 오셨다매?”
“그렇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군인은 초소로 뛰어가 장교인 듯한 군인에게 뭐라고 쑥덕거렸다. 군인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장교가 군인에게 뭐라고 쑥덕거리고, 군인은 조재헌 상사의 트럭으로 뛰어왔다.
“병장님. 실례지만 병력지원 같은거 없답니다.”
“뭐야? 야, 너 이리 와봐. 가까이.”
군인의 말에 짜증이 난 조재헌 상사는 군인을 가까이 오게 하고는 앞문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이거나 처먹어라 씹새꺄!”
뭔가가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조재헌 상사는 트럭에서 내려서는 M1911 권총을 꺼내 초소 안의 공수부대 장교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탕! 장교는 아무런 대응도 못하고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조재헌 상사가 탔던 트럭으로 얼룩무늬 군복에 팔에 흰 띠를 두른 시민군들이 쏟아져 나왔다. 시민군들은 공수부대를 향해 총알세례를 퍼붓고는 초소를 간단하게 점령하였다.
“빨리 트럭 이동시키고, 시체 치워주십쇼!”
트럭이 후진하고 바닥에 쓰러진 시체들이 다른 곳으로 치워졌다. 그리고 M113 장갑차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시민군이 점령한 초소를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