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런던 교외 리치몬드, 초록색 풀잎과 빨간 들장미 넝쿨 위로 황금빛 태양이 내리쬐는 더없이 평화로운 6월의 어느 하루를 배경으로, 위대한 여류작가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맨)가 주머니에 돌을 넣고 강물에 걸어 들어가 자살하는 충격적인 장면에서 시작되는 영화 [The Hours]. 이후 영화는 1951년 LA의 평범한 주부 로라(쥴리안 무어)와 2001년 뉴욕의 클라리사(메릴 스트립)의 삶으로 옮겨가고 다시 1923년 리치몬드의 젊은 버지니아 울프를 포함한 세 여인이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영화 [The Hours]는 ’99년 소설가 최고의 영예인 펜 포크너상과 퓰리처상 수상을 수상한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 ‘The Hours’(세월)를 영화화한 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영화는 각기 다른 시대와 서로 다른 삶의 문제를 지닌 세 명의 여인들이 무언가를 준비하며 보내는 하루 동안의 시간을 그려낸다. 1923년, 1951년, 2001년이라는 각기 다른 세 개의 시간대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하루 동안의 일상을 교차편집으로 번갈아 보여주기에 다소 혼란스러움도 있지만, 영화는 서로 다른 시간대를 조각조각내어 매혹적으로 넘나들며 하루동안에 그려지는 여자의 일생을 통해, 바로 그 하루가 삶의 전부를 얘기하는양 세밀한 상황과 감정 묘사를 통해 얘기를 설득력있게 엮어 나간다. 세 명의 여인들이 그들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커닝햄의 ‘The Hours’는 모든 생은 서로 연관 있다고 믿었던 버지니아 울프의 생을 그대로 투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The Hours]는 소설 ‘The Hours’의 매혹적인 플롯을 고스란히 살린 채, 빠르고 경쾌하며 놀랄 만큼 암시적인 화면을 선사한다. 이와 더불어 인물들간의 대화와 세밀한 상황묘사를 통해 관객들에게 구구절절 설명하는 전개방식이 아닌 느낌을 통해 영화에 쉽게 동화될 수 있게 배려했다. 영화는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 사는 세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 다른 시대에 살고있는 세 여자를 엮어주는 것은 여성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이란 소설이다. 단 하루 동안의 댈러웨이 부인의 시간을 다룸으로써 그의 전체 삶과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따라, 영화도 세 여성의 삶을 그들의 하루를 통해 이야기해준다. 그 하루라는 시간을 통해 우리는 놀랍게도 그들의 전체 삶을 조망할 수 있게 된다. 이 영화의 매력은 원작도 원작이지만 다 기대하고 있다시피 출중한 여성 연기자 3인과 그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훌륭한 연기자들, 에드 해리스, 클레어 데인즈, 토니 콜레트, 앨리슨 재니, 미란다 리처드슨, 존 C. 라일리 등의 연기들이다. 그러니 영화감상의 포인트도 출연자들의 연기를 보는 것에 많은 할애를 하게된다. 첫 번째 여성은 1923년의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맨)이다. 그녀는 "댈러웨이 부인"이란 소설을 쓰고 있다. 환청과 정신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런던을 떠나 교외에서 살고 있는 그녀는 남편의 극진한 보호속에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그녀에게 있어서 교외에서의 삶은 어둠 속에서 홀로 고통 받는 것이며, 그 곳과 죽음 중 하나를 고르라면 죽음을 선택하겠다고 한다. 두 번째 여성은 1951년 LA의 중산층 주부 로라(쥴리안 무어)이다. 무난한 가정을 둔 그녀는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다. 그녀는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있으며, 소설 속의 주인공이 겉으로는 항상 삶을 즐기고 행복해 보이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 공감한다. 그 또한 남편의 생일인 이 하루,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케익을 만드는 자신과 자신 내부의 진실간의 분열을 인식한다. 그것에 절망하며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다시 또 다른 삶을 선택한다. 세 번째 여성은 2001년 뉴욕의 전문직 여성 클라리싸(메릴 스트립)이다. 댈러웨이 부인의 이름인 클라리싸와 같은 이름을 갖고 있으며 전 애인으로부터 댈러웨이 부인으로 불린다. 그녀는 샐리라는 연인과 동거하는 래즈비언이며, 한 남자의 정자를 받아 낳은 딸(클레어 데인즈)도 있다. 그녀는 에이즈로 죽어가는 옛 애인 리챠드(에드 해리스)의 문학상 수상 기념파티를 준비하며 하루를 보내는데, 이 하루 옛 애인은 창밖으로 뛰어내려 자살하고 만다. 옛 애인과의 인연과 그와의 행복했던 시간들을 여전히 귀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클라리싸, 그래도 그녀에겐 그녀를 이해해주고 감싸주는 샐리가 있고 딸 줄리아가 있다. 영화는 이 세 여성의 하루들을 아주 섬세하게 짜고 짜고 있으며, 그 결과 한 여성 속에 세 여성 모두가 살아있는 듯, 혹은 세 여성이 단지 한 여성인 듯 그려낸다. 여성의 삶과 절망과 고뇌와 분열은 시대를 넘어서 유전된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각기 다른 시대의 세 여성이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은 아니다. 애써 짜 맞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들은 여러 모양으로 서로 연결되어져 있다. 버지니아 울프가 동성애를 느끼는 언니(미란다 리챠드슨)의 딸이 바로 로라이며 그 로라의 아들이 또 클라리싸의 애인으로 나오는 에이즈환자 시인 리챠드이다. 또 세 여인은 동성애적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그러기에 이성에게는 여느 감정과 다른 절망감, 가벼움, 연민 같은 것을 느끼는 공통점을 보이면서 서로를 연결시킨다. 그리고 역시 세 여인은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책에 연관되어져 있다. 영화는 암울한 가운데서도 작은 희망을 준다. 클라리싸의 경우, 즉 현재의 여성은 자신의 삶의 형태를 선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버지니아와 로라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도록 선택의 가능성을 박탈당했다면, 클라리싸는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고 있다. 그것은 여성들간의 연대와 애정이 풍부한 삶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자살한 아들의 소식을 듣고 찾아 온 로라는 클라리싸에게 말한다 “You are a lucky woman."'이라고.............. 재미있는 것은 영화 속 세 여성 모두 여성에게 친밀함의 표현을 넘어선 키스를 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버지니아는 언니에게, 로라는 친구에게, 자신의 진실을 이야기 할 수 있었던 순간 키스를 한다. 그러나 언니는 그 키스를 정신질환의 결과로, 친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여긴다. 그들의 동성애적인 감정은 시대가 지나 만일 샐리가 클라리싸의 키스를 받듯이 그들이 버지니아와 로라의 키스를 받았다면 아마도 그들의 절망과 고통의 이야기는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이쯤되니 이 작품에서 동성애는 자칫 줄거리를 크게 바꿀 수도 있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어쩌면 육아와 직장과 주부로서의 역할 등에 억눌려 찌든 삶을 영위하고 있는 주변의 여성들에겐 이 영화 속의 이야기가 사치스런 고뇌라고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 그러면서도 그런 여성들은 세 여성을 연기한 훌륭한 여성 연기자들의 연기에 공감하게 될 것이고 이 영화의 원작인 소설 “The Hours”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싶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내가 여자라면 아마 그럴 것 같기에 해보는 생각이다. <인사이더> 이후 오랜만에 본 지적인 영화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