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마리애 교본연구
다윗의 탑 Pr. 이종왕 베드로
2013년 4월 10일
제19장 회합과 단원 17~23
17. 성실한 보고가 겸손에 어긋나는가
어떤 단원들은, 선행을 스스로 내세우는 것은 겸손의 덕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알맹이 없는 보고를 합리화한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는 한마디로 겸손을 가장한 교만이다. 그러므로 단원들은 이렇게 가장된 겸손이 자신의 생각 속에서 교묘히 작용하지 못하도록 경계해야 하며, 쁘레시디움의 세심한 지도를 벗어나려는 욕구가 암암리에 자신의 마음속에 스며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만일 그러한 잘못된 행위가 다른 단원들에게 번지게 되면, 그 쁘레시디움은 결국 무너지고 만다. 활동 보고는 그 하나하나가 회합을 쌓아 올리는 한 장의 벽돌이다.
18. 화합은 일치의 표시이다
화합이란 단체 활동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정신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므로 무엇보다도 큰 힘을 발휘한다. 레지오에서 말하는 능률도 결국 화합의 정신으로부터 비롯된다. 아무리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 해도 화합을 깨뜨리면서 얻어낸 것이라면 그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린다. 레지오에서는 화합의 정신과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결점들을 마치 전염병을 피하듯이 적극 멀리 해야 한다. 독선을 부리거나 흠잡거나 화를 내거나 비꼬거나 잘난 체하는 등등의 결점이 회합에 끼여들면 화합의 분위기는 즉시 사라져 버린다.
19. 동료 단원의 활동에 모든 단원들이 관심을 갖자
회합은 기도로써 시작되므로, 기도를 바치는 동안 단원들은 모두 동등한 자격으로 회합에 참석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느낌은 회합을 마치는 순간까지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단원들은 회합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사사로이 잡담을 나누거나 웃거나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회합에서 발표하는 활동 보고 하나하나는 그 활동을 맡았던 단원 한 사람이나 두 사람만의 관심사가 아니라, 모든 단원들이 함께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20. 반드시 비밀을 지켜야 한다
매달 한 차례씩 되풀이해서 단원들에게 들려주는 상훈(常訓)은 레지오 조직에서 비밀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주고 있다. 군인은 용기가 부족하면 부끄러운 일로 여기지만, 반역 행위는 용기 부족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나쁜 행위로 본다. 쁘레시디움 회합에서 알게 된 사실을 외부에 퍼뜨리는 것은 레지오에 대한 반역 행위이다.
21. 발언의 자유
회합의 진행 방법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해도 되는가? 쁘레시디움의 분위기는 군대식이 아니라 가족적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단원들의 '공정한 논평'은 환영해야 한다. 다만 도전적인 어조를 띤다던가 간부들에 대한 존경심을 저버리는 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22. 회합은 단원 생활을 지탱하는 근본이다
인간의 본성은 눈에 드러나는 성과를 올리고자 갖은 애를 태우다가도, 일단 성과가 드러나면 곧 마음이 변하여 얻은 성과에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성과가 눈에 보인다 해서 반드시 활동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단원은 단 한 번 접촉하여 쉽게 성과를 얻는가 하면, 어떤 단원은 영웅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며 꾸준히 노력해도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수도 있다. 헛된 노력을 한다는 생각이 들게 되면 활동을 포기하게 되므로 단순히 결과만을 놓고 활동을 평가하는 것은, 마치 모래밭이 단단한 밑받침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단원 생활을 바르게 지속시키는 데 필요한 밑받침이 되어 주지 못한다. 단원들에게는 받쳐 주는 힘이 꼭 필요하다. 단원들은 매주 쁘레시디움 회합에 참석하여 함께 기도하고, 독특한 회의 진행과 분위기 속에서 자신이 수행한 활동을 보고하고, 축복 속에 동료애를 나누고, 강력한 규율의 힘에 의지하며, 활발한 토론과 정연한 질서로 이어지는 회합에서 자신을 받쳐 주는 영적인 힘을 얻는다. 쁘레시디움 주회합은 활동에 대한 단원들의 자세를 느슨하게 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단원들로 하여금 레지오 조직 안에서 더욱더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하도록 떠받쳐 준다.
23. 쁘레시디움은 성모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곳'이다
여기서는 신자 개개인을 하나의 조직체 안에서 더욱 완전하게 결속시켜 교회의 공식적이고 사목적인 사도직 활동에 두루 활용하는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교회의 공동체적 사도직과 개인 사도직의 관계는 전례와 개인 기도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교회의 공동체적 사도직은 성모님이 그것을 당신의 모성과 결합하여 어머니로서 보살펴 주심에 의해 유지된다. 성모님은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며 생명 자체이신 성자를 세상에 낳아 주셨고, 이 위대한 임무에 합당한 권능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았기 때문이다."(교의 헌장 56) 성모님은 당신께 기꺼이 협력하고자 하는 신자들의 봉사 활동을 통하여 당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계속 수행하신다. 쁘레시디움은 성모님의 임무를 돕고자 열망하는 한 무리의 사랑스런 영혼들을 성모님이 쓰시도록 맡겨 드리고 있다. 그리고 성모님이 쁘레시디움 단원들의 협력을 받아들이고 계심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성모님이 쁘레시디움을 통하여 당신의 특별한 은총을 보여 주시고 당신의 모성을 새롭게 드러내고 계시므로, 쁘레시디움이 있는 곳에 성모님도 함께 계신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이념에 충실한 쁘레시디움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과 쇄신, 치유와 문제의 해결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레지오는 문제가 있는 곳에 반드시 이 영신적 원리를 활용해야 할 것이다.
참조 자료 : 최경용 신부의 교본 해설
레지오마리애 교본연구(19장17-23).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