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6월 20일은 아버지의 날 (Father’s Day)이었다. 18일부터 20일까지 소위 아버지의 날 주말에는 이곳의 많은 가정들이 가족 단위로 야외에 나가 바베큐를 즐기며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기리는 날이다. 한국에서는 어버이의 날로 한 날 함께 기념하지만 여기서는 Mother’s Day와 Father’s Day를 따로 지킨다. 요즘처럼 어머니 날이 강세인 때에 자칫 아버지란 존재가 잊혀지기 쉽고 날이 갈수록 아버지의 위치가 점점 축소되어가는 현실임을 감안할 때 이 날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크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사실, 요즘 나오는 영화들이나 드라마를 보면 아버지란 존재, 남자란 사람은 직장을 잃고 가정을 부양할 수 없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존재들이며 그 결과 어머니에게 자녀들의 양육권을 빼앗기고 자녀들을 만날 수 있는 접견권마저도 제한을 당하고 있는 힘 없고 불쌍한 소외자의 모습으로 종종 묘사된다. 그 대표적인 영화가 몇 년 전 인기를 끌었던 롸빈 윌리엄스 (Robin Williams) 주연의 Mrs. Doubtfire가 아닌가 싶다. 직장을 잃고 이혼당한 아버지가 자녀들과 너무나 함께 있고 싶어 여장(女裝)을 하고 그 집의 아이들을 돌보아 주는 보모로 몰래 취직하여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코믹하게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어딘지 모르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남자로서의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지는 공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이런 힘 없고 존재도 없는 아버지요 남편 상이 오늘 이 시대의 남성들의 이미지이다. 이는 미국에서 볼 수 있는 현상 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40대 50대에 직장을 잃고 눈물지으며 거리를 헤매는 수 많은 실직자들이 겪고 있는 동일한 아픔이기도 하다.
허지만 이번 아버지의 날은 내게 있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어느 때 보다 도 뜻 깊은 날이었다. 주일날 교회를 다녀와서 옷을 갈아입고 막 쉬려고 하는데 아내와 아이들이 공동으로 마련한 선물을 주면서 함께 외쳤다. “Happy father’s day!” 선물을 펴 보니 그 속에 조그마한 향수 한 병과 아내와 아이들이 정성껏 기록한 카드가 있었다. 내가 평소에 즐겨 쓰는 Polo Sports 향수였다. 마침 내가 쓰고 있던 향수가 거의 다 떨어져가고 있음을 알아 차린 아내와 딸이 정성껏 마련해준 향수였다. 내가 여러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상담 사역을 하는 까닭에 더더욱 향수가 필요하다는 아내의 설명이었다. 나에게 꼭 필요한 바로 그것을 선물한 그 정성과 배려 때문인지 그 향기가 어느 때보다도 진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17살의 딸과 14살의 아들이 저마다 카드의 한 모퉁이에 정성껏 기록하여 나의 눈에 눈물이 고이게 한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원래는 영어로 썼으나 대충 번역해서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아빠,
내가 사춘기 격동기와, 많은 혼돈과 오해의 시간들을 통과할 때에도 아빠는 늘 한결같이 나를 이해해 주셨지요. 바로 그 사실이 내가 스스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도록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는데 큰 도움을 주셨음을 아빠도 아시기를 바래요. 아빠는 분명히 다른 많은 아빠들과는 달랐어요. 바로 이 점이 내가 아빠를 무척 존경하는 이유랍니다. 모든 것을 감사드리며…..
늘 아빠를 사랑하는 에스더로부터
아빠에게
아버지의 날을 축하해요.
나를 늘 보살펴 주시고 늘 그곳에 함께 있어주신 아빠, 고맙습니다. 우리 아빠 같은 아빠를 가진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아이라고 생각되어요. 내가 자라면 아빠와 같은 아빠가 되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아빠가 되어주신 것을 감사하면서……
With mucho (great) love Sam
편지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과연 내가 이렇게 칭찬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생각해 보니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아이들의 요청에 따라 30분 걸리는 시내로 들어가 짜장면을 함께 먹기로 했다. 모처럼 만의 나들이요 오랜 만에 4 식구가 함께 한 자리이기도 하였거니와 그 날의 짜장면과 짬뽕은 그 어느 때 보다 도 꿀맛이였다. 저녁을 먹으며 딸이 말했다. “아빠, 내 친구들은 모두가 우리 집을 부러워한데요” “왜, 가난한 우리 집을 부러워할게 뭐가 있지?” 내가 물었다. “내 친구들은 부자들이지만 우리 엄마 아빠만큼 진정으로 자식들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잘 돌봐주지 못한다고 느끼나 봐요. 그래서 우리 집이 너무나 부럽대요. 나도 우리 집이 너무 자랑스러워요.” 옆에서 듣고 있던 아들도 맛장구를 쳤다. “그래요, 내 친구 마이클도 우리 엄마 아빠가 너무 좋다고 부러워해요. They said I’m so lucky! 나도 우리 집이 자랑스러워요.”
또 한번 눈물이 솟아나 앞이 흐려지고 삼킨 면이 중간에 걸리는 것 같았다. 나는 늘 아이들에게 다른 집처럼 경제적으로 충분한 뒷받침을 못해 주고 있지 않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아이들의 눈에는 그 어느 부잣집 보다 도 더 자랑스럽고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고맙고 감격스러웠다. 사실, 동네에서 제일 가난한 집에 속하는 비좁은 아파트이지만 아이들은 한국아이, 미국 아이들 할 것 없이 수시로 우리 집에 놀러 오고 또 우리 아이들도 이런 환경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고 떳떳하게 자기의 환경을 공개하는 모습을 볼 때 대견스럽기만 하다. 한 편으로는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자기가 속한 환경을 떳떳이 여길 수 있도록 건강하게 자라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사실 행복과 만족을 느끼는데 비싸거나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는 사실을 거듭 발견한 아버지의 날이었다. 한 병의 작은 향수와 정성을 다해 쓴 격려의 카드 한 장과 함께 웃으며 나눌 수 있는 짜장면 한 그릇씩이면 족하지 않은가?
글쎄요, 아직까지 미국 처럼 아버지가 여성들에게 서럽게 당하고 쫒겨나고, 자식을 빼앗기고 이혼하면 남자가 알거지가 되는 체험이 쌓이기 까지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러번, 관심을 가지고 꼬리말, 게시판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에서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첫댓글 미국의 이민생활이 힘들다고 하지만~이렇게 알콩달콩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부럽군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언제나 "아버지의 날"이 생길는지요?
글쎄요, 아직까지 미국 처럼 아버지가 여성들에게 서럽게 당하고 쫒겨나고, 자식을 빼앗기고 이혼하면 남자가 알거지가 되는 체험이 쌓이기 까지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러번, 관심을 가지고 꼬리말, 게시판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에서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