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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스크랩 단편- 그 해 가장 길었던 하루 (상) / 박범신
아데라 추천 0 조회 48 06.07.05 14:0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

  빽지르는 풍장소리가 고샅을 훑고 지나간 것은 아침이었다. 순임이 길어온 물을 물항아리에 붓고 나서 막 허리를 들어올리는데 그 풍장소리가 났다. 아래뜸에서 위뜸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까들막거리며 앞장서나가는 꽹과리 소리는 보나마나 강씨네에서 담살이하는 절름발이가 내고 있을 터였다. 꽹과리를 잘 쳐서 사람들은 그를 꽹매기라고 불렀다.
  "뭔 놈으 풍장소리라냐."
  어머니가 투가리 깨지는 말본새로 물었다.
  부뚜막에 빼뚝하게 앉아서 어머니는 깻묵죽을 젓고 있었다. 깻묵죽이라고 하지만 뭐 제대로 생겨먹은 깻묵으로 죽을 끓이는 것도 아니었다. 면에서 집집마다 가진 논의 넓고 좁음에 따라 배급해준 그것은, 본래 논에 거름으로 쓰라고 나눠준 콩깻묵이었다. 만주에서 가져온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일본에서 들여온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강경포구엔 일장기를 높다랗게 매단 일본배가 자주 들어오는데, 일본배를 직접 보고 돌아온 영순네 큰아버지 째보아저씨 말로는, 그 배의 키가 하늘에 닿고 양편으로 어기차게 벌어진 게 거짓말 참말 할 것 없이 앞재빼기 들녘만큼 넓더라고 했다. '텐노오 헤이까'가 우리를 위해 콩깻묵을 보내주는 것이라고 째보아저씨는 말해주었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허고 자빠졌네,라고 어머니는 혼잣말을 했다. 콩깻묵을 내려놓은 일본배는 콩깻묵 대신 구경하기조차 어려운 쌀가마니를 바리바리 싣고 일본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모악스럽게 공출로 걷은 볏가마니들이 장날마다 둑길로 줄지어 실려나가는 것을 순임은 늘상 보았다. 어머니는 논에다 비료를 주라고 나눠준 콩깻묵을 이틀쯤 물에 담가두었다가 밀기울을 넣고 죽을 끓였다. 누르딩딩한 깻묵죽에선 이상한 기름냄새 같은 게 나서 순임은 숟가락질을 할 때마다 콧잔등을 오감스럽게 찡그리곤 했다. 처먹으면서 코쭝배기 찌그러뜨리는 년은 뒈져 귀신이 되믄 코가 없댜,라고 어머니는 어깃장을 놓았다. 코쭝배기 없으면 성은 달걀귀신 되겠네 잉. 토를 붙이고 항용 나서는 것은 순명이었다.
  "엄니, 엄니!"
  숨 넘어가는 소리가 안마당을 가로질러왔다.
  어머니 말에 아무런 대꾸 없이 물동이를 이고 정지를 나서려던 순임의 옆구리를 뱌비쳐들어온 것 역시 순명이었다. 순임과 세살 터울로 이제 열두살인데, 매사에 느리고 말수 적은데다가 생긴 것부터 숫되고 펑퍼짐한 순임과 달리 순명은 재빠르고 야무진데다가 생긴 것 또한 앙당그러진 것이 한눈에 어기찬 구석이 있어 뵀다. 풍장소리는 위뜸으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순명이 숨을 새새거리면서 말했다.
  "엄니, 나 갈겨. 경성 간당게."
  "썩을년이 무신 자다가 봉창 뜯는 소리를 허고 자빠졌댜. 새똥빠지게, 경성이 워딘데 니깟 년이 거길 간다는겨?"
  "방직공장 말여. 나도 갈 수 있댜. 영순네 큰아부지가 그렸어."
  "째보 그녀르 것이……"
  "갈 사람은 아침 먹고 뒷솔밭 회당으로 뫼랬어. 엄니허고 같이 와야 헌댜. 증말여. 그것 땜새 풍장치고 허는 거랑게. 뭣이냐, 방직공장에서 사람이 왔는디 댕, 댕기를 몸에다 맸단 말여. 그 사람 따라가기만 허믄 쌀밥에 괴기반찬 배창사구 터지게 먹는댜. 증말로 나 갈겨, 엄니."
  순임은 사립문을 나섰다.
  이제 막 떠오른 해가 고내곡재 위에 쇳물 뒤집어쓴 맨머리로 떠 있었다. 아침볕인데도 햇발 쨍쨍한 것이 오늘 역시 오지게 더울 모양이었다. 봄보리조차 채 여물지 않은 늦봄이지만 벌써 며칠째 참숯불 피워놓은 듯한 불볕더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순임은 공연히 가슴이 두근두근해져서 양손으로 빈 물동이의 옆귀를 꽉 붙들어잡고 짐짓 아창거리며 걸었다. 똬리 위에 한 자(尺) 반은 됨직한 물동이를 얹어놓았으나, 물동이 꼭대기가 겨우 고샅 한켠의 토담 꼭대기와 키대기를 한 형세였다. 세살이나 어린 순명이 키가 조만간 자신의 키를 넘볼 것이라고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미상불 아침마다 십여번씩이나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동네 우물과 정지를 오가고 있으니, 깻묵죽일망정, 먹은 것이 키로 갈 리 만무했다. 우물가엔 때맞추어 영순네 큰어머니 째보댁이 나와 있었다. 째보댁은 물을 긷는 중이었고, 첫애기를 잃고 나서 더욱더 수척해진 꽹매기 젊은 각시는 보리죽을 끓일 요량인지 겉보리를 씻고 있었고, 유난히 방귀를 잘 꾼다고 해서 똥뀔댁이라고 불리는 분숙이 어머니는 사철나무 그늘에 오종쫑하게 앉아 쌀바가지에서 뉘를 가려내고 있었다. 요즘 같은 보릿고개에 곱삶이래도 그렇지, 보리밥일망정 원없이 먹을 수 있는 집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싸라기도 아닌 쌀이라니.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올라 있던 째보댁이 두레박줄을 잡아올리다 말고 순임을 보더니 냉큼 오금을 쥐어박듯 말하는 것이었다.
  "순임이, 너도 가라 잉. 너도 가."
  철푸덕, 우물물에 떨어지는 두레박 소리가 났다.
  풍장소리는 위뜸을 한바퀴 돌고 났는지 다시 아래뜸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래뜸과 위뜸이 만나는 곳에서 서편을 향해 주머니 같은 형국을 하고 불쑥 나앉은 뒷솔밭으로 다시 내려올 모양이었다. 우물가에선 탁 트인 벌판과 함께 소나무들이 우뚝우뚝 서 있는 뒷솔밭이 한눈에 바라보였다. 이태 전인가, 솔밭 사잇길로 떠나던 동갑내기 분숙의 뒤꼭지가 순임에게 환히 뵈는 듯했다. 분숙의 큰언니 분순이가 일찍 방직공장으로 가 자리를 잡고서 분숙이를 불러올린다고들 했다.
  "그러엄. 가야 허고말고."
  똥뀔댁이 맞장구를 치고 나왔다.
  순임은 자신도 몰래 아래윗입술을 모두어 내밀고 째보댁이 건네는 두레박줄을 힘주어 잡았다. 우물은 웅숭깊어 한낮에 코를 박아봐도 그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여름철엔 서늘하고 겨울엔 따뜻한 김이 서리는 게 근동에서 물맛이 제일 간다고들 했다. 가슴팍이 달음박질로 뛰는 것이, 철벙 하고 거꾸로 박힌 두레박을 순임은 도무지 끌어당길 힘이 나지 않았다.
  "내 말에 저년 조동아리 십리는 나왔네그려."
  "아이구, 이년아. 예서 허구헌 날 멀건 풀떼죽으로 살다가 배창사구 접붙으면 워쩔려고 그러냐. 니미 신세도 참 팔자소관이다 잉. 남정네는 장사헌다는 핑계로 팔도를 떠돌다가 바람같이 와서는 새깽이나 맨들고 가고, 땅뙈기도 없는 살림에 나오는 것이 족족 지집애지, 하이구, 못 살어. 나는 순임이 니 나이 때 민며느리로 들어와서, 새깽이 낳던 날에도 피 뽑으러 무논에 들었다 잉. 줄줄이 딸린 지집애 넷이 모다 구들장이나 지키고 있으믄 니미 워찌케 살 것이냐. 방직공장에 들어가기만 혀봐. 밥이 걱정이냐 옷이 걱정이냐. 그거래도 다 동네사람 음덕여. 상진네 아부지가 진즉에 방직공장 들어가박혔응게 망정이지, 이 들녘까지 워디 차지가 돌아오겄냐. 이 참에 독헌 맘 먹고 나서라 잉. 아, 분숙이년은 너허고 동갑인디 벌써 공장 간 지 이태째잖여?"
  "금방여. 내년이믄 감독이 된댜."
  똥뀔댁이 쓱쓱 쌀바가지를 문질렀다.
  똥뀔댁네가 딸 셋을 내리닫이로 방직공장에 보내서 작년엔 골답 다섯 마지기나 더 샀다는 말을 순임이도 들은 적이 있었다. 분숙이 아버지는 얽빼기인데 사흘을 굶다가 술재강을 얻어먹고 죽을 뻔한 일도 있는 위인이었다. 본시 가진 것 없는데다가 아둔하기론 젓가락으로 김칫국을 집으려 하고 싱겁기는 황새 똥구멍이니 살림이 펼 리가 없었다. 게다가 순임이네처럼 딸만 넷을 얻고 아들 하나 낳으니, 몇년 전만 해도 그야말로 생쥐 볼가심할 것도 없는 집이 바로 분숙이네였다. 그러나 바로 그 딸들 덕에 요즘의 얽빼기는 광목 바지저고리에 분통 같은 도포까지 해입고 일년이면 몇차례씩 경성 나들이를 했다.
  "분순이는 워찌 산댜?"
  째보댁이 슬쩍 심술바가지를 들고 나왔다.
  소문에 따르자면 분숙이 큰언니 분순이는 공장 남자와 배가 맞아 애를 낳았는데, 그 바람에 공장에서도 쫓겨났고 남정네마저 훌쩍 떠났다고 했다. 알고 보니 남정네 조강지처가 전라도 부안이라던가, 연년생으로 새끼를 둘이나 두고 시퍼렇게 살아 있더라는 것이었다. 째보댁은 소문을 다 알면서 짐짓 의뭉을 떨고 있었다. 똥뀔댁의 눈이 새치름해졌다.
  "우리 분순이 저물녘엔 올 것여."
  "지난 설에도 코빼기를 못 봤는디."
  "장삿일이 바뻐서 그런겨. 갸가 공장 나와서 공장 앞에 밥집을 냈는디, 아이구, 돈을 갈퀴로 긁는댜. 내일이 쟈부지 귀빠진 날이라고 이따 올 것인게, 워떻게 빼입고 오는지를 봐봐. 갸는 꺼먹고무신 같은 거, 안 신고 살어. 가죽신 신고 산게로."
  "들었지, 이년아!"
  갑자기 째보댁이 순임에게 퉁바리를 놓았다.
  "너도 가기만 혔다 허믄 팔자 확 피는겨. 니 엄니 니 동상들 팔자도 피고. 니년이 문을 잘못 열고 나왔응게 니 꼬랑지도 줄줄이 지집애뿐이고 잉, 그라고 말이 나왔응게 말이다만 니 키가 난쟁이좆 질이맹키로 생긴 것만 혀도 그려. 허구헌 날 아침마닥 어린게 물길어 대느라고 키가 클 수가 있어야지. 나 같으면 야, 시키지 않아도 그깟놈의 물동이 홱 내던지고 단박에 단봇짐 싸겄다."
  "싫어유!"
  기어코 삐질삐질 눈물이 나왔다.
  물동이를 이고 일어섰으나 잘름잘름 물이 키질을 해서 쏟아지니 발걸음 내딛는 게 도무지 허당을 짚는 것 같았다. 우물을 둘러친 사철나무 너머로 보이는 성동벌판이 어릿어릿 뿌옇게 멀었다. 순명이가 정지간으로 뱌비쳐들어올 때부터, 아니 난데없이 풍장소리가 고샅을 빽지르고 지날 때부터 가슴이 방망이질쳐 일어났던 것이 모두 이런저런 요량 때문이었음을 순임은 비로소 알았다.
  못혀. 난 못 가.
  불퉁맞게 소리쳐봤자 말은 입속에 있었다.
  이십리 밖 강경포구는 고사하고, 열다섯살 먹은 이날 입때까지 순임이가 동네를 벗어나본 것은 지난봄에 오리 밖 선돌부락에 있는 소학교에 이틀 가본 것이 전부였다. 그때도 그렇게 가기 싫은 걸 구장어른의 언죽번죽한 치렛말에 넘어간 어머니가 부지깽이를 들고 포달지게 쫓는 바람에 순명이 손에 끌려갔던 것인데, 사흘째 되면서는, 차라리 어머니 부지깽이에 맞아죽지, 하면서 뻐득뻐득 버티었더니 어머니는 보낼 때와 달리 그려, 새통빠지게 지집애가 핵교는 무신, 하고 말았던 것이다. 순명이도 가다 말다 한달쯤 다니다 말았고, 그나마 배웠다고 걸핏하면 키미가요와 찌요니야 찌요니, 야지랑스럽게 목청을 높이곤 했다. 방직공장에 가면 아침저녁으로 모여 서서 일장기를 쳐다보며 그 노래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목청이 나오지 않으면 그곳에서도 안경 쓴 소학교 선생 같은 사람이 뒷덜미를 회초리로 후려칠 터였다. 어리뜩한 순임으로선 노랫말을 다 외우기 전에 대나무 회초리로 목이 갈려 죽을 것이었다.
  "이 썩을년이 뭔 지랄을 허고 왔댜."
  죽을 퍼담다 말고 어머니가 말했다.
  물동이의 물은, 울면서 찔뚝뺄뚝 걸어온 끝이라서 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물 긷는 일이 순전히 순임이 차지가 된 것은 어머니가 애를 배고부터였다. 순임이, 순명이, 순실이, 월자(月子)까지 딸만 내리닫이로 넷을 낳고난 어머니로선 뱃속의 아이가 원(願)의 전부였다. 또 지집애면 무조건으로다가 엎어놓아뻔질겨,라고 어머니는 당신이 딸만 넷을 낳은 것이 순전히 순임이가 처음 길을 잘못 들여놔 그랬다는 듯이, 걸핏하면 순임에게 종주먹을 들이대곤 했다. 허리를 곧추세운 어머니의 배는 물동이를 옆으로 굴려놓은 것처럼 불렀다.
  "지미 죽으라고 고사헐 년이지. 아침부터 웬 눈물바람여?"
  "어, 엄니."
  다짜고짜 달려든 순임의 손이 어머니의 몸뻬자락을 와락 붙잡았다.
  "아, 이 썩을년이 시방……"
  어머니의 옹골진 주먹이 대뜸 쥐어박혔다.
  순명이에게 끄덩이를 붙잡혔는지 어쨌는지 때맞추어 방안에선 네살배기 월자가 앵돌아지는 울음소리를 쏟아놓았다. 어머니의 주먹에 아무리 쥐어박혀도 순임은 몸뻬자락을 놓을 수가 없었다. 생초목에 불붙는다고, 어머니 몸뻬자락을 놓쳤다 하면 그 즉시 움씰, 어디 우물 같은 허당으로 주저앉혀져 죽을 것만 같았다.
  "글쎄, 웬 지랄병여, 이 썩을년아."
  "엄니…… 나…… 안 가유…… 안 가유……"
  겨우 내지른 말은 그것뿐이었다.


2


  길을 떠난 것은 한나절이 다 돼서였다. 벌써 여러해 전 솔가해 마을을 떠난 상진네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앞장을 섰고, 째보아저씨와 꽹매기가 뒤를 따랐으며, 고만고만한 동네 처녀 여남은과 강경역까지 굳이 배웅을 하겠다고 나선 몇몇 어머니들이 사뭇 재게 발걸음을 떼어놓고 있었다. 걸어가는 사람은 나 몰라라 자기 혼자 자전거에 높이 앉아 흥타령까지 흥얼거리며 앞서가는 상진이 아버지를 쫓아가려면, 어린 처녀들로서는 발탄강아지같이 걸을 수밖에 없었다. 자전거는 강경읍내 포목상에서 빌린 것이라고 했다. 자전거 바큇살에 챙강챙강 퉁겨져나오는 햇빛이 자꾸 눈을 찔렀다. 강경읍내까진 휑하게 열린 둑길로 짱짱한 이십리 길이었다. 위뜸의 동구를 나서면 이내 저수지 수문이 나오고, 그곳에서부터 금강 원류로 이어지는 개천을 따라 활대처럼 휘어져간 이십리 둑길 오른편은 아슴아슴, 지평선까지 탁 트인 성동벌판이 이어졌다. 들판 동남편 끝의 마을과 까마득하게 마주보는 서북편엔 강경 논산을 잇고 경성까지 내닫는 호남선 철로가 놓여 있었다.
  "아저씨는 기차 많이 타봤남유?"
  "암. 싫도록 타봤지."
  묻는 건 순명이고 대답하는 쪽은 상진이 아버지였다.
  바람 한점 없었고 햇빛은 풀먹인 백목(白木)같이 까랑까랑했다. 어머니가 싸준 보퉁이를 등허리에 질끈 묶어맨 순명이는, 직수굿이 입 다물고 걷는데도 땀이 질질 흐르는 판에 상진이 아버지 자전거 뒤를 붙잡고서 사뭇 깡창깡창 뛰고 있었다. 나이가 제일 어리고 키 또한 제일 작은 순명이가 첫째로 앞서가는 것과 달리, 순임은 맨 뒤에 처져 걸었다. 본래 느리기도 하거니와, 마을을 떠나고 벌써 오리 길은 왔건만 눈물이 마르지 않으니 도통 걸을 수가 없었다.
  "기차 타믄 일본도 가남유?"
  "바다가 있어 배를 타야 혀."
  "바다가 워떤디유?"
  "땅끝 하늘끝까지 물로 채워져 있는 디가 바다여. 우리 동네 저수지의 천배 만배가 된다면 말 다 혔지 뭐. 왜, 일본까지래도 가보고 싶어 그러냐."
  "이담에 크면 갈 거유, 세상 끝까지."
  옥니를 암팡지게 깨무는 듯한 순명의 말본새였다.
  어쩌다 밤에 뒤란으로 나가 울 밖을 멀리 내다보면, 벌판 끝에 아스라하게, 기차가 어둠속으로 내달리는 게 보이곤 했다. 너무 멀어서 기차는 뵈지 않고 불빛만 수평으로 흐르는데, 그 불빛을 내다볼 때마다 순명은 지금처럼 채잡는 말투로, 크면 기차 타고 멀리 가서 부자돼갖고 올겨, 쫑알거리던 것이었다. 어린것이 무섬증도 없이, 도시 무엇 때문에 그토록 멀리 가고 싶다는 것인지 순임으로선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평소 벙어리처럼 입 다물고 지내는 순임이지만, 순명의 그 말을 듣고 나면 속이 짤름짤름 흔들려 넘쳐나는 걸 끝내 참지 못하고, 안되야, 큰일나, 죽을겨, 했다. 어머니와 떨어져서 어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순명이년이 철없어 그렇지, 낯선 곳으로 가고 말면, 하루도 못 지내고 악귀가 붙잡아다 우물 속으로 처넣거나, 그도 아니면 문둥이들이 배를 갈라 간을 빼먹을 터였다. 하루 열번 스무번이 아니라 백번 천번 물을 긷더라도 상관없었다. 그까짓 키 좀 더 자라지 않으면 어떠랴. 어머니 옆에서 살 수만 있다면야 아무래도 좋다고 순임은 생각했다. 재작년인가 분숙이가 방직공장으로 떠나며 함께 가자고 했을 때, 죽어라고 사립문 문설주를 붙잡고 버텼던 것도 모두 그런 속내가 있어서였다.
  "아, 싸게싸게 좀 와, 순임아."
  꽹매기가 뒤를 돌아다보며 말했다.
  "원래, 저년이 울음밑이 길어."
  화답하고 나선 건 영순이 어머니였다.
  "이년아, 니미가 아까먹새 송편으로라도 멱따고 죽겄다 설레발치다가 벌렁 나가자빠지는 것, 벌써 잊어뻔졌냐. 니년 고집센 건 동네방네 다 안다만,  이왕지사 나선 건디 지발 좀 울음밑을 씻어라 잉. 그렇게 처지다가 상진이 아부지 열불이 나갖고 너는 안 데려가겄다 허믄, 워쩔려고 그러는겨? 니미 생으로다 쥑이지 않을려거든 싸게 와. 니 눈엔 저 앞에 가는 순명이도 안 뵈냐. 순명이 반만 좀 혀라 잉."
  길엔 잡초가 한창 자라나고 있었다.
  장날에 장꾼들이 오갈 뿐 평시에 거의 비어 있는 길이었다. 소달구지 바퀴자국을 밟아가면 좋으련만 눈물 때문에 바닥이 뵈는 둥 마는 둥 하니까 자꾸 풀섶에 발이 걸렸다. 더구나 뒤축이 찢어진 고무신을 끈으로 동여매고 걸으니 발을 잘못 내디딜 때마다 뒤꿈치가 고무신 밖으로 삐쭉삐쭉 빠져나갈 수밖에 없었다.
  고향집은 자꾸 멀어졌다.
  칼 물고 칵 죽어버리겠다고 날뜀질을 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지랑이 뒤로 가물가물 멀어지는 고향집 어귀에 그대로 붙박여 뵈는 듯했다. 재작년에 분숙이 따라가라 할 때만 해도 안 간다고 사립문 붙잡고 늘어지자 그려, 나도 뭐 딸년 팔아먹는 것 같아서 못 보내겄네, 하고 돌아서던 어머니가 그처럼 날뜀질을 할 줄은 정말 몰랐다. 어머니가 영락없이 실성을 한 것 같았고, 저러다가 정말 어머니가 기함해 죽겠구나 싶어 와락 무섬증이 들어 얼결에 보따리를 받아안고 떠나온 길인데, 다시 생각하니, 설마 아무려면 죽기야 할려구, 이제라도 달음박질로 한달음에 되돌아가 엄니, 나유, 끝끝내 못 가겄유, 어머니 치마끈에 찰거머리같이 목매달고 싶었다.
  "이봐유."
  누군가 앞서가는 상진이 아버지를 불렀다.
  "반이나 왔응게 숨 좀 돌려유."
  상진이 아버지가 자전거를 세워놓고 느티나무 그늘로 들어갔다. 고향마을에서 강경읍내까지 이어진 이십리 둑길에 딸려 있는 유일한 마을이 바로 거기였다. 둑으로부터 완만하고 펑퍼짐하게 들녘바닥으로 내려앉은 경사면에 스무 호쯤이나 될까 말까 한 초가들이 키대기하듯이 어깨를 마주대고 모여 있었다. 사람들이 우르르 방앗간 옆의 공동우물로 몰려내려갔다.
  "비켜. 으른들이 먼저 잡숴야지."
  꽹매기가 새 쫓는 것처럼 손짓을 했다.
  꽹매기는 곧 물바가지에 가득 물을 담아다가 상진이 아버지에게 바쳤고, 상진이 아버지는 마시는 둥 마는 둥 하고 남은 물을 짐짓 순임이가 퍼대고 앉은 데를 향해 홱 쏟아내었다. 모두 우물가로 몰려갔는데도 혼자 둑가에 앉아 고향집을 바라보고 있는 순임이가 못마땅했던가 보았다. 바싹 마른 황토바람의 물먹은 먼지들이 순임이의 앞자락으로 날아왔다. 꽹매기가 목을 움찔하다 말고 이내 새실거리면서 말했다.
  "조년이 본디 소고집에다가 울음밑이 워낙 길어놔서유."
  "그렁게 쟈가 각설이놈 큰딸이지?"
  "맞어유. 저기 저놈, 순명이가 둘째딸이구유."
  "애비를 안 닮았네, 하나도."
  멈출 듯하던 울음밑이 또 터져나왔다.
  아버지를 각설이라고 부르는 게 분하다기보다는 차라리 서러웠다. 아버지를 각설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버지가 거지이기 때문이 아니라, 각설이타령을 잘하기 때문이라고 어머니는 일러주었다. 냐부지 따라갈 만헌 소리가 세상에 h지,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암, 지난번 추석날에도 냐부지가 북 잡고 소리헌게로 왼동네 사람덜이 모다 나와 둥실 두둥실, 구름 타고 노는 것맹키로 놀지 않더냐. 신명나는 소리도 좋긴 하지만 아버지가 슬픈 노래를 하면 순임은 더더욱 좋았다. 영구 할아버지가 죽었을 때, 상여틀을 붙잡고 부르던 아버지의 향도가(香徒歌)를 순임은 잊을 수가 없었다. 문전옥답 다 버리고 만당 같은, 내 집 두고 간다 간다 나는 간다,라고 노래하는 대목에서 순임은 기어코 눈물을 쏟았다. 순임의 울음밑이 질기다고 동네방네 소문이 난 것도 따져보면 그때부터였다. 솔밭 사이로 희디흰 앙장이 펄럭이는 것도 서러웠고, 늙은 소나무 가지 끝에 걸린 청라같이 푸른 하늘도 서러웠고, 끝간 데 없이 드넓은 성동벌판의 된새바람도 서러웠으나, 그중 서럽기로는 아버지의 끊일 듯하다가 솟아나고, 솟아났다 하면 곧 내려앉고 마는 향도가 소리가 으뜸이었다. 말뜻이야 모두 풀어 알지 못하나 소리에 담긴 우물 속같이 깊고 깊은 그 어떤 울림은 속속들이 뼛골까지 파고들었던 것이다. 순임은 그래서 온종일 이 구석 저 구석에 박혀 울었다. 영구 할애비 혼백이 씌웠나벼. 오죽 울었으면 째보댁이 그런 소리를 다 했을까. 어떤 애들은 아버지가 장돌뱅이로 떠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알고 보면 거지로 팔도를 떠돈다고 종애곯리지만, 상진이 아버지가 자전거를 탄다고 해도 순사나 면직원이 아니듯, 아버지가 아무리 각설이타령을 구성지게 잘한다고 해도 결단코 거지 노릇을 할 리는 없었다.
  "성, 순임이 성!"
  순명이가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이거 마셔, 잉. 우리 샘물보다 씨원헌게."
  우리 샘물이라는 말에 서러움이 더 복받쳤다. 어머니는 지금쯤 우물가에 나와 있을까. 눈물과 땀이 뒤섞인 눈가를 아무리 주먹으로 훔쳐봐도 고향마을은 너무도 멀어 우물가가 어디고 집이 어딘지 따로 떼어 볼 수가 없었다. 집은 집들끼리 붙어 있고 나무는 나무들끼리 접붙어 있는데, 겨우 나눠볼 수 있는 것이라곤 옳거니, 저기가 솔밭이구나, 할 뿐이었다. 어머니는 우물가도 아니고 집 뒤란도 아니고, 영락없이 솔밭 끄트머리에 나와 퍼대고 앉아서 햇빛 아래 둑길을 눈길로 더듬어가다가 아릿아릿, 이 동네 키 큰 느티나무에 붙잡혀 있을 것만 같았다. 아버지가 길 떠날 때마다 그랬듯이.
  "서엉, 키미가요, 내가 일러줄게."
  "………"
  "아자씨헌티 물어봤는디 키미가요 못헌다고 회초리로 때리고 허는 것 아니랴. 공장 가믄 키미가요도 새로 가르쳐준댜. 글씨, 공장 가면 있잖어, 성하고 한군디 넣어준댔다. 그런게 성허고 나허고 같이 자는겨. 맨날 쌀밥 준댜. 광목도 너무 흔혀서 코푸는 디 쓴다는디 뭐. 증말여. 멫번씩이나 물어봤당게. 엄니헌티 광목이랑 이만큼 갖다줄 거여."
  순명이가 아무리 다부닐게 굴어도 소용없었다.
  어린아이라 데생각해서 그렇지, 그 귀한 광목을 코풀게 두는 세상이 어디 있단 말인가. 키미가요를 새로 가르쳐준다는 것만 해도 그랬다. 새로 가르쳐준다는 것은 반드시 키미가요를 불러야 한다는 뜻일 터였다. 그렇게 초성좋은 노래꾼 아버지도 이날 입때까지 단 한번일망정 키미가요를 부르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차라리 침 먹은 지네가 되는 게 낫지, 그런 건 소리도 아녀,라고 아버지가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순명이가 걸핏하면 키미가요---- 하는 게 못마땅해서 혼자 앙세게 하는 소리를 뒤란에 있던 순임이 들었던 것이었다.
  그곳에선 다리를 넘어야 했다.
  다리를 넘고 건너편 둑길로 들어서자 더이상 고향마을이 뵈지 않았다. 한떼의 무당새들이 둑 아래의 보리밭에서 찌이지크 찌이지크 하고 울다가 빠르르르 빠르르르, 하늘로 날아올랐다. 무당새들이 날아가는 방향에서 읍내가 갑자기 둥 떠올라왔다. 흐르는 아지랑이에 눌려 아직은 희뜩번뜩 어중간해 뵀지만, 네모난 집들이 들쭉날쭉, 혹은 솟고 혹은 길쭉이 퍼져 있는게, 미상불 생전 처음 보는 큰 동네가 아닐 수 없었다.
  "저게 갱갱이다, 갱갱이여."
  꽹매기가 달뜬 목소리로 말했다.
  행여 아버지를 만날까, 하는 생각이 들자 그러잖아도 지친 뒤끝이라 울음밑이 쑥 빠져 내려앉았다. 천지에 안 가는 데 없다지만 아버지가 그래도 주로 머무는 곳이 강경포구라는 걸 순임은 알고 있었다. 냐부지가 갱갱이 시장에서 담뱃대 장사를 허드라, 하고 장에 다녀온 째보아저씨가 말한 적이 있었다. 보자기 위에 장죽(長竹) 몇개를 펴놓고서 막걸리에 취한 채 벌렁 드러누워 각설이타령을 왜장쳐 부르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키미가요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일본사람들이 한다는 방직공장엔 가지 말라고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읍내에 다가갈수록 개천 폭은 넓어졌다.
  비록 가뭄이 들어 물은 많지 않았으나 금강 원류와 곧 만나게 되는 천변엔 키 큰 갈대들이 호밀밭보다 더 무성하게 무리져 솟아 있었고, 종다리 멧새 참새 박새 오목눈이 할 것 없이, 새떼들이 들고 나며 오도방정을 떨고 있었으며, 몸뚱어리는 까맣고 발은 은회색인 물까마귀 몇마리는 둑길 위까지 올라와 풀 사이로 부리를 박다 말고, 사람소리에 고갯짓을 희뜩희뜩 하다가 푸르르륵 갈대 속으로 파묻혀 들어갔다.
  "허이 허이, 허어이!"
  소리치고 내닫는 건 순명이었다.
  어떤 이들은 발이 부르트고 어떤 이들은 오금이 저려 새떼들이 머리 위로 흐르거나 말거나 직수굿이 걸을 뿐인데, 유독 순명이만은 아직껏 기운이 남아도는지 새떼를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내달리며, 때론 개천바닥까지 돌팔매를 쏘곤 했다.
  "저것이 그 유명한 갱갱이 상업학교다 잉."
  째보아저씨가 영순이에게 말하고 있었다. 아직도 반마장은 실하게 남았음직한데도 째보아저씨가 가리키는 상업학교 붉은 건물은 너무 커서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철롯길이 상업학교 앞을 가로질러 지나고 있었다. 멀리 지나가는 기차는 보았지만, 개천 위로까지 풍채좋게 걸려 있는 철다리를 가까이 보는 건 물론 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침목 하나하나까지 세세히 뵐 만큼 철다리로 가까워졌을 때, 갑자기 철다리 어귀의 키 큰 잡풀들 너머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순임은 보퉁이를 죽어라 안고 잔뜩 몸을 오그려뜨렸다. 궁둥이에서 비파소리 날 만큼, 구르듯이, 맨 앞에서부터 맨 뒤의 순임이에게까지 달려온 순명이가 순임의 팔을 잡고 흔들며 소리쳤다.
  "성. 기차여. 기차가 온당게!"
  철다리가 부르르 부르르 떠는 듯했다.
  순명이가 순임의 팔을 놓고 또다시 앞으로 굴러 달음박질칠 때,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기차가 나타났다. 상업학교 운동장 끝을 가로질러 내닫는 기차가 뚜우, 뚜우우, 기적소리를 두어 차례 악쓰고 쏟아놓았다. 기찻머리에 치받힌 햇빛이 눈구멍이라도 호되게 찌른 것일까. 순임은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고 둑길의 경사면에 몸을 대고 납작 엎드렸다. 삼경에 만난 액(厄)이라도 이처럼 무서울 수가 없고, 마른 하늘에 벼락이 친다 해도 이처럼 놀랄 수가 없을 터였다. 생살을 찢는 것 같은 기적소리가 끝나고도 한참 만에야 고개만 빼꼼 들고 눈을 떠보니, 철롯가엔 잡초들만 산들거리며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고오, 엄, 엄니……"
  한숨을 쉬려는데 한숨 대신 엄니 소리가 나왔다. 나, 죽어도, 죽어도 못가유,라는 말이 뒤쫓아나왔으나 혓바닥이 불탄 북어껍질처럼 오그라들었는지 어쨌는지, 도무지 말이 입밖으로 나오질 않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죽는다면 어머니를 따라죽고, 어머니가 개구리처럼 태질을 해서 죽인다면 혼자 어머니 발치에 자빠져죽는 게 낫지, 이대로 떠나 방직공장으로 갈 수는 없었다. 누르스름한 흰색 배를 내민 저 새를 말똥가리라고 하던가. 커다란 날개를 쫙 펴고 철다리 아래로 곤두박질하듯 날아내리는 새 몇마리가 눈에 뛰어들어왔다.
  햇빛은 여전히 풀먹인 백목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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