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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자의 진짜 ‘적’은 바로 제작진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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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퀴즈 프로그램 출연자들. 이들의 진짜 경쟁자는 함께 나온 다른 출연자가 아니다. 출연자끼리의 치열한 경합을 보며 쾌재를 부르는 이들, 바로 프로그램 제작자들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 내는 창조자이자 순간의 실수를 유도하는 비틀기의 대가들, 심지어 개인기를 ‘부추겨’ 출연자를 정신적 혼미 상태로 유도해 프로그램의 강약과 완급을 조절하는 ‘달인’의 경지에 이른 이들의 세계를 엿보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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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문제는 어떻게 만들까? - 산고 끝에 태어나는 자식같은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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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의도 한 복판에 우뚝 선 MBC 경영센터 12층. 여기에 <퀴즈의 힘>의 두뇌인 작가들이 ‘기거하는’ 방이 있다. 아침 10시쯤 출근, 자정 넘기기를 밥 먹듯 하니 ‘근무’보다 ‘기거’가 더 어울리는 표현. 이곳에서 제 1특명인 ‘퀴즈’를 찾아 이들이 헤매지 않는 곳은 없다. “문제는 주로 밤에 만드는데 일주일에 평균 150문제 정도 될 거예요. 이 가운데 외부 전문가에게 받는 도움이 약 40% 가량 되고요. 문제를 찾아 신문·인터넷·책, 뒤지지 않는 곳이 없어요. 아니, 눈에 보이는 일상 모두가 문제의 대상이죠. 그런데도 나름의 규칙(예컨대 답이 3번인 경우가 많더라, 테두리에 답이 많더라 등)을 찾으려 애쓰는 출연자를 보면 우리끼리 재미있어 하죠.” 최지희 작가의 말이다. 요즘은 퀴즈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인터넷 퀴즈 사이트까지 늘어 문제의 수준이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 예를 들어 한 여배우의 자살사건을 놓고 보면 과거에는 ‘우울증’이라는 자살 원인이 정답 가능성이 높았다면 이제는 우울증을 철학적으로 정리한 심리학자나 그의 저서 등 으로 가지 치기 해나가는 식이다. 하지만 문제 찾기는 이들의 업무에서 그야말로 ‘새 발의 피’, 보다 중요한 공정이 있다. ‘낮의 업무’, 확인이다. 제작팀 내의 교차 체크는 기본, 관련 분야 전문가는 필수다. 이들의 재산목록 1호인 ‘수첩’에는 새 담당, 물고기 담당, 물리 담당, 고전 담당, 재활용 담당, 철도청 담당 등으로 정밀하게 나눠진 방대한 양의 전문가 그룹 명단이 빼곡하다. 타 방송사 퀴즈프로그램도 빠뜨리지 않고 보아야 한다. 중복 문제를 피하기 위한 조치. 공통적 관심사인 시사문제는 특히 신경을 써야 한다. 다음 단계는 가장 어려운 난이도 조절. 문제가 어려워 초반에 의욕을 꺾어서도 안 되고 너무 쉬워 긴장감을 떨어뜨려서도 안 된다. 이 때 중요한 것이 ‘함정의 맛’. 김아정 작가의 이야기다. “경쟁을 위해 불가피하게 저희가 ‘악역’을 맡죠. 감수를 마치고 나면 ‘어떻게 하면 실수를 끌어낼까’ 하는 단계가 돼요. 함정을 파고 비트는 거예요. 출연자들과의 머리 싸움이죠. 녹화 당일 문제가 뒤집히기도 하니까 마지막 순간까지 머리가 터져요. 솔직히 말해 출연자들이 저희가 판 함정에 빠지는 것을 보면서 쾌감을 느낄 때도 있어요.(웃음)” 반면 출연자가 정답을 놓치면 애가 타고 살이 탄다. 김 작가의 고충이 이어진다. “숱한 밤을 새며 인고의 고통을 거쳐 태어난 자식 같은 문제들이거든요. 특히 제가 생각해도 진짜 좋은 문제인데 출연자들이 놓치면 무너지죠. 자식을 버리는 어미의 심정 같다니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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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자는 어떻게 섭외하나? - 절절한 사연, 채택될 확률 높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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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프로그램이라고 문제가 다가 아니다. 예심에, 출연자 섭외도 못지않게 중요한 업무다. 작가 여섯 명과 <퀴즈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는 김상현 PD는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 ‘사연’을 어떻게 올리는지도 예심 통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귀띔했다. “1등이 된다고 해서 국가공인 자격을 받는 것도 아니잖아요. 참가자도, 시청자도 유쾌한 시간이 되게 하는 것이 최고 목표죠. 당연히 감동 있는 사연을 가진 출연자가 더 흡인력이 있지 않겠어요? 작년에 ‘영웅’이 됐던 열쇠수리공 이용석씨, 어려운 가정환경을 이겨낸 이창환 군 같은 이가 대표적이죠. 퀴즈 실력 못지않게 사연도 중요해요.” 이들이 가장 경계하는 이는 ‘퀴즈는 즐길 줄 모르고 돈만 밝히는 수준 낮은’ 출연자. 퀴즈의 생명은 ‘모험’이란 뜻이겠다. 제작진이 만난 퀴즈 고수들의 특징은 평소 책과 신문, 정보에 귀와 눈을 열어 놓는 ‘호기심장이’였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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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프로그램 제작진의 직업병 -‘세상은 퀴즈와 퀴즈 아닌 것으로 나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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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부분은 퀴즈 프로그램 제작진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직업병. <퀴즈의 힘> 진영주 작가의 말이다. “스트레스 때문에 ‘이러다 노이로제 걸리고 말지’라고 누가 말해요. 그럼 작가들이 동시에 노이로제의 어원을 찾고 있어요. 하하. 길을 가다 신호등을 보면 화살표가 어느 쪽에 있는지 보고, 우유를 마시면서 유통기한을 확인해요. 배달이 늦으면 돈을 안 받는다는 피자집의 약속 시간은 몇 분인지, 아무튼 이 끝없는 지적 호기심을 결코 멈출 수가 없다니까요.” 심지어 농담까지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김 작가의 경험담이다.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으니까 어깨가 자주 뭉쳐 죽도를 갖다놨어요. 아픈 곳을 두드리면 시원하거든요. 어느 날 서로 어깨를 안마하다가 ‘죽도로 죽도록 맞는구나’라는 말이 튀어나왔는데 옆에서 그래요, 그 죽도가 그 죽도냐고요. 하하하.” 이해가 어렵다면 썰렁 개그 정도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런데 다른 프로그램을 만드는 김 PD 얘기 또한 여기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 프로 하면서 한 번 더 보는 습관이 생겼어요. 운전하면서 표지판 확인하고 새로운 표지판은 반드시 찾아보고요. 우유 유통기한, 재활용 쓰레기 구분표도 지나치지 않죠. 모르면 물어보고.” 신기할 만큼 닮은 고백 앞에 ‘직업병’만큼 적절한 표현이 없다. 하지만 강박증을 느끼는 당사자의 사정과 달리 병이라기엔 ‘격’이 높다. 역시 그들도 ‘쾌감이 있는 고통’이라는 데 동의한다. “직업 덕분에 지식을 늘려가는 재미가 있어요. 아, 물론 시간이 없어 그 많은 유용한 정보들을 활용 못해 안타깝긴 합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