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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말 열린 호주 우드포드 축제 국제 아트페스티벌에서 '빨래하는 아지매' 퍼포먼스를 선보인 이경미(왼쪽) 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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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나라 여행, 호주. 호주 문화에 관심을 둔 것은 <무탄드 메시지>라는 책 때문이다. 호주 설치미술가 수(Sue)는 내가 호주 여행을 결심하자 무척 반겼다. 호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수는 한국에서 여러 차례 퍼포먼스 축제에 참여한 바 있다. 그랬던 그녀가 호주의 '우드포드 포크 축제'에 국제 아트 페스티벌을 신설했다. 난 지난해 12월 말 그 페스티벌에 '한국의 미'를 담은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도착한 호주. 하지만, 아뿔싸! 60년 된 무명치마 저고리를 한국에 그만 놔두고 왔다. 만일을 대비해서 넣어갔던 노랑 저고리, 꽃 분홍 치마를 입고 퍼포먼스를 펼쳐야만 했다.
궁여지책으로 한복을 차려입고 호주 사람들 사이를 지나갔다. 파란 눈 노란 머리를 한 호주인들이 쳐다보며 원더풀을 외치고 사진들을 찍어댔다. 한참 동안 내리던 비가 잠시 그치고 나의 퍼포먼스는 시작됐다.
주제는 '빨래하는 아지매'.
한복을 입고 빨래통을 이고 등장하는 동양 여자가 궁금했는지 관객들은 지나가는 발걸음을 멈추고 모여들었다.
빨래통을 내려놓고 나서 큰절로 퍼포먼스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신나는 '뽕짝' 음악을 틀었다.
두 호주 남자를 불렀다. 음악에 맞춰 한 사람은 빨래하도록 하고 한 사람에게는 빨랫방망이를 줬다. 빨랫방망이로 박자에 맞춰 두들기기도 하고 장단에 맞춰 빨래판을 긁기도 했다. 내가 없어도 두 사람의 장단이 척척 맞았다. 보고 있던 관객들도 신이 나 함께했다.
퍼포먼스가 열리고 있던 공간 뒤로 캔버스에 오배자, 쪽, 치자 등으로 물들인 천연 염색 보자기를 싼 작품을 걸었다. 나 자신을 '한국의 미'로 표현한 설치작품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며 흥을 즐길 줄 아는 민족. 호탕한 웃음으로 너스레 떨며 사람을 품을 줄 아는 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이요, 미 아닌가. '빨래하는 아지매'라는 퍼포먼스는 그런 한국의 미를 담은 세계 공통의 주제였다.
문화는 생활에서 묻어나는 법. 난 그들의 문화를, 홈스테이를 하며 느꼈다.
우드포드 포크 축제 기간은 호주 사람들의 여름휴가 기간이었다. 호주의 크리스마스는 여름에 맞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으로 직접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호주인들은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시작으로 새해까지 가족들끼리 모여 휴가를 보냈다. 축제를 마치고 홈스테이를 할 수 있는 집을 찾았지만 가족들끼리 즐기는 휴가 기간에 호스트를 찾기란 쉽지가 않을 터. 수에게 겨우 부탁해 호주 멜라니에 사는 놀라 아줌마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놀라 씨도 비주얼 아트 워크숍을 운영하는 작가였다. 그녀의 집은 언덕 위에 있었는데 키가 큰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아무리 높은 산 위에 집이 있어도 키 높은 나무들이 에워싸 산 아래를 내다볼 엄두를 내지 못하는 곳이 호주다.
동네 사람들은 눈빛이 마주치면 '하이' 하며 눈인사를 건넸다. 대도시인 브리즈번과는 다른 인정이 넘치는 풍경이다. 아이들은 맨발로 동네를 활보하고 다녔고, 밤이 깊었는데도 놀라 아줌마는 문을 잠그지 않느냐고 걱정하는 나에게 문제 될 것 없다고 말했다.
한국의 미를 공유한 호주에서의 추억, 나를 깨우는 그들의 삶.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에 스쳤고 그렇게 밤은 깊어갔다.
/이경미(미술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