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현재 신분상태: 자유인?
갈매기 날아들고 큰배 작은배 드나드는 항구가 있는 군산, 그리고 항구를 낀 월명공원 산자락 바로아래에 자리잡은 초등학교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중학교를 거쳐 그너른 옥구,익산벌판을 지나 이리에 자리한 남성에 입학하여 조금씩 조금씩 나만의 생각들이 들어갈 즈음, 난 막연히 속박과 굴레에서 벗어난 자유인이 되고 싶었고 가능하면 그렇게 나의 삶을 자림매김하고 싶었어. 그땐 주위에 내가 스스로 감내하기 힘든것들이 너무 많았거든. 공부를 하지 않하면 죄짓는 느낌이 드는 학교생활, 강압적 규제 그리고 획일적이고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등등… 그리고 그만큼 내가 전혀 모르는 다른 세상에 대한 동경은 커져만 갔고…
사회적 성공이나 명예는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관심사항이 전혀 아니고, 경제적으로도 남에게 신세 지거나 난처한 부탁하지 않고 밥세끼 먹으며 가족부양할 정도면 과이 족하다고 본인은 여태컷 그렇게 믿고 있으니까.
문제는 그당시 상황의 굴레에서 어떻게 벗어나느냐 하는것이였지.
기실 난 내아이들나 주위의 가까운 지인이 좋아하는 모임에 열심히 참여하고 활동하는것을 매우 고무적으로 생각하고 이를 적극 후원하지만, 돌이켜 보니 나 자신은 자유분망한 대학시절 그흔한 써클이나 어떠한 동아리에 가입한적도 없고 가족이 미국에 정착한지 근 20년이 다되가는데 까까운 한인회나 한인교회(미국에서는 종교나 신앙정도에 관계없어도 교민들이 교회를 만남의 장소로 여기니까)에 단 한번 가본적이 없으니… (일부러 그러한건 아니지만 살다보니까 그냥 그렇게 된거야. 이곳 말레지아, 싱가폴에서도 어울리는 로칼친구는 제법 되지만 단 한명의 알고지내는 한인 교민이 없으니 좀 우숩지)
지금생각하니 고의성이라기 보다는 내가 지니고 있는 관심의 문제 였었나봐.
어찌되었든 비교적 젊은 나이에 결심했고, 한국을 떠나지 않겠다는 아내를 어렵게 설득해서 새로운 곳으로 이주했고 그리고 또 새로운 곳으로…
난 이름이 바뀌었어. 아니 바뀐게 아니고 새로운 이름을 얻었나?
미국에서 회사를 다닐때 임성(ImSung)이란 이름이 다른사람에게는 어렵게 발음되어 이니셜로 I.S로 했었는데 (사실 난 IS는 Be동사이지만, 존재를 의미하는 은유가 숨어있어 Be는 나의 실존적 존재의미가 되고, 변환하여 Being이 되면 생성의 뜻을내포하고 있어 좋았는데) 어느날 아주 가까운 상사가 우연한 기회에 나보고 케빈 코스터너를 좋아하냐고 묻길래 그냥 좋다고 간단히 대답한 이후, 회사에서 모든 사람이 나를 케빈(Kevin)이라 불렀고 서류에서도 새로운 이름으로 쓰여지게 되었어.
미국에서는 통상 운전면허증이 제일신분증( 1st ID)역활을 하는데 운전면허증에도 은행통장에도 집문서에도 이젠 모든 공식문서에 케빈이 내이름(FIRST NAME)으로 되고 말았어. 임성은 어쩌다가 미들내임으로 (통상 이제는명함 같은곳에 이닐셜 I. 로만 표현) 문서에서도 생략되고 그후에 회사와 사회에서 만난모든 사람들은 나를 케빈이라 불렀어.
첫아이는 황씨 집안의 돌림자를 존중하여 “규”의 세대라 규빈이라 했고 둘째는 규인이라 했는데 영문표기로 규빈은 케빈( KEVIN), 규인은 콜린(COLIN)이라 지었지. 그래서 본의아니게 한집안에 케빈이 두명되는 바람에 나는 씨니어(Sr. )아들은 쥬니어(Jr.) Kevin Hwang이 되었어.
쥬니어가 고등학교때 엄마속을 무던히도 썩혔는데 생각하니 지금은 세대가 진화되어 나보다 한 열배는 꼴통짓을 한것 같아. 어찌보면 나도 DNA공범이지. 하여튼 모두 잘하면 괜찮고 상관 없지만 한집안에 두케빈이 모두 말썽을 이르키니 아들은 내맘대로 할수없어도 나라도 어떠게 해야할듯 하여 이름을 바꾸고 싶은데 이게 또 쉬운 일이 아니잖아. 내가 때마침 동아시아문명과 문화에 관심이 아주 크게 고조되고 있던 차이고 해서 이번은 아호처럼 병용해서 쓸수 있는이름으로 곰곰히 생각하다 한자로紫遊(ZIYOU)라 하여 지금은 동남아시아와 중국에서 활동할때 이이름을 자주쓰고 명함엔 영문으론 케빈황, 한자론 “쯔유”라 써놓았어.
억지로 따라와 지금껏 아이들 키우고 살림하느라 고생해준 고마운 아내는 여러모로 마음고생이 많았지. 아내가 한국을 마지막 다녀간게 근 15년전 동생( 제일 국민학교 13회, 황지성) 결혼식 때문인데, 같이 한국나들이를 권해도, 말레지아회사에서 경비 일체제공으로 초청해도 사양하고 세월이 어떻게 가는줄 모르고 바쁘게 그곳에서만 살고있어. 지금은 미국 시민권자로 오바마에게 투표한걸 보람으로 알고 살고있는데( 참고로 아내와 아이들은 모두 국적변경을 했지만, 나는 여전히 영주권자로 아직도 한국여권소지 ) 어느날40이넘은 나이에 갑자기 분야가 전혀 생소한 공부를 시작하여 지금은 RN(간호사)이 되었고 요사이는 시간당 기본급 48불(미국에서는 연봉이 아니고 모두 시간급으로 임금책정)로 비교적 고임금에 매료되어 더욱 빠쁜 나날을 보내고 있어. 지난달 집에 갔을때, 액스트라 근무일은 매 시간 기본급에 150%추가 그리고 또 보너스 400불라고 아무리 만류해도 나보고 막내하고 놀면서 맛있는것 사먹으라하고 병원으로 출근 하더라고. 여자가 늦게 돈맛을 보면 이러는가?
젊었을땐 집안살림 아내에 맡겨두고 나혼자 실컨 잘 돌아다녔지만, 늙어서 밥이라도 한끼 얻어 먹으려면 아내에게 잘 보여야 할턴데 신혼부터 주말부부로 시작하여 나는 지금도 떠돌이… 캐나다에서 살땐 막내가 거의 피붙이나 다름 없었는데 얼굴 비치는게 일년에 고작 서너번, 미국에서 회사 다닐때는 주야장창 한국과 아시아 출장이었고 후에 시작한 말레지아, 싱가폴 일은 심심풀이로 몇년만 잠깐하고 온다는게 벌써 근 9년이 다되었네. 이제 4--5년안에 물려주든 정리하든 이곳일은 그만두고( 수집해논 물건들과 로칼친구들이 많아 아마도 말레지아나 싱가폴에 작은집은 하나 남겨 놓아야할듯)상해나 홍콩에서 반도체가 아닌 전혀 다른일을 생각중인데 글쎄…
잡종은 우리에게도 상스럽게 들리고 중국인에게 상당히 모욕적인 언사인데, 나는 자유인? 아니 아마도 난,사상적 문화적 잡종?
첫댓글 오랜만에 카페에서 글로나마 만나게 되었네 얼마전 한국에 다녀간 형섭이 하고 저녁하면서 이런저런 얘기 나누었는데 임성이 부분에 대해서 많이 아는 듯 해도 내용을 읽어보니 아직도 모르는 부분이 많네 예전에 만났을 때 조그맣게 동창들이 모일 수 있는 사랑방 같은 찻집 만들자는 계획 접은 것은 아니지 ㅋ ㅋ(5월 중에 한국에 오면 보자구)
영로, 작년에 좀 바빠서 자주 까페에 못 들렀어. 미안해. 늘 친구들을 위해서 수고해줘서 고마워. 어딜가든 마음은 늘 고향과 친구를 그리워함은 아무리 잡종이라도 같을걸.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