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0일 나는 “공무원노동인권탄압 진상조사단”의 일원으로 전남 완도군청을 방문했다. 아무런 법적 권한도 갖지 있지 않은 인권 단체들이 군청을 방문한다고 해서 무슨 힘으로 법과 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된 인권침해를 막아낼 수 있을까 회의적일 수 있지만 주권자의 한사람으로서,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독립된 단체들이 가진 도덕적 정당성만으로 얼마든지 인권의 관점에서 권력의 잘못을 냉철하게 지적해주고 개선을 촉구할 수 있다.
행자부(행정자치부)가 지난 3월 22일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 “합법노조 전환을 추진한다”는 명분으로 내려 보낸 “공무원노조 파괴지침”은 공무원노동자의 자율적인 노조 활동을 방해하고, 심지어 노조를 파괴하려는 공작들까지 정당화시켜주며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지방자치는 한 때 “민주화 이행”의 징표로 여겨졌지만 취약한 재정기반을 가지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돈줄을 쥐고 있는 중앙정부의 눈치를 언제든 보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지역주민들은 정보나 언론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어 지방행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알 수도 없기 때문에 왠 만해서는 자율적인 힘을 통해 지방정부를 견제하기가 어렵다.
그런 까닭에 한국의 지방자치는 정치,경제권력을 독점한 토호들의 이권 쟁탈장이 되어 버린 지 오래고 지역 언론은 부정부패의 한 축을 형성해 왔다.
2003년 3월 “공직사회를 내부로부터 개혁”하겠다며 공무원노조가 출범하자, 무엇보다 당혹스러워했던 것은 정부였고, 지방에서 권력을 잡고 있는 이들 토호세력이었다.
‘공무원노조를 탄압하라’는 식의 행자부 지침은 여러 차례 내려졌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3월 20일 울산시 동구청장이 제기한 ‘공무원의 동절기 근무시간을 1시간 연장하는 내용의 복무조례 개정지침‘ ’전공노 총파업관련 징계업무의 처리지침‘ ’전공노 조합원 병.연가 불허 업무연락공문‘ 등과 관련된 권한쟁의심판청구를 각하했다. 각하 이유는 이러한 행위들이 “단순한 업무협조 요청”“단순한 견해의 표명”에 지나지 않으므로 (자치단체장의) “법적 지위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없는 행위”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도 현장에서 공무원노조 탄압과 관련된 행자부지침은 거의 예외 없이 지켜지고 있었고 어떤 곳은 한발 더 나가는 곳도 있었다.
완도군은 그러한 곳 중에 하나다. 2004년 11월 공무원노조 총파업 이전에 공무원노조 완도군 지부는 가입대상 613명 가운데 609명이 가입해서 99.3%의 놀라운 조직률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파업이후 완도군청의 지속적인 탄압으로 현재는 조합원 수가 150명으로 급감하였다. 지난 4월 14일에는 ‘공무원노조 특별법’을 받아들이고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활동하겠다는 “어용노조”까지 만들어졌다.
이렇게 되기까지 완도군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을 만나면서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 군청측은 2004년 11월 공무원노조 총파업이 끝나자마자 실,과,읍,면장을 동원하여 조합원들을 개별적으로 불러놓고 노조탈퇴서 작성을 강요했다. 연서명으로 되어있는 이 노조탈퇴서는 그 자체가 강요의 흔적이었다.
또한 경찰병력을 동원해서 여러 차례 노조 사무실 폐쇄를 시도했고 조합비 원천징수를 막는 것은 물론 거래은행에 압력을 넣어 CMS 자동이체까지 못하도록 막았다. 조합원들이 노조 홈페이지 접속하지 못하게 군청 서버를 막아버렸고 지역 관변단체들을 동원해서 공무원노조에 반대하는 현수막을 내걸고 시위까지 하도록 만들었다.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도청에서 징계를 당한 조합원(대부분 노조간부) 17명을 섬으로 발령 내는 ‘이중 징계’ 조치를 내렸다. 심지어 만삭이 된 여성 조합원까지 그렇게 했다.
신규노조 설립과정에도 정황상 지배 개입한 흔적은 역력하다. “완도군공무원노동조합 창립총회 참석 협조”라는 제목의 공문에는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상군허용”이라는 문구가 찍혀 있었다. 이것도 모자라 창립총회가 있던 날, 총회불참을 독려하던 완도군지부 임원들을 청내 방송으로 “저지하라”라고 지시했고 총무과장은 직접 25명의 공익요원들을 이끌고 나와 총회 행사장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봉쇄해 버렸다.
이렇게 치러진 신규노조의 창립식에는 40여명 정도가 참여했고 선출된 위원장은 얼마 전까지 노조를 관리하던 총무과 직원이었다.
여태까지 완도군지부에 탈퇴서를 자발적으로 제출한 조합원은 1명뿐이라는데 이 조합원의 탈퇴서에는 “공무원 불법 노조 탈퇴하고 합법노조 가입하라며 재촉하는데 너무 혼잡 합니다”“두가지 모두 가입하지 않고 탈퇴하렵니다.“라고 적혀있어 그동안 조합원들이 얼마나 많은 시달림을 당해 왔는지 짐작이 간다.
공무원노조 완도군지부는 지난 3년동안 섬 근무자와 본청근무자간의 차별을 개선하는데 앞장서 왔다. 또한 지역에서 군청 간부들이 저지르는 부정부패 행위들을 폭로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활동들도 꾸준히 해왔다.
지역 시민단체조차 변변히 없는 완도지역에서 공무원노조는 행정감시자로서 견제의 역할을 톡톡히 해 온 셈이다.
전남지역에서 흔치 않는 열린우리당 출신의 군수로 재선을 꿈꾸는 완도군수 김종식은 독립기념관 관장을 맡고 있는 김삼웅씨의 동생이기도하다. 오랜 관료생활이 몸에 익은 그는 하급직들로 구성된 공무원노조가 자신의 권력행사에 제동을 거는 ‘꼴’이 몹시 못 마땅했을 테고, 행여 자신의 “부패 행각”이 드러나지나 않을 까 오금이 저려왔을 것이다.
행자부의 ‘공무원노조 파괴지침은 그의 가슴속에 꿈틀거리고 있던 복수심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도록 무한한 영감을 제공했다. 그의 노조 탄압방식은 지역 주민을 동원하고 여론을 호도하는 “포퓰리즘”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어 공무원노조 완도군지부가 홀로 감당하기엔 쉽지 않아 보였다.
변명과 둘러대기로 일관하는 부군수를 비롯한 군청간부들의 준비된 답변 속에서 우리는 탄압의 결정적인 단서들을 잡아내기는 어려웠지만 완도와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자주적인 공무원노조가 어떤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왜 존재해야 하는지 각인하는 계기가 되었다.(이광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