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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글·尹旻燮(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I. 머리말
사진과 사진제판 기술이 미약했던 1980년 말 한국의 광고가 대량전달 매체에 발표되었을때 광고 메시지를 구선하는 주요 요소는 일러스트레이션이었다.
1920년대 중반에 사진이 중심이 된 광고표현이 간혹 목격되었으나 일러스트레이션의 기법과 형식에서 찾아질 수 있다. 광고산업이 발전한 서구의 일러스트레이션과 이를 개방적으로 수용한 일본의 광고 일러스트레이션은 회화적 균형잡힌 수준이나 당시 한국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은 민화(民畵)적인 투박한 필치의 그림이 주종을 이루었다.
서구와 일본 그리고 한국 고유의 회화(繪畵)적 맥락에서 한국광고 일러스트레이션의 특징이 발견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II. 한국 광고 일러스트레이션의 시대적 개관
1886년 한성주보 2월 22일자에 한문만으로 구성된 문자일주의 타이포그래피 형식의 근대 광고가 발표되기 시작하면서 광고 메시지를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표현 요소들의 도입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인쇄광고의 표현요소인 문자(Typography Design), 일러스트레이션(Illustration), 사진(Photography) 등의 활용이 1900년대 초의 신문광고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특히 일러스트레이션은 사진의 도입이 본격화된 1920년대 이전부터 광고제작자들이 애용하는 표현요소였다. 당시의 일러스트레이션은 단조로운 삽화풍의 그림이었으나 메시지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여 전달력을 높이는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현대 일러스트레이션과 비교하여 조형적 완숙감은 부족하나 독자들의 시각적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 기본적인 요소들을 갖춘 의미 있는 그림들이었다.
당시의 일러스트레이션들은 서양과 일본으로부터 도래한 문물의 광고 메시지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다양한 형식으로 활용되었다. 서구의 미술 운동과 일본화의 영향을 받은 표현형식과 한국 민화풍의 일러스트레이션 등 세가지 표현이 제품의 원류를 나타내기 위하여 도입되었다.
현대 일러스트레이션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스크레치 보드 테크닉(Scratch Board Technics) 등의 판화기법으로 그려진 제품화, 캐릭터 형식으로 구성된 이미지 합성 등의 사례가 1920년대의 광고에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표현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기 위한 일관된 일러스트레이션이 시리즈 광고에 연재되어 전달력을 향상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1945년 일제치하로부터 독립한 이후 한국광고의 표현에서 일본화풍의 일러스트레이션은 크게 감소하였으나 한문으로 제작된 제품의 로고타입 등에서 일본색이 남아있어 최근까지 주류등의 제품로고로 활용되어왔다.
1950년대 6.25사변 발발로 산업시설이 파괴되므로 생산활동이 정지되고 국제교역 활동이 위축되는 등 광고환경이 열악해지는 상황이 계속되었으나 1950년대 후반으로부터 1960년대 초 미국을 중심으로 한 UN의 지원으로 국가 부흥과 재건운동이 시작되면서 광고산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정규 디자인 교육 과정을 이수한 디자이너들이 광고제작 실무를 담당하기 시작하고 세계적인 브랜드가 국내시장에 상륙하면서 본격적인 현대 일러스트레이션이 지면 광고에 주요표현요소로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구상적인 사실적 표현이 주류를 이루었던 1900년대 초반의 재현적 표현과 크게 대비되는 인상적이고 창조적인 일러스트레이션 표현으로 제품 이미지를 강화시켜 주목받았다.
1960년대 후반 산업화사회로 발전되고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성공을 거두면서 국내외 발표된 광고들에서 수준 높은 일러스트레이션들이 이미지 구성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국내 대기업들의 광고 표현에서 뿐만 아니라 수출 드라이브를 촉진하기 위해서 설립된 종합상사들을 필두로 외국기업과 제휴한 합작기업들의 광고에서도 다양한 일러스트레이션들이 활용되어 전달력을 향상시켰다.
1980년대 국내 기업들의 활동이 체계있게 운영되면서 짜임새있게 광고 캠페인을 전개하는 사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관된 그래픽 아이덴티티를 견지하면서 관계자 집단과 이미지교감을 진행시키기 위하여 일러스트레이션을 레이아웃의 중심요소로 활용하여 성공을 거둔 사례도 많았다.
1990년 이후 인쇄매체의 폭발적인 지면증가로 전면광고와 멀티페이지 광고들이 다수 제작되어 광고면을 장식했으나 대부분 사진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미지들이 주류를 이루고 일러스트레이션 기법으로 제작된 광고의 양이 줄어드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컴퓨터의 화상 구성 능력이 향상되고 그래픽 기기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손으로 그리는 회화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을 감소되고 사진을 재구성하거나 왜곡하여 재결합하는 컴퓨터 일러스트레이션이 증가했다. 사물의 이미지를 단순화한 만화 형식의 일러스트레이션은 인기 작가들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제품메시지를 전달에 큰 몫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III. 시대별 일러스트레이션의 특징
1910년 2월 16일 일본에 강점되기 직전 신문에 발표되었던 통신판매 안내광고에 발표된 수출입상 한양상회의 광고(그림 1)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이 발견되었다. 선(線)화로 그려진 편지묶음과 점포 그리고 발송을 기다리는 포장물들이 사실적인 표현으로 문자 크기의 변화가 없는 타이포그래피적 요소와 조화된 균형감을 보여주었다. 한문과 한글이 병용된 카피만으로 시각적 충격을 줄 수 없었던 당시의 광고표현들과 크게 차별화되어 독자들이 손쉽게 메시지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으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1920년대 초에 발표된 삿뽀로맥주 신문광고(그림 2) 등에 나타난 판화기법으로 표현된 제품묘사는 사진보다 시각적 전달력을 강화시킨 표현기법이었다. 사진효과보다 명암의 대비를 인위적으로 강조할 수 있는 스크레치 보드 테크닉으로 상품의 입체감과 제품 포장내의 문자정보를 분명하게 식별할 수 있는 흑백상황으로 상품재현이 가능한 기법이 활용되었다. 이 표현 기법은 사진제판기술로 나타낼 수 없었던 표현의 한계를 극복한 판화기법이었다.
서구적인 패션감각을 한국적인 패션요소와 합성한 세창 양화점의 구두광고(그림 3)에 그려진 인물화는 동서양의 문화가 결합되는 상황을 한눈에 보여주는 충격적인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당시 여학생들에게 주목되었을 것으로 평가된다.
1920년대의 광고표현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가장 활발하게 사용한 업종은 제약부분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이미지를 결합하고 재구성한 사례가 많았다. 녹용과 인삼 이미지를 상징화하여 의인화한 모범매약상회의 일러스트레이션(그림 4)은 대담한 이미지 합성으로 독자의 이해를 높였고 소화제 광고(그림 5)에서도 내장을 설명적인 인체 해부도 그림으로 표현하여 시각적 충격효과를 거두었다. 그밖에도 조선상회의 '환소단' 광고, 삼천당의 대학목약 광고(그림 6)는 일러스트레이션을 전달력 향상과 레이아웃을 구성키 위한 조형적 요소로 적극 활용한 사례였다.
1923년 2월 8일 동아일보에 발표된 '박가분'광고(그림 7)는 민족주의적 메시지를 앞세운 카피와 그림으로 조선인의 자존심을 자극한 표현으로 주목되었으며 투박한 일러스트레이션이나 전통 한복을 착용한 여인을 순박하게 표현하여 외래의 일러스트레이션과 차별화를 이루었다.
1923년에 이미 미국에서부터 도래한 전기용품 메이커 GE사의 제품광고에 제품을 선화로 묘사하고 빛나는 일출광 장면과 구상한 일러스트레이션이 발견되었으며 삼천당제약이 서구에서 수입한 감기약 광고(그림 8)에 감기를 상징하는 캐릭터를 주제로 약품광고를 제작하여 완성도 높은 레이아웃을 보여주었다. 무형적인 감기를 형사으로 구성해 낸 캐릭터가 이 광고의 주제였으나 '헤브린' 이란 제품 명칭이 영문인 것으로 보아 서구로부터 전래된 캐릭터로 추정되었다.
1923년 이후 수년간 시리즈로 발표된 제생당 제약소의 피부미용제 캠페인(그림 9)의 일러스트레이션은 항상 레이아웃의 중앙에 배치시키고 시각적인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이미지 구성으로 그림을 전개하여 소비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순천당에서 제작한 '중양탕' 광고(그림 10)와 일러스트레이션은 서구적 회화풍과 일본화풍이 혼성된 그림으로 헤드라인의 성격을 반영한 이미지로 전달력을 높였으며 나신의 여인을 내세워 선정적인 충격을 독자들에게 안긴 시리즈형식으로 발표된 일러스트레이션이었다. 불란서에서 수입된 '미쉐린 타이어' 광고(그림 11)의 캐릭터는 제품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캐릭터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제작된 현대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의 광고 구성이 존재했음을 보여준 사례였다.
1925년에 발표된 주류 광고(그림 12)의 일러스트레이션도 서구로부터 수입된 제품과 함께 일본을 경유하여 도래된 장식적인 아트데코(Artdeco)의 회화풍을 보여주었다. 이후 1930년도 후반 화신백화점의 경품광고(그림 13)와 유한양행의 기업광고(그림 14) 등에서 비교적 짜임새있는 광고구성 요소로 일러스트레이션이 활용되었으나 특이한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1940년 중반 일제로부터 해방전후까지도 서구적인 사실화에 바탕을 둔 일러스트레이션이 대표적인 기업들의 광고(그림 15) 등에 나타났고 인물표현에서 사회주의적 권위감을 나타내는 구도를 활용한 사례(그림 16)도 발견되었다. 이 사례들 중 몇몇 작품은 개인 디자인 전시회에 출품하기 위하여 광고주들 이름을 삽입한 작품으로 파악되나 확실치 않다. 이상의 작품들은 정통 미술교육을 받고 회화적 표현력을 구사할 수 있었던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집에 수록된것을 발췌한 것이다.
1950년 6.25사변이 발발한 후 산업시설이 복구되고 일상 생활용품의 생산이 재개되고 소비재 광고가 발표되면서 일러스트레이션의 형식이 사실적인 표현과 민화적인 유머의 느낌이 강한 표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55년에 발표된 럭희화학의 럭키치약 광고(그림 17)는 사실적인 단순화로 표현한 일러스트레이션이었으며 서광주조가 신문에 발표한 '진로'광고(그림 18)는 만화풍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남성 소비자들의 캐릭터를 극화한 것이었으나 서구 만화의 캐릭터를 참고로 재구성한 듯한 이미지여서 독창적인 한국만화 캐릭터로 평가되지 못했다.
1962년에 발표된 럭키치약의 신문광고(그림 19)에 그려진 동물 에니메이션은 스토리 보드형식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독자들에게 시각적 흥미를 전달했다. 1964년 조선일보에 발표되었던 한독약품의 '훼스탈'신문광고(그림 20) 시리즈는 독일 훽스트사로부터 전래된 브랜드답게 서구적인 캐릭터로 고유의 이미지를 누적시켜 큰 성과를 거두었다.
1969년 외국 기업들과 합작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광고대행사 시스템이 광고업계에 도입되고 서구적 일러스트레이션을 교육받은 젊은 디자이너들에 의하여 대기업들의 광고 표현에 대담한 일러스트레이션 표현이 출현했다.
1969년도 신문에 발표된 대한석유공사의 '유공슈퍼' 광고(그림 21)은 거칠은 목탄화의 필치로 그려진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제품 이미지를 적극적인 표현양식으로 시각화한 사례였다. 같은해 국내 영자지에 발표된 일본 미쯔비시 그룹의 기업광고를 한국의 광고대행사에서 제작한 기업광고(그림 22)에 한국 일러스트레이터가 사진과 합성하여 그린 이미지를 채택하여 발표하였다.
1970년대 초 한국화약과 미국 유니온 석유사가 합작하한 경인에너지의 첫 기업광고는 회화적인 조형성과 사진 합성기술을 복합적으로 구성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선발기업인 대한석유공사와 호남정유를 정면으로 공략한 도전적인 이미지로 평가되었다. 1974년 조선일보에 '훼스탈' 광고(그림 23) 시리즈는 사실적 동물화로 소화제 메시지를 시각화한 그림이었으며 개성적 작업이 안된 평범한 표현이었으나 1960년대 초에 발표된 일러스트레이션 표현의 전통을 잇는 작품이었다.
1976년 종합상사들의 대 국민과 대 정부 설득용으로 제작된 기업광고(그림 24)는 사진을 바탕으로 추출된 명암이 양분된 사실적인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기업의 비젼과 목표 등을 시리즈형식으로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다.
1976년 말과 1980년 초에 발표된 '농심라면'의 잡지광고(그림 25)에서 선보인 사실 인물화와 민화적인 인체의 조합으로 구성된 흥미로운 일러스트레이션은 저명 인사의 초상을 초사실적으로 묘사한 이미지로 사진 이상의 사실성으로 극화되어 캠페인을 성공적으로 이끈 요인이 되었다.
1983년 초에 신문에 발표된 럭키의 기업광고(그림 26)는 종(種)이 다른 두 가지 생명체를 합성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유전공학 분야로 진출하려는 기업의 의도를 표현하여 주목을 받았다.
1990년도에 이르러 일반화되기 시작한 컴퓨터 기술에 의한 이미지 합성 결과에 비하면 초보적이긴 하지만 기업의 의지를 시각적으로 현실화한 이미지로 평가되었다. 같은 해에 발표된 동아제약의 '타치온' 광고(그림 27)는 동물을 의인화 한 코믹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헤드라인을 시각화하여 사물의 의인화와 만화적인 유머 기법으로 주목을 받았다.
1984년 발표된 롯데칠성 음료의 '쌕쌕오렌지' 광고(그림 28)는 동감있는 만화적 캐릭터로 제품 이미지를 신선하게 표현한 일러스트레이션 사례로 평가되었으며 1985년 4월에 발표된 공익광고 전화기편(그림 29)의 일러스트레이션은 사물의 형태를 왜곡하여 이미지를 강화시킨 사례로 대중적인 주목성을 높힌 충격 언어로 평가되었다.
1988년 한국 아이
IV. 맺음말
1900년대 초의 광고 일러스트레이션은 손으로 그린 삽화류로 서구풍과 일본풍의 그림으로 제작된 표현이 대부분이였다. 간혹 한국 민화풍의 그림이 서구풍과 일본풍으로 조합되어 시대상을 반영한 사례도 발견되었다.
일러스트레이션 요소가 표현의 아아덴티티를 유지시키는 요소로 활용되어 시리즈의 이미지 누적효과를 거둔 사례도 발견되어 현대광고와 비교되었다.
1945년 해방후에도 일본풍의 일러스트레이션이 활용되는 사례가 발견되어 문화적인 침식현상이 심각했음을 보여주었으며 이러한 현상은 한국전쟁 이후에도 종종 나타났다.
1960년대 이후 서구문화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고 농경사회로부터 산업사회로 진전되면서 서구적인 사실적 스케치로 그려진 일러스트레이션이 도입되어 시대적 변화를 나타냈다. 만화적인 일러스트레이션 형식은 시대를 초월한 이미지 전달도구로 한국광고 초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사용되었음이 확인되었다.
1980년 이후 사진과 제판 인쇄기술이 진보되고 첨단기기를 이용한 합성기술이 진보되면서 영상매체를 위한 컴퓨터 일러스트레이션은 경이적인 시각효과를 구성하여 광고효과를 증대시켰으나 인쇄매체를 위한 표현은 사진합성의 차원에서 머물렀다.
1996년 현재 한국의 일러스트레이션은 출판을 에디토리얼 일러스트레이션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했으나 광고를 위한 일러스트레이션은 만화 캐릭터의 활용이 간간히 이루어질 뿐 사진을 중심으로 한 표현의 부수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차원에서 역할이 축소되고 있다.
컴퓨터 기기를 활용한 사진의 재구성 작업에 디자이너의 관심이 치우치고 있어 사진과 일러스트레이션의 합성이미지 개발 작업만이 보편화되고 있다.
손으로 그리는 일러스트레이션은 표현의 난이도가 높고 사실적 드로잉 능력이 적기 때문에 신세대들은 자연히 첨단기기의 이미지 합성능력에 의존한 사진의 재생작업에 열중하고 있어 일필휘지(一筆揮之)적게 묵화나 만화캐릭터의 활용이 증가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