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 12. 14 어머님의 83생애의 이승을 떠나신 날이다.
어머님이 1년동안 병석에 누워 계셨기에 우리 9남매는 미리 장례 준비의 원칙을 세워둔 상태였다. 14일 오전 어머님이 위급하다는 전화를 받고 서울, 광주 6남매와 시골에 계신 따님 셋이 각자 챙겨둔 가방 하나씩을 들고 전라남도 보성읍으로 황급히 모여들었다. 자식들이 다 모인 것과 때를 같이하여 어머님은 운명하신 것이다.
어머님은 꼭 1년전에 대장암을 선고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장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두었던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다 한번은 세상을 뜨게 마련이다. 가시는 분을 위한 최대한의 예의를 갖춰 경건한 장례를 치르게 된 것이다. 특히 상례일 때 미리 계획을 세워둔 것은 아주 현명한 일이었다.
우리 형제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미리 세워두고 구체적인 실천사항까지 마련해 9남매가 서명하여 보관하고 있었다(부록 참고). 가족이 다 모이자. 우리는 어머님의 주검(屍身)앞에 끓어오르는 슬픔을 참을 수 없어 소리를 죽이며 울음을 삼켰다. 어머님의 그 고난의 인생, 흙부침만으로 자식들 9남매를 훌륭하게 기른 그 장하고 위대한 생애를 생각하면서 한줌의 행복도 안겨드리지 못한 자식들의 안타까움을 쏟아낸 눈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까지나 슬품에 잠겨 있을 수 만은 없었다. 간소하고 간략하게 상을 치르고 객지에 있는 자식들의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도록 하는 것이 어머님의 살아생전 유음(遺音)이었다. 우리는 어머님의 뜻에 따라 검소하고 경건한 상례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먼저 첫째 자녀(長女)의 안내 기도로 간단한 가족 예배를 보았다. 천국이 있다면 어머님은 틀림없이 그곳에 가실것이라 우리 모두는 믿었다. 어머님의 생애는 우리 민족의 아픔과 동일하다. 목숨은 유한하나 유훈(遺訓)은 영원한 것이다.
예배가 끝나고 나의 사회로 가족회의가 시작되었다. 회의 주제는 '경건하고 검소한 어머님의 가시는 장례 절차'에 대한 것이었다. 망자이신 우리 어머님은 전형적인 조선(순한국) 엄니(어머니) 이다. 그 혼이 우리 9남매까지 이어오기 때문에 주제에 벗어난 문제를 제기한 가족은 없었다. 미리 계획 세웠던 장례 절차를 하나하나 낭독하면서 조금 더 개선해야 할 점만을 애기해 나갔다. 장례 절차의 큰 틀은 '조의는 경건히 방법은 검소하게 하여 모범을 보이자'는 것이었다. 장례는 3일장, 가족장으로 하고 어머님의 유언에 따라 당신이 다닌 교회 목사님의 주관에 따르며 고향 선산에 모시기로 했다. 음식상을 대신하여 차(茶)와 떡, 간단한 음료로 하며 부의(賻儀)는 방명록에 서명과 '전하는 말씀' 기록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그리고 장례에 따른 각자 역할 분담까지 정했다. 회의가 한 시간여 만에 끝났다.
다음 제일 먼저 할 일은 수시(收屍)었다. 수시란 망자의 주검을 깨끗이 안치하는 예절이다. 가족중 큰아들과 큰딸이 주관하여 어머님의 몸을 닦아드린 다음, 깨끗한 솜과 헝겊으로 코와 귀를 막은 다음, 얇고 깨끗한 요위에 뉘이고 크고 넓은 방에 모시고 병풍으로 가리며 향불과 촛불 2개를 켜두었다. 그리고 각자 맡은 일을 하도록 했다. 먼저 장례에 필요한 물품 구입이었다. 장례를 검소하고 경건하게 치르도록 했던 규정대로 다음과 같은 물품을 구입했다.
국화 30송이, 방울토마토, 귤, 사과 각 3상자, 떡 2말, 생강차, 보성녹차, 보온물통, 조의등 2개, 옥외전등 2개 설치, 방명록2개, 필림 2통, 면장갑, 양초 1통, 향 2갑, 음료 3상자 (컵, 접시는 마을에서 빌림)이런 물품들을 장의사에게 맡기지 않고 외손자 2명이 직접 읍내에 가서 짧은 시간만에 구입해 올 수 있었고 들어간 금액에 몇 십만원에 불과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실질(實質)과 경건(敬虔)이었다. 또한 문상객들의 이해를 어떻게 구할까하는 것이었다. 일반 상례와 다른 음식접대와 부의금 접수 등은 생략하기로 한 것을 문상객들에게 안내할 때 자세하고 겸손히 알려주기로 했다. 우리는 미리 준비한 집에 있는 검정색 양복과 검은 넥타이(男)와 검정색 치마, 저고리(女)와 상장(喪章)을 팔과 머리에 꽃고 예의를 갖췄다. 그리고 조카와 손자들, 친척들에게는 팔에 상장(喪章)을 모두 두르도록 했다. 그 상장도 교회에서 모두 빌린 것이었다. 그리고 할머님께 드리는 글(유족측)과 조사(교회측)를 작성해 두었다. 그리고 부고는 가까운 친척과 자녀들에 몸담고 있는 직장에 한해 알렸다.(한국통신공사에서 상가에 무료전화를 가설해 주기 때문에 참으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었음을 밝혀준다) 그리고 문상객들을 맞이하는데 한치의 결례가 없도록 다시 한번 점검한 뒤 9남매의 자녀 모두와 손자 손녀까지 부모님을 모신방에서 밤새워 어머님과 함께 했다.(이 시간이 참으로 중요하다. 끈끈한 가족애와 망자와 유족과의 대화의 교감이 이루어 진 시간이었다)
둘째날의 날이 밝았다. 아침상 어머님께 드리고 온가족이 어머님께 조의 표시했다. 그리고 오전 10시 입관예배를 드린다음 입관절차에 들어갔다. 어머님 몸을 깨끗이 닦아 드리고 준비한 수의를 입힌 다음 입관했다. 준비한 관에 망자를 누이고 흔들리지 않도록 빈공간에 깨끗한 화장지나 마포로 틈을 메운 다음 관을 덮었다. 그리고 가족 모두가 꽃 한송이씩 바친 다음 곧바로 조문객을 맞았다. 준비되어 있는 화환을 자녀대표와 사위대표로 한해서 2개 놓았고, 첫째날 이미 읍내 3곳의 모든 꽃집에 다른 일체의 화환거절 의사를 전달하였다.
조문객은 대문에서 안내를 맡아 방명록에(마당입구) 서명과 '전하는 말씀'을 기록한 다음 준비되어 있는 국화꽃 한송이를 들고 분향을 마친다. 다음 상주와 인사를 하고 다과상으로 안내를 했다. 안내는 외손자들이 맡았다. 먼거리에서 온 문상객들을 위해 교통 안내, 시간표, 이곳의 안내 지도, 고인의 약력 및 자녀 조사문 등 참고 자료가 든 봉투를 하나씩 드리도록 했다.
친절한 안내와 경건하고 소박한 상레에 대한 이해를 문상객들은 금방 인식하는 것이었다. 겨울밤이었으나 마당의 화토불과 방안의 난방으로 견딜만한 추위였다. 가족들은 교대로 빌려놓은 마을집 방 한칸에서 두어 시간씩 잠을 자 내일을 대비하도록 했으나 잠을 잔 가족은 어린아이들 외엔 아무도 없었다.
셋째날(영결식)이 돌아왔다. 오전 11시 마당에서 영결 예배를 드렸다. 순서는 영결예배, 조사, 할머니께 드리는 글, 가족들의 분향 인사였다. 주관은 교회 목사님이 하셨다. 가족 친지, 그리고 마을 주민, 교인들이 모인 가운데 1시간 동안 경건하고 숭고하게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운구가 시작된 것이다.
교회차에 운구를 모시고(운구차) 그 앞에 영전(사진)을 모신차가 선도하고 몇대의 승용차로 4KM 떨어진 선산으로 출발했다. 80평생을 손발이 닳도록 다니신 논밭두렁, 고샅, 그리고 올망졸망한 지붕들, 마을을 한바퀴 천천히 돌아서 선산으로 향했다. 미리 준비 해둔 묘지에 인부 몇이 땅을 파 묘지 준비하고 있었서 간단한 하관 예배를 드린 다음에 하관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자녀 한명씩 흙을 던지며 마지막 어머님을 보내드릴 때 가족과 친지, 그리고 지켜보는 나무들, 산, 바람, 햇빛까지도 슬픔을 참고 있었다. 묘지 조성이 다 끝날때는 오후 3시. 바람도 잠을 자는 따뜻한 햇빛이 내리쬐는 겨울이었다. 날씨가 큰 부조를 해 주었던 것은 어미님의 덕이었다고 모두들 한마디씩 했다. 묘지 조성을 모두 마치고 자녀일동은 어머님께 인사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7시 저녁식사를 마치고 가족회의가 있었다.(반성 및 가족 화합의 시간). 고생하셨던 분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인사를 했고 가족의 화목과 소중함을 일깨우는 축제의 장으로 승화시킬 것을 다짐했다. 그리고 어머님의 유언을 듣고 자녀들도 한 마디씩 녹음해 두었다. 그리고 저녁 예배를 드린 다음 저녁 11시 오랜만에 취침으로 들어갔다. 넷째날. 우리는 미리 약속한 대로 삼우제를 생략하고 장례 다음날 간단한 제(祭)를 지냈다. 오전 10시 전가족이 어머님의 묘소를 방문해 참배를 드렸다. 문상객들에게 대한 감사의 전화를 드리기로 하고 낮 12시 이른 점심을 먹은 서울 가족들은 상경하고 시골서 사는 가족들은 뒷정리를 했다. 우리 가족들은 모두다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부끄럼없이 살아온 것은 부모님의 교훈과 의지였기 때문이었다. 어머님의 상례를 치르면서 흩어진 마음을 추스리고 가족간의 애정을 더욱 공고히 했던 것이다. 우리는 사회의 지도층이라는 자부심으로 경건함과 검소함으로 모범을 보였던 것이다.
■ 부록: 경건과 검소함을 위한 장례 계획서
※ 어머님의 장례절차 -경건하고 검소한 의식을 치루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침을 세워둔다.
(이것은 어머님의 뜻임)
- 장례는 3일장 가족장으로 하며 어머님의 유언에 따라 어머님이 다니신 교회 목사님의 주관에 따른다.
- 일체의 賻儀나 화한등은 방명록으로 대신한다.
- 장지는 미리 마련한 고향 선산 아버님과 합봉한 묘지로 한다.
- 賻告는 가까운 친척과 몸담는 직장에 한해 알리며 일체의 장례 노동력은 자손들이 직접 집행한다.
- 장례 의복은 남녀 모두 집에 있는 검정색 옷을 준비하고 喪章을 팔에 낀 것으로 통일한다.
- 할머니의 자손(친외손까지) 전원이 장례식에 참가하여 할머니의 가신 길을 보도록 한다.
- 조문객엔 간단한 茶菓를 드린 후 정중한 예의를 표시한다.
- 운구는 교회차로 하며, 고인의 명복은 국화꽃 한송이를 바치며 문상객이 편리한대로 절이나 기도로 한다.
- 삼우제를 생략하고 장례 다음날 간단한 제를 지낸다.
- 어머님 기일은 양력으로하고 1주년 때부터 첫째 자녀댁에서부터 돌아가며 간단한 추모행사를 갖고 모든
자녀들이 참석을 원칙으로 하여 가족의 소중함과 화합을 도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