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고선
제20회 산행일지 : 경남 마산 무학산
일시 : 2004년 4월 24(토)
날씨 : 맑음
2002년 9월 7일 등고선이 처음으로 산행한이후 어느듯 이번이 20번째가 되었다.
그동안 여러일들이 있었으나 무슨일이 있어도 산행은 계속되어야한다는 철칙아래 지금까지 한번도 빼먹지 않고 꾸준히 한달에 한번 산행하다보니 우리의 발자취에 오늘 또 한줄을 더 올리게 되어 마음 한편으로는 뿌듯해옴을 느낀다. 앞으로도 살아있는날까지 산행은 계속되어지기를 기도해본다면 너무 거창한 표현일까?
이번 4월 제20회 정기산행은 노산 이은상의 내고향 남쪽바다 푸른물의 가고파의 고장 마산 무학산을 택했다.
그동안 오늘 내일 하며 미루던 금도현 회원의 다리 수술이 있었는지라 수술후 너무 무리한 산행으로 소탐대실을 하여서는 아니되겠기에 가볍게 봄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산행지를 고르다 진달래 산행지로 알려진 마산 무학산을 택하고 우리의 첫 번째 산행을 하면서 보니 의외로 산이 아기자기하며 여러 가지 이야기거리가 많아 재미있는 산행이 될 것같은 예감으로 마음은 벌써 무학산에 가있다.
드디어 산행당일... 대구에서 마산까지 그리 먼 거리가 아니기에 아침 9시에 화원톨게이트에서 만나기로하여 오늘은 좀 여유가 있다싶어 늦잠을 잤는지 아침 7시가 조금 넘어 아내가 일어나라고 깨운다.
이번주 월요일 저녁 큰딸이 맹장염 수술을하고 어제 퇴원을 했는지라 병간호와 집안일로 지쳐있는 아내와 큰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늦을까봐 잠까지 깨워주니 더욱 미안해진다.
갔다와서 잘 해주리라 다짐하며 오늘도 모른척 챙겨주는 아침밥까지 한그릇 비우고 집을 나선다. 아침공기가 꽤 상쾌하니 오늘 날씨가 좋을 것 같다.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성서IC에서부터 조금 밀렸으나 9시 정시에 도착하니 곧바로 김이돌 회원과 금도현 회원이 바로 도착한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우리의 흑기사에 몸을 싣고 달릴 때 어저께 새로 구입한 GPS를 자랑삼아 시험도 할겸 내어놓고 달려보니 무인카메라가 있는곳에서는 여지없이 경고음성이 들려온다.
운전을 하는 금도현 회원은 처음 보는 것인지라 적응이 안된다면 경고음이 들릴 때마다 깜짝깜짝놀라며 속도를 필요이상으로 줄이면서 연신 감탄을한다. 세상 참 좋다며.. 아닌게 아니라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 첨단세상에 살고 있음을 어렵잖게 실감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우리는 소홀해지기 쉬운 자연을 느끼고 자연에게 배우고 자연과 함께하는 우리 등고선은 참으로 소중한 모임인 것같다.
무인카메라앞에 경고음을 듣다보니 어느듯 마산에 도착했다.
내가 마산에는 경유지로 지나간적은 많으나 마산에 직접 가본적은 없다고 하니 김이돌 회원은 100번도 넘게 와보셨다며 여기저기 길을 설명해주시지만 정작 우리의 목적지 무학산 가는 길은 모르신단다.
예전에 산에 관심이 없을 때 다녔음인연유일게다. 길을 조금 헤메다 금도현회원의 특기가 또 발휘한다. 택시 옆에 세우고 무학산 서원곡 가는길을 물으니 기사가 잠시 생각하더니 그냥 따라오란다. 친절한 마산의 택시기사님...
5분정도를 따라가니 바로앞에 무학산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그제서야 김이돌회원이 아~하~! 여기구나 하시며 감 잡으신 모양이다.서원곡 입구에 차를 주차하고 산행시작하니 10시 15분 아스팔트길을 5분여쯤 오르니 원각사 입구가 나오고 조금위에 약수터 물을 길러러 왔는지 좁은길에 차들이 무질서하게 주차를 하고 있어 올라가는 차들과 내려오는 차들이 서로 비키지 못해 도로는 한 바탕 차들로 엉키어있다. 무학산은 마산시내에 있는지라 접근하기가 용이해 산행 초입로에는 무분별한 식당들과 차들로 붐비어 산행지라기보다 행락장소처럼 보인다.
마산시민에게는 대구의 앞산존재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같다.
계곡은 산의 높이나 규모치고는 수량도 풍부하고 멋진 것 같은데 계곡을 끼고 여기저기 식당들로 무질서하게 혼란스럽다. 심지어 산에 웬 체육관(?)까지 간판을 걸어놓고 운영하고 있는 것 같다.
한 20여분을 오르니 이제 식당들도 사라지고 드디어 산행다운 등산로길이 이어진다. 길이 여러갈래다.
어느 길이든 가다보면 다 한길로 만나게 되어있다. 제법 가파른길을 오른다. 왼쪽에 소나무 군락이 있어 송화가루가 노랗게 날린다.
2주전부터 봄 꽃가루 알레지로 안과 이비인후과 병원신세를 지고 있는 나로서는 별로 반갑지가 않다.
10시55분 정상1.1Km 앞둔 선명한 팻말과 시원찮고 오래된 무학폭포 갈림길팻말이 있다.
오늘은 여유도있고해서 무학폭포 팻말을 보지 못하고 앞서가는 두분을 불러세워 무학폭포에 들렀다 가자고 하여 갈림길 좌측으로 200m쯤 가니 큰 슬라브 바위와 폭포가 멋들어지게 우리를 반기고 있다. 가히 절경이다.
두분은 이 폭포를 못보고 갔으면 어떻할뻔 했냐며 오늘 산행은 이 폭포만으로도 제값을 다했다고 연신 감탄사 연발이다. 금도현회원은 사진기를 꺼내들고 촬영하느라 분주하다. 나도 기념촬영 한컷..
무학산 정상을 갈려면 무학폭포에서 왔던 갈림길로 다시 돌아가야한다.
우리는 폭포옆 큰 바위 슬라브 옆으로 올라가닌 등산로가 다시 만난다. 가파른길을 20여분 오르고 잠시 휴식. 여유있게 쉬엄쉬엄 올라서 그런지 산행한지 한시간이 지났는데도 두분다 쉬자는 말이 없어 내가 먼저 조금 쉬자고 하였다. 오이하나를 깨물며 올라온 길을 뒤돌아보니 조망이 압권이다.
앞으로 무학산의 학의 머리부분인 학봉이 보인다. 무학산은 학이 날개를 펼치고 춤을 추듯 비상한다고하여 무학산이라 이름한다하니 과연 산행 입구에서 보았던 산행안내 표지판의 무학산은 정말 학이 춤을 추듯 나는 모양을 닮았다.
예전에 일제시대때 모든 이름난 산이 다 그랬듯이 이곳 무학산에도 한민족 정기를 끊는답시고 왜놈들이 학봉에다 쇠말뚝을 박았는데 수년전 뜻있는 분들이 모여 쇠말뚝을 제거했다고한다.
학봉은 학의 목줄기 정수리 부분이다. 이깟 한낱 쇠말뚝으로 이나라의 정기가 없어진다더냐? 왜넘덜아!!!
10여분 휴식을 취하고 다시 15분쯤 오르니 넓은 공터가 나온다.
서마지기. 서마지기 만큼 넓어서 그런가보다. 이곳에서 한참을 쉬었다.
김이돌 회원님이 가져오신 구운계란과 오이도 먹고. 너무 여유로운 산행이다.
이곳에서 보는 산새가 정말 학이 춤을추며 나는 형태로 한눈에 들어온다.
저 밑으로 마산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바다도 보이고 정말 무학산에 둘러안긴 마산시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한폭의 그림이다.
호수와 같은 고요한 바다 그 가운데 떠있는 돝섬 유원지 너무나 여유롭고 한적한 수채화와 같다.
지금부터는 마산시내와 바다를 바라보며 능선으로 이어지는 산행이다.
마산시민들은 시내 가까이에 이런 명산을 두고 쉽게 접근할 수 있어 복 받은 시민인 것 같다.
실제로 마산시민들은 무학산에대한 자랑과 자부심이 대단하다고들 한다. 정말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산인 것 같다. 알고보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름다운 명산들이 우리 국토에는 정말 많은 것 같다.
우리모두 아름다운 우리 산하를 아끼고 보호하고 보존하여 우리 후손들에게 잘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이 다시한번 든다.
한참을 휴식한 후 서마지기에서 나무계단길로 5분정도를 올라 무학산 정상(763m)에 도착 12시15분이다.
쉬엄쉬엄 올라 2시간이 걸렸다.
정상에는 산불감시용 첨탑이 우뚝 솟아있고 정상 표지석에 태극기가 높이 휘날리고 있다. 정상에 태극기를 달아놓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무학산은 큰 나무가 없다. 대부분 나즈막한 진달래나 잡목들이 사람들을 주눅들 게 하지 않고 평안한 분위기를 제공한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면 마산에서 물맛이 제일 좋다는 안개 약수터가 있다.
무학산의 또하나의 자랑은 산이 그렇게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약수터가 많다는 것. 지금까지 오르면서 식수가 필요할 만한곳에는 어김없이 약수터가 있었다.
별도로 식수를 준비하지 않아도 될정도로 약수터가 많이 있다. 그중에서도 제일 높은곳에 있는 이 안개약수물이 제일 물맛이 좋았다.
특이한 것은 안개약수터 위 주변으로 밧줄을 쳐서 물이 오염되지 않도록 출입을 통제하여 수질을 보호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마산시민들이 이 약수터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엿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아침에 미쳐 물통을 준비하지 못해 올라오며 포장마차 음식점에서 1.2리터 막걸리 병을 하나 얻어 식수로 담아 적당한 자리에서 우리의 만찬을 펼쳤다.
무학산은 울창한 나무가 없었기에 점심먹을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해 인적이 드문 산행로 중 하나에 조망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오늘은 겁없이 지금껏 먹었던 최고의 장소에서 마산시내와 돝섬유원지를 바라보며 맛나게 먹었다.
점심을 먹고 회장님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회장님의 딸 세정이가 전화를 받으며 "아빠~"라고한다. 회장님이 아직 퇴근을 안하셨나? 아빠 안계시니? 하고 물으니 아빠인줄알고 장난하지 말라고 한다. 내목소리가 회장님 목소리랑 비슷한가? 형수님이 받으셔서 회장님은 미국 네바다주에 출장을 가셔서 다음주 월요일에나 오신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주 내내 홈에 소식이 없었던가 보다.
누구보다 우리의 산행에대해 궁금해 하실텐데.. 많이 바쁘신가? 하고 의아해 했었는데...형수님이 지난달 회장님과 통화할 때와 같이 준비 열심히 하고 있지요? 라고 또 의미있는 말을 한다.
회장님과 통화하지 못해 다들 아쉬워하며 다음을 기약한다. 점심을 먹고 쉬엄쉬엄 능선길을 조금가니 대곡산 을거쳐 만날고개에 도착하니 2시25분.
매년 8월 한가위 명절을 지내고 다음다음 날이면 이 만남고개에는 마산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만남고개 일대에는 사람들로 꽉 들어찬다. 여기저기에 부둥켜 안고 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서로 반가워서 어쩔줄을 몰라 하는 이들도 있다. 그동안 멀리 떨어져 있었고 친척 벗들을 서로 약속하고 더러는 기약없이 이 만남고개에서 만나기 때문인 것이다. 이 만남고개가 이처럼 그동안 소원했던 친척 벗들을 만나는 명소가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애틋한 사연이 있다.
고려 말쯤 고개 아래에 두 딸과 막내아들을 둔 가난한 양반의 이씨 가문이 있었다. 홀로 된 여자의 몸으로 세남매를 거느리고 어렵게 살아가던 이씨 가문의 부인은 너무도 가난했다. 그탓으로 반신불수에 벙어리이며 남자구실도 못해서 서른이 넘도록 장가를 가지 못하고 있었던 감천의 천석부자 윤진사댁 아들에게 맏딸을 얼마의 재물을 받고 팔다시피 시집을 보냈다. 윤진사댁 며느리가 된 맏딸은 어느 해 친정 어머니가 병이 들어 고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시부모의 허락이 없어 친정에 가지도 못하고 눈물로 나날을 지새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해 팔월 열이렛날 윤진사댁 아들 며느리 부부는 서로 짜고 이웃에 함께 나들이 간다는 핑계로 집을 나와 이 만남고개로 왔다. 남편을 고개에서 기다리게 하고 잠시 친정에 들른 맏딸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으나 친정 어머니의 독촉으로 다시 고개에 돌아와 보니 남편은 이미 머리를 돌에 찧어 피를 흘린 채 자살한 뒤였다. 병신 신세를 비관하고 자살을 하였으나 그 옆에는 "도망가 살아라"는 내용의 유서가 있었다. 그뒤 딸과 친정 어머니는 매년 팔월 열이렛날이면 친정과 시댁의 중간지점인 이 고개에서 만나 모녀의 정을 나누며 잘 살았다고 한다.
이 에틋한 사연의 전설을 바탕으로 요 근래에 이 만남의 고개는 팔월 열이렛날에 소원했던 친척 벗들이 만나는 장소가 되었고 그것은 점차 연례행사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만날고개 입구에는 만날고개 전설이 큰 표지판에 자세히 안내되고 있다.
이것으로 산행을 마치고 만날고개에서 마을로 내려와 육교를 건너 아침 산행 출발지로 갈려고 택시를 기다리니 순환도로라 그런지 택시가 좀처러 오지 않는다.
버스정류소에서 어떤아주머니께 물으니 버스를타고 가면 된다하여 버스를 타고 갔는데 주차를 해놓은 서원곡 입구와는 많이 떨어져 있었다. 조금만 가면 바로 그기라고 했는데 버스를 타고온 거리만큼이나 걸어야 했다.
덕분에 가는 도중에 노산 이은상시인의 가고파 시비를 볼 수 있었다. 한참을 걸어서 원점으로 돌아와 탁족을 하지 못하여 다시 계곡으로 들어가 탁족을 할려는데 아침에도 무분별한 주변 식당들 때문 눈쌀을 찌푸렸는데 이번에는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생활하수로인해 계곡하류에서는 물이 더러워 탁족을 할 수 없어 한참을 올라가서 탁족을하였다. 탁족후에 마산의 명물인 아구찜을 먹고 제20회 정기산행을 푸짐하고 여유로운 산행으로 마감하였다.
登 苦 善
가 고 파
내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 그 잔잔한 고향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릴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간들 잊으리요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한에 얼려 옛날같이 살고지고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내고저
그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
노산 이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