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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화가 콘스탄틴 코로빈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그림을 뒤적이다가 어린 소녀를 만났습니다.
어찌나 또랑또랑하게 생겼는지 한참을 드려다 보았습니다.
‘누구니? 너를 이렇게 생생하게 그려낸 사람이----‘
‘프레데릭 레이턴 (Frederick Leigton / 1830~1896) 남작인데요’
코로빈의 그림을 잠시 밀쳐두고 프레데릭 레인턴의 이야기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초상화 Portrait)
프레데릭 레이턴의 유년 시절은 다른 화가들에 비해 특이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러시아 황제들의 어의였습니다.
덕분에 집안은 부유했고 레이턴의 아버지 역시 의사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중년이 되면서 청력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레이턴의 어머니도 심각한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레이턴의 아버지는
아내의 요양을 위해 온 식구를 데리고, 유럽을 이동하면서 살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깁니다.
쉽지 않은 결정인데 ---
책임과 의무만 요구되는 요즘 한국의 많은 가장들에게는 꿈 같은 이야기입니다.
역사가 진보한다고 해서 모든 구성원이 다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요 ----.
화가의 신혼 The Painter’s Honeymoon / 1864
왼쪽에서 들어 온 빛이 부드럽게 여인의 머리와 등
그리고 꼭 서로 맞잡은 손 위로 내려 앉았습니다. 신혼의
아름다움이 살짝 기댄 머리에서도,
화판에 올려 놓은 손에서도 그리고 가지런한 가르마에서도 고요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남편이 화판에 그리고 있는 것이 무엇이길래 환하게 빛나는 여인의 얼굴은
꿈을 꾸는 듯 할까요?
눈에 잘 띄는 곳에 걸어 놓고 살다가 혹시 마음의 꽃밭이 헝클어질 때마다 바라보고 싶습니다.
(가장 좋은 시간 The Golden Hours / 1864)
가만히 보니 앞의 작품에서 화가로 등장했던 사내입니다.
이제는 피아노에 앉아 여인을 위해 연주를 하고 있습니다.
지그시 감은 눈을 보니 연주 곡은 사랑이 주제인 곡? 여인의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피아노 위에 손을 얹고 몸을 살짝 구부린 것으로 봐서는 별처럼 반짝이는 눈빛과
달콤한 웃음을 입가에 달고,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겠지요.
피아노를 확실하게 배워둘 걸 그랬습니다. 후회됩니다 ------.
레이턴이 나중에 국제적인 감각을 가지게 된 것은 여러 나라에서 생활했었기 때문입니다.
식구들은 영국을 출발해서 파리에 정착했습니다.
이어 독일 베를린에서도 살았고 마지막에는 이탈리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덕분에 레이턴은 3개국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었고 나중에
그는 최소한 5개국 이상의 말을 자유 자재로 구사했다고 하니까 언어에 대해서도 타고난 재주가 있었습니다.
영어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제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 음,
훌륭한 한국어가 모국어인데 감사해야죠 .
로마 여인 A Roman Lady / 1859)
젊었을 때 서양 여인을 보면 다 똑 같아 보였는데 요즘은 세상 물정을 좀 알았다고,
조금 구별을 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러시아와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 여인은 확실히 다릅니다.
생각해보니까 나이 먹으면서 별 것을 다 구별하게 되는군요.
눈썹은 아마 화장에 의한 것이겠지요?
얼마나 섬세한지 눈 화장을 어떻게 했는지도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지적으로 보이는 눈매와 입술이 진주 목걸이와 잘 어울리는 여인입니다.
레이턴이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주를 보였지만 아버지는 못마땅해 했습니다.
레이턴의 피렌체 예술 아카데미 입학도 마지 못해 허락한 일이었습니다.
파리와 베를린에서 잠깐씩 그림을 배운 레이턴의 재능은 피렌체에서
본격적으로 빛나기 시작합니다.
(치마부에의 작품 마돈나의 행진
Cimabue’s Celebrated Madonna is carried in procession through the street of
치마부에는 피렌체 출생의 대가였습니다. 그가 그린 마돈나 작품이 그의 집을 출발하여
장식대에 올려져서 피렌체 시내를 지나 교회로 향하고 있는 풍경입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여러 가지 자세와 표정으로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분위기는 아주 정적인 이 작품은 길이가 5m 20cm, 높이가 2m 22cm 나 되는
대작으로 제작 기간만 2년이 걸렸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살던 레이턴의 가족들은 영국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귀국했지만 레이턴은 이탈리아에서 혼자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는 혼자 로마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위의 작품이 그가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내 놓은 작품이었습니다.
수 많은 스케치와 꼼꼼한 계획 아래 준비된 이 작품은 전시되자 마자
빅토리아 여왕이 구매하면서 말 그대로 레이턴은 ‘자고 나니 위대해진’ 화가가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만 있을 뿐이라는 말에 또 번쩍 손을 들게 됩니다.
생각해보니까 화가들 이야기를 하면서 번쩍 손을 들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간절한 기도 Invocation)
크게 벌어진 눈을 보면 간절함의 끝에 이른 것 같습니다.
레이턴이 즐겨 그렸던 주제를 생각하면 이 여인은 신을 부르는 신녀 일수도 있습니다.
신녀이든 본인이든 신께서 그녀의 간구를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보면 볼수록 흰 옷 속의 여인이 안쓰럽거든요.
세상에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곧 이어 레이턴에게 시련이 왔습니다.
첫 작품이 워낙 대박이었던 것에 대해 주위의 질투가 있었습니다.
로마에서 발행되는 예술잡지들은 레이턴 작품들에 대한 혹평을 늘어 놓기 시작 했습니다.
그가 다시 명성을 회복할 때 까지는 몇 년이 걸렸다고 하니까 언론이 무섭기는 무섭습니다.
사촌 때문에 배가 아픈 것은 여기나 거기나 똑 같은 모양입니다.
(엄마와 아이 Mother and Child / 1865)
엄마의 품에 몸을 기댄 아이가 엄마 입에 과일을 넣어 주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곳이 엄마 품이 아닐까 싶은데, 이 작품에는 묘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엄마의 얼굴은 환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등을 돌리고 앉은 아이의 얼굴은 그림자에 덮여 있고
표정도 어둡습니다. 또 저만한 나이의 아이 표정과 동작 치고는 너무 조심스럽습니다.
‘ 척 보니까, 혼자 먹다가 애가 방금 전에 야단을 맞았네. 아마 엄마 먼저 드세요 해야 하는 걸
가르치는 것 같은데?’
아내가 그림 속 이야기를 찾는 기술이 나날이 늘고 있습니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그가 다정하고 감정적인 장면을 잘 표현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람들의 생각을
무너뜨린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세간의 평이야 어떻든 로마에서 레이턴은 좋은 친구들을 만납니다.
앞 서 소개했던 장 제롬, 윌리엄 부게로 그리고 조르즈 상드가 속해 있는 서클에 가입을 한 것이죠.
19세기 가장 뛰어난 영국 여류시인으로 평가되는 엘리자벳 배럿 브라우닝을 만난 것도 그 곳이었는데
두 사람은 평생 친구가 됩니다.
(어부와 사이렌 The Fisherman and Syren / 1858)
매우 에로틱한 장면이지만 사실은 무시 무시한 내용입니다.
낚시를 하던 어부가 그만 사이렌이라는 요정에게 걸리고 말았습니다.
사이렌은 상반신은 여인이고 하반신은 독수리의 몸인데 이 작품에서는 하반신이 이상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노래와 악기 연주의 달인인 사이렌은 지중해의 한 섬에서 살면서 노래와 연주에 취한
배가 암초에 부딪쳐 난파되면 물에 빠진 선원들을 잡아 먹는 요정 (괴물이 더 맞을지 모르겠습니다)입니다.
어부의 바구니가 쏟아 지면서 잡았던 물고기들이 탈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 어부의 표정은 도대체 뭔가요?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 하긴 어부도 남자인데.
19세기 영국 화가들이 좋아했던 주제 중의 하나는 남자를 파멸로 이끄는 치명적인 여인들,
소위 팜므 파탈 이었는데 이 작품도 그 범주에 들어 갑니다.
또 레이턴이 에로틱하게 묘사한 유일한 누드 작품이었습니다.
(말 없는 노래들 Songs without Words / 1861)
수돗가에서 물을 받다가 문득 서러운 생각이 떠 올랐습니다.
붉게 충혈 된 큰 눈에는 금새 눈물이 고일 것 같습니다.
몸을 놓아 버린 자리에 마음도 놓아 버렸습니다.
굳게 입을 다물고 떠 오르는 모든 것 들을 안으로 안으로 삼키고 있는데,
담 위에 까마귀의 뜻 모를 소리가 소녀를 더욱 흔들고 있습니다.
로마에서 8년 정도를 보낸 다음 레이턴은 29살, 1859년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런던에서 그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영국 로얄 아카데미의 회원이 됩니다.
사실 그 시대에 그만큼 유럽 전역의 화가들을 알고 있었던 영국 화가도 없었습니다.
(포이베 Phoebe)
포이베는 여인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이었던 티탄족 여인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자주 접할 수 있는 각도이지만 약간 밑에서 위쪽으로 올려다 보는 구성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것
이었습니다. 때문에 여인의 모습은 당당하게 보입니다.
특히 여인이 무엇인가에 집중하고 있는 듯한 눈매가
더해지면서 신화 속의 당당한 여인들을 연상케 하고 있습니다.
그림 속의 모델은 도로시 딘이라는 여인인데 엘리스 풀런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습니다.
잠깐 그 여인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푸쉬케의 목욕 The Bath of Psyche / 1890
푸쉬케와 큐피드에 대한 이야기는 부게로를 소개할 때 이미 나왔던 이야기라서 건너 뛰겠습니다.
푸쉬케는고전주의와 신고전주의 화가들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중의 한 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작품에서도 푸쉬케는 완벽한 팔등신 미인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제 주위의 여성들을 보다가 이런 작품 속의 여인들을 보면 작품 속의 여인들이 괴물 같습니다 ---.
자기 검열에 익숙해 있는 저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푸쉬케의 모델도 도로시 딘 입니다. 딘은 레이턴이 가장 좋아했던 모델이었습니다.
어린 여동생이 3명이나 되어서 생계를 위해 모델 일을 하게 된 착한 맏언니였습니다.
나중에 동생들도 모델이 되는데 쾌활한 4자매의 작은 집을 레이턴은 자주 찾았습니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던 레이턴은 아마 아버지 같은 감정으로 그들을 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딘이 연극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해서 레이턴이 힘을 썼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면 연극 쪽으로는
그다지 재능이 있었던 것은 아닌 모양인데, 엘리스는 연극 무대에서 사용했던 그녀의 이름입니다.
참 멋쟁이였습니다. 레이턴 선생님!
(클리티에 Clytie)
클리티에는 태양의 신 헬리오스를 사랑한 여인의 이름입니다.
클리티에는 언니 레우코트가 헬리우스와 좋은 사이를 유지하자 언니가 순결을 잃었다고 거짓 소문을 냅니다.
아버지가 이 이야기를 듣고 언니를 산채로 매장합니다.
언니를 제거한 클리티에는 헬리오스가 자신의 차지가 될 줄 알았지만 헬리오스는 매일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면서도 그녀에게 눈길 한 번 주지를 않습니다.
헬리오스만 쳐다보며 9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다가 결국 그녀의 몸은 땅으로 뿌리가 되어 숨고
얼굴은 꽃이 되어 늘 태양을 쫓습니다.
클리티에는 해바라기가 되었습니다.
사랑도 집착이 되면 비극이 됩니다.
온 세상에 잔광을 남기고 산을 넘어가는, 클리티에의 눈에 비친 헬리우스의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가운데 구름은 등뼈 구름이네’ 아내가 또 거들었습니다.
(독서대 At a Reading Desk / 1877)
처음 보는 모양의 독서대입니다. 평소에는 접어 놓으면 화장 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거울이 달려 있습니다.
편의성도 좋고 장식도 화려합니다. 독서 삼매에 빠진 아이의 굽은 등을 쓰다듬어 주고 싶습니다.
책이 세상의 올바름을 다 이야기 하지는 않지만, 어른이 되었을 때 어디가 북쪽인지를 알려주는
내 몸 안의 자석이 됩니다. 문득 자석이 몸 속에서 제대로 움직이고 있는지 속이 궁금해집니다.
48살이 되던 1878년 레이턴은 로얄 아카데미의 회장에 선출됩니다.
회장이 된 그는 행정가로서도 비범했는데 재정 부문에서도 전문가 수준이었습니다.
겁이 있었고 신경질적인 면이 있어서 그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를 친절하고
관대한 사람으로 평가했습니다.
평가가 이렇게 다양해야 사람 냄새가 납니다. 그 해 레이턴은 기사 작위를 수여 받는데,
화가로서 작위를 받은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유럽의 여러 나라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습니다.
레이턴의 전성시대가 열렸습니다.
(추억 Memories / 1883)
추억에 젖은 여인의 눈동자가 아련함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추억은 힘든 시간을 넘기게 하는 약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더 깊은 나락으로
빠지게 하는 덫이 되기도 합니다.
나이를 한 살씩 먹으면서 추억들도 하나 둘씩 지워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손을 털 때쯤이면 어떤 추억이 마지막으로 남을까요 ---- .
이왕이면 즐거운 추억이 마지막에 남아 저를 안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왕성한 활동을 하던 중 60대에 접어들자 건강에 이상이 왔습니다.
술과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았던 레이턴이었습니다.
의사는 그에게 따뜻한 곳에서 요양을 하라고 권유했고 레이턴은 의사의 말대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나 그 기간 동안에도 연설과 자원봉사 그리고 조각 작업도 틈틈이 했는데 그는 평생 에너지가
많았던 사람입니다.
66세가 되던 1896년 1월 그는 남작 작위를 받습니다.
그러나 나빠진 건강은 회복되지 않았고 심한 고통이 그의 몸을 덮쳤습니다.
모르핀을 투여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남작 작위 증명서를 받은 다음 날
레이턴은 세상을 떠납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아카데미와 그 모든 멤버를 사랑한다’ -----.
(타는 듯한 6월 Flaming June / 1895)
June 이라는 단어가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어서 이 작품은 재미있습니다.
우선 6월입니다. 여름을 앞 둔 6월은 눈부신 달 입니다.
세상을 태울 것 같은 더위를 살짝 보여주기도 합니다.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6월이 잠에서 깨어나면 7월이 되는 것이겠지요.
저 예쁜 모습으로 계속 잤으면 --- .
둘째는 여자 이름의 준 입니다. 그럼 간단합니다. 준 이라고 불리는 여인의 자는 모습입니다.
이런 경우라면 깨워서 이야기라도 해보고 싶습니다. 미인은 잠꾸러기가 아니어도 미인이거든요.
마지막은 로마 신화에 나오는 여신들의 대장 주노 입니다. 이런 경우는 -----,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놔두고 싶습니다. 주노 여신이 한 성질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잠자는 모습이 너무 평화롭습니다.
레이턴은 자신이 위대한 화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든 그렇지 않든 모든 면에서 아주 똑똑했다고 사람들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레이턴은 외모도 뛰어 났고 옷도 아주 잘 입었습니다.
또 노래 솜씨도 아주 뛰어 났지만, 그러나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그렇지 않으시겠지요.
그가 남긴 수 많은 그림 속의 인물들과 어울려 계시지 않을까요?
그렇죠, 레이턴 선생님?
음악 수업 Music Lesson / 18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