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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기록 막12:41~44(눅21:1-4)의 ‘자기의 <생활비 전부>를 바친 과부의 헌금이야기’는 요즘 시대를 사는 현대교회사람들에게 너무 친숙하고 익숙한 본문들중 하나입니다.
동시에 현대를 사는 우리 개신교회성도들과 성경교사들 그리고 목회자분들까지도 가장 많이 오해하고 있는 본문이기도 합니다.
더 나은 이해를 돕기 위해서,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헤롯왕(에서가문출신)을 통해서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적으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성전건축비충당의 목적달성>을 위해서
가난한 과부의 '최저 생계비'(한끼 식사비도 안되는 금액)이며, 생존비인 두렙돈(일고드란트)를 비자발적으로 낼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까지 몰고 갔던 '부패했던 당시 종교지도자의 악랄하고 잘못된 행위들'을 예수님이 직접 고발하고 있는 장면이라는 사실을 잘 분별하여 먼저 아셔야 합니다.
참고로, 잘 기억하세요.
오늘의 본문인 막12장38-44절은 <'성전안'에서 일어난 일>이며
<등장하는 중심인물이 '과부'가 아니라 당시 종교지도자들 곧 서기관들>을 그 배경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먼저 전후문맥(context)을 보십시다.
가) 서기관을 조심하라(막12:38-40)라는 말로 당시의 다수 종교지도자들의 '부패한 외식'과 '정치적인 상황에 대한 경고'를 한 후에,
나) 바로 뒤 이어서 (강탈당하는,40절) 과부의 헌금(막12:41-44)을 사례로 소개합니다.
다) 그런 다음에 바로 이어지는 막13장1-2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종교지도자들로 인해 부패한) 성전의 (처절한) 멸망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제 먼저 성경기록을 막12:38~40; 41-44절(눅21:1-4)을 저와 함께 여러번 정독해서 읽어 보시겠습니다.
'And he said unto them in his doctrine, Beware of the scribes, which love to go in long clothing, and [love] salutations in the marketplaces,' (막12장38절)
('또 그분께서 자신의 교리로 그들에게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인사 받는 것과')
'And the chief seats in the synagogues, and the uppermost rooms at feasts:' (막12장39절)
('회당의 으뜸가는 자리와 잔치의 맨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조심하라.')
' Which devour widows' houses, and for a pretence make long prayers: these shall receive greater damnation. ' (막12장40절)
('그들이 과부들의 집을 삼키고 겉치레로 길게 기도하니 더 큰 정죄를 받으리라, 하시니라.')
'And Jesus sat over against the treasury, and beheld how the people cast money into the treasury: and many that were rich cast in much.'(막12장41절)
('예수님께서 성전 보고의 맞은편에 앉으사 사람들이 어떻게 보고에 돈을 넣는지 보시는데 여러 부유한 자들은 많이 넣고')
* 참고로, kjv성경('treasury'), 한글흠정역성경('성전보고'), NIV성경('offerings'), 한글개역('연보궤'), 개역개정성경('헌금함')으로 각각 번역을 달리 하고 있습니다.
'And there came a certain poor widow, and she threw in two mites, which make a farthing.'(막12장42절)
('어떤 가난한 과부는 와서 이 렙돈 곧 일 고드란트를 넣으니라.')
*참고로, 2렙돈은 1고드란트이고, 4고드란트는 1앗사리온이고, 16앗사리온은 1데나리온(=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여기 나오는 렙돈(mite)은 그리스화폐단위이고, 고드란트(farthing)는 로마화폐단위입니다.
'And he called [unto him] his disciples, and saith unto them, Verily I say unto you, That this poor widow hath cast more in, than all they which have cast into the treasury:'(막12장43절)
('그분께서 자기 제자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보고에 넣은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도다.')
* 이 43절은 경제적으로 약자인 '가난한 과부'가 넣는 <상대적인 부담>은 부유한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매우 크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 게다가 과부가 넣은 것은 '생활비 전부'였습니다. 이는 결코 칭찬한 것이 아닙니다.
* 평소 하나님은 가난한 성도인 과부의 형편을 무시하고 억지로 '생활비 전부'를 받으시거나 강요하시는 분은 더 더욱 아니십니다.(고후9:7)
'For all [they] did cast in of their abundance; but she of her want did cast in all that she had, [even] all her living.'(막12장44절)
('그들은 다 풍족한 가운데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 즉 자기의 생활비 생계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이는 또한 많은 교회들과 사람들이 성전 건축이나 기타 헌금등이 필요한 상황에서 의외로 많이 곧잘 인용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번 본문은 당시 성전건축의 재원모금을 위해서 (다양한 모양의) 성전보고가 사용되었던 것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성전건축을 위한 모금이 누구를 대상으로 어떻게 이뤄졌고, 이를 예수님이 어찌 보셨나?도 함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난한 과부가 '자신의 생활비 전부인 두 렙돈의 동전'을 넣은 이야기는 본 받을 만한 참 좋은 헌금(=헌물)생활의 좋은 모범사례??로 누구나 그렇게 이해하여 왔습니다.
최소한 지금까지 그랬습니다.
마치 가뭄과 기근의 때에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섬김으로 하나님으로부터 '가루 통이 마르지 아니하고 기름병이 마르지 아니하니라'라는 축복을 직접 받아 누린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인 왕상17장8-16절'의 경우와 '같은 긍정적인 가르침을 주는 본문'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살펴볼 본문에 등장하는 '가난한 과부'는 '시돈사람 사르밧 과부'처럼 하나님의 사람을 섬기는 대목도 아니고 이로 인해서 엘리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된 좋은 메세지를 전하는 사례도 전혀 아닙니다.
(부유한 사람이였던) '사르밧과부'의 경우와는 달리
이 본문에서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가 한 헌금한 것과 관련하여 복을 주시는 그 어떤 일체의 내용을 단 하나라도 성경독자들에게 제시하거나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대신에 예수님은 바로 이어지는 막13장1-2절을 통해서 '성전의 처절한 멸망만을 예고'하셨습니다.
*참고로, 사르밧과부를 생각없이 '가난한 과부'로 묘사는 것은 성경적 사실(fact)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왜냐하면, 엘리야를 환대한 사르밧과부는 그녀의 집에 다락방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녀가 가난한 계급의 사람이 아니라 극심한 가뭄때문에 일시적으로 궁핍했을 뿐이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왕상17:8-20)
*당시 성서시대의 생활풍속으로 미루어 볼 때, '다락방이 있다는 것은 부유한 사람'임을 나타냅니다.
사르밧 과부이야기는 지면상 따로 소개할 수 없으니 따로 살펴 보시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더 더욱 누구나 다 잘 아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성경을 잘 모르던 소시적 오늘의 '가난한 과부의 이야기'를 마냥 아무 생각없이 그렇게만 좋은 미담(美談)정도로만 많은 목회자들과 선후배들에게 배워서 이해해 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많은 성도들이 아마도 참 좋은 미담이다 싶어서,
다른 생각이나 정확한 성경적인 관점을 미처 가져 볼 겨를도 없이 쉽게 우리 교회공동체안에서 오랜 세월동안 그냥 단 한번의 재고나 비판도 없이 받아들여져 온 것 역시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가)본문의 전문맥(막12:38-40)과 후문맥(막13:1)으로 이뤄진 전후관계와
나)당시 상황(성전건축의 재원마련의 필요성과 부패한 종교지도자들 특히 본문에 등장하는 서기관들의 '정죄받은 행위들')을 다시 잘 살펴 볼 때,
'그런 긍정적인 가르침의 대상이 되는 모범적인 헌금'의 의미가 결코 아니였다는 것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맘을 열고 살펴보면 분명하게 그리고 쉽게 깨달아 알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본문의 전문맥이라는 것은 막12장40절과 눅20장47절에 분명하게 보여주는 '과부의 집을 삼키고'입니다.
종교지도자인 서기관들이 저지른 가) '약자들에 대한 착취' 배경(막12:40a)과 나) '종교지도자들의 <겉치레하려고 길게 하는 기도>(막12:40b)나 <과시하려고 길게 하는 기도>(눅20:47b)의 상황에서
'크게 정죄를 받으리라'(=성전의 멸망, 막13:1-2)는 전체메세지를 전하는 분명한 부정적인 문맥임을 누구나 보면 쉽게 아실 수가 있습니다.
'그들이 과부들의 집을 삼키고 겉치레로 길게 기도하니 더 큰 정죄를 받으리라, 하시니라.'(막12장40절)
('Which devour widows' houses, and for a pretence make long prayers: these shall receive greater damnation.')
'그들이 과부들의 집을 삼키고 과시하려고 길게 기도하니 바로 그들이 더 큰 정죄를 받으리라, 하시니라.'(눅20장47절)
('Which devour widows' houses, and for a shew make long prayers: the same shall receive greater damnation.')
이제 이런 전(前)문맥적 배경가운데서 먼저 확실히 더 보셔야 할 부분은 가난한 과부가 드린 것이 얼마되지는 않지만 가난한 과부의 입장과 형편에서는 '자기의 생활비 생계비 전부'였다는 점입니다.
'생활비 전부'는 영어로는 all that she had, even 'all her living'(더 정확히는 '생계비의 전부, 생계자금의 전부')입니다.
이는 용돈('pocket money')도 아니고 '별도의 여유 돈'(=spare money)도 아닙니다.
이 구절은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의 위선적인 태도를 지적하면서 동시에 이 가난한 과부에게 까지 과도한 헌물?착취를 일삼는 "시대적 상황을 예수님께서 엄히 꾸짖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10:1-2절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불의한 법령을 포고하고 자기들이 제정한 무거운 법을 기록하며'(1절)
'궁핍한 자를 따돌려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하게 하고 내 백성의 가난한 자들로부터 권리를 빼앗아 과부들을 탈취물로 삼으며 아버지 없는 자들을 강탈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지어다!'(2절)
다시 말해, 예수님당시의 부패한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가난한 과부들이 당한 '자신들의 집도 빼았기고(막12장40절a)'라는 피해에 대한 하나의 나쁜 사례(事例)로써 오늘 본문에서 '생활비의 전부'까지를 빼앗아 버린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헌물-눅21:4a'이라는 '허울'을 이용하고 빙자하여 '벼룩의 간을 빼먹은 것'입니다.)
여기서 부패한 종교지도자들이란 오늘의 본문인 막12:38-44절과 마23:14절을 같이 살펴보시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당시의) 위선자들'을 모두 포함하는 말임을 아실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전보고에 넣는 하나님의 헌물(눅21:4a절)마저도 자신이 가진 '생활비 생계비 전부(=all her living)'로 남김없이(=자신의 기본생계비 대책하나 없이) 모두 털어서 강제로 착취당하는 가난한 과부의 불쌍한 장면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전체 문맥이 말하는 것이고 가장 매끄럽게 이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자기 수중에 생활비로 쓸 돈 하나도 없는데도 그 생활비 전부를 넣은 가난한 과부를 예수님이 칭찬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문맥으로 볼때, 우리말의 어감상 '생활비'보다는 '생계비'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생활비'이든 '생계비'이든, 누구보다 우리의 사정을 다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가 가진 것의 전부를 내 놓으라고 명령하거나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적극적으로 서기관들로 부터 보호혜택을 받아야 할 취약계층인 과부들이 오히려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예수님의 강한 분노'가 나타나고 있는 본문인 것입니다.
(참고로, 당시의 서기관들의 중요한 책무중에는 '과부들의 생활을 돌보고 관리하는 일'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시 현장에 계셨던 예수님의 분노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셨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가난한 이 과부의 생계비착취사건기록은 당시 율법의 근본정신들(약2:15-16; 출22:22; 신24:21; 약1:27; 마23:14)을 알고도 잘 이행하지 않던 당시 지도자들에 의한 가장 큰 피해자인 과부에 대한 기록이며,
당시 율법의 근본정신을 망각한 율법학자들이 율법(=당시의 종교성)을 운운하여 돈을 착취해 가는 것에 대한 <예수님의 분노>이였던 것입니다.
'이들은 다 풍족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헌물로 넣었거니와 그 과부는 빈궁한 가운데서 자기가 가진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눅21장4절)
('For all these have of their abundance cast in unto the offerings of God: but she of her penury hath cast in all the living that she had.')
막12장44절에서는 가난한 과부가 넣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전혀 말해 주고 있지 않지만, 여기 눅21:4a절에서는 '[하나님]의 헌물'(=the offering of God)인 것을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만, 어떤 번역본에서는 '하나님의 헌물'을 그냥 '헌물' 또는 '헌금'이라고만 표현하고 있네요.
참고로, 렙돈은 그리스의 통화이며, 고드란트는 로마의 통화입니다. (아래 별첨한 - 그림1 참조)
'2렙돈'은 '1고드란트'이고 '1고드란트'는 '1/64 데나리온'입니다.
1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마20:2) 이므로 현재의 일당 8만원정도라 치고 단순한 셈법으로 한화로 계산하면 약 1,250원 정도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이런 것들(=하나님의 헌물)마저도 자신들의 종교성을 이용해 율법을 들먹이며 성전에 들어와 성전보고에 모두가 빠짐없이 예물을 드리도록 하면서 (율법을 잘 모르는 연약한 가난한) 과부들로 하여금 헌물을 억지로 내게 하여 꿀꺽 착취해 버린 것입니다.
'스스로 자발적으로, 자신의 능력대로, 미리 준비해서, 인색하지 않게' 등으로 드린 것이거나 모금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말한 '헌금 또는 모금'에 대한 의미있는 교리적인 설명은 아래의 참고글에서 꼭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게다가 상식적으로 자신의 생계비의 전부를 모두 바쳐 버리고 나면 '일용한 빵'(마6:11)이나 '일용할 양식'(약2:15)을 살 수 있는 돈이 없습니다.
이 본문에서 하나님은 분명 이런 가난한 과부의 딱한 사정을 아시면서 그녀의 '생활(생계)비 전부'를 내어 놓으시라고 요구하시 분이 아니심을 문맥을 통해서 잘 보여주십니다.
가난한 과부의 집을 삼키며 생활비 전부까지를 성전보고에 넣으라고 억지로 강제하시는 분은 더 더욱 우리가 아는 <아버지 하나님>의 모습이 아니십니다.(마7:9-11)
그러면 이런 일을 누가 하였을까요?
바로 당시의 부패한 지도자들(서기관들)등이 어떤 방법으로 착취하였고 이를 예수님이 '나쁜 사례로 지적하신 것'입니다. (전술해 드린 '사르박 과부'의 경우와는 그 기록의도가 전혀 다른 본문임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이 날 우리에게 우리의 일용할 빵을 주옵시고' (마6장11절)
('Give us this day our daily bread.'-영어킹제임스성경 마6장11절)
*'빵'입니다. '떡'이 아닙니다. 이 '일용한 빵'과 관련한 자세한 것은 바로 아래의 링크에서 확인 보시기 바랍니다.
http://cafe.daum.net/jesusthinking/6Ekw/157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개역한글,개역개정성경 약2장15절)
('If a brother or sister be naked, and destitute of daily food,'-영어NIV성경 약2장15절)
'너희 중에 누가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떠나가라. 너희는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하라, 하고는 몸에 필요한 그것들을 너희가 그들에게 주지 아니하면 그것이 무슨 유익을 주느냐?' (약2장16절)
('And one of you say unto them, Depart in peace, be [ye] warmed and filled; notwithstanding ye give them not those things which are needful to the body; what [doth it] profit?')
'너희는 과부나 아버지 없는 아이를 괴롭히지 말지니라.' (출22장22절)
('Ye shall not afflict any widow, or fatherless child.')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거둔 뒤에 나중에 그 남은 것을 주워 모으지 말라. 그것은 나그네와 아버지 없는 자와 과부를 위한 것이 되리라.' (신24장21절)
('When thou gatherest the grapes of thy vineyard, thou shalt not glean [it] afterward: it shall be for the stranger, for the fatherless, and for the widow.')
'[하나님] 곧 [아버지] 앞에서 순수하고 더럽지 않은 신앙 행위는 이것이니 즉 고난 중에 있는 아버지 없는 자들과 과부들을 돌아보고 세상으로부터 자기를 지켜 더럽혀지지 아니하는 것이니라.' (약1장27절)
('Pure religion and undefiled before God and the Father is this, To visit the fatherless and widows in their affliction, [and] to keep himself unspotted from the world.')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과부들의 집을 삼키고 겉치레로 길게 기도하나니 그런즉 너희가 더 큰 정죄를 받으리라.'(킹제임스흠정역성경 마23장14절)
('Woe unto you, scribes and Pharisees, hypocrites! for ye devour widows' houses, and for a pretence make long prayer: therefore ye shall receive the greater damnation.'-영어킹제임스성경 마23장14절)
* 방금 보신 마23장14절의 내용이 대한성서공회에서 '번역한 한글개역성경과 개역개정성경'에는 '[없음]'으로 표시되어 있군요. 과연 우연의 일치(=coincidence)일까요?
*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다른 대부분의 한글성경들(현대어성경의 '난외주',바른성경,킹제임흠정역한글성경)과 영어성경들(톰슨한영대역성경영어판,영어킹제임스성경,영어NIV성경,NASB성경)들에는 모두가 존재하는 구절들입니다.
* 성경의 번역에 보다 많은 주의가 필요해 보이는 또 다른 수많은 대목들중 하나로 보입니다.
이제 오늘의 본문과 관련된 후문맥(막13장1-2절)을 마지막으로 소개합니다. 잘 읽어보세요. 지금까지 소개한 <성전안에서의 사건>발생이후, <성전을 나가시면서 예수님이 최종 판단>하시는 말씀이십니다.
'그분(=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그분의 제자들 중의 하나가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여기 돌들이 어떠하며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하매' (막13장1절)
('And as he went out of the temple, one of his disciples saith unto him, Master, see what manner of stones and what buildings [are here]!')
'예수님께서 응답하여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지 아니하고 다 무너지리라, 하시니라.'(막13장2절)
('And Jesus answering said unto him, Seest thou these great buildings? there shall not be left one stone upon another, that shall not be thrown down.')
지금까지 설명해 드린 <막12장38절-44절>을 요약해 보면,
성전안에서 가르치실 때에(막12:35) 서기관들이 행한 참담한 불의 곧 가난한 과부에게 행한 불의들(막12:38-44)을 직접 목격하신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막13:1a) 바로 다음절인 막13:2b에서 최종평가로 저주('성전의 멸망의 예고')를 예고하셨습니다.
'이 성전의 멸망의 예고'라는 '저주의 정죄'를 통해서 당시 종교지도자들에게 퍼부으신 예수님의 경고는 사10장2절에도 아주 잘 나타나 있습니다.
'궁핍한 자를 따돌려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하게 하고 내 백성의 가난한 자들로부터 권리를 빼앗아 과부들을 탈취물로 삼으며 아버지 없는 자들을 강탈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지어다!'(사10장2절)
오늘 보신 문장을 세부분 곧 전문맥(막12:38-40), 본문(막12:41-44), 후본문(막13:1-2) 을 보셨습니다.
지금까지 잘 읽어보셨나요? 정리가 잘 되셨을 것입니다.
직접 살펴 보신대로 서기관들이 과부들의 집을 삼키고도 부족해서 그들이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는 푼돈 곧 생활비 전부까지도 성전보고에 자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넣도록 하였습니다.
이렇게 동전인 렙돈으로 드리게 하니 호리병주둥이 모양의 성전보고에 동전이 떨어질 때마다 그 소리(딸랑!딸랑!)를 들으며 과부가 얼마를 넣었는지를 자세히 들어보고 확인하면서까지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래 별첨한 - 그림2 참조)
이런 기가 막힌 서기관들의 가능스럽고 탐욕스러운 모습을 예수님은 <성전보고의 바로 맞은 편>에서 적나라하게 지켜보고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위에 보여드린 후문맥의 말씀(막13:1-2절) 곧 '성전멸망의 예고'가 최종적인 평가로 있었던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런 가)역사적 시대상황과 나)성경의 앞뒤 전체문맥 그리고 다)'생계비 전부'(=all her living)라는 단어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경고의 메세지와 그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한 채,
현대의 대다수의 사람들(목회자,성경교사등)이 자신들을 따르는 수 많은 교인들에게까지 아직도 이를 전혀 다른 엉뚱한 의미로 일반성도들에게
여전히 <성도의 좋은 헌금행위에 대한 좋은 사례를 보여준다는 본문>으로 잘못 채택하여 설명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의 시대상황가운데서 예수님이 꾸짖으신 이 부정적인 의미의 강제헌물을 긍정적인 의미로 미화하여 아직까지도 장려하거나 가르친다면,
이는 분명 성경에 대한 이해부족이 가져온 무지의 소치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본래의 의미를 왜곡하는 것이라는 책임을 누구든 스스로 떠안게 되는 것이 됩니다.
성경기록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은 <잘못된 이해>를 낳고 잘못된 이해는 <잘못된 헌신?>을 낳습니다.
이 결과는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영적인 믿음의 생활을 지속하는 동안 크고 작은 많은 영향을 상당부분 미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경교사들은 성경본문의 '본래의 의미'를 벗어나면서까지 물질에 대한 헌신?등을 어떤 목적으로든 연약한 성도들에게 왜곡되이 가르치거나 이끌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성경교사가 아무리 성경을 꼭 집어 인용한다고 하더라도, 본문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가르침은 가르치는 자의 의도가 아무리 선해도 <건전한 성경교사로써의 가르침이나 건전한 교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경교사라면 누구나 단순히
가) 그간의 오랜 관행에 매여 잘못된 배움의 기초에만 막연한 터를 박지 말고
나) 언제나 경건한 진리의 지식인 성경기록에 대한 명쾌한 이해를 하여 애쓰면서(딤후3:7)
다) 진리의 성령님께 먼저 구하면서(요16:13) 동시에
라) 성경기록이 자신에게 먼저 말하게 해야 하고, 따르는 교인들은 누구나 자신과 함께
마) 성경기록 속으로 들어와 성경이 말하는 것만을 좇아가도록 정직하게 잘 인도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의 방법과 자세를 잘 가르치는 일>은 성경교사에게 마땅히 권장되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혀 관계없는 본문을 엉뚱하게 인용해 가면서까지 가르치지 않고도 바울의 여러 권면등이 성경기록 본문들안에 이미 잘 준비되어 있으니 그것을 잘 따르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바울을 통해서 신약성도들에게 보여주신 <올바른 헌물의 방법과 자세>를 아래의 링크를 통해서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꼭 한번씩들 정독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올바르게 헌금을 드리도록 가르치는 사도 바울의 성경기록들"
http://cafe.daum.net/jesusthinking/6Ekw/98
오늘도 주님의 인도하심이 늘 독자분들과 함께 하며, 그 분의 풍성하신 선하심과 은혜가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샬롬!
별첨자료 - 그림1, 그림2
그림1) 당시 사용되었던 실제 '두 렙돈'의 모양
그림2)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억지로 헌물드리는 가난한 과부를 지켜보는 당시 서기관들의 모습
첫댓글 성경적으로 좋은 문맥적 해석과 설명을 주는 성경영상이 있어서 참고로 올려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9NVDe2WiH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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