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유럽 여행기 7일차 스페인(마지막날) (프라도 미술관,스페인왕궁,톨레도대사원,산토토메교회)
남유럽여행일정의 마지막 날이다 유럽여행에서는 장거리 이동시간으로 (비행기로 편도 약 12~13시간) 7일간의 여행을 할려면 10일이 필요하다. 수속도 해야하고 공항에 도착하면 내국 항공기로도 이동할일이 생기고 등등 어쨌든 마지막 날이 되니 돌아갈 마음으로 설레는 건 왜일까? 선물도 사야하는데 쇼핑시간도 별로없고 오늘은 쇼핑시간을 좀 만들어야 될듯하다. 여행 후 귀국 시에는 쇼핑의 즐거움도 있지만 선물 할 사람이 자꾸 늘어나 고민도 많아지는 것 같다. 마지막 날이고 해서 저녁때는 가벼운 생맥주 파티를 하기로 하고 쇼핑자유시간도 한시간정도 시간을 마련하기로 했다. 오늘 첫 방문지는 프라도 박물관이다. 사진촬영은 금지가 되어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위치한 프라도 미술관은 스페인의 역사와 영혼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아름다운 외관과 거대한 크기로 잘 알려진 이곳은 스페인의 예술 작품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15세기 이자벨라 여왕 시대의 왕실 예술부터 현대 예술까지 수 많은 작품을 보유하고있다. 프라도 미술관(Museo del Prado)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런던의 대영박물관과 함께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이며, 회화관으로는 세계 최대의 미술관이다. 역시 소문처럼 그림도 많고 볼거리도 많았다. 15세기 이후 작품들의 회화의 향연이였다. 성경의 스토리, 상상의 극치를 표현한 그림들. 너무나 자연속의 물체와 닮은 소품들의 그림, 그림 한 폭에 숨어있는 엄청난 사연들의 표현을 사람들의 표정과 소품들의 나열로 절묘하게 그려놨다. 고야의 마야부인의 그림도 눈에 띈다. 중학교 미술책에서본 그림의 실물을 여기서 불 줄이야 책하고 감흥이 너무도 틀리다. 나비날개 같은 잠옷의 표현과 여인의 표정 그리고 종교재판서 외설화가로 판결받은 최초의 노골적 여인의 누드그림은 수세기가 지난 그림이지만 살아있는 듯 나한테 다가온다.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의 그림을 우리는 편한 마음으로 보지 못한다. 괴물과 광기, 참혹과 전율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단 한편의 나체 그림 ‘나체의 마하’ 는 그에게 외설 작가라는 이미지를 덧씌웠다. 너무나도 부러운 프라도 미술관이였다. 궁정화가라는 제도가 있어서 그림이 발달하였을까? 아님 스페인은 이렇게 좋은 그림이 왜 많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그림한점 한점 볼려면 며칠을 보야야 할 것이지만 1시간 30분정도의 구경으로 프라도미술관을 뒤로하고 톨레도로 출발하였다.
톨레도(Toledo) 는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70km 떨어져 있는 스페인 중부의 고대도시. 198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지정.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 유적이 공존하는 장소이며, 스페인의 많은 유명인을 비롯한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태어났거나 살았다. 서고트왕국의 수도였으며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8세기에 정복한 이후 줄곧 수도, 코르도바 칼리파(Califato de Córdoba)의 지배하에 황금 시대를 누렸다. 1085년 5월 25일, 카스티야의 알폰소 6세가 톨레도의 지배권을 장악하였으며 그가 계속해서 무어인들에게 톨레도를 재물로 바칠 것을 요구한 데 따른 것이었다. 이는 카스티야-레온 왕국의 통합을 향한 최초의 구체적인 발판이 되었다. 톨레도는 철제 생산과 특별히 검 제작으로 유명하다. 여전히 시 중심부에는 칼과 철제 생산품을 생산하고 있다. 펠리페 2세가 궁정을 톨레도에서 마드리드로 1561년 옮기면서 고도 톨레도는 이제껏 없었던 잠시 동안의 침체기를 겪는다. 12시50분에 톨레도에 도착해서 들어가는 입구에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였다. 닭다리 바비큐에 애저요리였다. 닭다리가 아니고 너무 커서 칠면조 다리인줄 알았다. 그리고 새끼돼지요리인 애저가 나왔는데 기름을 쪽배서 그런지 퍽퍽해서 별로 맛을 느끼진 못했다. 그렇게 점심이 끝난 후 톨레도로 향했다.
소문데로 멋진칼과 동전만한 동판에 정교한 무늬를 세긴 목걸이와 반지등의 황금빛 나는 엑서사리가 정말 멋졌다. 하나하나가 수제품이라했다. 직접세공하는 모습들이 상점 안의 풍경이다.
톨레도에는 톨레도 대사원이 있다. 톨레도 대사원(Catedral de Toledo)은 스페인 카톨릭의 총 본산이다. 스페인 대성당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세계 4번째로 큰 성당이며 이슬람 왕국시절에는 회교사원이 있던곳인데 1086년 알폰소 6세가 톨레도를 다시 찾은 다음에 카톨릭성당으로 개조하였다한다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건물은 프랑스의 고딕 양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266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1493년에 완공되었으며, 길이 113m 폭 57m 중앙의 높이가 45m로 완공된 후에도 수차례 증개축을 했지만 지금도 기본 골격은 변함이 없다. 중앙에 있는 면죄의 문, 왼쪽에 있는 시계의 문, 오른쪽에 있는 사자의 문으로 되어 있는 3군데의 입구가 이색적이다.
대사원의 내부는 22곳에 달하는 예배당과 신약 성경과 성도를 주제로한 스테인드글라스, 보물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부는 뽀쪽이 하늘을 짜르는듯한 탑 모양의 건축물이 하늘 색갈과 어울려 장관 이였고 사원의 내부는 화려하고 웅장하였고,진귀한 보물들이 전시가 되어 있었다. 신부님들이 입은 옷은 커다랗고 무척이나 화려했다. 하나같이 금빛이거나 붉은 옷이다. 스페인 가톨릭의 총본산이란 이름애 걸맞는 건축물임을 실감나게 했다.
톨레도 대사원의 구경을 마치고 관광객들이 그림 한장을 보기위해 찾는다는 산토토메 교회에 들렸다. 1586년에 완성된 엘그레코(El Entierro)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라는 그림이 있어 유명한 산토 토메 교회(Igesia de Santo Tome)는 세계의 관광객들이 그림을 보기 위해 많이 찾는 곳으로 이 그림은 상하 2단으로 나뉘어 있으며 상단부는 천상계를 하단부는 지상계를 상징하고 있으며. 중앙에는 천사가 팔을 감싸고 있는 그림이 있는데 이는 오르가스 백작의 혼을 표현한 것이다.
산토 토메 교회를 나온 시간은 오후 4시20분 이제 남유럽여행은 마무리 돠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머물렀다는 스페인 왕궁을 구경했다. 스페인왕궁은 734년 화재로 전소된 곳에 부르봉가 왕가의시조이며 베르사이유궁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Felipe Ⅴ세가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델로 하여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돌과 화강암으로만 건축, 1764년 완공되었고 1764년 Felipe Ⅴ세 아들인 Carlos Ⅲ세때부터 살기 시작하여 후안 까를로스 현 국왕의 조부인 Alfonso ⅩⅢ세가 왕정의 문을 내린 1931년의 건축물로서 왕궁안의 방은 크고 작은 것을 합하여 2,800여개에 달한다고 한다 이제 숙소로 가는길 만 남았다.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고 바르셀로나 축구장 앞에서 인증샷 시간을 마련한다고 한다. 모두들 환호한다. 그저 축구장 정문에서 잠깐 내리는건데 다들 무척이나 좋아한다. 어울려 축구장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즐겼다.
숙소에도착해서 짐을 풀고 석식후 로비에서 모였다. 헤어지는 아쉬움들이 있었나보다. 10여일 같이 지내면서 친해지고 가까워졌다. 가이드는 우리에게 마지막 친절을 배푼다. 숙소 뒤의 골목을 뒤져 세르반테스의 생가와 그 앞의 돈키호테 동상을 보고 한잔도 즐길수 있는 생맥주집을 찾아 놓았다. 그렇게 500cc의 맥주에 얼굴이 발그레지고 뒷골목의 정취를 잔잔한 가로등의 로맨틱한 풍경속에 여행담을 애기했다. 한참을 웃고나서 숙소로 향하는 길에 골목길을 되돌아 보았다. 깨끗하고 평온한 뒷골목이였다. 참 분위기 좋은데 사람이라곤 우리밖에 없다. 어두운 가로등아래 젊은이가 책을 펴놓고 있다. 탁자위에는 병맥주 한병이 놓여있었고 ...... 길다란 골목길엔 그사람 한명이다.
아침 바르셀로나에서 비행기로 1시간 10분이 걸리는 마드리드로 향했다. 마드리드에서 11시35분 비행기다. 서울도착은 새벽5시30분 7시간쯤 시간이 느리니 약 13시간 비행기를 타야 한다. 비행기안은 좁고 지루했다. 생각을 정리할려고 집중 해볼려 했지만 졸음반에 영화시청 반이다. 어렵게 7일간의 남유럽 여행기를 마친다. 가필과 정정도 없이 생각 나는데로 사진의 배열대로 적어나갔다. 그저 일관되게 서술체로 ..... 나중에 생각을 넣은 여행기를 작성해 봐야 겠다. 모두들 건강하고 항상 새롭게 인생를 살아가시라는 인사를 남기며 ~~~ 성광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