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 교회는 '에바브로'가 에베소에서 사도 바울의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은 뒤 골로새에
돌아와서 세운 교회이다. 이때 바울은 로마 감옥에 있었기 때문에 골로새 교회의 사정은 에
브로를 통해서 자주 들어왔다. 그리고 본 편지를 쓰게 된 것이다.
1.문안 인사 (1:1-2)
바울은 각 교회에 편지를 쓸 때마다 항상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의 인간적인 면을 볼 수 가 있다. 바울은 대부분의 인사말에서 자신의
름뿐 아니라 동역자(디모데,실루아노등)의 이름을 함께 언급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은일'에는 자신만이 드러나길 바라기 때문에 동역자나 다른 사람과 동
을 하거나 함께 거론 하기를 싫어한다. 자신만이 칭찬 듣기를 좋아하고 자신만의 권위를 인정
받기를 원하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심리이다. 그러나 바울은 항상 동역자에 대한 마음의
려가 있었다. 과연 그는 예수님의 사도다운 큰 종이었다.
2.바울의 칭찬과 감사 (1:3-8)
바울은 에바브로를 통해서 교회의 현황을 듣고 몇 가지 칭찬과 감사를 하고 있다.
첫째로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을 칭찬하고 감사를 드린다.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돈'안에 그 믿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출세나 성공을 기대하는
마음에서 신앙 생활을 한다. 그래서 예배나 헌금을 하나님께 드리고 물질의 축복을 기대한다.
또 사업장을 위해서 큰 교회를 찾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명예와 권세'안에 그 믿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이 널리 알려
기를 바라면서 사람들이 많은 교회를 찾는다. 그래서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찾기 보다는
회적으로 지위와 신분이 나은 사람들을 더 찾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안에 그 믿음이
다. 자기의 바라는 대로 교회 생활을 하고 자기가 바라는 것만 하나님께 구할 줄은 알면서
작 자신에게 기대하는 하나님의 뜻은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교회 생활을 하지만 '예수 밖에'있는 무속적인 믿
인 것이다. 그러나 골로새 성도들의 믿음은 무속적이거나 기복적이거나 세속적이지 않고 온
히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었다. 그들은 예수로 마음과 생활 속에 가득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골로새 성도들은 예수님의 대속에 대한 크신 은혜를 개인적으로 깊이 경험을 했을
것이다. 만일 내게 1억원의 빚이 있어서 당장 재산 압류를 당하고 가족들이 거리로 쫓겨나게
되고 나는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는 큰 사건 앞에서 쩔쩔 매고 있을 때 그 빚을 무상으로 갚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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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의 크나 큰 은혜로 인해 그 사람의 모든 뜻을 따를 것
다. 마찬가지로 골로새 성도들은 예수님의 구속의 은헤를 깊이 깨달아 예수님의 참 제자가
었던 것이다. 오늘의 교회는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는 경험을 도와주고 있는가?
두번째로 성도간에 사랑의 교제가 있음을 칭찬하고 감사를 했다. 골로새 교회 안에는 화
과 나눔과 봉사가 생활화 되었던 것으로 엿보인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 안에는 화목보다는 분열이, 나눔보다는 욕심이, 봉사보다는 요령과 꾀가
많아 보인다. 성도간에 그리고 이웃간에 진실한 사랑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또한 상대에 대한 미움과 시기와 비방 등으로 마음부터 분열되어 있어 사랑의 열매는 거의 볼
수가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아울러 형제에 대한 사랑을 함께 가질 때 비로서
온전한 십자가의 도를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믿음과 사랑은 항상 동행 하기 때문이다.(
5:6) '믿음'이 신앙의 뿌리라면 '사랑'은 생활의 열매이다. 그 사랑이란 예수님처럼 불우한
웃과 죄인 취급받는 소외된 자들에 대한 아가페적인 희생과 봉사와 나눔을 의미 하는 것이다.
결국 '믿음'이 있으면 '사랑'도 있고 '사랑'이 있으면 '믿음'도 칭찬 받을만 한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믿음'도 없는 것이다. [NO LOVE NO FAITH]
끝으로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칭찬하고 감사했다. 여기서 '하늘에 대한 소망'이란 장차
도들이 받을 영광(롬8:18,벧전5:10)과 특권을 의미 하는데, 이는 동전 따위를 수건에 싸서
관한다(눅19:20)는 말과 같은 것으로서 하늘에 대한 소망은 우리의 마음 속에 귀한 보물처럼
잘 간직해야 할 것이다. 골로새 성도들이 성도간에 뜨거운 사랑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그
의 소망이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었기에 몸과 물질을 아낌없이 나눌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세속적인 것들에 대해서 무가치함을 깨닫고 아무런 욕심도 없이 마음을 비우게
된 것이다. (무욕.무소유)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각종 욕심과 욕망으로 가득해 보인다. 그 욕심과 욕망을 마치 큰 믿
인양 착각하고 큰 소리로 성취 되기를 기대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것은 전자에서 언
했듯이 '예수 밖에' 있는 이방인들의 무속 신앙일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사도 바울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 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神)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3:19)하고 호소를 하면서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고 거기서 구원의 주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오직 '예수'로만 가득 채울 수 있는 은혜가 임하기를 바란다.
3.신앙 성숙을 위한 바울의 기도(1:9-12)
먼저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직접 세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곳을 방문해 본적도
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로새 성도들의 아름다운 신앙을 듣고 칭찬과 감사를 하면서 그는
그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중보 기도를 드리고 있다.
참으로 바울은 큰 목자요 참 목자라 아니 할 수가 없다. 우리는 지역과 교회를 떠나서 한
나님을 섬기고 있는 '예수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비방하고 정죄 하기보다는 이
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바울은 신앙이 아름다운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 할 때에 어떠한 이단 사상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더욱 성숙된 신앙이 되길 기도했다. '성숙'이라 함은 높은 덕망으로서 모든
일에 판단과 결정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인격적인 성장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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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바울은 먼저 성령께서 주시는 모든 지혜와 판단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기를
기도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의미를 말
는 것으로서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평안과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것이지 결코
교적 행위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기를 기도했던 것이다.
오늘 우리도 예수 안에서의 구원을 믿으면서도 실제로는 외형적인 종교적 규례를 지킴으
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신앙이 굳어져 버렸다. 그래서 예수의 사랑을 느끼고 누리는
것보다는 예수를 위해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공적주의에 빠져 버렸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뜻보다는 사람의 뜻을 좇게 되어 신앙의 성숙이 없다.
두번째로 바울은 성도들이 주님이 기뻐 하시고 원하시는 온갖 좋은 열매를 맺어 가면서
나님을 더욱 잘 알게 되기를 기도했다. 바울이 성도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을 깊이 알아
하나님을 한시라도 잊거나 떠날 수 없는 나무와 가지와 같은 관계로 성숙 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주님이 기뻐하실 만한 좋은 열매를 찾아야 하는데 그것은 오직 예수
을 사랑하는 일로서 가능한 일인 것이다. 나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가 기뻐하고
원하는 일을 만들어 주게 될 것이다. 내가 그를 위해서 어떠한 희생과 수고도 아끼지 않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깊이 알수록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될 것이며 주
의 십자가와 부활 앞에 뜨거운 감사와 사랑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지금 하나님을 아는 일에 더욱 힘을 쓰고 있는가? 그리고 주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일을 위해 수고와 희생을 하고 있는가? 혹시 사람이 좋아하는 일만 좇아오지는 않았는가?
세번째로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스런 권능으로부터 오는 온갖 힘을 받아 강하여져서 모든
에 참고 견디는 성도가 되기를 기도했다. 교회의 외부로부터 오는 이단 사설 등으로부터 현
되지 않고 잘 견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령의 권능이 필요한 것이다.
오늘 교회 안에서도 불평 불만이 많은 사람들 중 이단들의 사설에 넘어가 그릇된 신앙으로
영혼이 파멸되고 가정이 파탄에 이르게 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특히 주님의 재림이
까이 오는 이때에 세속적인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잘 참고 견디어서 공중 혼인 잔치를
마지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의 의지와 결심으로는 불가능 하다. 오직 성령의
충만함으로 가능할 것이다.
지금 살펴본 바와 같이 성숙된 신앙의 길은 성령의 임재와 동행으로 이루어진다. 우리의
앙 생활 속에서 사람의 의지와 계획과 돈의 힘이 성령의 임재를 가로막고 있지는 않는가?
본 론 부
* 교리적 교훈(1:13-2:23)
* 생활적 교훈(3:1-4:6)
1.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신앙의 대상(1:13-23)
에바브로의 보고를 통해 전해들은 골로새 교인들이 보인 신앙의 진보를 감사하며, 교회의
영적 성장을 위해 기도한 바울은(3-12절) 이제 본 서신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에 대한 본
으로 들어가서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설명함으로서 당시의 이단 사상을 경계할 것을 권면 하
다. 좀더 본문을 세분해서 살펴보면,
첫째로 구속 주 되신 그리스도의 신분을 설명하고 있다.(13-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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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인간은 모두가 흑암의 권세 즉 사단의 권세 하에 있었다.(엡2:1-2) 아담의 타락 이후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선한 형상을 상실한 채 창조주를 잊고 우상을 숭배해 왔으며 마음 속의
생각이 선한 것보다는 악한 것을 더 도모하여 죄악과 죽음의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죄의 대가는 죽음(롬6:23)이기에 인간은 사단의 지배 하에서 살다가 영원한 죽음을 맞이
게 될 것인데 이것을 막기 위해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십자가에서 피로
간의 죄값을 대신 지불 하게 하시고 인간을 사단으로부터 사게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사단의
종이 아니고 예수님의 종이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와 예수님과의 관계는 주인과 종의 관계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것이 된 것이다. 그러나 노예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랑하는 친구로, 제자로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의 권세로부터 구원해 주신 예수
의 크신 은혜를 항상 생각하며 무엇보다도 감사를 드려야 한다.
두번째로 만물의 창조주 되시는 그리스도의 권위를 설명하고 있다.(15-17절)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 안에 보이는 모든 만물과 보이지 않는 영계(靈界)의 천사들을 창조 하
다. 우리 눈에 보이는 만물은 진화를 거친 것이 아니며 또한 우연히 생기게 된 것도 아니다.
여기서 만물의 창조 목적은 모든 피조물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기쁨과 영광을 얻기 위함
었음을 볼 수 있다.(16절) 그리고 우리는 주님과의 관계가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임을 인정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다른 만물과 함께 모든 인간은 피조물로서 창조주께 올바른 신앙의
미음 가짐을 갖어야 한다. 그리고 피조물로서 주님께 절대복종 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번째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기초로 하여 세워진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를 설
하고 있다.(18-19절)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요 몸이 되신다.(엡1:22-23) 그 교회의 기초는 십자가의 죽음과
활이며 우리는 그 교회의 기초 안에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는 것이다.
인간의 신체는 머리와 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머리와 몸에는 많은 지체들이 있다. 마찬
지로 교회에도 머리와 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교회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심) 거기에는 많은
지체들(성도들임)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는 교회의
체들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성도로서 존재할 수가 없으며 어떠한 열매도
맺을 수가 없는 것이다.(요15:1-5)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과의 관계를 머리(몸)와 지체의 관계임을 알 수 있다. 머리(몸)와 지
의 관계는 서로 보완.협력하는 관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있는 지체
기에 절대로 그리스도로부터 떨어져서는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 될 것이다. 또한 각 지체끼리
서로 보완.협력하는 관계로 서로 사랑해야 할 것이다.(요15:12,17 고전12:20-27)
끝으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들과 하나님 사이에 화목을 가져다
주신 평화의 다리 되시는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있다.(20-22절)
구원 받기 이전의 인간들은 자기의 욕심에 이끌려 사는 이기주의자로서 하나님께 배은 망
하고 사람들 사이엔 불신이 가득하고 하나님의 동산인 자연은 개발을 이유로 파괴하고 있다.
결국 인간에겐 배반과 불신과 파괴라는 사단의 속성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님과 이웃과 자연과의 관계를 아담의 타락 전인 사랑의 관계로 회복을 하신
이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과의 관계를 사랑과 사랑의 관계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관계에서는 나와 하나님, 나와 이웃, 나와 자연사이에 오직 사랑만이 표현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이란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 앞에는 종교적 행위만이 있으며 사람들
이에는 미움과 시기와 험담 그리고 이간이 많이 보이고 자연은 여전히 돈의 욕심으로 오염
어가며 파괴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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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신앙이란 하나님과, 이웃과, 그리고 자연과의 사이에 '사랑의 관계'로 회복되는 일
다. 신앙은 종교적 행위가 아니며 일상 생활인 것이다. 사랑이 없으면 믿음도 없는 것이다.
2.하나님의 비밀을 전파할 사명(1:24-29)
초대교회 당시까지 베드로와 바울은 오직 유대인만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는 선민
식을 갖고 있었기에 이방민족에게 복음을 증거한다는 것은 미련스럽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특히 유대인들은 지금까지도 이런 선민 사상에 젖어 있다. 그러나 베드로와 바울은 복음
역을 하면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한 비밀이 유대인에게 뿐만이 아니라 이방 민족에게도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방 민족을 위한 사도로 세웠음을
알고 성령의 능력과 역사에 따라 수고를 다 한다고 고백을 하였다.
우리도 나 외에 다른 이웃에게도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있음을 깨닫고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보아 그들을 찾아 빛과 소금의 생활로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알리며 예수님을 증
하는 것을 사명으로 받아 드려야 할 것이다. 오늘날같이 기독교인들이 사회로부터 불신을
는 것은 근본적으로 거듭나지 못한 이유가 클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비밀을 증거해야 할 사
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생활의 덕을 상실한 탓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펼쳐질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전도의 도구로 헌
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 일을 자신의 의지나 노력으로 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우리 안에서 역사 하시는
성령의 능력에 따라 수고를 다 해야 한다. 우리의 신앙에서 '성령'이 빠지는 것은 마치 공기가
빠진 타이어와 같은 것으로서 쓸모가 없는 것이다. 공기의 힘으로 타이어가 제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성령의 힘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만방에 증거할 수 있는 것이다.(행1:8)
3. 목회자로서의 바울(2:1-5)
1)기도와 사랑의 종: 바울은 항상 기도하는 종이었다. 직접 만나 본 사람이나 골로새 성
들처럼 제 3자를 통해서 소식을 들은 성도들을 위해서 그리고 전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성
들을 위해서까지 그들의 믿음이 오직 예수 사상으로 무장 되기를 위해서 기도를 한다.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힘쓰고 애쓰며 간절히 기도 하는 것이다.(1절)
그렇게 기도할 수 있는 그의 신앙적 배경은 무엇보다도 성도들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주님의 긍휼과 인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신앙의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이다. 목회자나 성도들이 거룩한 신분과 그의 사명을 잊은 채 돈을 사랑하고 명예를 좋아하고
세속적인 생활 습관을 좇으면서 진정 신실한 기도 생활과 영혼을 사랑하는 주님의 인애가
다면 목회자로서의 자질과 성도로서의 신분은 스스로 포기한 것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다.
2)바울의 기도 내용: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위한
기도와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깊이 깨닫기를 바라는 기도를
드린다.(2절) 여기서 '예수를 깊이 깨닫는다'는 것은 지식적으로 교리 공부를 해서 아는 것을
말함이 아니라 바울처럼 예수를 만나서 회개와 변화와 성숙으로 확실히 예수로만 만족하고
신앙고백(빌3:8)을 할 수 있는 체험적인 앎을 의미 하는 것이다.
바울 자신이 그리스도로 충만하고 그 기쁨과 은혜를 날마다 누리기 때문에 성도들에게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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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을 나누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참으로 바울은 그리스도의 영성(靈性)으로 가득한 참 목
자이다. 오늘 우리의 영성은 어떤 영성인가? 세속적인 영성은 아닌가?
3)그리스도를 깨달아야 하는 이유
ㄱ)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3절) : '지혜'라 함은
타락한 인간들을 다시 구원하여 잃어버린 에덴(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과 환희)을 회
복 시키시려는 구원의 작전을 의미 하는데 그 작전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의
길을 제시 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인 것이다.
그리고 '지식'이라 함은 타락한 인간에 대한 지극하신 사랑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아담
의 타락 이후 곧 바로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하실 만큼 인간을 사랑 하
셨고 결국엔 약속대로 우리 가운데로 보내신 것이다.
이러한 구원의 계획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바로 깨달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발견하면 그 기쁨과 환희
는 말할 수 없이 큰 것이다.(마13:35, 44-46)
ㄴ)이단 사상에 미혹되지 않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깨달아야 한다. : 당시 유대교적 기독
교인들은 구원의 조건으로 예수에 대한 믿음 뿐 아니라 율법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골로새 교인들에게 강조를 한 것이다. 그 영향으로 교회가 혼란을 겪고 있기에 바울은
구원의 조건으로는 처음부터 예수 한 분에 대한 믿음으로 충분함을 재 강조를 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에도 많은 이단 사상들이 교계를 떠돌고 있으며 말씀과 성령을 떠난 교
회의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 쉽게 미혹되고 있다.
4. 오직 그리스도만 믿고 따르라(2:6-23)
동서고금을 통해서 '가짜'와 '거짓'이 없는 시대는 없는 듯 하다. 진짜 같아 보이지만 사
이 아닌 것을 가짜 혹은 거짓이라고 말한다. 예수님 주변에는 항상 바라새인들이 따라 다니며
복음 사역을 훼방 했듯이 진리 주변엔 항상 비진리가 방해 공작을 펴 왔다.
하나님은 바래새인들과 유대교회가 율법을 잘 행한 것을 아신다. 그러나 그 행함 속에는
나님께 대한 진실과 정성과 믿음은 없었고 다만 형식적으로 의식을 행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 하였지만 마음은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추구 하였고 율법의
가르침도 하나님의 계명으로 아닌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치어 결국엔 자신들과 백성들이 하
님을 헛되이 경배하게 된 것이다.(마15:8-9) 따라서 이들은 하나님을 따른 것이 아니고 자
을 따른 것이며 하나님의 계명을 교훈 한 것이 아니고 사람의 계명을 교훈한 것이었다.
오늘 우리에게도 바리새인과 유대교회와 같은 큰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는가?
진실과 간절한 마음 그리고 성령이 빠져 있는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고 체면 때문에 헌금을
리고 설교는 목회자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말씀을 인용하여 하고 성경공부는 지식을 전달
하는데 그치고 교회 안에는 이해와 용서, 사랑과 봉사는 없고 시기와 미움, 비방과 험담이
고 목회자는 영적인 사역보다는 세속적인 일에 관심이 많으며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서는
헌금을 아낌없이 쓰면서 하나님의 뜻과 주님의 십자가와 불우한 이웃에 대한 마음이 진실로
없는 가운데서 교단의 신학적인 교리를 앞세우고 교회의 전통과 제도만 행하고 있다면 이것은
분명 현대판 유대교회요 바리새인일 것이다.
우리가 지금 내 마음과 생활 속에 하나님 없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지는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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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내 마음과 생활 속에 예수님 없이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자랑 하지는 않는가?
종말의 때가 가까운고로 앞으로는 이단 사상이 더욱 판을 치게 될 것이다. 이단 사상으로부터
성도와 교회를 지키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발견하고 성령 안에서 진실된 마음으로 의(義
와 거룩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로 온전히 무장해야 할
것이다.
5.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성숙 된 삶 (3:1-4:6)
본 장은 그리스도의 우월성에 대해 기록한 골로새서 본론 전반부(1:13-2:23)에 이어 옛
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은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성숙한 삶에 대한 권면을 기록한
후반부(3:1-4:6)의 일련 기사이다.
1)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칙(3:1-4) - 위엣것을 생각하라
부모를 잃고 고아원에서 자란 어린 소년이 부자집으로 입양이 되었다면 그 소년은 고아
에서 제 멋대로 생활한 습관을 버리고 입양한 집의 가훈과 가풍을 따라야 하듯이 우리가 땅의
백성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면 이 땅의 생활 습관을 버리고 이제 하나님 나라의
훈과 가풍을 따르는 것이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그 큰 이유는 주님께서 당신의 피값으로
리를 사신바 되어 하나님 가정으로 입양을 하였기 때문이다.(1,3절) 그 가훈은 "위엣것을 생
하고 땅엣것을 생각지 말라"이다. 여기서 "위엣것"이란 '하나님 혹은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며
"땅엣것"이란 '사람의 생각과 욕심 그리고 타락된 세속 문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고 순종할 것이며 자신의 욕구와
욕망 그리고 세속적인 문화가 하나님께 대한 신앙에 방해가 된다면 포기 하라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해야 한다.(마6:33)
그러나 사실 우리는 위엣것을 생각 하며 살기보다는 땅의 것을 생각하며 사는 시간이 대부
이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인이 얻을 축복과 영생을 얻으리라고 기대를 하고 있다. 이것은 손
대고 열매를 따겠다는 것과 씨 뿌리지 않고 가을에 수확을 거두려는 어리석음과 같은 것이다.
2)그리스도인이 버려야 할 것 (3:5-11) - 엡5:3-5참조
앞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칙을 제시한 바울은 3:5-4:6절에서 삶의 원칙을 어떻게 생활
속에서 반영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언급을 하고 있다.
먼저 그리스도인으로서 꼭 멀리하고 끊어 버려야 할 것 몇 가지를 열거한다.
그것은 불법적인 성 관계, 도덕적 문란 행위, 사리 사욕, 본능적 욕구 그리고 물질에 대한
심(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수없다 - 마6:24)등을 우리의 생각과 생활 속에서 아예 죽
라는 것이다. 또한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분노와 앙심, 타인을 해치려는 계획과 감정, 타인에
대한 비방과 중상 모략 그리고 음란한 말과 거짓말 등을 멀리 버리라는 것이다.
이런 것은 마귀의 속성들이요 우리는 새 사람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격과 신분과 그 권위가 조금도 손상되지 않도록 우리 자신이 하늘
나라 시민다운 삶을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하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혜를 헛되이 만들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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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3:12-17) - 엡5:8-9참조
여기서는 새 사람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짧고 구체적으로 언급을 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창1:26-27)과 '주님의 제자도'(마5:3-12)를 생각해 보자.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의 영적인 능력을 뜻 하는 것으로서 지.정.의의 전인적인 '사랑의
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주님의 제자도란 무욕과 겸손, 친절과 의로움, 자비와 정직, 용서와
화평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주님의 인격체를 뜻 하는 것이다.
본문에서도 새 사람의 모습으로 긍휼과 자비, 겸손, 온유와 오래참음, 이해와 용서 그리고
사랑을 권고하고 있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13:4-7절의 사랑의 열매와 같은 것이며 갈라디아서
5:22-23절의 성령의 열매와 같은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은 "사랑"인 것이다. 특히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이요
하나님의 얼굴(요일4:7-8)이기 때문에 기독교 미덕들의 총체이며 핵심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우리가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은 당연한 닮음인 것이다.
나는 사랑의 사람인가? 그렇다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분명하다. 그러나 육체의 열매(
5:19-21)가 나타나는 사람이라면 나는 분명 마귀의 자녀일것이다.
4)그리스도인의 가족과 사역자와 사회와의 관계(3:18-4:6) - 엡5:22-6:9참조
바울은 앞에서(3:12-17)그리스도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내적 덕목들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이제 타인과의 관계와 관련 해서 외적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있다.
ㄱ)부부간의 생활 원리(18,19절)
동등한 남자와 여자가 가정을 꾸며 한 사람의 남편과 아내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남편과
아내의 역할과 위치에 차이를 두셨다. 즉 남편에게는 가정을 다스리고 지킬 권한과 의무를
셨고 아내에게는 남편을 내조하고 섬길 역할을 주셨다.(창2:18)
따라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남편이 다소 맘에 들지 않거나
족하게 보이더라도 겸허한 마음으로 섬기고 지혜로운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남편은 주님께서 죄인들을 아무 조건 없이 무조건 사랑 하신 것처럼 아내를 아가
적으로 사랑을 해야 한다. 남편의 권위나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아내를 괴롭게 해서는 안된다.
부부 모두가 배우자를 외모로 판단하거나 사회적인 신분이나 경제적 능력 그리고 성격
이 등으로 이혼을 한다는 것은 이기적이고 타락된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을 한다.
사람을 이해할 때에 단순히 사람으로만 보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아 하나님의
랑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요 주님의 구속을 입은 선택된 사람이다. 이런 점으로 우리의 배우
를 사랑 하는데 충분한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아내의 윤리는 복종과 섬김이요 남편의 윤리는 사랑과 자비이다.
ㄴ)부모와 자녀간의 생활 원리(20,21절)
하나님은 부모를 자식의 권위자로 세우셨다. 따라서 자식은 부모를 하나님의 권위의 대
자로 알고 부모를 존경하고 순종하는 자세를 갖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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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부모에게 실수나 허물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가려 줄 줄 알아야 한다.(창9:20-27)
부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혈기로 반항 하거나 거역해서는 안되고 지혜롭고 온유하게 그
고 겸허한 자세를 흩트려서는 안 된다.
또한 부모는 자녀에 대해서 권위 의식을 갖고 지시나 명령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안 된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할 책임을 맡은 관리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정으로 공의와 사랑을 유효 적절하게 잘 활용하여 자식으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어떠한 일로든지 자녀에게 실망과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
ㄷ)사회 구성간의 생활 원리(3:22-4:1)
피고용인과 고용인과의 인간적인 가치는 동등한 것이다. 사회 구조상 상하의 관계는 필
한 관계인 만큼 상호간에 존중해주는 인격적인 대우는 절대적으로 실천 되어야 한다.
그리고 고용인은 피고용인에게 순종을 잘 해야 하며 업무에 요령을 꾀하거나 불의를 행
서는 안 된다. 마치 내 일을 하듯이 혹은 마치 주님의 일을 하듯이 성실함을 다 해야 한다.
피고용인의 권위와 부당한 대우가 있을 때에 감정으로 표현 하기보다는 지혜로운 대화로
풀어 나가 합일 점을 찾도록 해야 하며 대화가 잘 안될 경우에는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그
스도인의 올바른 자세이다. 이런 자세는 곧 주님을 섬기는 것이 되어 유업의 상을 받게 될
이라고 하셨다.(3:24)
그리고 피고용인은 위로 하나님이 계심을 명심하고 고용인들에게 인격적인 대우를 해야
다. 군림하는 자세는 삼가고 정당하고 공정하게 대우하여 고용인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얻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월급, 복지환경 등 할 수 있는 대로
용인들의 입장을 먼저 고려해서 대우 한다면 훨씬 사회 분위기가 쾌적해 질 것이다.
ㄹ)그리스도인의 기도와 불신자에 대한 태도(4:2-6)
그리스도인이라면 먼저 자신의 영성이 항상 깨어 있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 기도는 신
과 생활 속에 절대적인 양식과 같은 것이다. 기도로 하나님과 항상 교통할 수 있는 것이며
의 영혼을 풍성케 할 수 있는 것이며 나의 마음에는 기쁨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이다.
이럴 때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복음 사역자들을 위해서 중보기도 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복음
역이 마귀의 훼방으로 멈추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바울은 골로새 편지를 감옥에서 쓰고
기에 골로새 교회의 방문이 곤란한 처지에 있고 또 복음 사역이 멈추었기에 답답한 심정에
인 것이다. 그래서 자신뿐 아니라 복음 사역자들을 위해서 꼭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불신자와 함께 생활을 하게 되는 사회 구조속에서 그들과 동화 되지
않으면서도 적대 관계에 놓이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 쓸데 없이 세속적인 일로 시간을 낭비
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들 가운데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지 사회 생활에서 어쩔 수 없는 부
이한 환경이라고 하며 그들과 적당히 동화 된다면 그리스도인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
지이다. 그러므로 사회 생활 안에서의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아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한다.
그것은 오직 세속에 취하지 아니하고 성령의 충만을 받을 때에 가능한 일이다.(엡5: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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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맺는 말 (4:7-18)
이제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평화와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당부를 모두 마치고 복음 사역에
함께 동참 해준 동역자들과 후원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수고를 열거하며 감사와 격려를 하고
있다. 참으로 복음 사역은 목회자만의 영역이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평신도들 모두가 함께 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자신의 일터(가정,직장,학교 등)에서
과 소금이 되는 생활로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한다.(마28:19-20, 행1:8)
특히 목회자들이 복음 사역에 전념할 수 있도록 기도와 물질로 후원을 하고 목회자들은
도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잃지 않도록 말과 행동에 항상 덕(德)을 세워야 할 것이다.
7. 골로새서의 총 정리
첫째로 만물의 으뜸이신 그리스도를 바르게 이해하라 (1:9-23)
* 구속주 되신 그리스도(1:13-14) - 주인과 종의 관계
* 창조주 되신 그리스도(1:15-17) -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
*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1:18-19) - 몸과 지체의 관계
* 화목주 되신 그리스도(1:20-23) - 사랑과 사랑의 관계
둘째로 구원은 예수로만 충분하고 전통과 제도는 그림자에 불과하다.(2:6-17)
셋째로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성숙된 삶 (3:1-4)
* 그리스도인이 버려야 할 것 (3:5-11) - 모든 욕심과 욕망 그리고 탐심
*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덕망 (3:12-17) - 사랑과 성령의 열매
끝으로 다른 사람과의 올바른 관계 (3:18-4:6) - 사랑의 관계
* 부부간의 생활 원리 (3:18-19)
* 부모와 자녀간의 생활 원리 (3:20-21)
* 피고용인과 고용인간의 생활 원리 (3:22-4:1)
* 복음 사역자와 불신자에 대한 우리의 자세 (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