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서원기도(창28:20~22)
브엘세바에서 부모 형제와 함께 생활하던 야곱은 에서의 살해 위협에 피난길에 나셨다. 루스라는 지방에 도착한 야곱은 해가 저물자 들판에서 돌베개를 하고 잠은 자던 중 꿈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는 약속을 하셨다. 브엘세바에서 루스 곧 벧엘 까지는 180Km이니 대략 도망한 지 3일 정도는 소요되었을 것이다. 피곤에 지친 야곱을 찾오셔서 하신 언약에 대하여 잠에서 깬 야곱이 하나님께 서원하는 내용을 살펴보자.
대표적 서원기도로 ‘한나의 기도’의 기도를 꼽을 수 있다. 한나는 자식을 낳지 못하는 관계로 부닌나로부터 멸시를 당하였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1:10~11)
한나는 자신이 하나님께 드린 서원기도대로 아들 사무엘의 일생을 하나님께드려 헌신하게 하였다. 한나는 절박한 상태에서 서원기도를 드렸고 하나님은 그의 간구를 이루어주셨고, 한나는 서원한 바를 실천하였다. 서원기도는 인간이 하나님께 맹세하는 것이다. 이는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본문에 나타난 야곱의 서원기도에 관하여 그 내용을 살펴보면서 서원기도의 중요성을 깨닫고자 한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이는 야곱이 하나님께 서원의 조건을 나타낸다. 위와 같은 조건을 성취시켜주시면 그 보답으로 아래와 사항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1.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을 서원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창28:13)이라고 소개하셨다. 이는 자신의 조상의 하나님일 뿐 야곱 본인의 하나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의 조건을 성취시켜 주시면 조상의 하나님은 물론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여호와’는 어떤 뜻이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여호와’는 일반적으로 유대인의 민족신으로 일컫는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여호와’라 칭하였고, 모세를 부르실 때에도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것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출3:7) 내가 너를 내 백성에게 보낸다고 하셨다.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내 백성’이라고 하셨다. 즉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민족신으로 소개한 것이다.
그러나 야곱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조상신인 ‘여호와’는 물론이고, 자신의 일생에 보호자 되시고 인도자가 되시며 복의 근원인 ‘하나님’으로 섬기겠다고 서원하는 것이다. 물론 구약성경에 ‘여호와’와 ‘하나님’이란 호칭이 번갈아 등장한다. 그러나 곤경에 처한 야곱은 자신을 지켜 줄 절대적인 하나님이 필요했던 것이다.
구원은 개별적이다. 믿음의 족장이라 일컬어지는 야곱은 구원을 상징하지만, 쌍둥이 형제 에서는 버림 받았다.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롬9;13) 이 둘은 태생적으로 구별되었다. 말라기 선지자도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말1:2~3)라고 기록하였으며,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하였다.
믿음으로 인한 구원은 민족이나 가문이 아닌 개별적인 것이다.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이 섬기던 ’여호와‘가 환난에서 자신을 구원해 주시면 일평생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겠다는 서원인 것이다.
2.이 기둥에 하나님의 전을 세울 것을 서원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야곱이 베고 잠자던 눕혀있던 돌을 세워 기둥으로 삼고 그곳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서 기름을 붓는 행위는 하나님께 대한 서원의 상징적인 기념물로 삼은 것이며, 하나님께 헌신을 다짐하는 의식이다.
바울은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고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다”(행20:28)고 하였는데, 여기서 ‘교회’는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7~28)라는 말씀에 근거한 것이다.
하나님의 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여 경배와 찬양과 기도가 행해지는 거룩한 곳이다. 죄와 허물을 씻음 받고 사랑과 은혜를 받는 곳이며,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약속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교회가 세워지고, 복음을 가르치고, 영혼구원을 위한 복음전파의 전진기지가 되었다. 이러한 거룩한 일을 위한 교회는 말씀의 터전이 되어 다음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1.영적인 성장과 교육: 성서를 통해 영적 지식을 전파하고 믿음을 굳건하게 하며, 영적 성장을 돕습니다.
2.예배와 기도: 믿음의 공동체로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며,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소통합니다.
3.사랑과 선행: 가난한 이웃을 돕고, 병든 자를 치료하며,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을 돌보며, 사랑의 사역을 실천합니다.
4.교제와 공동체: 믿음의 공동체로 모여 서로를 격려하고 돕고, 서로를 사랑하는 공동체를 형성합니다.
5.선교와 전도: 복음을 전파하고, 사랑의 사역을 실천하여 다른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고 구원의 길을 보여줍니다.
3.십일조를 드릴 것을 서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의 십 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시는 모든 것의 십일조를 반드시 드리겠다고 서원하였다. 물질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편리하게하며, 이루고자 하는 꿈에도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야곱은 외삼촌의 집에서 아내와 자식들과 풍성한 재물을 모았다. 아내를 얻고, 자녀들을 낳으며, 재산을 모으는데 하나님이 간섭하셨다. 하나님이 관여하시지 않았다면 빈털터리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에게 특별한 복으로 많은 자녀들과 재산을 형성하도록 하셨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재물관에 대하여 생각하고자 한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하였다. 여기서 ‘생육과 번성’은 상호 보완은 물론 완성체이다. 즉 생육이 번성하면 물질의 풍성함이 이루어지고, 물질의 풍성함을 성취하면 생육이 번성하게 된다. 생육과 번성이 균형잡힌 발전을 해야 한다. 균형잡힌 발전은 행복을 주지만 불균형을 이루게 되면 오히려 재앙이 된다. 즉 자녀가 번성하면 그들이 이용할 재산이 풍성해야 한다. 자녀는 중다하지만 재산이 부족하다면 가난한 생활을 하게 되고, 자녀는 적으면서 재물이 풍성하면 집안은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생육과 번성을 함께 허락하신 것이다.
오늘날은 십일조의 개념이 희미해졌지만 성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재물은 원천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믿는다. 물질을 얻을 지혜와 건강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지금 살아가는 순간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이는 예수님의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눅12:13~21)에서 나타난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문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는 말씀에서 취득하게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요, 거둬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 있다. 물질의 관리자로 생각하면 물질로 인해 죄를 짓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아굴의 잠언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사옵소서”(잠30:8)을 생각해 본다.
서원은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하나님은 서원을 갚기 위해 애쓰는 성도를 도우신다. 야곱이 환난 날에 자신을 보호해 주신 하나님에게 서원한 것을 드린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약속한 것은 반드시 이행하는 신실한 성도가 되자.
예수사랑선교회 임웅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