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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좋는 군사가 되라
바울 사도는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선한 싸움이라고 하였다. 세상에서는 기독교는 축복의 종교로서 물질적인 축복과 신분향상을 목표로 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다. 그래서 담임 목회자가 가정 심방을 가게 되면 그 집안의 자녀들을 위한 기도의 내용이 아브라함의 축복이었다.
선한 싸움의 과정은 십자가이며 십자가의 의미는 구원과 화해이다. 예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딤전1:15). 또한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멀리있던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엡2:16).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여시고, 원수 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화목하게 하심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새로운 관계로 맺어주신 것이다.
바울 사도는 이 깊고 놀라운 진리를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었다. 그가 이와 같은 결단을 하게 된 동기는 예수를 알기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는 은혜로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고 자신은 죄인 중에 괴수였지만 자신을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주신 것을 감사하기 때문이라 하였다(딤전1:12~15).
바울사도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수치스러운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원수 였던 자가 사랑받는 존재로 신분이 변화되는 능력이(고전1:18) 있기에 십자가를 자랑한다고 하였다.
복음을 전하면서 바울은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며,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여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지만, 오히려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한다고 하였다(고후12:23~30).
또한 감옥에 갇힌 바울은(딤후1:8)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너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하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하였다.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2:3)는 권면의 말씀을 통하여 오늘의 목회자들의 고난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우리는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부름 받았다.
우리를 부르신이가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하나님으로서 자신이 부른 제자들에게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을 하도록 가르치시고,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교육과 훈련을 통하여 좋은 군사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보살펴 주신다.
바울 사도가 로마에있는 가이사에게 재판을 받기 위해 배를 타고 압송될 때에 유라굴라 광풍으로 배가 파선지경이고 죄수들이 탈주할 위험이 있자 군인들이 죄수들을 죽이려 하였지만 백부장 율리오가 바울을 살리기 위하여 죽이지 못하도록 하였고, 하나님은 바울에게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바울에게 주셨다”고 하셨다.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셨고, 백부장을 통하여 그를 보호하도록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종들을 악인들의 간계와 죽음에서 건져내어 보호하신다.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함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후4:8,9)고 하였다. 하나님은 자신의 종들을 사자굴과 용광로 속에서도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를 제자로 삼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험한 세상 가운데 고아와 같이 버려두시지 않고 불말과 불병거로 지키시고 완전한 승리를 거둘 때까지 보호하시는 군대장관이시다. 그분은 우리를 그의 충성된 군사요 용감한 병사로 불러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장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충실해야 한다.
2.좋은 군사가 되기위해서
1)언어에 신중해야 한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속한 싸움이 아니라, 공중 권세를 잡은 마귀들과의 전쟁이다. 그러므로 마귀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끊임없이 그 나라와 의를 위한 기도를 통하여 성령으로 무장하고 지혜를 얻어 싸움에 임해야 한다.
마귀들의 유혹과 시험은 주변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이용하여 접근한다. 간사한 유혹과 억울한 피해와 어이없는 일들로 인하여 분노하게 만들고, 좌절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면 이성을 상실하여 변명과 반박으로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려 하나 이미 인격적인 손상을 입은 상태이기 탁월한 분별력도 훼손을 당하게 된다. 좋았던 관계가 의심하는 상대로 변하고, 믿었던 당사자에게 배신당했다는 실망감과 분노는 자신의 인격에 손상을 입히게 된다.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은 망하게 함이라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2:14,15)고 하였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의 본이 되라”(딤전4:12)고 하였다. 믿는 자의 특성은 온유함과 인내심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이 두가지 덕목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이고 정도(正道)이다. 공동체 생활에서 자신과 주변 사람들과의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이다.
상대가 나에게 좋은 사람이기를 기다리기 보다 내가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게되면 내 주변은 좋은 사람들로 둘러 쌓인다. 그러나 상대가 나에게 좋은 모습으로 다가오기를 기다린다면 모두가 불행한 관계가 될 것이다.
인간은 입술의 열매대로 살아간다. 그러므로 내 주변 사람들에게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있는 은혜와 덕이 담긴 말을 해야 한다. 온유하고 부드럽고 진심이 담긴 언어생활을 하는 이들 주변에는 순화된 언어에 익숙한 좋은 사람들이 모여 든다.
2)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욕심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거나 잘못된 판단으로 현실과 상반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분수를 알아야 한다. 이는 자신의 형편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처신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현실 감각이 무디거나 분석력이 떨어지면 실천력이 아닌 기대치에 가중점을 주게 된다. 우리에게는 자신에 대하여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치를 높게 설정하고 시도는 하지만 도저히 이루지 못하고 낙심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천리 길도 한 걸음 부터’라는 속담은 오랜 세월 동안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좌우명으로 삼아온 것이지만, 현대인들은 아무런 교훈적인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주변에 착실하고 꾸준한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서 조급한 마음에 단시일내에 꿈을 이루고자 하는 욕심에 사로잡혀 과정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즉 결과만 생각하고 그 과정을 간과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을 몇 번 경험하게 되면 그 사람은 비정상적인 사람이 되고 만다.
나무를 심고 자라나는 과정을 생각해야한다. 나무의 종류에 따라 성장 속도가 각기 다르며 열매를 맺는 과정 또한 다름을 알고 진중하게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해바라기와 사과나무를 비교해 보라. 해바라기는 4개월 만에 2미터 크기로 자라지만, 사과나무는 일 년에 50센티미터 밖에 자라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는 성공적인 결과를 누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에 대한 과정은 생략하고 결과만을 바라보며 자신도 그런 기대감을 갖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성공한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에게서 볼 수 없는 꾸준한 노력과 헌신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지나친 욕심을 패망을 부른다. 그러므로 욕심이 아닌 지족안분의 지혜를 얻어야 한다.
3)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만의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세워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한 재능을 주시지 않았다. 동일한 품질의 생산품을 만들어 가는 것은 공산품에 한정된다, 그런데 인간은 공산품이 아닌 개인마다 다른 독특한 성품을 지닌 인격체이다. 그러므로 타인과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부자 집에는 크기와 모양과 재질이 각기 다른 그릇들이 있다. 그 그릇들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용도에 따라 분류된다. 교회에는 다양한 직책이 존재한다. 그들은 각기 필요에 따라 하나님이 세우신 직분자들이다.
특히 목회자들은 타인과 비교하며 우월의식에 사로잡히거나 열등감에 빠져들기 쉽다. 교인들의 숫자나 교회의 규모에 따라 성취도에 차이를 두게 된다. 이것은 사람에게 등급을 부여하는 것과 같다.
출애굽 당시 성막에서 봉사하는 레위인들이 모세와 아론을 비난하며 동일한 역할을 요구하다가 심판은 받은 사실이 있다. 또한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 중에 종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맡길 때에 종의 능력에 따라 맡겼지만 적게 받은 종은 자신의 주제를 모르고 심통을 부리다가 책망받게 된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목회자 개인의 역량과 성실도에 따라 양들을 맡기신다. 주어진 분량을 만족한 줄 알고 최선을 다하면 조금씩 더 주신다. 이러한 원리를 깨닫고 주어진 직분과 역할에 성실한 자세로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곁눈질 하거나 우월의식의 착각에 빠지면 있는 것조차 빼앗기게 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독특한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공산품이 아니라 특별한 창조물이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감춰진 비밀한 존재이기에 타인과 비교하는 것은 창조주를 무시하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크고 비밀한 것은 찾아내어 갈고닦는 노력이 가해질 때 빛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4)좋은 군사가 되기 위하여 훈련을 하라
좋은 군사는 군인정신이 투철해야 하고, 군사력을 길러야 하고, 좋은 무기로 무장해야 한다.
①군인정신이 투철해야 한다
군인은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말고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름심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해야 한다. 공중 권세를 잡은 악한 귀신들을 물리치고 선과 공의가 실천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역군으로서의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마귀는 지략이 뛰어나고 간사하며 때로는 무자비하기에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해야하며, 한 순간도 방심하면 안된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근신하라 깨어라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다니며 삼킬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벧전5:8,9).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에게 마귀의 위험성을 경계하면서, 마귀의 계략에 넘어져 고난당하는 자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므로 군인은 악한 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철처하게 영적인 무장을 해야 한다. 이는 자신은 물론 국민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며 부르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위이다.
②뛰어난 군사력을 길러야 한다.
군사력은 혹독한 훈련을 통하여 습득하게 된다. 전투에서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해서 평소에 땀을 흘려야 한다. 훈련은 전투에서의 승리를 위한 최상의 체험이다. 훈련은 개인적인 것과 집단적인 것이 있다. 개인적인 훈련을 통하여 완전무장을 하도록 하고 집단적인 훈련을 통하여 전략전술을 습득해야 한다. 뛰어난 병사를 많이 보유해야 국가와 국민을 적들로부터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시대가 악할 수록 뛰어난 군사력을 길러야 환난날에 어려움을 당하지 않게된다, 평소에 군사력을 길러 강함을 보이면 주변의 세력들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미리 준비해 두면 근심할 것이 없다는 뜻으로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군인들의 기본자세이다. 마귀들이 노리는 상대는 허약하거나 한가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언제든지 공격을 당하여 비참한 모습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들은 전략전술을 익혀 뛰어난 군사력을 길러야 한다. 이는 깊은 기도와 영적인 체험 및 성경 말씀으로 무장으로만 가능하다.
전술을 개발하여 연마하고 능숙하게 대응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묵상하면 성령께서 위기의 순간에 기억나게 하실 것이다.
③좋은 무기로 무장해야 한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6:10~17).
위의 말씀은 분석해 보면 방어를 위한 장비와 공격을 위한 무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방어장비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이며, 공격무기로서는 성령의 검 즉 하나님의 말씀이 최고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훌륭한 군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해야한다.
여호수아에게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1:8), 다윗은 솔로몬에게 유언하기를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율법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왕상2:2,3)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백성들에게 인도자이며 보호자이며 위로자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맡겨진 백성을 보호하는 유일한 길이다.
3.좋은 군사에게 주어지는 상급
바울 사도는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6~8)하였다.
믿음의 선한 싸움은 처절하고 두려운 것이다. 인간의 지혜의 싸움이 아니라 영적인 전투이며 잠시간의 휴전도 없는 지독한 싸움이다. 인간들의 싸움은 휴전과 화해도 있지만 악마와의 싸움에는 휴전과 화해가 없다. 오직 승리아니면 패배일 뿐이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하신 때는 아직 십자가를 지시기 전이라는 사실이다. 예수님께서는 구속사의 일환인 십자가의 죽음이 패배가 아닌 승리의 과정임을 확신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군사된 우리는 승리자 되신 대장의 권세로 세상의 악의 세력들로부터 승리를 확신하고 담대하게 전투에 임해야 한다.
영적 전쟁이 두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용기를 갖고 담대히 싸우되 피흘리기까지 싸워 승리하는 군사들에게 바울 사도와 같이 의의 면류관이 주어질 것이다. 죽도록 충성한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질 것이다.
십자가를 져야 면류관이 있음을 상기하며,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승리자의 반열에서는 목회자들이 되기를 소원한다.
예수사랑선교회 임웅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