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년, 소의 해에 소에게 배운다
무자년(戊子年) 쥐의 해가 가고 기축년(己丑年) 소의 해가 밝았다. 예로부터 농업을 주된 산업으로 살아왔던 우리 생활에서 소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친근한 관계였고 다른 동물과는 비교할 수 없이 소와 관련된 속담이 많이 만들어졌음이 이를 증명해준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 말은 경제에 관한 한 앞뒤를 계산하지 않고 목전의 이익만을 좇는 행동을 빗대었고 ‘남의 집 금송아지보다 제 집 돼지새끼가 낫다’는 말은 자기가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느린 소도 성낼 적 있다’ 했으니 순한 사람에게도 그만큼 예의를 갖추라는 가르침이고 ‘눈 먼 소에 멍에가 아홉’이라는 말은 별 볼일 없어 보이던 사람이 뜻밖에 일을 잘함을 뜻하는 것이니 사람을 함부로 업신여기지 말라는 교훈이다.
‘도랑에 든 소’는 내 둑은 물론이요 이웃 둑의 풀을 골고루 뜯어먹으니 서로가 이득이라는 넓은 아량의 표현이며 ‘빈집에 소 들어간다’는 말은 없는 집에도 느닷없는 행운이 있을 수 있음으로 희망을 주려 했던 말이라 하겠다. ‘소같이 일하고 쥐같이 먹으라’ 했으니 예나 지금이나 부지런히 일하고 지출을 줄여야만 재산을 모을 수 있다는 당연한 가르침이요 ‘쟁기질 못하는 놈이 소 탓한다’는 말은 목수가 연장 탓하듯이 자신의 잘못보다는 주변의 여건을 탓하는 잘못을 꾸짖는 격언이다. 이 밖에도 소와 관련된 속담은 세어 보면 백 가지가 넘을 정도로 많은데 관심 있는 이들은 따로 한번 찾아볼 것을 권하고 이번에는 소와 관련된 사자성어 몇 가지를 통해 교훈을 얻어보고자 한다.
우보천리(牛步千里)라 했으니 글자 뜻 그대로 소걸음으로 천리를 간다는 말이다. 어떤 일을 목표로 하고 나아감에 있어서 단번에 이루어지는 일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일들은 꾸준하게 끈기를 가지고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가다 보면 어느 새 도착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니 올 한 해에 세운 목표도 소가 한걸음 한걸음을 움직여 천리를 가듯이 꾸준하게 정진했으면 한다. 석전경우(石田耕牛)라는 말이 있으니 조선조에 팔도 사람들의 성향을 사자성어로 요약하는 과정에서 인내심이 강하고 부지런한 황해도 사람들의 성향을 표현한 것이다. 자갈밭을 가는 황소처럼 우리에게 닥치는 일이 힘들고 진도가 쉬이 나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 마침내 뜻을 이루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교각살우(矯角殺牛)는 소의 뿔 모양을 바로잡으로 하다가 결국은 소를 죽인다는 뜻이므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작은 결점을 고치려다가 오히려 큰 일을 그르츠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는 경구로 받아들여야 하겠다. 우음마식(牛飮馬食)은 소처럼 마시고 말처럼 먹는다는 뜻으로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과식하지 말라는 뜻으로 쓰이는 사자성어인데 사실 소와 말은 사람보다 덩치가 커서 많이 마시고 먹는 것처럼 보일 뿐이고 실제로 과음과식은 하지 않는다. 먹고 마시기를 토악질이 날 때까지 하는 것은 오직 사람 뿐이라 했으니 적당한 식생활로 건강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고사성어는 흑우생백독(黑牛生白犢)이라는 조금은 생소한 글인데 담고 있는 뜻이 한 해를 시작하는 마당에 가슴 깊이 새길만한 가치가 있기에 상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중국의 송나라에 매우 어질고 의로운 사람이 있었는데 하루는 그 집에서 기르는 검은 소가 영문도 모르게 흰송아지를 낳아 이를 궁금히 여겨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는 “이것은 길한 징조입니다.”라고 대답하며 그 소를 제물삼아 제사를 지내라 하기에 그리 하였더니 일년 후에 그의 아버지가 갑자기 눈이 멀어 앞을 못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직후에 그 검은 소가 또다시 흰송아지를 낳자 아버지는 아들에게 공자를 찾아가 물어보라고 하였다. 아들은 “지난 번에 그 일을 묻고 난 후에 아버님 눈이 멀었는데 왜 또 물으라 하십니까?”하니 그 아버지는 “성인의 말씀은 먼저는 어긋나다가도 뒤에는 맞는 수가 있느니라.”하며 아들을 공자에게 보냈다. 공자는 또 “길한 조짐이니 그 송아지로 제사를 지내라.”고 해 그대로 하였는데 일년 뒤에는 아들마저 눈이 멀고 말았다. 세월이 흐른 후 초나라가 송나라를 공격해 그 부자(父子)가 사는 마을을 점령하는 바람에 대다수 장정들이 죽었는데 그 부자는 눈이 멀었기 때문에 생명을 부지하게 되었고 전쟁이 완전히 끝난 후에 멀었던 눈이 기적처럼 다시 회복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인생에는 행복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불행만 있을 수도 없다는 것을 가르치고자 한 이야기이다. 올 한해 우리는 견디기 힘든 불황과 불행 속에 살아가게 되겠지만 실의에만 빠져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기축년 소의 해에 소로부터 배워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