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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是我讀
『7월에 읽은 책들』
강남국 읽음
≪광휘의 속삭임≫
정현종 시집
문학과지성사 刊
인생에 역할 모델이 있다는 것은 여간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끊임없이 닮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가수를 좋아하면 노래로, 춤꾼을 좋아하면 춤으로, 미술을 좋아하면 미술로, 소설가나 시인 혹은 평론가를 좋아하게 되면 분야별로 닮으려고 할 테니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그것은 지독한 고독의 여정이기도 하다. 발버둥 쳐도 따라갈 수 없을 때의 절망감 또한 현실 속에서 내가 삭혀야 하는 것이기에 그 고통 또한 결코 작지 않다. 그러나 역할이 모델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는 큰 차이가 있음 또한 사실이기에 닮으려는 노력은 가히 가상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그런 역할 모델의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한 분이 바로 정현종시인이었다. 그이 시는 결코 쉽지 않다. 제목이 너무 좋아 선택했던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를 비롯해 『사물의 꿈』『나는 별아저씨』『한 꽃송이』『고통의 축제』등을 읽었지만 그의 시는 여전히 난해하고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그의 단 한 편의 시는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짤막한 「섬」이라는 시다. 나는 그 시를 오랫동안 좋아했다.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우연한 기회에 지난 6월 24일 나는 모 방송국의 <북카페>라는 프로그램에 초대를 받고 독서회 회원들과 함께 정현종 시인의 9번째 시집인 『광휘의 속삭임』을 갖고 얘기를 나누는 중에 몇 십 년을 가슴에 묻었던 얘기를 시인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저자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었고 시인은 차근차근 자신의 소견을 들려주셨다. 남의 시를 읽고 이해를 못하는 절망감이 컸다는 하소연에 전혀 그럴 필요 없다고 하시며 그냥 자신이 느끼는 것으로 충분하단 위안의 말씀을 하시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 줄의 시가 어떤 산고(産苦)를 거쳐 세상에 태어나는지를 말씀해 주셨는데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험해도 세상을 사랑하는 감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주셨다. 그리고 자신이 많은 영시를 번역했기에 영시를 그대로 암기하는 것이 좋다는 조언도 주셨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허나 이번에 읽은 시집도 여전히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시란 단박에 좋아지는 경우 보다는 여러 번 읽다 보면 잔잔히 가슴을 적시는 것들이 많은데 유난히 이번 시집은 그런 것 같다. 녹화시에 이미 몇 편을 사용했으니 독자들은 그 외의 시를 골라 낭독해 줬으면 좋겠다는 방송국 측의 주문에 따라 우리 독서회 팀은 그 중의 몇편을 골라 낭독했는데 좋았다. 외국의 시는 가급적 원어 그대로 암기하는 것이 좋다는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좋은 시를 쓰려면 그런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배운 기회였다고나 할까. 특별히 역할모델의 경우에는 자신의 삶을 새롭게 재정립하고 느슨한 삶의 끈을 과감히 끊으며 조이게 하는 것 같다. 하늘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게 한다고나 할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는 여전히 스승이기 때문이다. 좋은 시집을 만나는 것은 여전히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첫사랑≫
예이츠 시집
민음사 刊
예이츠(W.B.Yeats 1865-1939)는 아일랜드 출생으로 192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관여하기도 했으며 주요 시집으로는 『그늘진 물』『푸른 헬멧』『쿨호(湖)의 백조』등이 있다. 『First Love』라는 이 시집을 지난 2002년 9월에 읽긴 했으나 이번에 역자인 정현종시인을 만남으로써 재독하게 된 것인데 많이 새로웠다. 그는 20세기 초반 영시사의 발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1890년대 몽상적 낭만주의의 시기로 아일랜드의 민속과 관념적 미의 세계에 심취했던 시인은 「이니스프리의 호도("The Lake Isle of Innisfree")가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을게다. 열렬한 여성 애국주의자 모드 곤(Maud Gonne)의 영향을 받기도 했으며 그 후에 발표한 「큰 호수의 야생 백조들」(“The Wild Swans at Coole")와 「내 딸을 위한 기도」(”A Prayer for My Daughter")등등이 특히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비잔티움의 항해」(“Sailing to Byzantium")과 「서커스 동물들의 도망」(”The Circus Animals' Desertion")등의 작품이 좋았다. 특히 예이츠의 시를 깊게 읽으려면 반드시 다음 몇 편의 시는 꼭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Down by the Salley Gardens」「The Rose of the World」「The Lake Isle of Innisfree」「When You Are Old」「No Second Troy」「The Wild Swans at Coole」「Easter」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니스프리의 호도」를 우리말로 감상해 보자.
나 이제 일어나 가라, 이니스프리로 가리,
거기 외 엮어 진흙 바른 오막집 짓고
아홉 이랑 콩을 심고, 꿀벌통 하나 두고,
벌들 잉잉대는 숲속에 홀로 살으리.
또 거기서 얼마쯤의 평화를 누리리, 평화는 천천히 아침의 베일로부터 귀뚜리 우는 곳으로 떨어져내리는 것; 한밤은 희미하게 빛나고, 대낮은 자줏빛으로 타오르며, 저녁엔 홍방울새 날개 소리 가득한 곳.
나 이제 일어나 가리, 밤이나 낮이나
호숫가의 잔물결 소리 듣고 있느니;
한길이나 잿빛 포도(鋪道)에 서 있으면
가슴 깊은 곳에서 그 소리 듣네.
「쿨호(湖)의 백조」는 다음과 같다.
나무들은 가을빛으로 아름답고
숲속 오솔길은 메마른데
시월 황혼 아래 물은
고요한 하늘을 비춘다.
바위 사이 넘치는 물결엔
백조 쉰아홉 마리.
내 처음 세어본 이래
열아홉 번째의 가을이 찾아왔구나,
그때는 미처 다 세기도 전에
모두들 갑자기 솟아올라
커다란 부서진 파문을 그려 회전하며
날개 소리도 요란히 흩어지더니.
저 눈부신 것들을 보아온 지금
내 가슴은 아프다.
맨 처음 이 물가에서
머리 위의 요란한 날개 소리
황혼에 들으며
발걸음도 가볍게 걸었는데,
모든 게 지금은 변하였구나.
아직도 지치지 않고 사랑하는 것들끼리
차가운 정든 물결 속에 헤엄치거나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것들의 가슴은 늙지 않았다;
어디를 헤매든 정열이나 패기가
아직도 그들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고요한 물위를 떠간다, 신비롭고, 아름답게.
어느 골풀 속에 그들은 집을 짓고
어느 호숫가나 연못에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할 것인가, 내 어느 날 깨어 그것들이 날아가 버린 걸 알았을 때. (정현종 옮김)
“The trees are in their autumn beauty,
The woodland paths are dry.
Under the October twilight the water"라고 암기하는 시인데 음미할수록 깊이가 더하는 것 같다. 시인이 56세 때인 1916네 쓴 이라고 전해진다. 지금도 다 외우지 못하는 것이 여간 안타깝지 않다. 그렇지만 모처럼 예이츠의 시향에 흠뻑 빠진 이틀이었다.
≪슬픈 카페의 노래≫
카슨 맥컬러스 지음 장영희 옮김
열림원 刊
장영희 교수가 세상을 떠난 지 몇 개월이 지났다. 평생 그녀의 왕팬으로 살아온 나는 그녀가 죽은 후 그녀가 번역한 모든 책을 찾아서 읽기로 하였다. 그 첫 번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 책 이름을 알고는 있었으나 좀처럼 읽을 기회를 얻지 못했었는데 기말고사도 끝난 김에 큰맘 먹고 단숨에 읽었다. 이 책을 펼치면 맨 처음 다음과 같은 글이 보이는데 ‘아주 이상하고 기이한 사람도 누군가의 마음에 사랑을 불 지를 수 있다. 선한 사람이 폭력적이면서도 천한 사랑을 자극할 수 있고, 의미 없는 말만 지껄이는 미치광이도 누군가의 영혼 속에 부드럽고 순수한 목가를 깨울지도 모른다’라고 쓰여 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아하 장 교수는 이 대목 때문에 이 책을 번역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역자가 옮긴이의 말에서 얘기했듯이 작가는 윌리엄 포크너와 함께 미국 남부의 대표적 작가 중의 한사람이다. 1917년 조지아 주 콜럼버스에서 부유한 보석상의 딸로 태어났다. 역자가 이 저자에 대해서 큰 애착을 왜 가졌을까 하고 생각하게 됐는데 솔직히 작품 보다는 작가에 대한 연민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됐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작가 맥컬러스는 평생 동안 쉴 새 없이 병마에 시달렸다고 전해진다. 열다섯 살 때 열병을 앓고 몇 번의 뇌졸중을 거쳐 서른 살 초기부터는 걷는 것조차 힘겨울 정도였다는 작가다. 허나 그녀는 죽을 때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고 한다. 삶에 찾아오는 질병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였단 뜻일까? 남부 조지아 주의 어느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사랑의 삼각관계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작가 맥컬리스의 최대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주인공 아밀리아에게 찾아온 꼽추 라이먼을 사랑하게 되는 주인공의 심리를 내내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랑의 힘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한 것일까? 이 책은 우리가 사랑의 열병을 앓는 이유가 뭘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역자는 이 책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슬픈 카페의노래』는 사랑과 고독의 드라마요, 제목 그대로 외로운 사람들이 부르는 사랑의 노래이다.” 평생 간직하고 싶은 책이다.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허수경시집
창작과비평사 刊
매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허수경 시인이 골라주는 한국일보의 『詩로 여는 아침』에 시를 접하다 보니 2007년 11월 달에 읽었던 이 시집을 다시 읽게 되었다. 그녀가 지난 1988년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라는 시집을 냈을 때 그 제목이 너무 좋아서 나는 무작정 그녀를 좋아하기 시작했었다. 92년 두 번째 시집 『혼자 가는 먼 집』을 이내 구해서 읽었고 그녀는 홀연 뜻밖에도 선사고고학을 공부한다고 독일로 떠났다. 그럼에도 나는 허수경이라는 시인을 늘 잊지 않고 있었고, 간간히 전해오는 그녀의 소식을 귀담아 듣곤 했다. 이 시집을 엮은 것도 벌써 8년여가 흘렀기 때문에 지금은 얼만큼의 변화가 있는지 자세히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녀는 끊임없이 낯선 종교와 정치와 사람들 사이에 섞여 독일의 체류기간이 길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소설가 신경숙이 발문을 썼는데 둘이는 아주 친한 듯!!!. 소설가가 읽어내는 시인의 내면 풍경이 여간 곰삭지 않다. 나는 지금도 『혼자 가는 먼 집』라는 시집을 꺼내 종종 읽곤 하는데 기억나는 구절인 딱 하나다.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라고 시작되는 시 말이다. 신경숙은 그녀의 시에 대해서 “우리말을 그처럼 자유자재로 내왕하고 능란하게 퍼 올려 시의 밭을 일구어내는 다른 시인을 알지 못한다.”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는 덧붙여 “명민하게 우리말을 새롭게 배치해나가는 수경의 행보는 신선했다.”라고도 했고 또 “정을 주면 이 세상에 너와 나 둘뿐이라는 듯이 대상에게 성실하다.”는 것이라고도 했다.
「폐병쟁이 내 사내」란 작품을 읽어보자
<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 몰골만 겨우 사람꼴 갖춰 밤 어두운 길에서 만났더라면 지레 도망질이라도 쳤을 터이지만 눈매만은 미친 듯 타오르는 유월 숲속 같아 내라도 턱하니 피기침 늑막에 차오르는 물 거두어주고 싶었네
산가시내 되어 독오른 뱀을 잡고
백정집 칼잽이 되어 개를 잡아
청솔가지 분질러 진국으로만 고아다가 후후 불며 먹이고 싶었네 저 미친 듯 타오르는 눈빛을 재워 선한 물같이 맛깔 데인 잎차같이 눕히고 싶었네 끝내 일어서게 하고 싶었네 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
내 할미 어미가 대처에서 돌아온 지친 남정들 머리맡 지킬 때 허벅살 선지피라도 다투어 먹인 것처럼 어디 내 사내뿐이랴>
그녀는 1964년생인데 시를 읽다보면 나이보다 훨씬 더 들어 보인다. 시인은 그렇게 각혈하는 것인가. 독일의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선사고고학을 공부하고 있으면서 동방문헌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시인의 근황이 궁금하다. 나는 처음 그녀의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를 여전히 좋아한다. 소설가 『윈미동 사람들』의 양귀자는 『슬픔도 힘이 된다』란 책을 내기도 했지만 그 말들을 곱씹을수록 나에겐 힘이 됐고 활력이 됐었다. 오늘도 여전히 나는 그 거름위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보낸다. 허수경의 다음 시집은 얼 만큼의 생의 갈증을 태워 태어날까 지금도 궁금해진다.
≪와락≫
정끝별 시집
창비 刊
명사가 아닌 책의 제목으로는 이 책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와락’이라니? 이런 제목이 있을 수 있는가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던 시인의 시집이기에 놀라움은 더욱 컸었다. 내 서가에 꽂힌 정끝의 시인의 책들을 꼽아보니 동시 이야기인『시가 말을 걸어요』『그리운 건 언제나 문득 온다』『천개의 혀를 가진 시의 언어』해설집인『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1』『삼천갑자 복사빛』그리고 『와락』이만하면 나도 정끝별시인의 골수팬이 아닐까? 막내동생보다 한 살이 더 많은 정끝별은 내가 무척 좋아하는 시인이다. 한번도 만난적은 없지만 그녀의 책이 나올 때마다 서슴없이 호주머니를 털어 그녀의 책을 샀었으니 자신있게 그녀의 팬이라 해도 허물은 없으리라.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녀의 책을 그렇게 구입하게 했을까? 그건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함에도 정끝별이 책을 냈다하면 또다시 구입하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여기서 잠깐 그녀의 양력을 살펴보자. 시인은 64년 나주에서 태어나 이대 국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했다. 지난 88년 ‘문학사상’신인상 시부분에 「칼레의 바다」외 6편의 시가, 또 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부분에 「서늘한 패러디스트의 절망과 모색」이 당선되어 시쓰기와 평론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읽은 그녀의 『와락』은 어려우면서도 그녀의 시적 사유의 폭이 상당히 넓어졌다는 생각을 내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잠깐 출연했던 방송에서 다루기도 했었던 『와락』을 몇 번을 읽다보니 그녀의 시적 성숙이 보이는 듯 했다. 한 번도 만나본적은 없지만 꼭 내가 이끌고 있는 독서회에 한 번 초대하고 싶은 시인이라는 확신을 얻었다고나 할까. 이 책의 첫 페이지를 열면 「불멸의 표절」라는 시가 실려 있는데 어떤 출사표 같은 느낌이 들면서 읽을수록 진수가 느껴지는 아주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금빛 키스」표제작인「와락」경쾌한 리듬을 느끼게 하는 「추파, 춥스」「세상의 등뼈」등은 어떤 심오한 사상을 접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뱀이 허물을 벗듯이 언어의 물갈이를 하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나의 삶에서 어떤 것을 그렇게 버리고 새것으로 삶을 채울 수 있을까하고 시집을 읽는 내내 그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블루 써핑」이라는 시도 시의 적절한 배치가 활짝 꽃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일상의 리듬감이 느껴지는 「시시각각」과 함께 재음미할 수 있는 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17페이지에 실려 있는 표제작인 「와락」을 다시 읽어본다.
<반 평도 채 못되는 네 살갗
차라리 빨려들고만 싶던
막막한 나락
영혼에 푸른 불꽃을 불어넣던
물후의 입술
천번을 내리치던 이 생의 벼락
헐거워지는 너의 팔 안에서
너로 가득 찬 나는 텅 빈,
허공을 키질하는
바야흐로 바람 한 자락>
다는 이해했다고 할 수 없지만 뭔가 가슴이 꽉찬 듯한 느낌은 나만일까???
≪서른살 직장인 책읽기를 배우다≫
구본준·김미영 지음
위즈덤하우스 刊
정운찬 서울대 교수는 ‘사람은 세 가지를 만나야 한다. 그것은 바로 “책, 여행, 사람”이다. 그 중에서도 으뜸은 책이다’라고 말했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아니고 바로 책이 사람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럼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오늘날 서점에 한 번 가보라. 서권기에 영혼이 맑아지는 듯한 느낌도 잠시 난 언제나 숨이 막힌다. 그 숱한 책들 중에서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를 안다는 것을 실로 엄청난 일이 기에 하는 말이다. 좋은 책을 고른다는 것이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뜻일게다. 책이 별로 없었을 때는 차라리 고르기가 쉬웠다. 그렇지만 시대가 변하지 않았는가. 양서를 고른다는 것이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것이 사실이고 그렇기에 좋은책을 고르는 안목을 기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체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다. 나같은 경우에도 한 권의 책을 구입하기 까지는 실로 여러단계를 거친다고 할 수 있다. 맨 먼저 신문의 서평란을 깊이있게 읽고, 누구의 글이던 그의 책속에서 거론된 책을 우선적으로 구입하게 된다. 물론 여기에 익히 아는 저자와 출판사의 이름을 확인하는 것도 빠뜨릴 수 없는 나만의 선택법이다. 저자는 물론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는 출판사의 책은 선뜻 구입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번 정현종시인을 만났을 때 질문을 했던 내용이기도 한데 특별히 시집을 고를 때는 내가 생각해도 심하다 싶을 만큼 출판사를 따지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솔직히 출판사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이 어떨지 모르지만 고백하자면 문학과지성사, 창비, 민음사, 세계사 문학동네나 열림원이 아니면 거의 시집을 구입하지 않는다. 물론 이런 내 습성이 반드시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어쩐지 시집을 구입할 때면 맨먼저 출판사를 보게 되는 것은 나의 잘못된 생각인지도 모른다. 이름있는 출판사에서 나왔다고 해서 다 좋은 시집은 아니라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그렇게 된다는 뜻이다. 시인을 익히 들어서 아는 경우에는 출판사를 따지지 않고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에게는 드물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은 시집을 선택하는 기준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표제작 그대로 젊은 세대에게 책을 선택하는 기준을 잘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좋은 책을 고르는 안목을 길러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탁월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여성들이라면 한의학 이유명호 씨가 쓴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자궁』등을 추천하고 선물한다는 얘기등이 나온다. 또한 이 책에는 독서의 즐거움에 대한 얘기도 나오는데 “책을 통해 자아가 커지고 감정이 순화되면서 지식과 감정, 사고가 새롭게 재발견되고 재조직되는 쾌감”(P-191)도 보이고 “책 읽기는 자기를 알게 만드는 측면에서 자기경영의 시발점”(P-199)이라는 견해에도 동의한다. 끝으로 이 책의 말미엔 ‘책이 그들을 만들었다’라는 글에 서울대 정운찬교수, 이어령교수, 이지성, 건축가 승효상등과의 대담도 나오는데 특히 승효상은 “독서 없는 프로페셔널? 생각조차 할 수 없다”란 글도 재밌게 읽었다. 맞는 말이다. 책을 왜 읽어야하는가란 해묵은 논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책읽기는 바로 삶이고 생활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먹고 호흡을 해야 살 수 있는 것처럼 매일 책을 읽어야 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과의 만남이다.
≪고민하는 힘≫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사계절 刊
우선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제목이 제일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이름이 낯설었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금 깨닫게 됐다. 재일교포 2세인 저자는 1950년 생으로 일본에서 태어났다. 독일 뉘른베르크 대학에서 정치사상사를 전공한 저자의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제목이 좋았다는 말을 했지만, 요즘처럼 복잡한 세상에 고민을 더 하란 말인가 하고 반문하기도 했었기에 이 책은 더 각별하게 읽게 된 것 같다. 저자는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 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청춘은 아름다운가? 믿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왜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늙어서 ‘최강’이 되라”라 고민의 바다를 건너고 있는 청춘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전한다.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의 저자 김혜남은 이 책을 추천하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법을 배우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미 100년 전 오늘날의 세상을 예견했던 일본의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1867-1916)와 독일의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1864-1920)의 말을 빌려 ‘고민하는 힘’으로 삶의 의미를 되찾아보자고 말한다.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의 책을 각각 한권씩 읽었던 기억이 나서 한편으로 반가웁기도 했었다.(이 책의 말미엔 두 사람의 자세한 연보가 나와 있다.) 이 책은 나를 재발견하는 자아의 성찰에 많은 도움을 줬다고 생각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첫 장부터 그 고민을 하게 만든다. 나를 온전히 아는 사람이 과연 누구일까?
≪색다른 문학사≫
페터 브라운 지음 홍이정 옮김
좋은책 만들기 刊
흥미롭게 이 책을 읽었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작가들의 사생활을 들춘 책이기에 때로는 인간적인 연민이 느껴지기도 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도 오늘날 우리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 앞에선 안타깝기조차 했다. 하나같이 어쩜 그렇게 어렵고 힘들게들 살았는지……. 예술을 한다고 다 그런 것 같지도 않을텐데. 낯선 이름이 없지 않았으나 전에 공부했던 『독일 문학사』에서 거의 다뤄졌던 인물들이기에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괴테를 비롯한 실러, 하인리히 하이네, 토마스 만, 프란츠 카프카, 헤르만 헤세, 베르톨트 브레히트, 볼프강 보르헤르트에 대한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이 책의 저자 페터 브라운은 독일 작가인데 다뤄진 작가들에 때로는 치부 같은 뒷얘기가 읽는 속도를 더하게 했다. 세계 문학사에 찬란한 별과 같은 괴테의『젊은 베르테르의 슬픔』『파우스트』“밤마다 독일을 생각해야 잠이 온다.”던 하인리히 하이네, 인간 운명의 부조리, 인간 존재의 불안을 통찰하여 현대 인간의 실존적 체험을 극한에 이르기까지 표현하여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높이 평가받고 있는 『변신』『심판』『성』의 카프카, “학교는 오히려 날 망가뜨렸다.”고 항변하는 『데미안』『수레바퀴 아래서』『싯다르타』의 헤르만 헤세, 기회가 되면 더 연구해 보고 싶은 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26세에 요절했다는 시인이며 극작가인 볼프강 보르헤르트(1921-47)! 그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그럼 할 일은 단 하나뿐』을 우선 읽어보고 싶어졌다.
≪박종호에게 오페라를 묻다≫
박종호 지음
시공사 刊
저자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클래식을 들어왔기 때문일 테지만 저자의 책을 처음 읽었는데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대단한 사람이구나 했다. 우리는 흔히 어떤 분야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 하면 ‘해박한 지식’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정신과전문이고 현재 정신과 의원 원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는 분이 어떻게 이렇게 해박한 책을 쓸 수 있단 것인지 하여튼 대단하다. 오랫동안 클래식을 들어왔지만, 솔직히 클래식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다. 그래도 귀는 많이 열려있다 생각하지만 클래식에 대해서 말을 하라고 하면 꿀을 먹기 일쑤다. 그래서 좀처럼 아는 체를 않고 산다. 지금도 서가의 한 칸을 거의 메우고 있는 클래식에 관한 책들이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자기를 봐달라고 아우성인 소리를 듣지만 좀처럼 짬을 내지 못하고 있다. 저자에 대해서는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1~2』라는 책일 알고 있기 때문인데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오페라에 대한 짧은 식견에 탄복해가면서 읽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280쪽의 이 책으로도 엄청난 양인데 『불멸의 오페라 ⅠⅡ』는 무려 2천여페이지의 책이라는데 벌렁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진 것이다. 과연 한국의 누가 그만큼 방대한 자료의 오페라에 대한 책을 쓸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 책은 아주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오페라에 대한 거의 모든 궁금증은 이 책 한권만으로도 쉽게 풀린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대화형식을 빌어 설명하고 있고 초보자들이 들을만한 추천도 아주 유용했다.
≪날아라 버스야≫
정현종 산문집
큰나 刊
지난번 저자로부터 알게 된 책이었다. 제목부터 시적이란 느낌이 우선적으로 들었던 책인데 출판사는 낯설었지만 아주 재밌게 읽었다. 수십 년 동안 시를 써오면서 시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속속들이 읽을 수 있었던 것이 제일 좋았다. 산문선이기 때문에 그동안 시인이 세월의 시차를 두고 썼던 것들이어선지 좋았다. 시로는 다 표현할 수 없어 산문을 쓴다고 어느 분이 말했다지만 시만 읽다 산문을 읽어보면 훨씬 더 가까워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을 펼치면 맨 먼저 “네 눈의 깊이는 네가 바라보는 것들의 깊이이다. 네가 바라보는 것들의 깊이 없이 너의 깊이가 있느냐. 깊고 넓다 모든 표면이여 그렇지 않느냐 샘물이여.-「네 눈의 깊이는」”란 글이 우선 눈에 띄는데 흠칫하게 놀랬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돼 있는데 1 현재를 기다린다 2 추락이여, 안녕 3 빛-언어, 깃-언어가 그것이다. 글의 곳곳에 시인만이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구절들이 많았고, 시에서 접할 수 없었던 인간적인 면모가 읽는 맛을 더했다. 다 그런 것은 아니라지만 보편적으로 예술가란 사람들이 얼마나 괴팍스러운가. 때로는 너무 이지적인 이미지가 많은데 수필을 읽다보면 시에서 다 읽지 못한 내면의 풍경과 사유의 언저리를 엿볼 수 있어 어떤 땐 수필이 훨씬 더 인간냄새가 난다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저자가 좋아한다는 네루다의 책을 읽게 된 것은 덤이다. 특히 183쪽에 있는「시란 무엇인가」를 유용하게 읽었다. “술 없는 세대가 어디 있으며 모래 없는 사막이 어디 있으랴”
2009. 7. 21~24 청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