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문화란 땅속에 묻혀있던 옛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으로 지역의 역사와 당시의 풍습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입니다. 대덕구를 비롯한 대전분지의 고고학적 조사는 1980년대 이후 각종 개발사업과 관련하여 활발히 진행되었으며 시대별로 많은 자료가 발굴되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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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봉동 정수장부지 내 남사면 지역에서 조사된 유적은 돌덧널무덤 3기, 움무덤 9기, 집자리 1기, 그리고 집자리의 온돌유구 1기 등 총 14기가 조사되었다. 용호마을 입구 도수관 시설지역에서 집자리와 구석기시대 유물 5개층이 발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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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족산성 내부의 평탄면 곳곳에는 대략 10여 개소 이상의 건물지가 존재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조사지역은 북벽(北壁) 부근의 약1,200평에 달하는 고지대인데 이곳은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건물지가 존재하였음이 밝혀졌다. 현재 가장 잘 남아 있는 건물지는 고려시대에 축조된 제1건물지와 제2건물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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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 주거지가 발굴된 지역은 상서동으로 대전∼신탄진 도로와 1번 국도 사이에 남북으로 형성된 구릉의 동쪽 능선으로 대전∼신탄진 도로에 의해 동편의 능선 말단부가 잘리워진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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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동 지역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가 총 9기가 조사되었다. 주로 구릉 정상부와 사면(斜面)에 조성되었는데 정상부와 경우 주거지 사이에 중복현상이 심한 편이며 사면의 주거지들은 대부분 반파(半坡)된 상태로 장축 방향(長軸方向)은 등고선(等高線)과 평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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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유적이 위치한 곳은 비래동 419, 429번지 일대와 산12-6번지 일대의 해발 128m 야산 정상부이다. 이곳은 비래동 비래골 남쪽 산등성과 이어지는 것으로 경부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길게 뻗어 있으며 고인돌이 위치한 산 정상부는 비교적 평탄한 면을 이루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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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는 앞의 토광묘 유적지의 구릉이 우배형(소등모양)대지를 이루고 이 구릉에 토광묘와 옹관묘가 분포 배치되었는데 이곳에서 다시 동북쪽 높은 곳에 경부고속도로 남쪽에 반형(소반모양)대지에 토광묘 유적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따라서 추가발굴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의외로 앞의 토광묘는 발견되지 않고 토광묘와 동일시대로 추정되는 주거지(집자리)가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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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동 건물지 유적이 있는 곳은 현재 법동 한마음아파트와 북쪽의 경부고속도로 사이의 완만한 구릉지 경사면으로 당시 이 일대는 밭으로 경작되고 있었으며 경작지의 한가운데에 계족산으로 이어지는 폭 3m의 소로가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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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동 유적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남쪽 주능선 상에 조성된 수혈주거지는 백제시대 1호 토광묘 남쪽 170㎝ 거리에 위치하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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