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중심을 조금 벗어난 한적한 곳에 아담한 한국 식당이 있습니다.
그곳 사장님의 이름은 이경옥(55)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사장님이라고 부르지도 않습니다.
'빅 마마'라고 부릅니다.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라는 의미의 약자로 존경이 담긴 호칭입니다.
인도 캘커타의 테레사 수녀님이 마더 테레사로 불렸던 것과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마더보다도 더 친밀한 의미의 마마,
그러나 그냥 마마로 부르기에는 너무도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그녀를
케냐 사람들은 빅 마더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그러하듯이 케냐 또한 총체적인 가난의 대명사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이 구할 수 있는 재료로 간단히 지어놓은
우리식으로 말하면 판자촌을 형성해 놓았습니다.
철길을 따라 이루어진 여의도 크기만한 빈민촌은
먹을 것도 물도 전기도 아무것도 없지만 오물들들이 뒤엉켜 각종 질병의 온상이 되어 있었고
늘 그렇듯이 그곳엔 아이들과 파리들로 넘쳐났습니다.
물론 그 아이들은 굶주림과 죽음 앞에 무방비로 내던져져 있었습니다.
'누가 이곳에 가려느냐?' 주님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 합니다.

갑자기 그 많은 아이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습니다.
빅마마의 빵 분배가 시작되었습니다.
계속 이어져 온 일이었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진지하다못해 비장해 보였습니다.
어떻게든 빵을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잠시후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빅마마가 가져온 400개의 빵을 다 나누어 준 후에도 여전히 받지 못한 아이들이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빵을 받아든 아이들은 신이 나서 날아(달려)갔습니다.
반면에 받지 못한 아이들의 얼굴에 드리운 실망의 빛이란 참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그 작은 아이들의 실망과 분노에서 폭동의 두려움이 느껴졌습니다.
빅 마마는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이렇게 좋은 일을 하고도 늘 욕을 먹게 되지요."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서 진정한 제자의 모습이 떠올려집니다.
빵을 받아 그것을 맛있게 먹고 있던 한 아이는 "오늘은 걱정이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날마다 굶주림 속에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에게 빵 하나가 가지는 위력은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얼마나 불공평한 곳인가를 새삼 깊이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낮은 곳에서 희망이 되고 있는 빅 마마가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그냥 단순한 자선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예수님의 살과 피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생명이었기 때문입니다.

빅 마마가 운영하는 한국 식당의 거의 모든 종업원이 청각장애인들이었습니다.
케냐의 수화와 한국의 수화가 다르기 때문에 빅 마마는 수화를 배우고 있었습니다.
20여년 전 한국에서 봉사활동을 나가 수화를 배웠는데
두 달만에 통역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는 열심도 있었고 남다른 재능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그 두 가지가 케냐에서도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미 소문이 나 있었기에 청각장애인 하나가 빅 마마를 찾아왔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었다고 일자리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두 명이면 충분한 정원관리 인원이 이미 15명이나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일자리가 없다고 말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일을 시켜도 좋으니, 정식 직원이 아니어도 좋으니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을 하였습니다.
결국 마음 약한 빅 마마는 16번째 정원관리사를 두고 말았습니다.
그런 그녀에게서 마지막에 들어온 일꾼에게도 같은 품삯을 주었던 자비로운 포도원 주인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빅 마마의 장애인 사랑은 장소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시장에 가서도 그녀의 짐을 날라주는 사람은 한쪽 손이 조막손인 장애인이었습니다.
짐꾼은 그녀 덕에 자신이 먹고 살 수 있다고 한쪽 성한 손의 엄지를 치켜세웠습니다.
늘 그를 찾아 불러주는 빅 마마의 마음이 너무 고맙고 아름다워
저는 드디어 울먹이는 마음으로 티브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민들레 국수집을 보았을 때처럼 빅 마마와 그녀의 주변에서 하느님 나라를 보았습니다.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내려 공평한 사회를 만드시는
하느님의 공의가 그녀의 주변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여직원이 오랫만에 집을 방문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쌍둥이 자매인 두 청각장애인이 빅 마마의 식당에서 일을 함으로써
그녀들의 가족은 물론 부모와 형제를 포함한 모든 가족들이
다른 케냐 사람들과 다르게 굶지 않고 잘 살고 있었습니다.
부모는 자신의 대가족을 먹여살리는 두 딸을 여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빅 마마가 없었더라면 두 자매는 청각장애인의 무거운 멍에를 지고
사람들로부터 차별대우를 받으며 비참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형통하였던 요셉의 모습을 빅 마마에게서도 보게 됩니다.

빅 마마의 식당에서 일을 배운 직원들은 돈을 모아 자신의 식당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분명 그런 직원들 역시 빅 마마로부터 받은 자비와 사랑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도 빅 마마처럼 장애인들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삶을 실쳔하는 또 다른 마마들이 될 것입니다.
그들에게 그렇게 해야 식당을 낼 수 있게 해주겠다던지,
식당을 내거든 꼭 그런 식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가르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미 그들은 빅 마마를 보고 빅 마마처럼 살겠다고 수도 없이 결심했을 것이며
이미 빅 마마의 일거수일투족을 자신의 머리속에 새겨두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을 일컬어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군더더기 없이 보여주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양고기가 숯불 위에서 맛있게 구워지고 있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직원 회식이었습니다.
케냐 사람들은 구경조차 하기 힘든 양고기를 양껏 먹을 수 있는 날입니다.
양고기를 먹으면서 아프리카인 특유의 신명이 어깨춤으로 살아납니다.
곧이어 그들은 모두 일어나 함께 어울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춥니다.
수화로 함께 부르는 노래는 감동을 넘어 비장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빈부도 귀천도 없는 그들의 하나됨이 말없이 하느님 나라를 보여줍니다.
'아름답다!
아름답다!'
제게 떠 오른 생각은 오직 그 단어뿐이었습니다.
식당 종업원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빅 마마는 결코 예배의 중심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조용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한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그 모습이 더 아름다웠습니다.
모든 일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중심이 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예배의 중심이 되는 그 모습은 하느님 나라 백성의 귀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서로가 함께 하는 나라입니다.
한 인물이 언제나 중심에 서서 핵심인물이 되는 것은 하느님 나라에서는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닙니다.
그곳의 예배는 바로 그런 하느님 나라의 모습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감동이 배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방송의 막바지에 그녀는 자신의 소원을 피력하였습니다.
식당 한 구석에 연 기념품 가게가 잘 되어서
이미 돕고 있는 두 곳의 고아원을 잘 뒷바라지 할 수 있음은 물론,
먹을 것이 없어서보다 물이 없어 죽어가는 메마른 그곳의 사람들을 위해
우물 파는 기계를 하나 사서 곳곳에 우물을 파주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녀의 마음 속에는 이미 그녀 자신은 없었습니다.
빅 마마가 또 한 사람의 스승으로 제 마음에 새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녀의 목에 걸린 말없는 십자가가 오래도록 제 눈에 잔상으로 남습니다.
그녀가 왜 그렇게 고마운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그녀를 위해 그리고 케냐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갖가지 병을 몸에 달고도 그렇게 열심히 사는 그녀가 오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이렇게 살기가 참 어려운데... 혹 가족은 있는지? 혼자라면 조금은 낫겠다 어쨌던따뜻한 이야기로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