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에서 먹墨의 기원은 慇시대의 백자,옥기,그리고 갑골문에서 발견된 朱書와 먹의 흔적으로 보아 동이의 일원이었던 은대에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慇대에는 현재와 같은 고형묵이 아니라 목탄木炭이나 석묵石墨, 석묵石墨을 물에 녹인 묵즙, 그리고 단사丹沙-붉은 모래-를 제련시켜서 만든 주약朱液들을 사용하였고 周대에는 대나무 조각에 漆墨-옻먹-으로 글자를 썼다 전합니다.
/ 단사丹沙 : 주사朱砂, 또는 진사辰砂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황하수은(HgS)를 주성분으로 하는 광물로 결정편은 선홍색이고 다이아몬드 관택이 있다. 광산에서 캐낸 단사를 정제하여 물감으로 사용되었으며 붉은 색으로 인해 符-부적-을 쓰는데 사용되었다. 한방에서는 정신을 안정시키고 경풍을 멈추는 약으로도 쓰인다. /
그림3. 주사묵硃砂墨
周대에 이런 먹墨을 필기한 방법은 송연묵이 등장하기전까지는 죽목竹木의 첨필尖筆에 흑칠을 해서 간독簡牘(대쪽과 얇은 나무쪽)에 썼다고 합니다. 관련기록인 <관자 管子>를 보면 “춘추春秋 오패五覇의 한 사람인 제齊 환공桓公은 정치개혁을 위해 소리小吏에 명하여 그의 명령을 필묵을 사용하여 목독木牘-나무 조각-에 적었다.”고 말합니다.
현재와 같은 고형체로 된 먹의 시초는 송연묵인데 차이나에서는 漢대의 묘에서 잘게 부서진 상태의 송연묵이 유물로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송연묵松煙墨은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요?
기록을 찾아보면 후한後漢의 허신許愼-명제明帝,화제和帝때 신하-은 <설문>에 먹에 대해 쓰기를 검은 것으로 송연으로 만든다고 풀이하여 송연묵을 알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송대의 문헌 <묵경墨經>에는 漢대에 이미 먹을 소나무로 만들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하지만, 다른 기록들인 <後漢書>와 <東觀漢記>는 2세기초에 화제和帝(和帝, 89~105)가 외국에서 먹을 헌납받았고 황제가 나라에 大事가 있을때에만 이를 고위관료나 학자들에게 하사했다고 하여 고관대신들도 쉽게 구입하기 어려운 것으로 서술합니다.
위진魏晉시대까지 석묵을 사용한 것이나 위진魏晉시대에도 온전한 송연묵이 아니라 묵환墨丸을 사용한 것으로 볼때, 그리고 宋나라때 송연묵인 휘묵徽墨이 처음 생산되기 시작한 것, 후한後漢때 사신으로부터 받은 송연묵을 황제가 특별한 때에만 신하들에게 하사한 것으로 보아 ‘후한서’와 ‘동관한기’의 기록이 정확하다 보며 고구려등의 사신으로부터 받은 송연묵은 황실에서만 쓰일 정도로 흔지 않았던 귀중품으로 생각됩니다.
위진魏晉시대에 이르러서는 동이東夷의 송연묵을 모방한 형태로 보이는 옻과 소나무 그을음으로 만든 묵환墨丸을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묵환墨丸을 물에 타거나 벼루에 갈아 먹물을 만들어 쓰면서 석묵石墨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는 위魏 무제武帝의 아들인 조식曹植의 <악부시 樂府詩>의 “먹은 소나무松의 매연으로 만든다”는 기록과 <잠확유서 潛確類書>에 이르기를 “고대에는 칠유漆油-옻기름-로 쓰다가 뒤에 모두 석묵石墨을 쓰게 되었으며, 한漢대 이후에 와서는 송연松煙-소나무 그을음-과 동매桐煤-오동나무 그을음-가 성행하면서 석묵石墨은 사라졌다.”는 기록으로 석묵石墨대신 묵환墨丸이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만, 물에 타서 사용할 정도라면 동이 삼국의 송연묵 품질이 못되는 강도가 약한 연묵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나의 고구려 송연묵은 사신왕래시 주요물품으로 고구려말까지 계속 수입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열하일기》에 인용한 서위徐渭-明대 문인-의 《노사路史》기록은 “당 나라 시절에 고려는 송연묵松煙墨-소나무 연기 그을음으로 만든 먹-을 진상했는데, 이것은 송연(松煙)에다가 사슴의 아교를 섞어 만든 먹으로서 ‘유미(隃麋)’라고 불렀다.”고 언급하였고 한치윤의 《해동역사》도《노사路史》를 인용해, “당나라 때 고려에서 송연묵을 조공하였는데, 미각교와 섞어서 만들었으므로 이름을 유미隃糜라고도 한다.” 하여 고구려시대부터 사신의 왕래시 송연묵松煙墨이 중요 교역 물품임을 알려줍니다.
송연묵과 관련된 고구려 유물로는 고구려 모두루묘지牟頭婁墓誌의 전실前室 정면 상벽上壁에는 가로세로로 그어진 계선界線에 매항 10자 총 81항의 사경체寫經體 묵서과 동수묘冬壽墓에 쓰여진 묵서명墨書銘등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 삼국모두가 이 송연묵松煙墨을 중요한 교역물품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일본서기에는 고구려의 담징이 제묵법을 일본에 전수해주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신라도 또한 비교적 정품精品의 먹墨을 생산하였다고 하며 양가楊家·무가武家의 먹은 둘다 송연묵으로 그 품질이 매우 좋았으며 현재 일본의 쇼소원-정창원正倉院-에 그 유물이 남아 전하고 있습니다.
최초로 지나에서 현재와 같은 형태의 단단한 고형묵인 동이의 송연묵松煙墨을 처음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5대10국 말엽과 송대에 이르러서입니다.
5대 10국말엽인 남당(南唐 937년~975년)의 마지막 왕인 이욱李煜(960~975년)때 해초奚超와 그의 아들 정규廷珪가 북에서 내려와 남당의 흡주歙州-현재의 안휘성安徽省내-에 정착해 동이의 전통적인 송연묵松煙墨을 지나 최초로 제조해내면서 당대의 수많은 문인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었는데 이것이 현재까지도 대표적인 지나묵중의 하나인 휘묵徽墨입니다. 현재도 안휘성의 휘묵徽墨은 황산黃山의 소나무와 계곡물로 만든다고 품질이 휼룡하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림 4-5. 안휘성에서 제조된 휘묵徽墨 - 황산黄山 송연묵松煙墨 古墨(民国時代 1940年代製造) 8,000엔(약 80만원) 출처 : http://www15.plala.or.jp/seirei_insha/sumi01.htm
남당南唐이 송에 흡수되면서 휘묵徽墨은 장강이북으로도 퍼져 더 이상 수입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제작한 송연묵이 널리 쓰이게 됩니다.
이로인해, 송대는 송연묵의 제조법이 알려지면서 송연묵이 각광을 받게 되는데 소동파같은 이도 명묵을 수집하거나 동파법묵東坡法墨이나 홍화묵紅花墨이라는 먹을 직접 제조할 정도로 송연묵은 당대의 쟁쟁한 지나문인들의 예찬을 받았습니다. 특히, 해초부자가 남긴 휘묵徽墨은 문인,묵객들이 서로 가지고 싶은 보배로 일생 한번만 보아도 원을 풀겠다는 이들까지 있었는데 宋의 유명한 제묵사 반곡藩谷이라는 사람이 바로 그러하였고 소동파같은 이는 수집한 수많은 묵중에서 낙랑樂浪의 먹을 보배처럼 여겼다고 합니다.
송대에 이 휘묵을 바탕으로 고려에서 생산되는 송연묵에 버금가는 새로운 묵을 만들려고 노력하였으며 엽무실葉茂實은 휘묵을 보완하고 발전시켜 먹똥과 응어리가 안생기는 靑墨을 제조하였습니다. 또한, 희녕熙寧 원풍元豊연간에는 장우張遇가 유연油烟에 사향麝香을 배합하여 금박까지 입힌 최초의 유연묵油煙墨인 용향묵을 만들어 황제에게 바칩니다.
이렇게 유연묵이 자체적으로 만들어지게 된 송대에도 고려에서 들어온 송연묵松煙墨은 송의 문인들에게 상당한 사랑을 받았으며 고려에서 사신을 보낼 때에도 매번 물품목록에 포함되었습니다.
지나를 정복한 몽골제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유연묵이 본격적으로 사용되어 송연묵松煙墨과 유연묵油煙墨이 함께 제조되어 두 가지가 다 사용되었고 明대에는 소나무의 청연淸煙으로 만든 송연청묵松烟靑墨이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명대에 생산된 송연청묵은 당묵唐墨이라고도 호칭합니다.
청대에는 유연묵油煙墨이 사랑을 받아 건룡제도 자신의 이름을 붙인 유연묵을 제조해 사용하였고 황실이나 문인들 모두가 유연묵을 상당히 애호하여 유연묵이 각광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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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요약해보면 차이나 먹墨의 기원은 모두 東夷에서부터 기원하였고 세 번의 墨문화 발전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처음 먹墨을 도입한 나라는 동이東夷의 별종이 세운 慇이었고 주로 석묵石墨이나 묵즙을 사용하였고 周대부터 칠유漆油-옻기름-을 이용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고구려 송연묵松煙墨의 수입과 모방시기인데 후한後漢대에 이르러서 역사 최초로 고형묵형태인 고구려의 송연묵松煙墨이 사신왕래를 통해 황실용으로 수입되기 시작하였고 위진魏晉 때에는 東夷의 주요 수출품인 고구려의 송연묵松煙墨을 모방해 만든 먹墨이 발전을 거듭해 강도가 연약하지만 흑묵墨丸형태까지 발전한 것입니다.
세 번째는 5대10국말기인 고려초엽 南唐 이욱李煜(960~975년)때 해초奚超와 아들 정규廷珪가 휘주徽州로 피난와 정착하면서 송연묵松煙墨의 제조법이 알려져 宋대에 휘묵徽墨이라 알려지면서 처음으로 지나에서 송연묵松煙墨이 제조된 시기입니다. 제조기술을 습득하면서 고려의 송연묵松煙墨을 자체적으로 더 발전시키며 자신들만의 새로운 먹墨들을 만들었고 유연묵油煙墨도 개발하여 명대에는 墨문화가 東國보다 발전하여 먹墨의 황금시기를 맞이합니다.
이렇게 과거 먹墨 문화를 선도하였던 동국東國은 고려시대만해도 송나라에 주요 교역물품으로 각광을 받았던 송연묵松煙墨의 본고장으로서 명성을 떨치지만 송나라 이후로 고려말기부터 점차 역전되기 시작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지나 묵의 황금시기를 이루었다는 명나라에 비해 많이 떨어지게 됩니다. 송이나 명의 노력처럼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전시키거나 받아들여 가꾸려는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림 6. 가격이 무려 5,250엔인 일본인 상점이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송연묵松煙墨(固形墨)
그림 7. 인간문화재로 남은 한국의 묵공墨工 (현재, 전국을 통털어 먹을 생산하는 곳이 3~4곳뿐이라 함) 경북일보의 관련기사 " http://www.kyongbuk.co.kr/main/news/news_content.php?id=177255&news_area=120 "
참조 : 엠파스백과사전, 한민족백과사전, 임하필기, 열하일기, 해동역사 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