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교회의 영성에서 그리스도의 강생과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바로 '케노시스(kenosis)'이다. 즉 그리스도의 '자기비움'이다. 빌립의 편지에 케노시스의 핵심이 잘 드러난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2:6-11) 케노시스의 어원도 '당신의 것을 다 내놓고(heauton ekenosen)'의 고대 그리스어 '에케노센에서 유래한다. 이처럼 케노시스는 그리스도의 강생과 십자가에 못박히심,그리고 성체성사에 이르기까지 정교회 교리와 전례를 아우르는 동시에 비합리적이고 예술적인 러시아 민족의 정서와 결합하여 소위 '역설의 신학'이라고 불리는 현상을 만들어 냈다. 미움으로써 가득 차고 낮춤으로써 올려지고 죽음으로써 영원히 살게 된다는 저 신비한 가르침은 사실상 복음서 곳곳에서 발견된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의 비유, 돌아온 탕아의 비유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종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비움과 낮춤은 동방교회 교리 전체를 관통하는 구원의 원리가 되었다. 이러한 케노시스는 겸손과 온유의 정신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