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박 7일간의 담금질…안되면 되게 한 강군의 에너지 강한군대, 현장을 가다- 본지 조아미 기자 ‘특전교육단 천리행군 동행취재기’ 2014. 10. 20 16:39 입력 | 2014. 10. 20 18:15 수정 지쳐가는 체력·밀려오는 잠과 사투 어깨 짓누르는 통증·발 감각 무뎌져‘ 대한민국 1% 특전맨’ 이유 깨달아
육군특수전사령부 예하 특수전교육단 240여 명의 특전장병이 지난 13일부터 19일까지 무박 7일 동안 400㎞ 천리행군에 나섰다. 행군은 고립무원의 적 지역에서 작전수행을 위한 필수조건인 단거리 침투와 지속행군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마련됐다. 기자는 3일 차인 지난 15~16일 이틀 동안 이들의 행군을 직접 체험했다
날이 저물고 캄캄해진 저녁 7시,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매곡역 집결지. 컵라면과 전투식량으로 저녁 식사를 마친 장병들이 다음 일정에 맞춰 각 제대마다 행군에 나섰다.
막 도착한 기자는 서둘러 전투복과 전투화를 착용했다. 이들과 똑같이 완전군장10㎏(남군 15㎏) K1 소총을 메고 저녁 8시 양평군 단석2리의 한 시골마을 야산 아래에서 합류했다.
‘헉헉’거리며 입김을 길게 뽑아내고 2열 종대로 흐트러짐 없이 걸어 내려오는 장병들이 멀리서 보였다. 기자는 전체 7제대 중 1제대로 소속됐다. 1제대는 처음으로 천리행군에 참여한 여군 5명도 속해 있었다.
이들의 첫인상은 3일간 연속된 행군을 그대로 드러낸 듯 매우 지쳐 보였다.
하지만, 한계를 넘어서려는 각오와 다짐의 눈빛만큼은 크고 강렬했다.
지난 15일 오후 8시, 육군특수전사령부 특수전교육단 장병들의 천리행군에 합류한 본지 조아미 기자가 파이팅을 외치며 걷고 있다. 사진=이도희 상사
▶ 여군 선배들, 후배 살뜰히 챙겨… 밤에 먹는 야식은 꿀맛
행군 초반에는 시골의 밤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마실 온 사람처럼 취재를 돕기 위해 나온 원현묵(대위) 정훈공보실장과 두런두런 대화도 나눴다.
밤 10시10분쯤, 2시간여 잠깐 눈을 붙일 수 있는 양평 양동레포츠공원에 도착했다.
다행히 야외가 아닌 실내에서 쉴 수 있는 곳으로 여군 숙소도 따로 마련됐다. 따뜻한 히터가 나오는 9.9㎡(3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통제관인 여군 선배들이 후배들을 위해 야전 깔판과 군용침낭을 미리 깔아놨다. 피곤함에 지친 후배들의 발을 주물러주거나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챙겨주며 엄마처럼 살뜰히 살폈다. 여군들은 숙소 안 화장실에서 얼굴에 바른 위장크림을 지우고 간단히 씻었다. 그 사이 이전에 천리행군을 완주했던 선배 부사관들이 격려 차 깜짝 선물을 보냈다. 기다리던 야식 햄버거와 콜라다. 꿀맛 같은 야식으로 배를 채운 김홍지 하사는 “물이 차가웠지만 곧 잘 수 있다는 희망에 추운 줄도 모르고 씻었다”면서 “햄버거도 빨리 먹고 자야겠다”며 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민주원 하사는 유독 발에 물집이 많이 잡혔다. 군의관이 직접 민 하사의 발 소독을 위해 여군 숙소 앞으로 왔다. 천리행군 도전에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민 하사는 “저만 아픈 게 아니다. 여기 장병들 모두 다 발과 허리, 어깨가 아플 것”이라며 “여군의 첫 행군인 만큼 자부심을 갖고 끝까지 완주하겠다”고 당차게 대답했다.
밤11시 여군 숙소의 불은 꺼졌다. 여군 5명과 기자, 그리고 통제관 임영민 중사까지 7명이 퍼즐을 맞추듯 틈새에 끼어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잠을 청했다.
무박 7일 천리행군에 나선 육군특수전사령부 특수전교육단 장병들이 16일 강원 원주시 일대를 행군하고 있다. 원주=조용학 기자
▶ 대한민국 1%만 해당하는 ‘특전맨’이 되기 위한 길
16일 새벽 1시30분. 김세령(상사) 통제관이 여군 숙소에 불을 켜면서 잠을 깨웠다.
“기상!”
“10분 안에 모두 군장 메고 나온다! 실시!!”
2시간여 잠을 자고 일어나니 정신이 멍했다. 다시 땀에 젖은 전투복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새벽공기는 꽤 차가웠다. 코가 시리고 손이 얼 것 같았다.
새벽 2시 행군 출발 전, 총통제관의 안전교육을 받은 뒤 각 제대마다 “파이팅”을 외치며 전우에게 힘을 북돋아 줬다.
다음 대휴식 장소인 원주시 문막 게이트볼장까지 23㎞의 긴 여정이 시작됐다.
칠흑 같은 어둠으로 앞이 보이질 않았다. 통제에 나선 교관과 통제관이 들고 있는 경광봉 빛만이 행군로를 짐작하게 했다. 4대의 앰뷸런스는 교대로 텅텅 빈 채 대열 뒤를 따라왔다. 끝까지 완주하겠다는 장병들의 각오를 응원해 주는 듯했다. .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었던 마음 악으로 깡으로 정신력으로 버텨 30㎞를 7시간20분 ‘대기록’ 세워
천리행군 중인 육군특수전교육단 소속 한 부사관이 전투식량을 먹으며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다. 사진=조준수 일병
이따금씩 보이는 선명한 반달이 장병들의 길을 비췄다. 행군 내내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수많은 별 속에 보고 싶은 이들도 함께 그려졌다.
밤이 깊어지자 떨어져 가는 체력과 밀려오는 잠과의 사투가 시작됐다. 한두 명씩 제대에서 뒤처지는 장병도 나왔다. 아예 낙오하는 장병도 발생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통증이 왔다. 발가락엔 감각이 없어졌다. 무거운 군장은 걸을 때마다 허리를 내리찍었다. 경사진 오르막길에선 가파른 고개를 오르자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1시간여 남짓 행군 후 10분간 주어진 휴식시간. 군장을 베개 삼아 그냥 길바닥에 누웠다. 땀에 젖은 양말을 재빨리 벗었다. 몇 몇 장병들의 발바닥은 뜨개질(?)을 했다. 물집이 잡혀 바늘로 터트린 후 재발을 막기 위해 실로 통과시켜 놓은 것. 물집 방지를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이 동원됐다. 스타킹을 신거나 파우더를 발에 넉넉히 뿌렸다. 바르거나 뿌리는 물집약도 사용했다.
계속 걸어 목이 탔지만, 마음껏 물을 들이마시진 못했다. 행군 중 개인적으로 용변은 못 보기 때문이다. 아침, 점심, 저녁, 야식 하루 4번의 대휴식 시간에만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
좀 더 쉬고 가고 싶다고 건의하고 싶었다. 하지만, 제대별로 먼저 도착한 장병들은 그만큼 휴식을 취하는 반면, 늦게 도착한 장병들은 도착하자마자 식사를 마친 후 다시 행군해야 하는 불이익을 받는다. 그만큼 각 제대별로 행군 속도와 팀워크가 필요했다. 도착된 예정 시간보다 1시간30분 이상 지연, 도착하면 낙오처리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각 제대마다 이를 악물고 한 걸음 한 걸음씩 내딛고 있었다.
조아미 기자가 1시간 여 행군 뒤 10분의 짧은 휴식시간에 군장을 벗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쉬고 있다. 사진 제공=이도희 상사
▶ 30㎞ 행군, 7시간20분… ‘안 되면 되게 하라’ 실감
새벽 4시 26분. 원주 문막까지 마지막 1시간 20분 정도 남았다는 통제관 말에 어서 동이 트길 하늘만 바라봤다. 기자에겐 가장 인내력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땀과 차가운 새벽바람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발목부터 무릎 뒤까지 근육이 땅겼다. 다리는 풀리고 호흡은 가빠졌다.
이쯤 하면 체험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해 몇 번이고 그만할까 고민했다. 옆의 여군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럼 군장이라도 벗을까라는 유혹도 있었지만 악으로, 깡으로, 정신력으로 버텼다. 힘내라고 말없이 초코바 3개를 내미는 이수민 하사가 너무 고마웠다.
지친 전우를 위해 오르막길에서 군장을 하나 더 짊어지고 가는 장병의 모습도 보였다.
오상록(원사) 기동통제관이 힘들어하는 기자에게 “겨우 하루 이틀 하면서 이 정도 가지고 힘들다고 하면 되겠어요?”라고 했다. 의외였다. 당연히 ‘민간인인데 힘들죠’ ‘요령껏 하세요’ 라는 말을 기대했는데 ‘특전사’는 생각부터 달랐다.
조용한 시골길에서 장병들은 군가로 존재감을 알렸다. 목소리가 작자 봉현호(중사) 통제관이 “목소리가 이것밖에 안 되나! 마을 사람들 다 잠 깨서 나올 정도로 해야지!”라고 하자 더 큰 목소리로 ‘하늘의 백장미’ ‘검은 베레모’를 목청껏 불렀다.
언제 행군이 가장 힘드냐는 질문에 김건호 하사는 “휴식 후 5분”이라며 “발을 디딜 수 없을 정도로 아리고 쓰리다. 마치 발바닥의 겉살과 속살이 분리되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서서히 날이 밝아오고 새벽 5시 53분, 목적지인 문막 게이트볼장에 무사히 도착했다.
장장 30㎞를 7시간20분 동안 행군한 나 자신이 대견했다. 눈물이 날 듯했다. 발에는 영광의 상처들이 곳곳에 잡혀 있었다. 허리, 어깨, 골반까지 심한 몸살이 난 듯 아파왔지만 정말 뿌듯했다. 한편으로는 무려 7일 동안 잠을 안 자고 반복해야 하는 장병들이 대단해 보였다.
서둘러 컵라면과 전투식량으로 배를 채우고 그대로 쓰러져 잔 이들은 다음 목적지를 위해 잠깐의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천리행군에 참여한 이색 참가자들]
독립운동가 후손·단장 아들 등 이색 도전자들 당당히 완주
이번 천리행군에 참여한 이색 도전자들도 눈에 띄었다. 부사관과 달리 예하부대 병사는 자원해서 행군에 참가했다. 그중 3공수특전여단 본부중대 윤지웅(22) 일병은 독립운동가 희산 김승학 선생의 외증손자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 간 윤 일병은 “꼭 특전사에서 군 생활하고 싶었고, 천리행군이라는 군 생활의 특권을 누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수전교육단장의 장남인 3공수특전여단 장비정비중대 경태원(23) 상병도 이번 천리행군에 참여했다. 경 상병은 “한 번뿐인 군 생활을 제대로 해 보고 싶었다. 이왕 시작한 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겠다”며 “‘단장 아들’이라는 시선이 부담스럽지만, 천리행군을 완주해 당당히 ‘전투특전병’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7공수특전여단 일란성 쌍둥이 형제 조대한·민국(20) 하사는 같은 제대에서 행군하며 형제애와 전우애로 두 배만큼 힘을 내고 있었다. 형 조대한 하사는 “졸리지만 정말 정신력 하나로 걷고 있다. 동생이 옆에서 걸으니 형으로서 잘하고 있는 모습 보여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동생 조민국 하사도 “옆에서 걷고 있는 형의 존재가 이렇게 크게 느껴질 줄 몰랐다. 힘들고 지치지만 검은 베레모에 특수전 휘장을 꼭 부착하겠다”고 당찬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