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간통
“덕길아! 내일이 설날이니까 오늘저녁은 목욕을 하자!”
어머니는 밥을 푼 가마솥을 깨끗이 씻었다. 솥에 물을 가득 붓고 뚜껑을 닫은 다음 불을 지폈다. 물이 끓어오르자 어머니가 아홉 살인 나에게 외쳤다.
“빨리 옷 벗고 목간통 속으로 들어가!”
부엌에는 큰 다라가 있었고 그 속엔 따뜻한 물이 반쯤 잠겨있었다.
겉옷과 내복을 벗었더니 무척 추웠다.
“추워요. 어머니!”
턱을 덜덜 떨며 나는 어깨를 움츠리고 발을 동동 굴렀다.
“물이 따뜻하니까 싸게 들어가렴.”
하는 수 없이 달랑 하나 남은 팬티마저 벗고 나는 통 속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때를 미는 수건도 없이 맨 손으로 내 몸의 때를 밀었다. 농사일에 거칠 대로 거칠어진 어머니의 손은 때수건 같았다. 내 몸의 때는 어머니의 거친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겨졌고 때가 벗겨진 알몸에 호롱불의 불빛이 튕겼다.
“아이고 내 강아지 씻겨 놓으니 잘 생겼네. 토닥토닥.”
어머니는 내 볼기짝을 두어 번 두들긴 후,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나는 옷을 입고 절절 끓는 구들방 아랫목에 가서 이불을 뒤집어썼다.
드디어 설날이 되었다.
멀리서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큰 형과 둘째 형이 설을 쇠러 내려왔다. 큰 형은 부산에서 미용재료 도매를 하는데 선물을 사왔다. 그것은 잠바였다. 우리 부모님은 평생 자식들 옷을 사줄 줄 몰랐고 그 옷은 장남인 큰 형 몫이 되었다. 둘째 형은 서울에서 메주 공장을 다니는데 쇠고기를 사왔다.
차례를 지내고 세배가 끝난 후, 우리는 아침 식사를 했다. 식탁에는 삶은 닭이 통째로 올라왔고 쇠고기 미역국이 감칠맛 나게 올라왔다.
명절 때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쇠고기 무국은 황홀했다. 낮에는 떡국을 끓였다. 아침에 떡국을 끓이지 않는 이유는 명절 한 끼라도 잘 먹게 하겠다는 부모님의 배려였다. 나는 세뱃돈을 가지고 매점에 가서 딱지를 샀다. 딱지는 원형으로 되어있고 만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꽃패라고도 불렀다. 아래쪽에는 글씨와 별이 새겨졌다. 별의 숫자가 누가 많은가로 친구들과 따먹기를 했다.
큰 형은 명절 내내 동네 친구와 바둑을 끼고 살았고 아버지는 장성한 자식들의 효도에 시종 웃음을 잃지 않았다.
중학교를 다니던 어느 해 설날 큰 암소가 설날에 새끼를 낳았다. 호기심 많은 나는 가만있을 수 없었다. 새끼를 순산하도록 외양간에는 마른 짚을 두껍게 깔았다. 소는 있는 힘을 다해 힘을 주었다.
소는 서서 새끼를 낳았다.
처음엔 잘 나오지 않았다. 머리와 앞발이 가지런히 해서 빠져나와야 하는데 머리만 나오고 몸이 나오지 않았다. 동네 어르신이 앞발만 빠져나온 소의 발을 밧줄로 묶었다.
“자! 당겨!”
두 형은 영차영차 소리를 내며 줄을 힘껏 당겼다.
“자 조금만 더! 나 나온다. 자 당겨!”
고통에 신음하던 소는 큰 송아지를 낳았다. 탯줄을 자르고 밧줄을 풀었더니 새끼는 눈을 떴다.
어미 소가 새끼를 혀로 일일이 핥아 주었다. 소는 두어 번 뒤뚱거리더니 금세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뛰었다. 경사였다.
소가 고생했다고 아버지는 찹쌀 죽을 끓여 소에게 먹였다. 송아지는 귀여웠다.
또랑또랑한 눈을 껌벅일 때마다 귀여워 죽을 것 같았다. 그런 소와 나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고 소는 나를 잘 따랐다.
기쁨은 슬픔을 동반하고 함께 오는 것이란 것을 그때 나는 몰랐다.
송아지는 클수록 어른들에게 미운털이 박혔다. 송아지는 채전에 심어놓은 고추며 상추밭을 뛰어다녀 못쓰게 만들었고 울타리를 넘어가 다른 집 밭을 몽땅 짓이겨 놓기도 했다. 소에게 굴레를 씌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코뚜레라고 했다. 커다란 쇠바늘로 코의 양쪽을 뚫어서 칡으로 만든 올가미를 구멍 안에 넣어 씌우는 것이다. 그 올가미에 밧줄을 연결하면 그것을 고삐라고 했다.
소에 씌운 굴레는 평생을 가는 것이었고 소가 더 커서 어미 소가 되면 소의 등에 다시 멍에를 씌운다. 멍에는 일을 시키기 위한 것이었고 굴레는 소를 길들이기 위한 고통의 형벌이었다.
송아지가 일 년쯤 컸을 때 결국, 아버지는 송아지를 팔았다. 팔려가는 소가 자꾸 뒤돌아보았다. 그 큰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어미 소도 울었고 나도 괜히 터져 나오는 눈물을 삼키느라 바빴다. 나는 다시 운동장의 큰 오동나무에게 갔다.
오동나무에 두 손을 뒤로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른 가지 위로 언뜻언뜻 보이는 하늘은 처연하게도 파랬다.
‘하늘아! 팔려간다는 것이 뭐니?’
‘그것은 긴 이별을 의미하는 거야’
‘이별은 혼자 하는 게 아니구나. 너도 슬프면 나도 슬퍼.’
이별은 슬픈 것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