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 아 아- 잘 있거라 부산항구야~”
대구 여관방 코미디언 백금녀 생일 축하자리서 탄생
가수 겸 작곡가 김용만 곡 만들고 백야성 취입, 대히트
(1절)
아- 잘 있거라 부산항구야
미스 김도 잘 있어요 미스 리도 안녕히
온다는 기약이야 없으랴만은
기다리는 순정만은 버리지 마라 버리지 마라
아- 또 다시 찾아오마 부산항구야
(2절)
아- 잘 있거라 부산항구야
미스 김도 못 잊어 미스 리도 못 잊어
만날 땐 반가웁고 그리워해도
날이 새면 헤어지는 사랑이지만 사랑이지만
아- 또 다시 찾아오마 부산항구야
(3절)
아- 잘 있거라 부산항구야
미스 김도 정들고요 미스 리도 정들어
행복도 짧은 시간 꿈과 같건만
다음 날짜 다시 만날 마도로스다 마도로스다
아- 또 다시 찾아오마 부산항구야
스윙조로 나가는 옛 가요 <잘 있거라 부산항>은 언제 들어도 흥겹고 경쾌하다. 4분의 2박자로 다른 유행가들과 달리 가사가 3절까지 있으나 노랫말이 비교적 짧은 편이다.
손로원 작사, 김용만 작곡, 백야성 노래의 <잘 있거라 부산항>은 대부분의 노래들이 그렇듯 우연한 기회에 만들어졌다. 요즘 신세대 젊은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50대 이후 장·노년층이면 다 기억하는 노래다.
노래가 탄생한 건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일이다. 작곡가이자 가수인 김용만 씨가 지방공연을 다닐 때다. 그때 연예인들은 방송이나 전속회사보다는 주로 극단에 소속돼 활동했다. 배우, 가수, 코미디언, 연주자, 무용수 할 것 없이 주수입원이 쇼단이었다. 방송출연이 가끔 있긴 했지만 특별히 인기연예인이 아니고선 가뭄에 콩 나듯 전파를 타는 정도였다. 극단들은 지방 순회공연을 많이 가졌다. 그럴 땐 한 달 두 달은 보통이었다.
김용만 씨가 소속된 쇼단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느 날 대구에서 공연을 하게 됐다. 코미디언 겸 배우였던 ‘홀쭉이’ 서영춘 씨와 ‘비실이’ 배삼용 씨, 여자 코미디언 ‘뚱순이’ 백금녀 씨 등 일행은 공연을 끝내고 밤늦게 여관에서 묵게 됐다. 여관에 들어간 일행들은 공연을 끝낸 뒤라 방에서 한 잔 하자는 의견이었다. 마침 그날이 백 씨의 생일이어서 더욱 의미 있는 자리가 됐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일행은 백 씨의 생일축하잔을 돌렸다. 오늘처럼 좋은 날 술만 마시지 말고 이왕이면 기념노래를 하나 만들자는 얘기가 우연찮게 나와 모두 그러기로 했다. 생일축하 한마디와 노랫말 한 소절씩을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먼저 배삼룡 씨부터 했다. 생일을 축하한다는 인사말에 이어 ‘온다는 기약이야 잊으랴 만은 기다리는 순정만은 버리지 마라 버리지 마라’로 운을 뗐다. 다음은 서영춘 씨 차례였다.
역시 백 씨 생일을 축하한다며 ‘미스 김도 잘 있어요 미스 리도 안녕히’라고 한 대목 읊었다. 마지막으로 김용만 씨 순서였다. 축하말에 이어 다음 공연지가 부산인 점을 감안, ‘아- 잘 있거라 부산항구야’ ‘아- 또 다시 찾아오마 부산항구야’라며 배삼룡·서영춘 씨가 만든 가사 앞뒤에 들어갈 노랫말을 즉석에서 지어냈다. 일제히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렇게 해서 대충 만들어진 가사는 평소 손발이 맞았던 작사가 손로원 씨에게 전해져 매끄럽게 다듬어지면서 3절까지 나왔다. 여기에 김용만 씨의 뛰어난 악상에다 순발력으로 곡이 붙여졌다.
문제는 누가 이 노래를 부를 것이냐 하는 점이었다. 노랫말과 밝은 음색으로 볼 때 신인가수 백야성이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곧바로 취입, 발표하게 된 게 바로 <잘 있거라 부산항>이다.
이 노래는 부산공연을 하는 쇼극단의 단골곡으로 단시간에 떴다. 백야성은 부산시내 극장쇼가 있으면 수시로 초청돼 <잘 있거라 부산항>을 구성지게 불렀다. 관중들의 앙코르가 쏟아지고 방송을 타면서 히트곡 대열에 들어갔다.
김용만 씨는 이 노래 말고도 가수 현철이 부른 <못난 내 청춘> 등도 작곡했다. 그는 가수로서도 실력을 인정받아 무대에 자주 섰다. 1954년 데뷔곡인 <남원의 애수>, <생일 없는 소년>(1958년), <회전의자>, <청산유수>, <청춘보우트>, <여반장>, <청춘의 꿈>, <효녀심청> 등 취입한 노래들이 많다. 처음 만요가수로 출발했으나 트로트가수, 민요가수로서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나이가 70대 중반을 바라보지만 요즘도 방송출연 등 열심히 연예활동을 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자신의 생일날 <잘 있거라 부산항> 탄생계기를 만든 백금녀(본명 김정분)는 그날 함께 있었던 서영춘 씨와 명콤비를 이뤄 유명세를 탄 코미디계 여왕이었다. 서울여상을 나온 그녀는 몸매가 풍만(90㎏) 했고 애주가였다. 1958년 영화 <공처가>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이름에 얽힌 재미난 얘기가 있다. 김수용 감독이 배우로 쓰면서 김정분이란 이름은 배우로서 적합치 않다며 ‘돈이 필요한 여자’란 뜻의 백금녀(白金女)로 지어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