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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풍경
-스무번째, 물이 주는 교훈-
글
인애가 한방병원 이사장
한의학박사 김덕호
“아야.” 덩치 큰 민교가 소녀 답지 않게 허스키 목소리로 냅다 소리를 질렀다.
워낙 큰 외마디 소리라서 무슨 일이 생겼구나 하고 심상치 않음을 앞서 가던 장수는 느낄 수 있었다.
비명소리가 나는 쪽으로 급히 고개를 돌렸으나 굽어진 둑에 가리워 상황을 알 수가 없었다.
순간 날카로운 돌이나 가시에 찔렸거나 뱀이나 벌을 떠올렸다.
“빨리 와봐 장수야.” 민교의 무명지 끝이 가재 집게발에 물려있어 영주가 화닥 놀라서 불러댄 것이었다.
민교가 왼손으로 오른손 손목을 감아쥔 채 오른손을 쳐들고 방방 뛰었다.
손가락 끝에 아직 응고가 되지 않은 상태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물기가 남아있는데다, 상처가 깊고 살점이 일어나서 무척 아프긴 아픈 모양이었다.
가재를 손으로 집어 올리다가 미끄러워 놓치자 다시 시도하다가 큰 집게발에 물렸다는 것이다.
“가재의 어데를 집었는데 그리 물렸노?” 수영이도 민교가 걱정이 돼서 물린 과정을 물어보았다.
“야! 그게 그리 중요하냐? 피가 나고 아파 죽겠는데. 퍼뜩 가서 소독약 갖고 온나.”
집까지 갔다 오기에는 꽤 먼 거리였다. 집까지 가더라도 아무도 없으면 헛일이었다.
셋이서 머뭇거리고 안절부절 하니까 영주가 차분한 어조로 제의했다.
“우선 내가 민교를 도와 걸스카우트에서 배운대로
피나는 손가락 부근을 누르고 있을 테니 니들이 빠른 길을 찾아봐.”
빙수골 보다는 개울이 크고 물이 많이 내려간 뒤라서
상류의 가재가 떠 내려와 많이 잡을 요량으로 세종마로 갔던 것이다.
세종마 개울과 집 사이 중간쯤 교회가 있었다.
“목사님 댁에 가면 되겠구나.” 집이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수영이를 장수가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딸 한테 주신다고 봉선화를 따고 있던 사모님이 뜰에서 반갑게 맞아 주셨다.
자초지종을 간략하게 말씀드렸더니 급히 가서 데려오라고 하셨다.
사모님은 우리 넷을 보고 각자 이름을 부르면서 안부도 묻고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서재로 갑자기 들이 닥치니까 목사님은 당황하셨던 모양이다.
수요기도회 준비를 하고 있던 중이라고 하시면서
민교의 손가락을 살피시고는 조그만한 사물함에서 빨간 소독약을 꺼내셨다.
“민교가 많이 아프겠구나. 상처가 제법 크니까 피 덜나오게 하려면 여기를 꼭 쥐고 있거라.”
약을 바르시고는 붕대를 꽉 조여서 매주셨다.
아파서 그런지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민교의 눈을 영주가 손수건을 꺼내어 닦아주었다.
“오늘 수요일만 아니면 너들하고 얘기를 많이 하고 싶다만 그렇지 못해 미안하구나.
영주는 방학 때 마다 와서 할아버지 간호 해드린다니 참으로 기특하구나.
그리고 참, 가재는 말이다, 다섯 쌍의 다리 중
맨 앞 한쌍이 제일 크고 억센 집게발이 달려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집을 때 양쪽 집게발이 시작되는 머리쪽 몸통을 잡아야 한단다.
큰놈은 집게발이 가위처럼 날카로와 어린이들 손가락도 자를 만큼 힘도 세단다.
꼬리쪽을 잡으면 날 찔러라 하고 내미는 꼴이 된단다.
가재는 보호색이 있어서 흐린 물에서는 찾기가 어렵고 살기도 어렵단다.
1급수에만 살지. 그래서 우리 동네가 최고로 깨끗한 동네란 뜻이지. 알겠니?”
강원도에서 부임해 오신 중년의 목사님은 언제 보아도 다정하고 신사적이셨다.
시간이 없다고 하시면서도 더 가르쳐주고 싶어 하셨다.
“그리고 다들 이번 비에 무서웠지?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물질이 물이 라는 건 잘 알고 있지?
60~80%가 물이니까 물이 부족하지 않도록 늘 관리해야하고 또 깨끗하고 좋은 물을 마셔야 되겠지?
또한 항상 대비하고 있으라는 거지.
언제 어느 때 쏟아질지 모르니까.
이번처럼 둑이 터지고 집이 무너지고 사람이 죽는 걸 보면 물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지 알겠지?
평소에 약한 부분을 튼튼하게 보강해 놓아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해.
어디서나 물길을 잘 내고 물꼬를 잘 터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지.
항상 아래로 흐르는 까닭에 겸손을 배우고 담는 그릇의 모양과 크기에 따라 변한다는 법칙,
이걸 깊이 새기거라. 너들 나이에 이 원리를 터득하면 성공할 것이다. 알았느냐?”
“오후참 시간이니까 우리집에 가자. 한의사인 할배한테 더 치료해 달라고 하자.”
장수의 제의에 터덜터덜 윗동네로 가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장수야. 지난주 폭우에 니네도 수해 당했다며?” 영주가 약간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그러게, 빙수골 논둑이 터져서 농작물을 못쓰게 됐데.” 장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400mm가 왔다카는 마지막 날 니가 도랑을 건너다가 큰일날뻔 했다며?”
“응, 작은 도랑이지만 폭우가 쏟아지니까 물살이 무섭더라고.
웅덩이가 파였었나봐. 가슴까지 푹 빠지는 거야.
사람살려라고 소리쳤더니 동네 봉현이 아부지가 도와주셔서 살았어.
그날 생각하면 아찔하다.
‘물에 빠져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는 말만 생각했지. 니네들 못 볼까봐.”
왼쪽에 약간 떨어져서 걷고 있는 영주에게 살짝 말했다.
“니 얼굴이 그려지니까 안 떠내려가고 버텼다 아이가.
둑의 감나무 뿌리를 힘껏 잡았더니 젖먹는 힘까지 나오더라고.”
영주는 아무 말없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앞만 주시하고 있었다.
수해 난데가 어딘지 보고 가자고 수영이가 말을 꺼내자 모두들 빙수골 개울 옆 논둑을 따라 올라갔다.
얼마가지 않아서 몇 십 미터나 될 만큼 둑이 허물어져 있었고 논은 토사로 덮여 있었다.
“어른들이 그러시던데, ‘ㄷ'자로 굽은 둑이 무너져 내린거래.
직선개울은 장애물이 없는 한 수해가 잘 안 나지만 곡선부위는
퇴적물과 장애물이 많아 잘 무너진데.”
마침 큰 고목 토막이 논바닥 한 가운데 놓여 있기에 걸터앉았다.
“아무리 내리막이라도 물길이 굽고 막히면 가차 없이 쓸어버린다는 얘기인데
우리사이에도 꼬부라지고 막힌 마음없이 우정을 나누면 안 좋겠나?”
영주는 촌에 사는 우리보다 생각의 정리가 빨랐다.
“그래자.” 모두의 동의를 끌어냈다.
“말 나온 김에 말인데, 물 때문에 애먹은 얘기 하나를 니들한테는 꼭 해야겠다.
촌에 살면서 말할 기회가 없었는데···.”
장수는 어른들 가정불화로 인한 마음갈등은 아직 숨기고 싶었다.
“나 시내 살다 촌으로 나온 거 물난리 때문이다. 이리로 이사왔기 때문에 니들 만난거고···.
인연이 될려고 그랬나봐. 어른들 얘기에, 인연은 참 묘하게 온데.
안될려면 아무리 노력해도 안된데.”
다들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그럼 시내에서 무슨 일 있었는데?” 이유를 듣고 싶어 다그쳤다.
“응, 초등학교 2학년 초여름이었제. 학교가는데 도로에 갑자기 물이 차 올라오는거야.
학교갔더니 임시휴교라고 집에 빨리 가라고해서 고지대인
관사골 집까지 가는 도중 도로는 이미 물이 무릎까지 올라왔제.”
장수는 눈을 지긋이 감고 그때 기억을 끌어내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문제는 이때부터 생겼어. 집에 아무도 없었고 전화도 없었잖아.
장난을 즐길 나이니까 어느 누구로부터도 주의사항을 듣지 못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물구경을 나갔었지.
집에 다시 와서 긴 널빤지를 주어 모아서 못질하고 끈으로 묶고 해서
한 귀퉁이씩 손에 쥐고 의지한 채 친구들과 무섭기는커녕 재미있게 물위를 떠다녔어.
제일교회, 경찰서, 학교건물만 보일뿐 도로와 키 낮은 상점은 아예 보이질 않았지.
경찰서를 뒤로하고 떠다니다가 그만 끈이 풀어지고 말았제.” 걱정스러운 듯이 셋이서 맞장구를 쳤다.
“그래서?”
“나와 친구하나가 조각난 널빤지로 지탱 할 수가 없어서 오염된 물을 잔뜩 먹었지.
한참 지나 깨어 보니 경찰서 2층 복도 바닥이었어.
곁에 놀란 얼굴로 아버지가 손을 잡고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제.
뒤에 어머니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신 게 기억이 나.”
얘기를 듣고 있던 친구들의 표정이 심각한 채로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그렇게 큰일 날 뻔한 일이 있었구나. 진짜 니 죽다 살았는데 지금도 괜찮나?
이렇게 만난게 큰 인연이 맞네. 시내에 그대로 살고 있으면 글쎄, 니랑 만날 수 없었겠제.”
영주의 말에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소식이 전해지자 할아버지의 불같은 성품이 가만 있으실리 없었제.
‘시내에 있다간 손주 죽이겠다. 얼른 이사 나오거라.’
아버지에게 특명이 떨어졌고 차일피 미루다가 2학년을 마치고 그해 겨울방학을 이용해 촌으로 이사를 왔단다.”
장수가 일어나서 개울쪽으로 서너 발자국 가다가 몸을 획 돌리면서 말을 이어갔다.
“하기사 시내에 있었으면 공부를 더 잘했을 라나? 촌에서는 농사일 돕다가 볼일 다 본다 카이.”
지금까지 시골생활이 만족하지 못한 장수가 불만 투의 말을 토해냈다.
“장수야, 닌 머리가 좋으니까 촌에서 공부해도 서울에 좋은 학교 진학할끼다.
방학때라도 와서 니네 농사일 좀 도와주께. 품값은 쳐 주거라.”
“말이라도 고맙데이.” 영주가 가까이서 던지는 한마디 격려에도 힘이 나는 듯 했다.
어떻은 물로 인해 장수의 삶의 환경이 바뀌었고, 삶의 색깔도 새롭게 그려졌다.
좋게 말하면 농촌의 전원생활을 통해 근면성과 자립심, 사고력과 관찰력, 지구력과 도전정신이 키워지면서
가치관과 정체성이 세워졌다. 인생관이 폭넓게 형성된 셈이다.
“그 후로부터 물이 무서워 수영도 안 배우고 안할끼라고 생각했다, 마.”
때마침 윗밭으로 가시던 어머니를 만나 방금 있었던 일과 수해
그리고 시내 물바다에서 익사할 뻔한 얘기를 하고 있던 중이라고 말씀드렸다.
우선 잠시 담밖의 감나무 그늘에서 땀을 식히던 중 어머니의 얘기를 듣기로 했다.
“1961년 7월 중순이었제. 자가 물에 빠졌다가 살아온 아 아이가?
자들 아부지는 일찍 출근하셨고 난 자 동생 셋 데리고 병원에 감기약 타러 갔었제.
자는 등교했제. 당시 병원건물이 3층이었는데 옥상으로 가서 대피하고 있었단다.
자는 학교에서 알아서 조치해 줄끼라고 생각하고 마음 놓고 있었제.
몇시간 뒤 물이 빠지기 시작할 때 경찰의 도움을 받아서 집으로 왔제.
혹시나 싶어 휴교인걸 알고 소식 끝에 경찰서로 갔더니 자가 누워있었지 뭐냐?
자는 다행히 깨어난 뒤였어.
자들 아부지가 먼저 와 있었제. 그때 생각하면 아찔하단다.”
어머니는 차분하게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하셨다.
“밤새 내린 집중호우로 엄청난 양의 흙탕물이 소백산 골짜기에서 밀려 내려와서
에스자로 시내를 감돌아 흐르던 서천 불바위 북쪽 둑을 범람하면서 붕괴되었다.
저지대였던 시내를 순식간에 물바다로 만들어 크나큰 인명과 재산을 삼켰단다.
2년 전 그 유명한 사라호 태풍 때도 잘 견뎠으나 장대비가 4시간동안 집중 퍼부은 결과였어.
아침 등교시간과 출근시간대라 대혼란이었었지.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의 지휘하에 서천 직강(直江) 공사를 위해
육군 공병대와 해병대의 군인력 및 장비지원과
국토건설단의 수혜복구 동참으로 262일만에 공사가 완료되었단다.
니들도 알다시피 6.25가 끝난지 8년이 되는 해에 수해가 났으니 나라는 어렵지
보릿고개는 높지 개돼지 만도 못한 생활을 하고 있었으니 나라도 어데 둑 고칠 돈이 있었겠나?
그러니까 군대가 들어와서 공사를 해줘서 돈이 크게 안 들었다는 구나.”
어머니는 서천이 재건설되는 과정도 정확히 알고 계셨다.
“니들도 꼭 기억해라. 물은 무서우니 늘 조심해야 한다. 대홍수가 불가항력적인 것도 있지만
천재 못지 않게 사람이 잘못하거나 대비를 제대로 못해서 생기는 인재가 많은 법이제.
니들도 언제 어떤 일이 닥쳐도 이겨나갈 대비를 지금부터 열심히 하는거야.
세상은 준비된 자를 언젠가는 알아본단다. 알았제?”
물이 얼마나 고맙고 귀하며 정직한지를,
그리고 물에 대한 경외심을 일깨워준 어머니의 교훈이 가슴에 강하게 와 닿았다.
“니들 할배 뵙고 안채로 들어온네이. 배도 출출한데 먹을거와 마실거 준비할 테니까.
많이 먹고 가거래이. 난 밭에 나가봐야 되니까.”
할아버지가 마침 툇마루에서 어느 환자분과 상담하고 계셨다.
영주가 먼저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했다.
“너 누구더라?”
“저는 권자 영자 재자 되신 분이 제 할아버지입니더.”
“아 참 그렇지. 너 방학 때 마다 온다지. 그래, 사는 데가 대구라지.
할아버지 돌봐드리러 온다는 걸 듣고 기특하다 생각했다. 민교 손은 왜 그렇느냐?”
“가재에 물렸심더.”
“가까이 오거라.” 싸맨 붕대를 푸시더니만 안으로 가셔서
무슨 털을 완두콩알만큼 뭉쳐 가지고 나오셨다.
상처를 소독하시고는 털뭉치를 상처에 대고 붕대를 감으셨다.
“이 털은 사슴뿔에 붙어있는 털이란다.
병균이 못들어오게 하는 효과가 있단다.
너희네는 수해난 것 없나?”
새로 소독하고 녹용털을 붙인 곳이 아픈지 얼굴을 찡그리면서,
“없는갑심더. 전답이 냇가에 있지 않고 물길을 잘낸 덕이라고 그러디더.”
“다행이구나. 물은 사람이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있단다.
그것을 바로 치수(治水)라 한다.
너희들은 물의 성격과 쓰임새를 잘 익혀서 활용하기를 바란다.
물이 주는 교훈을 늘 되새기거라.”
넷을 골고루 둘러보면서 남긴 말씀이었다.
물안개 피는 이른 새벽 비가 그친 틈을 타서
빙수골과 세종마의 물이 만나는 곳에 잠시 머물러 선다.
3주간의 폭염과 가뭄 끝에 내린 폭우라서 피해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성곡 약초농장으로 향하던 중이다.
문득 어릴 때 추억에 잠기고 싶어서다.
돌 하나를 뒤집어 본다. 어린시절 그 돌이다.
크고 납작한 다른 하나를 직각으로 세워본다.
어미 가재와 새끼들이 돌틈으로 도망간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오늘따라 뒤로 가는 가재의 모습이 유난히 우습고 호기심이 발동된다.
물거울에 나를 비추어 본다. 그때나 지금이나 개울도 가재도 돌도 그대로인데
세월의 흐름 속에 변한 내 모습에 나도 놀란다.
세종마와 빙수골을 빙 둘러 걸으면서 옛 추억에 잠겨본다.
그 전해 여름 강릉 고목댁에 갔다가 바다에서 상처를 입고 토사곽난을 앓았던 일도 기억난다.
대학 예과 2년 때 석관동 침수, 본과 2년 때 망우리 침수, 교수 2년차 때 풍납동 침수,
박사학위 심사직전 폭우 속 종로5가 대형교통사고 등 내겐 물난리 추억이 많다.
오늘은 물속에서 겪었던 어린시절의 일들이 유난히도 발에 밟힌다.
빙수골과 세종마의 발원지, 주마산 허리를 둘러 피어있던 안개구름이 걷히는가 싶었는데
다시 쌘비구름이 앞산 하늘을 덮더니 굵은 빗방울이 후두두 떨어지기 시작한다.
사육장 함석지붕에 떨어지는 요란한 빗소리에 더더욱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간밤에 수도권과 군산지역에 400mm 폭우가 쏟아져
사상자와 재산손괴가 심각하다는 아나운서의 다급한 아침뉴스가 하루의 시작을 점검하게 만든다.
첫댓글 박사님, 좋은 글 잘 보고 담아 갑니다. 건필하십시오.
박사님의 글은 늘 따뜻함이 있어요.
지난날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르고 소식이 없는 친구들의 소식도 궁금하게 합니다.
힘들고 아픈 날들이 많았을 때인데도 박사님의 글로 인해
따뜻한 지난 세월의 기억으로 다가옵니다
전 그래서 박사님의 글이 너무나 좋습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