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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새겨보는 거울로 삼을 수 있게 해 준다는 점,그리고 ‘신화’라는 말에 애당초
전제되고 있는 것과 같이,이야기 시를 통하여 우리들의 기억의 저편에 쭈그리
고 있는 원형적인 심상들을 불러일으켜 준다는 면에서 그러한 것이다.
질마재 신화 에 수록되어 있는 여러 시편들에서 볼 수 있는 신화적 요소는
그것이 결코 신(神)중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오히려 그것은
자연현상이나 사회현상의 기원과 질서를 설명해 주고 있다거나,아니면 이야기
자체로 신성시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135)
먼저 신화 자료에서 취재한 「까치 마늘」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옛날 옛적에 하누님의 아들 환웅님이 新婦깜을 고르려고 白頭山중턱에 내려와서
어쩡거리고 있을 적에,곰하고 호랑이만 그 新婦깜 노릇을 志望한 게 아니라,사실
은,까치도 그걸 志望했던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곰허고 호랑이가 쑥허고 마늘을 먹으면서,쓰고 아린 것 잘 견디는 사람되는 연습을
하고 있을 때,사실은 까치도 그 옆에 따로 한 자리 벌이고 그걸 해 보기로 하고 있긴
있었지마는,쑥은 그대로 먹을 수가 있었어도,진짜 마늘은 너무나 아려서 차마 먹지를
못하고 안 아린 까치 마늘이라는 걸로 代用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곰만이 혼자 잘 참아 내서 덩그렇게 하누님의 며느리가 되었을 때,너무
나 쓰고 아린 걸 못 참아서 날뛰어 달아난 호랑이는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한테도
대들고 으르렁거리게 되었지만,까치는 그래도 못 견딜 걸 먹지는 안 했기 때문에,
말씨도 行動擧止도 아직도 상냥한 채로 새 사람이 보일 때마다 반갑고도 안타까와
짹짹거리고 가까이 온다는 것입니다.새 손님이 어느 집에 올 氣味가 보일 때마다,
한 걸음 앞서 날아와선 짹짹거리지 않고는 못 견딘다는 것입니다.
―\「까치 마늘」일부(1975)
위의 시는 삼국유사 권1,기이편(紀異篇)에 전하는 「단군신화」를 미당이 자신
의 개인적 체험 내지는 질마재 사람들의 체험 속으로 확장,전이시킨 것이다.
135)신화의 개념이나 본질과 관련하여,신화는 전설이나 민담에 비해 그 성격이 매우
복잡한 까닭에 여러 가지 심각한 견해의 대립을 보이고 있다고 하고 신화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포괄적으로 살피고 있다.① 神에 관한 이야기,② 자연현상이나 사회
현상의 기원이나 질서를 설명하는 이야기,③ 신성시되는 이야기.곽정식, 한국구비
문학의 이해 ,신지서원,2005,pp.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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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는 환인의 아들 환웅이 지상에 내려왔을 때에 곰과 호랑이가 사람
이 되고 싶다고 하자,쑥과 마늘을 먹으면서 백일 동안 일광을 피하게 하였는데,
호랑이는 견디지 못하고 실패했으나 곰은 성공하여 마침내 사람이 되었다는 내
용이다.그러나 시인은 위의 시에서 환웅의 신부감 후보로 곰과 호랑이에다 까
치를 추가시키고 있다.시인이 이와 같이 단군신화를 새로운 이야기로 변형시키
게 된 계기는 바로 ‘까치 마늘’이라는 식물의 이름 때문이다.실제적으로 까치
마늘은 「단군신화」와 인과관계가 없다.그러나 미당은 ‘까치 마늘’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찾는 과정에서 곰을 웅녀가 될 수 있게 한 식물이 마늘이었다면,까치가
먹었던 마늘이 ‘까치 마늘’이었을 것이라고 상상하게 된 것이다.따라서 「단군신
화」에서 까치도 까치 마늘을 먹으면서 환웅의 신부가 되기를 원했을 것이라는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게 된 것이다.136)
다음은 「竹窓」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新羅景文王은 마누라가 너무나 밉게 생겨서 밤엔 뱀閣氏들을 가슴 위에 널어 놓
아 핧게 하고 지내다가설라문 쭈삣쭈삣한 짐승 業報로 긴 당나귀 귀가 되어 幞頭로
거길 가려 숨기고 지냈는데,이걸 혼자만 알고 있는 幞頭쟁이 놈이 끝까지 가만 있
지를 못하고,죽을 때 대수풀로 가서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한마디 소근
거려 놓았기 때문에 대수풀이 그 다음부터는 그렇게 소근거린다든지 그런 實談의
폭로 소리였읍죠.
일이 이리 어찌 되어 내려오다가 窓을 대쪽으로 엮어 매는 습관은 생긴 겁니다.
―\「竹窓」일부(1975)
위의 시 역시 삼국유사 권2 기이편(紀異篇),제2경문대왕(景文大王)이야기를
시적 화자가 재해석과 확장을 통해서 질마재 사람들의 체험 속으로 전이시킨 것
이라 할 수 있다. 삼국유사 에서는 헌안대왕(憲安大王)에게 얼굴이 몹시 초라하
고 못생긴 맏공주와 잘생기고 아름다운 둘째공주가 있었다고 하고,국선(國仙)
136)황숙희,「서정주의 질마재 신화 연구 -패러디 양상을 중심으로-」,강원대대학원 석사
학위논문,2000,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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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렴(膺廉)이 왕의 맏공주를 아내로 삼았는데,얼마 뒤에 헌안대왕이 죽게 되자
응렴이 왕위에 올라 둘째공주를 다시 아내로 삼았다고 하였다.그리고 이와 같
은 이야기와는 별개로 왕의 침전(寢殿)에는 날마다 저녁만 되면 수많은 뱀들이
모여들어 궁인(宮{人)들이 놀라고 두려워서 쫓으려고 하였으나 왕은 말하기를 ‘내
게 만일 뱀이 없으면 편하게 잘 수가 없으니 쫓지 말라.’고 하였으며,왕이 잘
때에는 언제나 뱀이 혀를 내밀어 온 가슴을 덮고 있었다고 하였다.137)하지만 응
렴이 왕위에 오른 뒤에 귀가 길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그런
데도 위의 시에서 화자는 못생긴 마누라를 멀리하고 뱀들을 가까이했기 때문에
그 업보로 인해서 귀가 길어졌다고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위의 시에서 삼국유사 의 경문왕 이야기와 질마재를 이어주는 매개물은 ‘대
나무’이다.즉 대나무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고 하는 경문왕 이야기를
환기시키는 동시에 질마재 마을에서 대나무를 엮어 창문을 만드는 생활 풍습을
환기시킨다.아울러 시적 화자가 재해석한 경문왕 이야기를 통해서 질마재 마을
의 사람들이 대나무를 엮어 창문을 만드는 생활 풍습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것은 곧 세상에 비밀은 있을 수 없다는 진리와도 상통하는 것으로,질마재 사
람들의 거리낄 것 없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에 다름 아닌 것으로 이해된다.
小者李생원네 무우밭은요,질마재 마을에서도 제일로 무성하고 밑둥거리가 굵다고
소문이 났었는데요,그건 이 小者李생원네 집 식구들 가운데서도 이 집 마누라님의
오줌기운이 아주 센 때문이라고 모두들 말했습니다.
옛날에 新羅적에 智度路大王은 연장이 너무 커서 짝이 없다가 겨울 늙은 나무 밑에
長鼓만한 똥을 눈 색시를 만나서 같이 살았는데,여기 이 마누라님의 오줌 속에도 長鼓
만큼 무우밭까지 鼓舞시키는 무슨 그런 신바람도 있었는지 모르지.마을의 아이들이 길
을 빨리 가려고 이 댁 무우밭을 밟아 질러가다가 이 댁 마누라님한테 들키는 때는 그
오줌의 힘이 얼마나 센가를 아이들도 할 수 없이 알게 되었습니다.---「네 이놈 게 있거
라.저 놈을 사타구니에 집어넣고 더운 오줌을 대가리에다 몽땅 깔기어놀라!」그러면
137)일연,이민수 역, 삼국유사 ,을유문화사,pp.136-137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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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꿩새끼들같이 풍기어 달아나면서 그 오줌의 힘이 얼마나 더울까를 똑똑히 잘
알밖에 없었습니다.>>
―\「小者李생원네 마누라님의 오줌 기운」(1975)
위의 시 역시 삼국유사 권1 기이편(紀異篇),제1 지철로왕(智哲老王)이야기를
수용하여 확장,전이시킨 것이다.시의 정경은 질마재의 가을 무우밭에서,오줌빨이
센 것과 무우의 크기가 비례함을 들어 건강한 성(性),생명력이 서로 응감(應感)함을
보여 준다.지철로왕의 색시가 눈 똥이 장구만 했듯이 질마재 마을의 이생원네 마
누님의 오줌 기운은 무밭을 고무시킬 만큼 세다는 것으로,유사성에 의해 결합되었
음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 에서 전하는 지철로왕의 색시가 눈 똥이 장구만하다거
나,질마재 마을의 이생원네 마누님의 오줌 기운이 무밭을 고무시킬 만큼 세다거나
하는 것은 모두 생산력,생명력,창조력 등과 관련을 맺고 있다.138)
질마재 사람들 중에 글을 볼 줄 아는 사람은 드물지마는,사람이 무얼로 어떻게 神이
되는가를 요량해 볼 줄 아는 사람은 퍽으나 많습니다.
李朝英祖때 남몰래 붓글씨만 쓰며 살다간 全州사람 李三晩도 질마재에선 시방도
꾸준히 神노릇을 잘하고 있는데,그건 묘하게도 여름에 징그러운 뱀을 쫓아내는 所任
으로섭니다.
陰正月처음 뱀 날이 되면,질마재 사람들은 먹글씨 쓸 줄 아는 이를 찾아가서 李三
晩석 字를 많이 많이 받아다가 집 안 기둥들의 밑둥마다 다닥다닥 붙여 두는데,그러
면 뱀들이 기어올라 서다가도 그 이상 더 넘어선 못 올라온다는 信念때문입니다.李三
晩이가 아무리 죽었기로서니 그 붓 기운을 뱀아 넌들 행여 잊었겠느냐는 것이지요.
글도 글씨도 모르는 사람들 투성이지만,이 요량은 시방도 여전합니다.
―\「李三晩이라는 神」전문(1975)
위의 시는 질마재에서 음력 정월의 뱀날이 되면 ‘이삼만(李三晩)’이라는 이름 석
자를 붓으로 써서 집안 기둥에 붙여 뱀을 쫓는다는 속신에서 취재한 것이다.이삼
138)황숙희,앞의 논문,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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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이라는 사람이 마을의 신 노릇을 하게 된 이유는 붓기운 때문에 뱀이 오지 못한
다는 속신 때문이다.이와 같이 ‘이삼만’이라는 사람 그 자체도 아니고,또 그가 직
접 붓으로 쓴 그의 이름도 아닌,다른 사람이 쓴 ‘이삼만’이라는 이름 석 자가 신격
화되고 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논리적 인과성을 지니지 못
하는 데도 불구하고,이삼만이라는 이름 석 자가 질마재 사람들에게서 신격화되고
있는 까닭은 그야말로 논리적 인과성에 구애되지 않는 질마재 사람들의 믿음 때문
인 것이다.그리하여 시적 화자는 ‘李三晩이가 아무리 죽었기로서니 그 붓 기운을
뱀아 넌들 행여 잊었겠느냐는 것이지요.’라고 하여,신격화의 비논리성을 무화(無化)
시키는 한편,속신이란 것이 대체로 그렇듯이,‘글도 글씨도 모르는 사람들 투성이
지만,이 요량은 시방도 여전합니다.’라고 함으로써,질마재 사람들의 민중적인 상상
력에 의한 속신의 초시간적 영원성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옛날 옛적에 中國에 꽤나 점잖했던 시절에는 <수염 쓰다듬는 時間>이라는 時間單
位가 다 사내들한테 잇었듯이,우리 질마재 여자들에겐 <박꽃 때>라는 時間單位가
언젠가부터 생겨나서 시방도 잘 쓰여져 오고 있습니다.
「박꽃 핀다 저녁밥 지어야지 물길러 가자」말 하는 걸로 보아 박꽃 때는 하로낮
내내 오물었던 박꽃이 새로 피기 시작하는 여름 해으스름이니,어느 가난한 집에도
이때는 아직 보리쌀이라도 바닥 나진 안해서,먼 우물물을 동이로 여나르는 여인네
들의 눈에서도 肝臟에서도 그 그득한 純白의 박꽃 시간을 우그러뜨릴 힘은 하늘에
도 땅에도 전연 없었습니다.
그렇지만,혹 興夫네같이 그 겉보리쌀마저 동나버린 집안이 있어 그 박꽃 時間의
한 구퉁이가 허전하게 되면,江南서 온 제비가 물어 그 허전한 데서 피다거리기도
하고 꽃 열매 바가지에 담을 수 있는 것 아닌감네 잘 타일러 알아듣게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박꽃 時間은 아직 우구러지는 일도 뒤틀리는 일도,덜어지는 일도 더
하는 일도 없이 꼭 그 純白의 金質量그대로를 잘 지켜 내려오고 있습니다.
―\「박꽃 時間」전문(1975)
위의 시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질마재 마을에서 통용되는 시간단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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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꽃 때’라는 구비관용구(口碑慣用句)를 시화한 것으로서,일반적으로 구비전승
되는 민담에서 일종의 공식적인 표현으로 사용되는 ‘옛날 옛적에 ~’라는 서두
의 형식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그런데 이 시는 박꽃을 매개물로 하여 질마재
마을의 ‘박꽃’과 판소리 「흥부가」혹은 고소설 「흥부전」에 나오는 ‘제비박’을 의
미론적으로 결합시키고 있다.저녁밥을 지을 시간인 박꽃 시간이 되어도 양식이
떨어져 저녁밥을 지을 수 없는 가난한 삶에 대한 사실주의적인 묘사와 더불어
착한 본성을 지키며 산 흥부에게 제비가 금은보화와 오곡백과를 가져다주었듯
이,박꽃 시간을 지키며 자연의 순리를 따라 살아가면 언젠가는 질마재 사람들
에게도 흥부네와 같은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가난한 사람들의 자기 위안이
녹아있다.즉 극도의 곤궁함 속에서도 절망하고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오히려
자연과 호흡함으로써 삶을 긍정하며 살아가는 질마재 사람들의 삶의 지혜를 보
여주는 시이다.139)
① 우리가 옛부터 만들어 지녀 온 세 가지의 房-溫突房과 마루房과 土房중에
서,우리 都市사람들은 거의 시방 두 가지의 房-溫突房하고 마루房만 쓰고 있지
만,질마재나 그 비슷한 村마을에 가면 그 土房도 여전히 잘 쓰여집니다.옛날엔 마
당말고 土房이 또 따로 있었지만,요즘은 번거로워 그 따로 하는 대신 그 土房이 그
리워 마당을 갖다가 代用으로 쓰고 있지요.그리고 거기 들이는 정성이사 예나 제
나 매한가지지요.
② 食口모두 나와 딩굴며 노루잠도 살풋이 부치기도 하는 이 마당 土房,봄부터
여름 가을 여기서 말리는 山과 들의 풋나무와 풀 향기는 여기 저리고,보리 타작
콩타작 때 연거푸 연거푸 두들기고 메어 부친 도리깨질은 또 여기를 꽤나 매끄럽게
잘도 다져서,그렇지 廣漢樓의 石鏡속의 春香이 낯바닥 못지않게 반드랍고 향기로
운 이 마당 土房.왜 아니야.우리가 일년 내내 먹고 마시는 飮食들 중에서도 제일
맛좋은 풋고추 넣은 칼국수 같은 것은 으레 여기 모여 앉아 먹기 망정인 이 하늘
온전히 두루 잘 비치는 房.우리 痔疾난 食口가 따가운 여름 햇살을 몽땅 받으려
홑이불에 감겨 오구라져 나자빠졌기도 한,일테면 病院入院室이기까지도 한 이 마
139)황숙희,앞의 논문,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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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房.不淨한 곳을 지내온 食口가 잇으면,여기 더럼이 타지 말라고 할머니들은 하
얗고도 짠 소금을 여기 뿌리지만,그건 그저 그만큼한 마음인 것이지 迷信이고 뭐고
그럴려는 것도 아니지요.
―\「마당房」전문(1975)
위의 시는 질마재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통 가옥의 구조인 마당방과 그
곳에 관련된 여러 가지 습속에서 취재하였다.여기서 전통 가옥의 중요한 한 공
간인 ‘마당방’은 도시 사람들과는 관계가 없는,따라서 질마재 사람들에게만 이
용되는 공간으로서,성스러움을 간직한 천상의 수직적 공간과 지상의 수평적 공
간이 교차하는 지점을 의미한다.마당방은 지붕이 없이 하늘로 열려 있기 때문
에 ‘하늘의 은하와 북두칠성이 우리의 살에 직접 잘 배어들’수 있게 ‘하늘 온전
히 두루 잘 비치는 방’으로 인식된다.마당방은 닫혀진 방이 아니라 하늘과 우주
를 향해 온전히 열려져 있는 공간인 것이다.따라서 마당방은 하늘의 성스럽고
절대적인 힘이 미치는 곳으로 인식된다.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마당방을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병원 입원실로 이용하기도 하고,또 더럼이 타지 말라며 소금을
뿌리기도 하는 것이다.뿐만 아니라 이 개방의 공간은 온 식구가 한데 모여 앉
아 음식과 온정을 나누는 장소이기도 하다.‘제일 맛좋은 풋고추 넣은 칼국수’를
먹을 수도 있으며,‘온 식구가 나와 딩굴며 노루잠’을 잘 수도 있는 곳이다.천
상의 힘이 지상에 뻗쳐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성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이
다.결국 이 곳은 우주의 질서 속에 있는 거룩한 것,그 거룩한 것의 생산적인
힘,재생하는 힘,그리고 풍요의 기쁨을 계시받는 그런 공간이라고 할 수 있
다.140)이렇게 볼 때,‘마당방’은 지상적인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우주와의 육화
된 일체감을 체험하는 공간이라는 다층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또한 옛사람들은
토방을 포함하여 온돌방과 마루방의 세 가지 방을 지니고 살았던 데 비해,현대
의 도시 사람들은 온돌방과 마루방의 두 가지 방만을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한
다.도시 사람들이 마당을 토방의 대용으로 쓰고 있기는 하나,생활방식의 변화
140)인선민,「서정주의 질마재 신화 에 대한 연구」,건국대대학원 석사학위논문,1999,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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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토방의 존재를 차츰 사라져가도록 만들고 있다.토방의 유무는 전통과 현대
의 가옥 구조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에 그치지 않으며,생활습속과 인식체계의
변화를 시사해준다.우주를 반영하며,인간과 우주를 향해 열려 있는 생활공간인
토방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은 현대에 이르러 우주적 질서에 기반한 공동체의 삶
이 붕괴되어 버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141)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
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
가버렸습니다.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
나 버렸습니다.그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
부는 귀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재
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초록재와 다홍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新婦(속 질마재 신화)」전문(1972)
위의 시는 민간전승의 황씨부인당(黃氏夫人堂)전설을 확장,전이시킨 것으로서,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하는 공간과 질서의 두 양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이 작
품에서 형성된 공간은 ‘신방’과 ‘문밖’이다.그런데 ‘신방’은 남녀 결합의 통과의례
에 의해 형성된 ‘성스러움’으로 가득찬 공간이고,‘문밖’은 세속화된 일상적 공간으
로 볼 수 있다.여기서 ‘신방’은 삶의 고정점 역할을 한다.그것은 ‘신방’이 성스럽
기 때문이다.그 고정점으로 신랑은 세속적인 생각을 가지고 떠났다가 다시 회귀하
고 있는 것이다.이 신방은 곧 ‘질마재’의 성스러움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142)
이러한 토속적이고 향토색 짙은 설화를 통해서 우리의 고유한 민족 정서인 여
141)황숙희,앞의 논문,p.21.
142)인선민,앞의 논문,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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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의 부덕이나 사랑의 영원성이나 절대성을 극히 윤리적인 면에서 설명하려고 노
력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위의 시에서 성스러운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신부
방(新婦房)은 금기의 공간이자 새로운 탄생의 공간이기도 하다.성스러운 이 신방
에서 신랑이 뛰쳐나간 것은 일상적인 삶의 질서를 파괴하고 규율을 어긴 일과도
같은 것이다.질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살아가는 하나의 윤리이기도 하다.
스스로 규율을 만들고 그 규율을 지켜가는 것도 사람들의 일이다.결국은 시
작이 있으면 끝을 맺는 것도 스스로의 몫인 것이다.오해와 곡해의 갈등을 극복
하지 못하고 만들어진 이별은 신부에게는 또 다른 한이 되었을 것이겠지만,신
부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질서를 지켜나가기만 한다.
달아나버린 신랑을 평생 원망을 하면서 기다렸는지,오기가 나서 기다렸는지
모르지만 그 자리에서 지켜야 할 질서를 박차고 나오지 않은 점으로 보아,미당
에게 있어서의 질마재는 어쩌면 그렇게 넋 놓고 기다려주는 공간,아무리 배신
을 해도 믿고 기다려 줄 부동(不動)의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무심한 신랑에게 있어 10년의 세월쯤은 아무것도 아니다.‘40년인가 50년인가’가
지난 뒤에,그것도 책임감이나 죄책감 때문에 들러본 것이 아닌,그저 ‘궁금해서’
들러 본 신부방(新婦房)이라 하였다.따라서 신랑이 신부방을 다시 찾게 된 것은 어
쩌면 인간의 일평생의 행동이 어느 것 하나 철들어 벙글어진 모습이 아니라,한 송
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그렇게도 많은 일들이 벌어진 것처럼,통과의례를 거쳐야
만 역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이 같은’그런 모습을 만날 수 있게 되
는 것과 같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시에서도 역시 시간의 하례(賀禮)는 전면적으로 중요한 요소로 작
용한다.시간이란 그렇게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닌,한을 곰삭여 줄 수 있는 시
간이기도 하며,하나의 전 과정의 이야기가 종결을 맺기까지 얼마만큼의 인내가
필요한가를 질마재는 말해주고 있다.
천상의 공간이건 지상의 공간이건,심지어 질그릇처럼 질퍽한 우리의 고향에
서조차 약속과 질서는 지키기가 어려운 공간이면서,동시에 인간이 여물어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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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 또한 시간의 소중한 선물임을 상기시키는 것이다.즉 미당에게 있어서의
질마재는 인간의 신화가 펼쳐지는 잔치의 공간인 셈이 된다.
천상 속에서 인간의 소망이 피어나는 아름답고 소망스런 신화적 상상력과 달
리,너무나 인간적이어서 적당한 오해와 미움과,무지의 한(恨)마저 아름답고 슬
프게만 묻어나는 인간의 신화가 펼쳐지는 것이다.
어쨌든 신랑은 ‘잠시 궁금해서’나마 돌아오는 구조를 통하여 다시 한 번 순환론적인
구조선상에서 이야기를 마감하고 있다.이렇게 살아가는 인간의 신화야말로 신들의
질서에 의한 성스러움이 아닌 인간적인 성스러움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지난
일이지만 너무나 힘겨워 극복하기 어려운 삶의 약속의 과정들이긴 하지만,시행착
오도 겪고,당초 약속했던 귀밑머리 약속을 함께 지켜나가지는 못하였겠지만,질마
재에 나타나는 신랑의 모습은 몹쓸 사람의 모습이 아닌,우리들의 실수로 비춰지는
현대인의 자화상이기에 미워할 수 없는 질마재의 신랑으로 거듭나게 되며,초록재
와 다홍재와 함께 그의 죄까지 내려앉아 사해지는 것이기도 하다.
질마재 上歌手의 노랫소리는 답답하면 열두 발 상무를 젓고 따분하면 어깨에 고
깔 쓴 중을 세우고,또 상여면 상여(喪輿)머리에 뙤약별 같은 놋쇠 요령을 흔들며,
이승과 저승에 뻗쳤습니다.
그렇지만,그 소리를 안 하는 어느 아침에 보니까 상가수(上歌手)는 뒤깐 똥오줌
항아리에서 똥오줌 거름을 옮겨 내고 있었는데요,왜,거,있지 않아,하늘의 별과 달도
언제나 잘 비치는 우리네 똥 오줌 항아리,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지붕도 앗세 작파해
버린 우리네 그 참 재미있는 똥오줌 항아리,거길 명경(明鏡)으로 해 망건 밑에 염발질을
열심히 하고 서 있었습니다.망건 밑으로 흘러내린 머리털들을 망건 속으로 보기 좋게
밀어 넣어 올리는 쇠뽈 염발질을 점잔하게 있어요.명경(明鏡)도 이만큼은 특별나고
기름져서 이승 저승에 두루 무성하던 그 노랫소리는 나온 것 아닐까요?
―\上歌手의 소리(속 질마재 神話)」143)전문(1972)
143)서정주, 미당 서정주 시 전집 (민음사,1983)중 질마재 신화 편에 수록된 詩제
목이 「上歌手의 소리」인 것을 <서정주 작품 연보>에서는 「上歌手의 노래」로 잘못 표
기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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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시에서 上歌手의 노랫소리는 이승과 저승을 넘나든다.명경으로 비유되
는 똥오줌 항아리가 특별나고 기름졌기 때문이다.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상상
력을 보이는 이 시는 우리의 친근한 이웃의 모습을 보여준다.기분에 따라 자신
의 기분을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는 정서를 가졌고,배설의 욕구를 마음대로 해
결하고 있는 낯가림이나,허물이 없는 범박한 모습의 사람이 등장한다.또한 하
늘의 별과 달도 잘 비치는 똥오줌 항아리의 모습 속에서도 평범한 일상에 천상이
깃들 수 있는 조화롭고 평화로운 공존의 모습이 표현된다.
유년기의 고향의 모습은 무질서한 듯 보이면서 나름대로의 운행의 질서가 존
재하는 공간인 동시에 이렇게 머무를 수조차 없을 것처럼 보이는 공간 속에 하
늘의 질서를 담을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초월적이고도 보편적인 질서의 모습을
삶의 모습,인간의 모습 속에서 미당은 찾고 있는 것이다.
삶의 격은 사실상 중요한 것이 아니다.미당에게 있어서의 질마재에는 잘나고
못난 사람들이 없다.모두가 천상을 닮은 중요한 인성의 소유자로 보고 있으며,
악과 선은 존재하지만,악인과 선인을 따로 구별하지 않는다.모두가 악인이며
모두가 선인이 될 수 있으며 모두 다 이승을 살다 저승으로 건너갈 현 존재로
보고 있다.우리 모두가 죽어 똥,오줌이 되기도 할 것이며,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똥오줌 항아리가 될 것이며,자연스레 그 낯빛에 하늘과 별이 뜰 것이
며,마침내,상여가 나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미당에게 있어서 삶은 하나의 축제이자 노랫소리에 불과한 것이며,요
령을 흔들어대는 질펀한 가락 속의 한 대목에 그칠 뿐이다.모두가 기름진 삶이
며,모두가 기름진 죽음이기도 한 것이다.삶과 죽음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
어 어느 것이 죽음이며 어느 것이 삶인지 질마재에서는 경계가 무너지고 없다.굳
이 경계를 그을 이유가 없는 것은 모두가 하나의 노랫가락인 꿈에 불과한 것이
며,똥오줌처럼 거름이 되어 생명의 씨앗이 되었다가 상여에 실려 가는 죽음의
주인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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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에게 있어서의 질마재는 하나의 삶의 조화로운 질서가 창조되는 신화의
재생 공간이자,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신화를 이야기로 들을 수 있는 추억의 공
간이기도 하다. 질마재 신화 를 듣고 있으면 우리들의 고향시절의 전설을 듣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할머니의 민담을 듣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이야기
속에는 천상과 지상의 구분도,죽음과 삶의 경계도 없는 철학적인 이야기가 신의 몸
을 빌린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우리와 너무나도 닮은,어쩌면 우리의 가족이었을지
도 모를 사람들의 모습으로 재구성되는 것이다. 질마재 신화 는 따라서 죽은 신
화가 아닌 현대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살아있는 신화로서 자리매김할 수밖
에 없는 것이다.
다음은 근대문명에 의해 훼손되지 않은 순수한 공간을 노래한 「간통사건과 우
물」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姦通事件이 질마재 마을에 생기는 일은 물론 꿈에 떡 얻어먹기같이 드물었지만
이것이 어쩌다가 주마담(走馬痰)터지듯이 터지는 날은 먼저 하늘은 아파야만 하
였습니다.한정없는 땡삐 떼에 쏘이는 것처럼 하늘은 웨-하니 쏘여 몸서리가 나야
만 했던 건 사실입니다
「누구네 마누라 하고 누구네 남정네하고 붙었다네!」소문만 나는 날은 맨 먼저
동네 나팔이란 나팔은 있는 대로 나와서 〈뚜왈랄랄,뚜왈랄랄〉막 불어자치고,
꽹가리도,징도,소고(小鼓)도,북도,모조리 그대로 가만있진 못하고 퉁기쳐 나와
법썩을 떨고,男女老少,심지어는 강아지 닭들까지 풍겨져 나와 외치고 달리고,
하늘도 아플 밖에는 별 수가 없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아픈 하늘을 데불고 가축 오양깐으로 가서 가축용의 여물을 날
라 마을의 우물물에 모조리 뿌려 메꾸었습니다.그리고는 이 한 해 동안 우물물
을 어느 것도 길어 마시지 못하고,山골에 들판에 따로따로 생수 구멍을 찾아서
갈증을 달래어 마실 물을 대어갔습니다.
―\「간통사건과 우물」전문(1974)
이 시는 질마재에서 일어난 간통 사건의 발생과 해결 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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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있었던 원시공동체적인 재판의 모습이 고스란히 그려져 있다.간통은
극히 세속적인 삶이 비윤리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사건이다.그런데 그 사건의
해결 과정은 세속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144)간통사건이 일어났을 때 보여주
는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극히 흥미롭다.질마재 사람들은 간음한 남녀를 처벌
하는 대신 마을의 독특한 관습에 따라 마을을 유지한다.마을 사람들은 우선 나
팔이나 농악기를 총 동원하여 법석을 떨어 간통사건이 일어난 사실을 감추기보
다는 온 동네가 떠들썩하게 폭로한다.그리고 그 다음에는 ‘가축용 여물을 마을
의 우물에 뿌려 메꾸’어 버린다.그리하여 이들은 한 해 동안 이 우물물을 길어
먹지 못하고 산골이나 들판에서 생수를 구해 마신다.이러한 행동은 마을의 간
통사건을 개인적으로 처벌하지 않고 공동체의 책임으로 돌림으로써 한 공동체에
서의 간통을 방지하는 지혜로운 대처 방법인 동시에 혹독한 처벌에 대한 제재
행위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흥미로운 것은 마을의 공통체적인 재판인 동시에 축제의 성
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동네 나팔이란 나팔은 있는 대로 다 나와서 〈뚜왈랄
랄 뚜왈랄랄〉막 불어 자치고,괭과리도,징도,소고도,북도,모조리 그대로 가
만 있지 못하고,퉁기쳐 나와 법석을 떨고,남녀노소,심지어는 강아지 닭들까지
도 풍겨져 나와 외치고 달리고’하는 모습은 말 그대로 마을 축제의 모습이다.
더구나 이러한 소리에 ‘하늘도 아풀 수밖에는 별수가 없었습니다’라는 발상은
속화된 삶의 질서를 정화하고 억압된 욕망과 의식을 분출하는 장으로서의 축제
가 가지는 고유한 기능을 환기 시키면서 질마재를 원시 공동체적인 모습 그대로
그려 내고 있다.
이처럼 ‘질마재’는 근대문명에 의해 훼손되지 않은 순수한 공간이다.그곳은
인간의 이성이나 근대자본이 통하지 않는 지극히 원초적이고 공동체사회이다.
따라서 질마재는 전근대적인 우리 민족의 생활방식과 주술적 세계가 결합된 세
계로서 인간의 법보다 자연의 법에 의해,진리나 도덕의 가치보다는 미의 감각
144)인선민,앞의 논문,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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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지배되는 공동체로 그려진다.
다음은 한옥(韓屋)의 툇마루를 소재로 한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외할머니네 집 뒤안에는 장판지 두 장만큼한 먹오딧빛 툇마루가 깔려 있습니다.
이 툇마루는 외할머니의 손때와 그네 딸들의 손때로 날이 날마다 칠해져 온 것이라
하니 내 어머니의 처녀 때의 손때도 꽤나 많이는 묻어 있을 것입니다마는,그러나
그것은 하도나 많이 문질러서 인제는 이미 때가 아니라,한 개의 거울로 번질번질
닦이어져 어린 내 얼굴을 들이비칩니다.
그래,나는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되게 들어 어디 갈 곳이 없이 된 날은,이 외할
머니네 때거울 툇마루를 찾아와,외할머니가 장독대 옆 뽕나무에서 따다 주는 오디
열매를 약으로 먹어 숨을 바로합니다.외할머니의 얼굴과 내 얼굴이 나란히 비치어
있는 이 툇마루에까지는 어머니도 그네 꾸지람을 가지고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전문(1975)
인용시의 제재는 전통적 한옥의 툇마루인데,그것이 시적 자아의 어린 날의
체험을 통과함으로써 때거울이라는 의미를 획득한다.일종의 은유인 ‘때거울 툇
마루’를 매개로 인용시에 실감나게 형상화된 것은 어머니의 꾸지람을 듣고 외할
머니에게서 위안을 구하는 자아형성의 원초적 장면이다.즉 시인은 자아형성의
공간인 고향을 탐구함으로써 전통 탐구의 새로운 국면을 개척해간 것이다.
질마재 시편들의 집중적인 탐구 대상은 전래적 사물이나 풍속 혹은 그에 얽힌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이야기의 자유로운 개진을 위해 산문시 형식이 채택
되었고 그것은 구체적 체험을 반영하는 문제와도 관련된다.바꾸어 말하자면,질
마재 시편들은 미당의 전통 탐구의 주요한 성과로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
는 만큼 구체적 삶과 밀착되어 있다.한편 그러한 구체성은 질마재 신화 의 시
편들이 신라초 나 동천 의 시편들보다 실감을 주는 이유가 된다.작가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질마재 시편들은 “글 아니라도 수천 년을 두고 실생활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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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져온 생활전통”145)을 탐구한 것으로 기록을 위주로 하여 탐색한 신라나 불
교 관련 시편과 성격을 달리한다.
이와 같이 신화는 단순한 의미에서 서양적인 신들의 이야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천상의 것들을 닮으려는 물상들의 모습과 그 모습 속에서 진실이나 진리를 이야기하
려는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야말로 또 다른 의미의 신화의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신화에는 신격화된 신들의 이야기가 아닌 그들을 닮고 싶어 하는 범박
한 인간들의 속내가 속속들이 구현된다.천상의 것들을 닮고 싶어 하는 범부(凡}
夫)들의 이야기는 질팍한 질그릇과 같은 할머니의 입담처럼 또는 보잘 것 없는 인
간들의 한이 상승의 이미지를 타고 승천하는 모습으로 구현된다.미당에게 있어서의
신화란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규정짓지 않은 범위 내에서 무한한 모습으로 드러
내 보일 수 있는 상승의 이미지와 상통한다.그것은 하늘에만 머물러 있는 지정
된 이야기가 아닌,그들을 닮고 싶어 하는 지상의 모습을 민담이나 재담의 구조
를 통하여 한 차원 승화시켜,죽음과 삶도 넘어서고,나와 너를 넘어서는 삶의 진
리로 나타나는 것이다.범부의 이야기를 통해 때로는 전설 속의 이야기나,유년
의 따스한 공동체의 신화의 진정한 의미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2.자유로운 영혼과 우주적 교감
서정주의 떠돌이의 시 가 출간된 것은 1976년이다.이때 미당의 나이 70대 무
렵이다.공자는 70대 무렵의 정신과정을 ‘종심(從心)’이라 하여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인간의 법도를 넘어가지 않는 경지에 도달하여 진정한 자유를 누린
다’146)고 표현하였다.말하자면 자유인의 자격을 취득하는 시기라는 것이다.이러
한 자유인으로서의 영혼은 1977년 이후 킬리만자로에서 남태평양의 조그마한 섬
까지 세계 곳곳을 떠돌며 그곳의 풍물과 사상,종교,철학 등을 시로 담는 여정
145)서정주, 서정주문학전집 3,일지사,p.29.
146)여기서 자유인은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에서 유래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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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이어진다.세계여행의 체험과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한 영혼의 자
유로움은 1980년대 정치적 굴곡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시작으로 이어진다.
떠돌이의 시 이후 출간된 서으로 가는 달처럼 (1980),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
(1982), 노래 (1984), 산시 (1991), 늙은 떠돌이의 시 (1993), 80소년 떠돌이의 시
(1997)등의 시집들은 청년기부터 간직해온 신화적 상상력을 세계 각국의 지리와
민담,전설로까지 지평을 넓히는 작업일 뿐 아니라 우리의 신화 체계 속에 용해하려
는 작업이며,나아가 인류를 우주적 차원에서 교감하려는 시도이다.
이와 같은 시적 세계를 고찰하기 위하여 먼저 이 시기에 발표된 미당의 시들
을 살펴보기로 하겠다.다음은 「시론」의 전문이다.
바다속에서 전복따파는 제주해녀도
제일좋은건 님오시는날 따다주려고
물속바위에 붙은 그대로 남겨둔단다.
詩의전복도 제일좋은건 거기두어라.
다캐어내고 허전하여서 헤매이리요?
바다에두고 바다바래여 詩人인것을......
―\「시론」전문(1976)
떠돌이의 詩 (민음사,1976)의 맨 앞에 수록되어 있는 이 시는,시인들이 자
신의 중간 생애에 하나쯤 으레 하듯이,자신의 시적 지향과 시 의식을 시로 밝
혀 놓은 작품이다.그렇다면 그가 나중에 주려고 기다리는 ‘님 오시는 날’은 언
제인가,아마도 그의 생애에서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이‘유예'와 ‘감춤'의 연
쇄 체계가 미당 시학의 자아상이기 때문이다.
1936년 등단부터 치더라도 60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져 있는 미당의 시 세계는
결코 단일하지 않다.생명파라는 이름을 얻은 초기시의 탐미적 관능의 세계와
불교로 대표되는 동양정신을 추구한 후기시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존재한
다.그럼에도 미당 시를 관류하는 공통점이자 그로 하여금 ’시인 부락의 족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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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하나의 정부‘니 하는 별명을 듣게 한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말을
다루는 그의 천부적인 감각이라 해야 할 터이다.그의 고향 전라도의 사투리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미당의 시 언어는 민족어의 가능성을 한껏 키운 것으로 평가
된다.그는 30년대를 주름 잡던 김기림과 이상의 모더니즘이나 초현실주의를 극
복 대상으로 삼는 한편 20년대의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시적 경향과도 일정한 거
리를 두었다.이 같은 시 세계에 영향을 준 것은 고향의 원초적 서정과 외국의
문학세계였다.이와 함께 광범위한 문학적 체험은 다양한 편력을 낳게 했다.그
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출발해 짜라투스투라로 이어지는 신성과 초인정신에
관심을 가짐은 물론 보들레르와 이백으로부터는 인간의 질곡(桎梏)과 자연의 시
심을 두루 섭렵했다.
서정주에게 있어서 여행은 그리 낯설지 않은 체험이다. 화사집 에서 보이는
만주체험과 제주도의 체험을 비롯하여, 동천 의 「여행가」, 떠돌이의 시 에서
실린 시편들에 나타난 여행시들은 자유로운 영혼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이러
한 시 세계를 유지시키는 한 축으로서 여행은 그의 시에 있어서 친숙한 소재이
며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자신이 이름 지은 ‘인생파’의 시인으로서 여행은 삶의 한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바람이 불어서/그 갈대를 한 쪽으로 기우리면/나는 지낸 밤 꿈 속의 네
눈썹이 무거워/그걸로 여기/한 채의 새 절깐을 지어두고 가려 하느니'(「여행가
」)147)의 일절은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은 눈썹을/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
어서/하늘에다 옴기어 놨더니/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그걸 알고 시늉
하며 비끼어 가네'(「동천」)148)의 시상을 연상시키면서,동시에 ‘쏘내기속 청솔방
울/약으로 보고 있다가/어쩌면 고로초롬은 될 법도 해라'(「雨中有題」)149)에 더 정
서적으로 가까이 다가서 있다.시인이 이처럼 여행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
까?
147)서정주, 동천 ,pp.112-113. 전집 ,p.197.
148)서정주, 동천 ,p.3. 전집 ,p.156.
149)서정주, 떠돌이의 시 ,p.75. 전집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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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자신의 영혼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감각세계를 필요로 한다.보들레르가 이
룩한 가장 큰 공헌 중의 하나는 도시 풍경,집,房,실내 광경 등을 관조의 대상으로 삼
은 점과 그것들의 추한 모습과 산만한 속에서까지도 시인 자신이 지닌 모순과의 어떤
은밀한 아날로지를 발견했다는 점이다.<인간들의 저 거대한 사막>인 군중 속에서,돌
과 벽돌의 얼굴을 한 대도시의 거리 속에서,이 詩人은,--변모해 버리고 인공적으로 조
작되어 이제는 그 모습을 알아볼 수 없게 된 자연스러운 매음(賣淫)>이라고 이름 붙인
행위에 잠겨들게 되었고,주체와 객체가 상호 흡수되는 <범우주적 교합(交合)>의 상태에까
지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150)
떠돌이로서의 시인이란 ‘고독한 산책자’로서의 시인을 떠올리게 한다.보들레
르는 ‘영혼의 성스러운 매음’을 통해 ‘범우주적인 교합’에 이르려고 했다.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영혼을 표현하는 수단이 필요하다.이것은 시인에
게 감각세계와 질료가 필요함을 의미한다.이는 여행이라는 것을 통해서 쉽게
얻을 수 있다. 떠돌이의 시 라는 시집의 제목에서 ‘떠돌이’란 시인의 별칭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떠돌이의 시 에 수록된 시편에서는 의외로 공간적 이동이 크
게 보이지는 않는다.오히려 정적이라고 할 만한 시편들이 모여져 있다.
신라의 어느 사내 진땀 흘리며
계집과 수풀에서 그 짓 하고 있다가
떨어지는 홍시에 마음이 쏠려
또 그르르 그만 그리로 굴러가버리듯
나도 이젠 고로초롬만 살았으면 싶어라.
쏘내기속 청솔 방울
약으로 보고 있다가
어쩌면 고로초롬은 될법도 해라.
―\「우중유제」전문(1975)
150)마르셀 레몽,김화영 역, 프랑스 현대시사 ,문학과 지성사,1983,pp.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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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계집과 욕정을 풀다가도 홍시가 떨어지면 마음이 그 곳으로 쏠려 그
리로 굴러가 버린다.아마 보통 사람 같으면 욕정을 계속 풀고자 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집착이다.색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범부에 지니지
않는다.시인은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 왔다.색욕과 식욕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
다.이순을 넘어선 그는 이로부터 해탈을 꾀한다.집착을 벗어나려고 한다.소나
기 퍼붓는 청솔 방울을 약으로 보고 있을 정도의 마음공부를 하게 되면 그렇게
될 법도 한 것이다.시인이 애기하고자 하는 것은 꼭 성욕에 국한된 것은 아니
다.나약한 인간이기에 갖게 되는 온갖 것들에 대한 집착,그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미몽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시인을 비롯한 인간들 모두가 그로부터 벗어나
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인간이 살아갈 이치를 인식한 시 「곡」이다.
곧장 가자하면 갈수 없는 벼랑 길도
굽어서 돌아가기면 갈수 있는 이치를
겨울 굽은 난초잎에서 새삼스레 배우는 날
무력이여 무력이여 안으로 굽기만 하는
내 왼갖 무력이여
하기는 이 이무기 힘도 대견키사 하여라
―\「곡」전문(1976)
난(蘭)이란 칼같이 날카롭고 빼어난 잎새가 적당히 휘어져 있으나 꺽이지 않
고,청초하고 은은하며 사철 푸르른 모습을 지닌 것이 난이다.그러기에 사군자
의 하나로 손꼽혀 왔다.시인은 이 난초에서 ‘곡'의 철학을 배운다.‘직'이란 것
이 지름길을 택할 때나 인간의 심성을 거론할 때 내세우게 되는 것이지만,살다
보면 반드시 ‘직'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굽이굽이 돌아야 벼랑길을 갈 수 있
듯이 경우에 따라 인간도 살아가는 방도가 곡선으로 이루어져야 할 때가 있다.
시인은 그 진리를 겨울 굽은 난초잎으로부터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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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미당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변명인지도 모른다.일제시대에는
창씨개명을 하며 친일을 했고,군사정권 때는 그 지도자를 찬양했던 자신의 삶
을 두고,인간이란 굽을 때는 적당히 굽을 줄도 알아야 그것이 풍류요,한국적인
생명의 사는 힘으로 인식한 것이다.
서정주는 떠돌이의 시 를 마무리 짓고 수년에 걸쳐 각지를 떠돌며 여러 나라
의 산과 지리 그리고 민속 문화와의 공통점을 찾아 이를 시로 엮어 발표하고,
이를 양국에 소개하는 등 우리의 전통적 문화와 민속 문학을 찾아 헤맨 것은 우
리 인류가 지니고 있는 인간의 근원적인 모습을 그들의 전통문화나,문학 속에
서 찾아 보려는 노력이었을 것이다.
이 세계여행을 통해서 그는 서으로 가는 달처럼… 이라는 시집과 떠돌며 머
흘며 무엇을 보려느뇨 라는 산문집을 출간한다.151)시인은 훗날 이러한 작업의
의도는 ‘시의 감동적 체험을 많이 겪어 보자는 욕심’때문이었다152)고 술회하였
다.
이와 같이 여행은 인생의 과정과 유비관계에 놓여 있다.그러나 여행 그 자체
는 끝이 없는 것이다.여행에서 시적 소재를 찾으려는 시인의 의도는 인생의 재
출발을 시도하려는 숨은 의도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이때 감각적인 인상의
세계를 마음껏 향유하려는 의도도 인생의 보편적인 의미를 확대하려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서정주는 서으로 가는 달처럼… 에서 ‘시의 감동적 체험을 아주 많이
겪어 보자는 욕심’을 부려 보았지만,여행에서 얻은 체험이 모두 흡족한 시적인
체험으로 전화되지 못했던 것 같다.우선 서양의 과학 기술 문명이 인간을 어떠
한 형상으로 만들어 놓았는가에 대한 시인의 실망은 서구 문명에 대한 불만과
비판의식을 고착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151)서정주, 서으로 가는 달처럼… ,문학사상사,1980. 떠돌며 머흘며 무엇을 보려느
뇨 ,동화출판공사,1980.
152)서정주,「나의 문학인생 7장」, 시와 시학 ,1996가을호,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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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깜둥이는 野卑하고 殘忍하다」고만 하는가?
왜 사알 사알 피해만 가는가?
그러니까 깜둥이는 노여워하고
그래서 깜둥이는 反抗해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케네디의 반만큼이라도 본심으로
그들을 아끼고 사랑해 주어 봐라
깜둥이들은 미국 제일의 愛國者라도 될 것이다.
―\「케네디 기념관의 흑인들을 보고」일부(1980)
그건 그렇긴 하지만서도
해만 지면 감둥이들이 왜 저 행패지?
왜 저리 원수져서 육혈포를 빼들지?
워싱턴 DC에는
무언가 모자란 것이 있기는 있다.
무언가 얼바진 것이 있기는 있다.
사랑이란 것도 제대로는 다 못된
무언가 반편인 것이 있기는 있다.
―\「워싱턴 DC」일부(1980)
시인이 특히 미국에서 본 것은 흑인들에 대한 편견이다.시인이 흑인을 깜둥
이라고 칭하는 것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흑인들이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러운 것
이었고 그것에 대한 원인을 찾기에 이른다.그것은 흑인들에 대한 사랑의 결여
를 가장 큰 원인으로 들 수 있을 것이다.그것은 사람이란 것이 ‘제대로는 다 못
된’그것인데 무엇인가 모자란 것,얼빠진 것,혹은 반편인 것의 그 무엇이다.시
인은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불만스럽고 거북해 하고 있었던 것임에 틀림없다.153)
153)허윤회, 서정주시연구 ,성균관대 대학원 박사학위논문,2000,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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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자들의 아직도 씽씽한 웃음 한 가지를 빼놓는다면 서양이 근대 이후 만들
어 온 그 복잡한 과학문명이란 도대체 무얼하자는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볼 때
그건 정말 아찔하기만 한 것이었다.더구나 세계에서도 가장 큰 도시의 하나인 뉴욕
의 밤하늘 아래의 뒷골목에서 젊은 여자들이 취객들과 흥정해 이내 별실의 매음행
위로 들어가는 과정까지를 보자니 내 아찔한 느낌은 점점 더해 갈밖에 없었다.154)
위에서 말한 내용을 풍자적으로 다룬 시로는 「텐 달러 모어!」를 들 수 있을
것이다.어떤 사람이 흑인 여자에게 끌려서 매음을 하러 갔는데 흑인 여자는 관
계를 맺을 만하면 계속 ‘텐 달러 모어’를 요구했다는 이야기이다.물질적인 관계
를 통해 인간이 황폐화되는 문명에 대한 비판이 여행객인 시인의 마음에는 곱지
않게 비쳤던 것이다.하지만 ‘젊은 여자들의 아직도 씽씽한 웃음’에서는 생명과
자연의 힘을 느낄 수 있었던 듯하다.155)
누가 나를 되개는 건드려서
돌 맞은 鐘바위처럼
감각 울려 성가신 날은
웃는 것이 우는 것 같다가
우는 것이 웃는 것 같이만 되는
저 블루메리아 꽃관을 쓴
하와이 아줌마 노래를 듣겠노라
U.S.A 마리화나 히피보다는 덜 유치한
국민학교 육학년자리
하와이 아줌마 노래를 듣겠노라
―\「카우아이 섬에서」일부(1980)
이것은 시인이 말하고 있는 대로 ‘서양의 젊은 여자들의 그 이지러지지 않은
154)서정주,「나의 문학인생 7장」, 시와 시학 ,1996가을호,p.49.
155)허윤회,앞의 논문,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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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핀 얼굴의 꽃다웁게 발랄한 웃음이요,그 찬란한 소리’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시에서 그가 그 발랄한 웃음과 그 찬란한 어릴 적 유년의 기억을 연결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으며,인공의 때가 묻은 서구의 문명이 보여준 히피의
문화라는 것에서도 그는 거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156)
그러나 사실 이것은
사실 그대로
넓이 7백50미터의,높이 48미터의
아마도 몇 億萬名은 좋게 넘는 사람들의
피의,피의,피의,피의 합쳐진 폭류인 것이다.
그나마 피의 그 붉은 빛마저
햇볕에 두루 증발당하고 만
너희들의 선인들의 빛 바랜 피인 것이다!
―\「나이아가라 폭포 옆에서」일부(1980)
그 피나 물기운이
어느 만큼만 순했어도 좋았으련만
너무나도 뻣새고 극성스러서
시체에서 증기로 구름되던 마당에도
아늑하고 포근한 하늘 속엔 못 앉고
북극 한풍 모진 데로 몰려가서 엉겼다가
그래도 문득 사람 세상이 그리우면
폭풍따라 지랄하러 몰려오는 곳입네다
몬트리얼 국립은행 42층 스카이라운지는……
히야아!히야아!히야아!히야아!
수만갈래 회오리 눈보라도 미쳐 딩굴며
히야아!히야아!히야아!히야아!
불쌍하고 불쌍한 것은 몸부림입데다.
―\「몬트리얼의 북극풍설」일부(1980)
156)허윤회,앞의 논문,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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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의 시 세계에 있어서 순환론적인 세계관은 하나의 특징이다.중기시의
세계에 있어서 영원성이라는 개념을 정립해 낼 수 있는 이론적 거점은 바로 순
환론적인 세계관이다.사람은 죽어서 육신이 땅에 묻히게 되는데,이때 피는 증
발되어 구름으로 머물다가 비가 되어 내리고,그 빗물은 흘러 강물이 되고 바닷
물이 된다.그리고 그 강물과 바닷물을 통해 우리는 삶의 자양분을 얻게 된다.
그는 이러한 세계관을 「인연설화조」나 「고대적 시간」등에서 표현한 바 있다.시
인이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고서 첫 번째 떠올린 상념은 자신이 생각한 가설을
적용할 수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물길이었을 것이다.그래서 그 상념의 폭은 확
대되어 수억 만 명의 혈류가 떨어지는 폭류로 인식되었던 것이다.그것은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증발된 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그런데 그런 시세계의 관
습적인 적용은 그리 바람직한 것이 되지 못한다.
「몬트리올의 북극풍설」은 위에서 기술한 순환론적인 세계관에 이론적 거점을
두고 있으면서도 구체성을 발휘하고 있는 시편이다.피나 물 기운이 다르다는
것에서 출발해서 그 ‘뻣세고 극성스러’운 기운이 북극에 가 있다가 다시 몰려온
다는 발상은 자연스럽다.하지만 ‘그래도 문득 사람 세상이 그리우면’이라는 동
질성을 통해서 북극의 눈바람이 오는 이유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그렇게 북극
에서 몰려오는 바람과 눈은 ‘미쳐 뒹굴고’있지만 사람과 세상을 만나서 반갑다
고 표현했으며,지금은 볼 수 없는 선인들의 핏자국이라는 점에서 그 선인들의
몸부림으로 볼 수도 있다는 지적은 구체적이다.그것은 시적인 발상에 다루고
있는 소재가 육박해 들어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아무튼 ‘히야하!’하고 울부짖
는 외침의 의미는 하나의 구체적인 의미를 부여받게 된 것이다.그것은 인간과
자연의 친화력에 대한 시인 나름의 시적 진술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지만 여행을 통한 인상의 즉자적인 기술이 시편으로 성
공하기 위해서는 축적의 과정이 필요했는데,아마도 당시의 시인에게는 그러한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던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따라서 시상의 전개방
식에 있어서도 자신의 이전의 시작에서 보인 시상의 전개방식을 이입하는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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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취하고 있다.그런데 정체성을 세계와의 대면이라는 측면에서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제거되었다.이러한 문제의식은 이후에 산시 의 세계를 촉발하게 된 가
장 큰 이유라고 판단된다.157)
1991년에 상재된 시집 산시 는 서정주의 13번째 시집이다.여러 가지 방식으
로 세상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산시 의 제작은 서정주의 건강비법에 연유한다.
그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체조와 산책을 게을리 하지 않
는 한편 기억력을 유지할 방법으로 세계의 산 이름 1625개를 골라서 아침마다
되풀이 암송하게 되었다. 산시 는 그런 일종의 건강 기억술을 통해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산시 와 함께 이제는 제법 잘 알려진 일화이다.
서정주의 시세계에서 ‘산’이 산시 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의외의 일로
받아들여진다.그가 ‘무등을 바라보며’라는 명편을 제작한 사실은 있다.하지만
고희를 넘어가는 시점에서 그의 관심이 왜 ‘산’으로 집중되었는가는 따져 보아
야 할 사항이다.
이에 대해서 강우식은 ‘산은 부동이다.그리고 직립이다.산은 지구의 높낮이
중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다.’고 말한다.그 뒤에 시인 서정주의 정
신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산은 ‘하늘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서서 통로를 열고
자 하는 정신적인 시인의 의지를 상징’한다고 풀이하였다.아울러 그는 서정주가
표현한 산의 의미에 대해서 ‘그저 인간이 만들어 낸 신화와 전설 그리고 인간들
의 이야기를 채우기 위한 하나의 그릇’일 뿐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158)이를테
면 서정주의 중기시에서 ’신라‘가 시적 세계를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었듯이,후
기시에서의 ’산‘은 그런 표상의 공간을 의미한다는 지적이다.
사실 서정주는 ‘산’이라는 표상을 신성공간으로 다루고 있다.그의 시 「꽃밭의
獨白」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사소(娑蘇)가 처녀로 잉태하였을 때 신
선수행을 위해 찾아가는 장면을 시화한 것이다.우리에게 있어서 산이란 우선
신선 수행을 위해 찾아가는 신성공간으로서의 의미가 깃든 대상이었다.이 신성
157)강우식,「절망의 길,조화의 길」, 서정주 문학앨범 ,웅진출판,1993,p.116.
158)강우식,위의 글,p.117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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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산 경험의 구원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매개적 기능을 통해서 산의 현존은 구원론을 표상한다.159)
산이라는 표상의 공간 내에서 신화와 전설 그리고 인간사를 조직하다가 보면 어느
새 산시 의 세계에 도달하게 된다.다만 중기 시에서 시도되었던 ‘신라’의 표상이
역사적인 시공간의 영역과 혼동될 수 있는 데 반해서 산시 의 세계에서는 그런 구
체적인 근거를 배제하였다.이름으로서의 ‘산’과 그 산들의 의미에 대해서만 집중하
고 있다.그런 면에서 산시 의 공간은 순수한 표상의 세계이다.
이밖에도 서정주가 산을 소재로 한 시편은 이후에도 여럿이 있다.다음으로 「백
두와 한라의 1974년 봄 대화」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여기도 별수 있는 思想이랄 것도 없지만,그래도 情이 하나 되게는 끈질긴게 있어,
이거나 믿어 볼까 한다.
영 형편 안 닿는 사람들까지 모두다 제 子女는 大學{까지 시켜서 다음 代는 自己보다 有能\해져
야만 되겠다는 父母노릇의 情-이것은 아마 地上에선 지금 大韓民國것이 最高아닐까?
白頭!나는 이것을 믿기로 했다.
이렇게 몇 代건 몇 十\代건 되풀이해 가는 동안에 이들은 결국 나아져 갈 것이고,이
情에 알맞은 思想도 만들 것이다.
―\<백두와 한라의 1974년 봄 대화>일부(1976)
위 시에서 선보인 시인의 통일론은 소박한 것인데,이것을 소박한 것이라고
넘겨보기에는 일말의 진실이 놓여져 있다.그것은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정,세
상살이의 어려움을 견뎌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한 전언이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
다.이것은 「무등을 바라보며」의 메시지와도 상통하는 것인데,이 시를 서정주
시세계를 본격적으로 열었던 작품이라고 한다면,이러한 시 정신을 현실에 접목
시켜 확대시킨 것이 바로 이 시라고 할 수 있다.아마도 문학전집 이후의 산
은 시인의 정체성을 민족의 국토와 연결시키려는 의도의 소산으로 볼 수 있다.
159)정진흥,「산에 안긴 삶」, 하늘과 순수와 상상 ,강,1997,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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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후기시에서 시인 서정주가 목표한 바라고 할 수도 있다.자신의 시
정신을 현실에 접목시켜 윤리화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그렇지만 「무등을 바라
보며」가 삶과의 치열한 고투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각 개인이 이를 어떻게 수
용하여 윤리화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아직도 미답의 상태에 놓여 있다.
산시 에 나타난 ‘산’은 대체로 ‘자연의 인간화’라는 내포적 의미를 갖고 있다.
산은 지상에서 하늘을 향하고 있지만 의인화된 산의 모습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평
등하게 자리하고 있다.제각각 지상의 중심이면서 그 중심은 다른 중심과 우열을
두지 않는다.다만 그 중심에서 그 위치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자연’이라는 개념
적인 표현이 그 진위를 문제 삼을 수 있음에 반해서 ‘자연’의 의미를 내포한 ‘산’은
그 개념마저도 거부함으로 인해서 그 중심을 지킬 수 있다.이것은 ‘산’은 상징이기
도 하거니와 그렇게 빗대어진 인간의 모습들도 산을 닮아 있다.그런 인간의 모습
을 자연으로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서정주가 산시 에서 말하고 있는 ‘자연의
인간화’는 ‘인간의 자연화’를 의도하고 있는 셈이다.그러나 그런 의도를 겉으로 드
러내지 않는 것 또한 산시 의 미덕인데 그것은 ‘겸허하기’혹은 ‘겸손’이다.산은
자연을 닮아 높이 솟아 있어도 그 모습을 뽐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겸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160)그는 산시 의 제작에 임하는 자세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이 세계의 山詩들의 내용속에다가는 그 山들이 소속해 있
는 나라들의 신화와 전설과 민화들을 밉지 않게 깔기에 주력하였고,거기 불가불 어
리어 나오는 각기의 사상성에 대해서도 내 主見을 되도록 줄이고 그 각기의 특장점
(特長點)으로 보이는 것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기에 마음을 썼다.161)
각각의 대상에 대한 주견을 줄이고 각각의 특장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있
어 겸허하기는 이 산시 의 세계를 보다 다채롭게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周易 에서 겸허하기 혹은 겸손하기는 지산겸(地山謙)으로 표현되고 있다.상궤가
160)허윤회,앞의 논문,p.144.
161)서정주, 산시 ,민음사,1991,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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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표시하는 地이고,하궤가 산을 표시하는 山이다.땅 위에 산이 솟아 있는
것은 자연스런운 자연의 풍경임에 틀림없다.하지만 겸괘(謙掛)에서는 산이 아래
에 있고 땅이 위에 있다.이는 남을 무시하고 오만한 마음을 다스릴 것을 시사
하고 있다.아울러 주역 전체를 통해서 이 겸괘만이 모든 일을 순차적으로 풀어
갈 수 있는 유일한 괘이다.시인이 말하고 있는 겸허하기는 자연의 순리를 인간
의 순리에 접목시키고자 한 의도로 풀이할 수 있다.162)
그러시고는 또
老子流로
姓名도 필요없다는
無名氏까지 다 있어요.
―\「오스트리아의 山들에는」일부(1991)
아이오와 사람들은
옛날 中國의 老子처럼
無名을 좋아해서요
씨브리村옆에
나지막한 山하나 달랑 있는 것도
아직 이름도 붙이지 않고
그대로 놓아 두었어요.
―\「아이오와의 유일한 산」전문(1991)
서정주는 노자의 첫머리를 암시하면서 외국의 산에서 받는 인상을 자유롭게
서술하고 있다.그런 노자의 취향을 외국의 산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서양과 동양의 구분이 무화되는 느낌이다.그리고 그러한 구분을 넘어선 곳에서
또 다른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산시 에서 보여지는 시인의 가슴은
이런 데서 느껴지기도 한다.163)
162)허윤회,앞의 논문,pp.14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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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중국땅의 서남쪽에
치완(壯)이란 한 겨레가 살고 있었는데
여기 중국에서도 가장 낮은 곳이라
중구의 해의 힘이 아직 거기까진 미치지 못해
늘 침침하고 어두워서
치완 사람들의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네.
…… 〈중략〉……
그 뒤 여러 십년이 지나
그 여자가 그만 다 늙어빠져서
그 어디 소나무 밑에 묻히게 되자
뒤이어선 아들이 혼자
걷고 걷고 또 걸어서
이 에베레스트山나를 찾아온 것은
그 母子가 길을 떠난 지
꼭 一百年째 되는 해의
어느 화창한 봄날이었네.
…… 〈중략〉……
하여간에
이 중국인 모자를
나는 지금도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네.
―\「어느 흐린 날에 에베레스트 영봉이 하신 이야기」일부(1991)
「어느 흐린 날에 에베레스트 영봉(靈峰)이 하신 이야기」164)에 들어 있는 내용
은 다음과 같다.중국의 서남쪽에 치완(壯)이란 부족이 살고 있었는데,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곳이다 보니 해가 잘 들지 않는 곳으로 매우 척박한 곳이라고 하겠
다.그러던 어느 날 부족이 회의를 열어 ‘가장 높은 산 위의’해뜨는 곳에 가서
163)허윤회,앞의 논문,p.145.
164)서정주, 산시 ,민음사,1991,pp.25-27. 전집 ,p.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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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에게 사정을 해보기로 하고 보낼 사람을 선출하게 되었다.한 젊은 여자가 나
서 자원하게 되었는데,그녀는 ‘저는 아직 젊고/또 뱃속에는 두 달 된 아이까지
가졌으니/그 먼 데까지 저의 모자가 이어서 다녀오는 것이/제일 알맞겠습니
다.’라고 말하였다.
그녀의 말은 용기를 가득 담고 있는 말이기도 하거니와 지혜로운 말이기도 하
다.그래서 그녀는 산을 찾아가다가 여덟 달 뒤에 사내애를 낳고,같이 가다가,
그녀는 늙어 땅에 묻히게 되고,그 아들이 백 년 만에 산을 찾아오게 된다는 이
야기다.그 ‘화창한 봄날’에 환하게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게 빛이 비치는 것
은 이 시의 매력이다.아울러 그 아들이 돌아가다가 어느 곳에 묻힐지 알 수 없
다는 추측은 인생의 무상함을 애잔하게 전해준다.인간의 세대유전이라는 것은
자신이 걸어갈 수 있는 곳까지 자신의 일에 충실한 것,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
니다. 그 모자는 그것을 용기와 지혜로 받아들인 자들이다.165)
산시 의 세계도 일단은 신라초 에서 이어지는 그의 불교적 인생관의 연장선
상에서 바라볼 수 있다.단지 차이가 있다면 그 대상과 공간의 협소함을 벗어나
전 세계를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그런 의미에서 그 중심은 불교적
인생관과 그의 지속적인 탐구정신이라 할 수 있다.166)그 내용과 형식의 편차를
즐기는 것이 산시 를 읽는 또 다른 묘미라고 할 수 있다.
165)허윤회,앞의 논문,p.146.
166)김주연에 의하면,서정주는 ‘한국 사상의 근본으로서 샤머니즘을 부정한다.차라리
불교의 윤회정신과 결부된 풍류사상이 본체라고 주장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이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서정주의 시가 샤머니즘이라는 종교의 영역으로 넘어가지 않으면서
도 문학이라는 표현의 세계에 머물 수 있는 이유이다.그런 면에서 불교는 샤머니즘
의 세계를 표현하고 언어화할 수 있는 일종의 매체(medium)다.그것은 다른 이름으로
풍류라고 한다면 그건 정신의 본질세계를 표현하는 세계이다.이것은 다시 현대에서
‘예술’이라는 분야로 특화되었다.영생주의를 믿고 실천한다는 것은 예술의 불멸을 믿
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런 불멸의 예술의 대상이 되는 것이 순수한 정신의 세계라
면 그것은 자연의 세계다.다만 그것을 唯一神化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것이
각자의 각성을 통해서 이룰 수 있는 세계라는 점에서 석가모니에 대한 애착은 크지
않을 수 없다.그리고 그것을 알든지 모르든지 간에 살아가는 중생의 모습은 자연과
석가모니의 모습에 닮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서정주의 생각이다.서정주는 이
를 샤머니즘과 불교의 습합이라는 관점에서 말한 바 있다.고대의 샤머니즘과 도교의
정신적 지향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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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의
해돋이 한 때를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킬리만자로의 세 山봉우리는
무엇을 以心傳心合議하는 것일까?
麒麟의 키 만큼한 〈새벽나무〉옆
그 잎을 뜯어먹다 또 사랑 기억하는
까시버시 麒麟의 입마춤이 보인다.
고요하디 고요한 입맞춤을 보인다.
―\「킬리만자로의 해돋이 때」전문(1980)
나로 말하면
子孫福도 괜찮게 있는 편이지
이 몸의 東쪽 아래께를 잘 살피어보게
陸軍少將비스름한 내 아들과
그리고 그 밑에
大尉같은 내 孫子가
쓰윽 버티고 있는 것이 보이겠지?
그러신데,
이케냐와 탄자니아 高原에서
余
를 가장 잘 이해하는 자가
과연 그 누구인 것 같나?
그건 사람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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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도 호랑이도 코끼리도 아니고
다정한 암수컷의 한 쌍 기린 內外야,
그것들은 언제나 해돋이 때면
일치감치 나와서
새벽이란 이름의 높은 나무의
단잎들을 나란히 서 뜯어먹다간
나를 보고는 수줍은 듯 미소하며
아조 조용히 서로 입을 맞대고
뽀뽀도 한다네
―\「킬리만자로山의 自己紹介」중에서(1991)
「킬리만자로의 해돋이 때」는 서으로 가는 달처럼 에 실린 시인데 이 시는 山
詩 에서 「킬리만자로山의 自己紹介」라는 작품으로 다시 변주되어 창작됨과 동시
에 제일 마지막에 실렸다는 점에서 산을 통해 그가 전달하고자했던 시적 메시지
의 궁극적 면을 보여주고 있는 시라 할 수 있다.
킬리만자로 산의 주변에 머물고 있을 때 시인이 발견한 것은 “할아버지/아버지/
아들”로 이어지는 세대유전을 닮은 듯한 산봉우리이다.그 산들은 말없이 “以心傳
心合議”라도 하는 듯이 거기 서있을 따름이다.그 해돋이 광경에서 시인은 또 한
쌍의 기린부부가 새벽나무의 잎을 뜯으며 사랑의 입맞춤하는 장면을 본다.기나긴
여행의 일정에서 이러한 광경은 시인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면서 다시 「킬리만자
로의 自己紹介」라는 시로 변주되기에 이른다.
「킬리만자로山의 自己紹介」에서 킬리만자로의 세 봉우리는 미당 자신과 그리고
그의 아들,또 그의 손자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이 몸의 東쪽 아래께
를 잘 살피어보게/陸軍少將비스름한 내 아들과/그리고 그 밑에/大尉같은 내
孫子가/쓰윽 버티고 있는 것이 보이겠지?”라는 구절에는 이심전심으로 침묵 속에
서 합의를 이루는 킬리만자로의 세 봉우리의 모습을 연상시킨다.그리고 “케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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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 高原에서/余를 가장 잘 이해하는 자가/과연 그 누구인 것 같나?“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다정한 암수컷의 한 쌍 기린 內外“라고 대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麒麟內外“가 바로 미당 부부의 모습 혹은 그 아들 부부의 모습 또는 그
손자 부부의 모습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즉 山詩 의 끝에서 그가 발견한
풍경은 미당과 그 아들과 그 손자가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는 조화로운 삶의 모습
이며 그것은 또한 조화로운 삶속에서 서로 사랑을 나누는 어느 부부의 모습이다.
결국 미당이 산시 를 통해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以心傳心의 合議“를 통
해 서로 생명을 이어가며 조화롭게 사는 우리들의 비근한 삶의 모습이며,그 삶의
태도는 고요한 사랑을 속삭이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아주 평범한 깨달음
이다.이는 일용행사가 도(道)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사실 위대한 깨달음은 인
간의 내적인 마음속에 이미 내재해 있으며,일상적 삶을 가로질러 존재하고 있다.
늘 우리가 접하는 생활세계는 단순하고 범상하며 무가치한 것이 아니라 실상은
우주생명의 과정이며 그곳에 사는 개인 역시 따로 떨어진 개체가 아니라 그 안에
무궁한 우주 생명을 모시며 모든 것과 모든 것을 이어주는 매개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미당이 ‘산’이라는 상징체를 통하여 말하고 있는 것은 우주적
생명을 서로 나누고 이어가는 바로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그 모습은 때로는 자기
를 죽이고자 한 이에게도 자비를 설파하는 석가모니의 모습으로 또는 대를 이어
가며 잃어버린 해를 찾아 순례의 길을 떠나는 여인의 모습으로,혹은 아침 해가
돋는 때 서로 새벽나무 잎을 먹으며 고요한 입맞춤을 하는 기린 내외의 모습으로
변화되면서 항시 미당 시에서 그려지고 있었다.이처럼 미당은 산이 들려주는 이
야기를 통해 이성의 역사와 사유로 덧칠해져 알아볼 수 없는 인간의 본 얼굴을
대면하게 해줌으로써 인간이 잃어버린 원초적 생명의 힘과 보편적 사랑을 재발견
해 주고 있다.167)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질마재 신화 는 시인 자신의 유년시절 고향에로의 정
신적 귀환과 함께 다양한 민간전승이 지닌 세계에 대한 인식을 토속적,민중적 상
167)박순희, 미당 서정주 시 연구 ,성신여대대학원,박사학위논문,2005,pp.2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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