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시 : 2005. 4.30.(토)-5. 1.(일)/ 무박산행
2. 날씨 : 내내 운무와 이슬비
3. 거쳐온 길 : 이화령(529m) - 조령산(1,026m) - 신선암봉(937m) - 조령(650m) -
마역봉 (927m) - 부봉(916m) 갈림길 - 주흘산 갈림길- 탄항산(856.7m) -
하늘재(525m)
4. 산행구간 및 고도표 : 약 17.4km
5. 산행시간 : 약 10시간[새벽 2시 06분 -12시18분]
6. 산행인원 : 일산 알프스 산악회 거북이팀 11명
7. 遊山記
지난 4월 말에 이화령까지 이어가야 했던 길을 금강산행 때문에 잇지 못하고 다시 북진하는 대간 길은 버리미기재에서 이화령까지의 u자형 길과 비슷하게 다시 한번 지난번과 반대방향으로 꼬부랑 길을 만들어놓았다. 도상거리에 비해 위험한 암릉구간이 많아서 아내에게 얘기하면 틀림없이 산행을 말맅 터이고, 처가친척이 있는 괴산 산길을 이어간다고 둘러대고 집을 나선 길이다.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굽이야 굽이굽이가 눈물이난다
노다가세 노다가세 저 달이 떴다지도록 노다나 가세
라는 진도 아리랑을 되뇌이며 버스에서 선잠을 잔 뒤 새벽 2시06분 이화령에 도착했다.
새재란 말의 기원은 여러 설이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그럴 듯하게 여겨지는 것은 草岾이라는 지명(조령산과 주흘산 사이의 새재길에 上草里와 下草里라는 마을이 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아 ‘새’재를 의역해서 ‘鳥’嶺으로 부르는 것이 아닐까?
새벽 2시 9분 산불감시초소를 지나며 산행을 시작한다. 스틱사열을 받으며 통과한 선두는 대장의 산행 주의점을 귀담아 듣지 않았는지 능선길을 치고 올라가 정상까지 무려 9개의 헬기장을 지났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팀은 산불감시초소 옆으로 이어진 8~9부 능선으로 10분쯤 올라가면 너덜지대가 나오는데, 꽤나 된비알이다.
새벽2시30분 너덜길을 통과한다.
5분을 더 올라가면 두 번째 너덜이 나오고 비교적 완만한 9부능선으로 20분을 더 올라가면 주능선으로 올라서면서 곧 헬기장이 나온다.
새벽2시40분
벙커타이어가 있는 헬기장을 통과한다. 헬기장을 지나 소나무가 울창한 오솔길로 올라가면 조령샘갈림길에 닿는데. 주능선길은 이화령 부근 군부대의 통제로 사람이 다니지 않아 희미한 길이고, 조령샘으로 가는 길은 비교적 뚜렷하다.
새벽2시45분 제1구조 표시판을 통과한다.
새벽3시 조령샘에 도착, 대간 길에서 만나기 어려운 한모금 생명수를 들이킨다.
조령샘에서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가면
새벽3시8분 조령산 직전의 1005봉 헬기장을 통과한다. 헬기장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새벽3시19분 조령산(1,026m) 에 도착해 휴식을 취한다.
드디어 조령산, 이화령 548m에서 조령산 1,026m까지 약 500여m를 1시간 20분 만에 조령산에 올랐다. 정상에는 안나푸르나에서 생을 마감한 여성 산악인 故 지현옥을 추모하는 碑木이 세워져 있다.
새벽3시43분 [→신선암봉 60분]지점
3관문 이정표가 있다. 나무계단 하산길을 내려서며 진행하니 로프가 설치되어있다.
가파른 내리막의 연속에 줄을 잡고 내려가느라 스틱이 부담스러워진다.
새벽4시16분 신풍/새재주막 갈림길
조령산에서 내려선 안부 지점의 갈림길로 신선암봉을 향하여 오르막을 올라간다.
새벽4시50분 889m/너럭바위
889m 봉우리는 마당바위가 있고 운무와 더불어 어스름 신 새벽인지라 조망은 기대하기 어렵고 사방이 오리무중인 채로 밧줄을 타고 암봉 위를 오른다.
새벽5시15분 신선암봉
신선암봉을 통과한다. 제7번 구조표시판을 지나서 가파르게 내려선다. 신선암봉에서의 조망도 옅은 운무로 첩첩 연봉의 모습이 흐릿하게 다가온다. 새재 가는 길은 내리막 암릉구간이 이어지고 암릉구간이 지날 쯤 안개가 차츰 걷히면서 짙푸른 녹음이 무성하게 나타난다.
새벽5시25분 공터
신풍리(절골)로 가는 갈림길로 조령3관문까지 120분이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이 구간 오른쪽은 깊은 절벽이고 왼쪽으로는 완만한 것 같지만 잡을 로프가 없어 기우뚱하게 왼쪽으로 몸을 기울인 채 지나간다. 자칫 미끄러지면 큰일이다. 우회길이 있으면 참 좋겠는데 오른쪽 절벽을 부러 외면하며 하염없이 뒤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새벽5시32분 923m/전망대
923m봉 암봉 전망대에 올라서니 조령산이 뾰족하게 솟은 모습과 신선암봉의 바위사면이 대비되어 보일듯 말듯 구름에 싸인 채로 보인다.
새벽5시57분 제13 구조표시판
칼날 같은 능선을 타고 진행하다가 119신고 13지점을 지나면 석굴같이 생긴 지점을 통과한다.
새벽6시5분
제12 구조표시판을 지나고 또 다시 밧줄을 타고 암릉을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한다.
새벽6시23분 제2관문 갈림길
직진하면 조령 제2관문으로 가는 길인데 출입금지고 조령3관문으로 가는 길은 좌측이다. 119신고 10지점을 지나니 비로소 부봉의 솥모양 모습이 뚜렷해지고 월악의 봉우리들과 성벽으로 이어진 산줄기가 드러난다.
오전7시
제10 구조표시판을 통과한다. 대간줄기가 마역봉에서 오른쪽으로 급히 꺾어져 부봉쪽으로 휘돌아 가는 모습이 보인다.
오전7시20분 821.5m/삼각점 봉우리
봉우리에는 삼각점(402)이 박혀있는데 표지석은 없다. 이곳에서의 전망도 좋다. 이 봉우리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깃대봉입구 3거리가 나오고 깃대봉까지는 1km 남았다. 3관문까지는 이제 20분! 관문을 향하여 급히 내려서니
오전7시30분 조령산성 초입 산성터
신라시대의 옛성터가 나온다. 폭 3m, 높이 2m 규모인 성터 원형은 거의 허물어진 상태다.
충주는 남한강과 달천강의 합류지점인 분지로서 토지가 비옥하고 기온과 물의 사정이 좋아서 선사 시대부터 취락이 이루어 졌던 곳이다. 지형은 충주의 남쪽으로 한반도를 가로 지르는 백두대간이 가로막아 일종의 방패 역할을 해 주며, 서쪽과 북쪽으로는 강물이 흘러 자연스럽게 배수의 진을 형성하여 주는바 일찍부터 서울과 강물을 이용한 수운이 통하고 있었다. 따라서 군사상 중요지점으로 삼국시대부터 서로 차지하기 위한 전쟁터가 되어있었고 조선시대에도 "조령"을 잘 막으면 서울이 편안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중요한 곳이었다. 이러한 육로와 수로가 통과되는 요충지이며 남과 북을 있는 중요한 곳임으로, 삼국시대에 남쪽에 자리 잡고 있던 신라가 북쪽으로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충주 지역을 차지하지 않으면 할 수 없었다.
이 한훤령(하늘재) 산성지는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1리와 경북 문경군 문경읍 관음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포암산(961m)와 부봉(925m)사이의 가장 낮은 고개인 하늘재 위쪽을 막아 쌓았던 석성터이다. 삼국시대 초기에 신라와 백제 고구려가 남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백두대간이라는 자연적인 장벽을 사이에 두고 직접적인 대결을 하게되자, 신라는 아달라 이사금(왕의 칭호) 3년(서기156년)에 죽령과 조령 사이에 두고서 가장 낮은 고개인 이곳 하늘재를 통하는 길을 열었다. 이 길을 막는 구실을 수행한 한훤령 산성(하늘재)은 달마산성이라고 부르는데, 성터내에서 신라 계통의 토기편이 발견되는 점으로 미루어 신라쪽에서 쌓은 성으로 보이며, 하늘재 북쪽으로 높이 1-3m 폭 1.8-2.4m로 길이 480m정도만 국유지로 남아있다.
오전7시40분- 조령/3관문(654m) 7시46분 출발
산신각 바로 밑에 조령샘이 있고, 드디어 옛 정취가 풍기는 제3관문(鳥嶺關) 입구에 도착
했다. 명나라의 장수 이여송도 새재에서 신립 장군이 왜 이 천혜의 요새를 왜 버렸는지 알 수 없다고 개탄했다는 이야기도 있는 곳이다. 혹시 산림감시용원이 지켜서 있을까 하는 걱정은 부질없는 것, 상당히 빠른 시간에 도착해서 슬슬 놀며가도 될 것 같다. 조령샘은 공사중인지 보이지 않고, 매점의 파이프에서 흘러내린 물을 받아 채우고 사진을 촬영한다.
이 곳부터는 백두대간길이 월악산국립공원의 경계선이라 이후 하늘재까지 내내 국립공원 표석이 따라온다. 마폐봉-하늘재-대미산-황장산-벌재 구간은 출입금지구간으로 사전에 허가를 얻어야 등산이 가능하다는 월악산국립공원관리소장의 안내판도 마음을 부담스럽게 한다.
3관문에서 마역봉까지는 0.8km로 급경사의 된비알을 치고 올라야 한다. 암릉을 오르니 헌걸차게 나선 봉우리가 이름이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마패봉이라는 봉우리다.
8시 20분 마역(패)봉 (929m)
이 봉우리의 정상표지석에는 마역봉(927m)로 되어 있는데 마역봉 또는 마패봉으로도 불리는 봉우리다. 마패봉은 암행어사 박문수가 이 봉우리를 넘으면서 마패를 걸어놓고 쉬어갔다는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3관문에서 고사리마을로 들어가다 보면 박문수 소나무라는 것도 있다고 한다. 마역봉 정상에서 조망을 보니 북쪽으로는 월악산 줄기가 보이고 이곳에서 지나온 신선암봉과는 다른 신선봉까지는 1.3km지만 대간길에서 비껴난 곳이라 따로 오면 모를까 갈수 없는 곳이다.
오전8시50분 지릅재 갈림길(910m)
신선봉 갈림길을 지나 밑으로 내려서는 지점에 지릅재 갈림길이 있다. 부봉까지는 4km. 좌로는 지릅재 가는 길이고, 부봉 방향은 직진이다. 계속되는 편안한 오르내림이 이제는 암릉구간을 벗어났다는 실감을 주고.
오전9시 5분 북문(714m)
계속 내리막으로 내려가다 보면 안부 지점의 성곽터 위에 북문이 있다. 마패봉 0.7km지점으로 부봉까지는 3km다. 좌측으로는 지릅재가는 길이고, 우측으로는 동화원 가는 길이다.
오전 9시27분 여러 봉우리들
북문에서 오르막을 치고 오르면 756m봉과 764m봉, 763m 봉이 나타나는데 실제 표고차는 별로 없는 것이 오르내림은 제법이다.
드디어 손에 잡힐 듯 잡힐 듯 하던 釜峰 (916m)이다. 6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갈림길에서 제1봉까지는 0.5km로 20분이면 갈 수 있다. 선두는 이곳을 올라갔다는데 갈길 바쁜 거북이는 마냥 대간길만 줄곧 좇아간다. 가면서 뒤돌아본 부봉의 모습은 암봉으로 이루어진 모습이 꽤 볼만하다. 봉우리 5개 정도를 오르내리면 부봉 갈림길에서 30분 만에 주흘산 갈림길에 이를 수 있다.
오전10시19분 959m/주흘산 갈림길
하늘재/부봉/주흘산 갈림길에 도착했다. 2.6km만 가면 주흘산 영봉에 이를 수 있는데 단체행동인지라 영봉에 가보지 못하고 하늘재 방향으로 내려서야 한다. 3관문에서 4.7km 이고 하늘재까지는 3.2km로 1시간 30분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와 있다.
11시 평천재
급경사의 내리막을 내려서니 표지기들이 잔뜩 걸려있다. 오른쪽으로 달목이를 지나 평천리 마을로 갈 수 있고, 좌측으로는 대장이 그토록 가지 말라고 강조하던 지름길로 동문으로 갈 수 있다. 평천재에서 다시 마지막 오르막을 올라가니
11시24분 탄항산(월항삼봉)
문경시 산들모임산악회에서 세운 표지석은 ‘炭項山(856m)’지만 gps 는 864m로 나타난다. 주유천하님이 월항삼봉에 걸어두셨다는 플래카드를 찾아보았으나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
11시 42분 선(굴)바위
하늘재가 가까워지자 굴바위가 나타나는데 바로 옆에 선바위가 있어 사진을 찍는다.
12시 15분 하늘재 도착
절개지를 지나 소나무 숲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우측으로 잘 정비된 헬기장이 있고, 하늘재로 내려서게 된다. 새벽에 이화령을 떠난 지 10시간 15분 만에, 조령3관문을 떠난 지 4시간 20분 만에 역사의 길 하늘재에 도착하였다.
계립령·계립령로의 개척시기를 역사에서 살펴보면 먼저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 보면 아달라이사금 3년(서기 156년)의 여름 4월에 죽령길 보다 2년이나 먼저 계립령길을 열었다 또 삼국사기의 열전 - 김유신조에는 麻木峴이란 이름으로 나온다. 고구려에 원병을 청하러 간 김춘추에게 고구려의 보장왕은 “마목현과 죽령은 본래 고구려땅이니 돌려주지 않으면 원병을 보내주지 않겠다”고 했다. 또한 삼국사기의 열전 - 온달조에는 “계립령과 죽령 서쪽의 땅을 되찾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온달의 출사표로 나타난다.
이 일대의 백두대간을 넘는 고갯길은 동쪽에 죽령길이 있고, 서쪽에는 상주와 보은 사이의 화령길, 중간은 계립령길이다. 계립령로는 문경의 동쪽 계류인 身北川을 따라 포암산으로 오르는 길목의 당포리 - 용연리 - 갈평리 - 관음리의 황정, 사점, 관음, 포암 마을을 지나 대간의 주능선이며 경북과 충북의 도계지점인 해발 525m의 하늘재를 넘는 길이다. 하늘재를 넘어면 충북쪽으로 미륵리 - 송계리 - 역리 - 황강나루로 이어져 충주를 지나 서울로 향하게 된다.
이 성은 조선시대 축성한 제1·2·3관문과 부속성벽으로 된 사적 제147호의 문경관문이 있는데, 수문장이었던 신충원(辛忠元)이 단독으로 이루어 놓은 중성(中城;지금의 제 2 관문)을 시작으로 숙종 때 잇따라 세워진 이들 관문은 양쪽산의 골짜기, 즉 서쪽의 마폐산(馬閉山, 940m)·조령산(1017m)을 연결하는 산릉(山稜)과 동쪽의 부봉(釜峰)·주흘산(主屹山)을 연결하는 능선 사이의 조령천 계곡에 있다. 이 밖에 진(鎭)과 군창(軍倉)의 터가 지금도 남아 있으며, 옛날에는 우거진 송림과 박달나무로 유명하였다.
이처럼 유구한 역사를 지닌 하늘재길은 문경새재길이 개척되면서 사용 빈도가 점차 축소되어 지금은 한적한 오솔길로 변해있다. 구한말까지만 해도 경북 북부지역에서 생산되는 도자기와 지역의 특산물, 곡물을 지게에 지고 하늘재와 충북 송계계곡의 닷돈재(몇년전에 피서를 갔던 추억이 새롭다)를 넘어 제천시 한수면의 황강나루에서 소금 등과 물물교역을 했다는 옛 노인들의 증언이다.
종주를 끝내면서 다시 시를 읊으니
계립령 깊은 골에 서린 雲霧 벗을 삼아
신선암봉 올라타고 한 시름 풀어내니
아찔한 벼랑 사이로 새 한 마리 날래더라
부봉의 가마솥에 한소끔 밥을 지어
男負女戴 피난길을 오가던 사람들아
옛 사연 구비 구비에 民草는 애달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