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Pablo Ruiz Picasso; 1881.10.25~1973.4.8)
화가는 현실 속에서 소재를 찾아 그림을 그리거나 자신의 상상력으로 그림을 그리기도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간과하진 않는다. '파블로 피카소'는 자신이 속했던 그 시대를 정확하게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피카소'의 대표작 <게르니카(Guernica)>는 전쟁의 참혹함을 생생하게 드러내 준다.
1936년 스페인에서는 부르봉 왕조의 마지막 왕, '알폰소 13세'가 축출되고 선거를 통해 공화정부가 탄생되었다. 그러나 공화정부에 불복한 파시스트 '프랑코'장군은 그 해 6월에 반란을 일으킨다. 이것이 이후 3년이나 지속된 '스페인 내전'이다. 1937년 4월 27일 '프랑코'의 요청으로 독일 포격대가 네 시간에 걸쳐 '바스크'지방의 작은 마을 '게르니카'에 무차별 공습을 퍼부었다. 이 폭격으로 어린이와 노인, 여자들도 포함된 '게르니카'의 주민 1600여명이 죽었다. '피카소'는 이 사건에 대해 보도한 런던에서 발행되는 타임지를 읽고 격렬한 분노에 빠졌다. 그는 끔찍한 상황에 침묵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한 달 만에 <게르니카> 대작을 완성한다.
이 작품은 사건을 목격하고 그것의 중심에 서 있었던 사람이 기록한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주관적 의견에 의해 표현된 작품이다. 역사적 사실 묘사보다는 이 사건을 보도한 신문 기사를 읽고 분노한 '피카소'의 심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피카소'는 신문 보도의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흑색과 백색, 갈색을 제한적으로 사용했다. 그는 색으로 신문의 이미지를 표현하기도 하였지만 말의 몸통에 직접 신문을 그려 넣어 사실성을 강조했다. 또한 그림에 등장하는 아이를 안은 어머니, 쓰러진 병사, 겁에 질려 있는 사람 등등 전쟁의 잔인성을 작품에 그대로 표현하였다. 이 작품에서 '피카소'는 역사적 사실이나 사건을 표현하였을 뿐 만 아니라 인간의 영원한 고통도 함께 드러내어 보여준다.
<게르니카>는 40년 간 미국 뉴욕에 있다가 1892년 '피카소'의 고국으로 반환되었다. '피카소'가 스페인에서 파시즘이 종착된 다음에 이 작품이 비로소 스페인의 소유가 될 수 있다는 뜻을 남겼기 때문이다.
'피카소'는 아름답고 이상적인 형태의 여성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단순한 여성의 신체를 표현하였다. 대표적 작품이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이다. 이 작품에서 화면 중앙에 있는 2명의 나부(裸婦)만이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녀들도 여성의 풍만하고 부드러운 여성미와는 다르게 단순하게 그려져 있다.
'피카소'는 이 작품을 제작하기 이전에 사창가의 장면들을 습작하고 있었다. 이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의 습작에는 두 명의 남자가 여자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습작을 계속 진행시키면서 '피카소'는 남자들을 화면에서 제외시킨다. '바르셀로나'에 있는 '아비뇽'거리는 유명한 환락가로서 처음에 '피카소'는 외설적인 주제의 이 작품을 <철학적 사창가>라고 제목을 붙였으나 친구가 1916년 <아비뇽의 처녀들>이라는 제목으로 변경하여 세상에 내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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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禪偈非佛 원문보기 글쓴이: 선게비불
첫댓글 피카소 그림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잘 모르겠더라 . 너무 현실적인 사상이어서 그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