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소리 듣기 좋은 무렵이다. 도회지 생활에선 새소리 듣기가 좀처럼 어렵고 또 산 가까이 산다해도 요즘은 환경오염으로 뻐꾸기 소리가 듣기 어려워졌다고 하니 그 소리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크다. 정선 아라리의 사설에 나오는 "앞 남산의 뻐꾸기는 초성도 좋다. 세 살 때 듣던 목소리 변치도 않았네"라는 그 뻐꾸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뻐꾸기 얘기 중에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 후속 편 같은 [박국새 전설]이 생각난다.
"…두레박을 타고 승천하여 그리던 처자와 단란한 생활을 누리던 나무꾼은 다시 지상에 남기고 온 노모가 보고싶어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이에 그의 아내도 어쩔 수 없어 한 마리의 천마를 주며 지상으로 내려가되 말이 세 번 울기 전에 반드시 승천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승천하지 못할 것이라 당부하였다. 아들을 만난 노모는 반가운 나머지 아들이 좋아하던 박국을 끓여줬다.
그러나 박국은 너무 뜨거웠다. 이걸 식혀 먹는 동안 천마는 두 번이나 울었다. 마음이 급해진 아들은 급히 서두르다 그만 뜨거운 박국을 말 등에 엎지르고 말았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깜짝 놀란 말이 펄쩍 뛰는 바람에 나무꾼은 땅으로 떨어졌고 말은 세 번 째 울음을 마저 울고 승천해버렸다. 이리하여 하늘나라로 되돌아가지 못한 나무꾼의 원혼은 새가 되었는데 박국 때문에 승천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박국박국 울었다. 뻐꾹뻐꾹은 박국박국이 변해서 된 것이다.…"
애달파라. 그 박국새는 어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리며 울까. 정말 이런 얘기를 듣다보면 옛 얘기의 상상력은 끝도 없구나 싶다.
그리고 어여쁘게만 연상되던 이생강 대금산조 중의 뻐꾸기 소리가 이럴 때는 박국 박국 하는 것처럼 애절하게 들린다. 이생강류 대금산조 중에서 뻐꾸기 소리는 자진모리 장단이 시작된 후 7분 가량 지나서 나오는데, 한참 듣고 있으면, 어쩌면 이렇게 대금을 잘 불까 라는 탄성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연주가 다 끝난 후에도 한바탕을 잘 끝냈다는 후련함보다는 번번이 아쉬운 여운이 남는 걸 보면 그의 연주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생강이 연주하는 대금 산조의 연원은 전남 진도출신의 대금 명인 박종기에서 비롯되었다. 박종기는 본래 타고난 재주도 좋았지만 어찌나 대금에 매달려 지냈는지, 남도지방에서는 그를 본명대신 박 젓대라 부를 정도였다. 밤낮으로 부는 박종기의 대금 연습소리에 지친 마을사람들은 심지어 '엇따. 박 젓대, 어서 죽었으면 좋겠다' 라고 진저리 쳤을 만큼 그는 대금연주에 심혈을 기울인 끝에 마침내 세상에 없는 대금 산조라는 것을 내 놓게 되었다.
이렇게 박종기로부터 시작된 대금산조는 그 후 한주환, 한일섭 등을 거쳐 오늘날 많은 명인의 손끝으로 전수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이생강은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과 스승으로부터 배운 음악바탕을 더해 대금 산조의 새로운 지평을 연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생강(李生剛)은 1937년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해방 무렵에 귀국하게 되는데, 여러 가지 악기를 직접 연주도 하고, 만들어 팔기도 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대금, 단소, 피리, 당적, 호적 등의 여러 악기를 익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장터에서 당대 최고의 명인 한주환을 만나 그의 음악을 전수받게 되었고, 탁월한 재능으로 어느 악기(여러 가지 관악기)나, 어떤 음악 할 것 없이 거침없이 섭렵하면서 일찍부터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다지기 시작했다. 1997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그의 신기에 가까운 연주 솜씨는 산조와 민요, 대중음악은 물론 외국의 민속음악까지 영역을 가리지 않지만, 그래도 그의 음악성을 마음껏 감상하기에는 이생강류라 이름 붙인 산조 한바탕 일 것이다.
이생강은 대금산조를 진양-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 해서 모두 53분 정도 걸리는 산조 한바탕을 짜서 연주도 하고, 음반에도 담았는데 그 동안 박종기의 유음, 한주환에게 배운 가락, 다른 산조나 다른 음악에서 얻은 여러 가지 음악적 영감들을 조각보 맞추듯이 어울리게 하는 탁월한 솜씨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50여분이 넘는 긴 산조를 마치 대나무에다 맡겨두었던 소리를 찾아오는 것처럼 힘 하나 안 들이고 여유있게 불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음악은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로 진행된다.
음반: SKC 국악전집 제7집 이생강 대금산조(SKC,1987)
첫댓글 아하 ...박국새가 ..어제 알았습니다... 이생강선생님은 자주 우면골상사디야에 출연 하시어 많은 이야기 해주셔서 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