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대단한 사실은 민강 사장의 사망 이후 경영권을 잡게 되었던 동화약방의 경영자들이 초대 민강 사장의 정신을 이어받았다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5대 사장이었던 보당 윤창식 선생은 조선산직장려계 라는 조직의 총무활동을 하다 옥중 생활을 하게 되었고, 추후 신간회와 보린회에 대한 금전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7대 사장이어떤 윤광열 명회회장은 보성전문학교(현재 고려대학교) 재학 시절, 일본에 강제징집이 되었지만 탈출하여 상하이로 넘어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광복군 중대장을 맡았다고 합니다.
민강사장님 독립운동가
목숨 내놓고 '독립운동 자금' 지원한 동화약품
굴욕적인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바라며 독립운동가들을 몰래
후원한 '애국 기업'들이 보란 듯이 승승장구 하고 있다.
우리에게 '부채표 까스활명수'로 유명한 동화약품이 가장 대표적인
예다.
동화약품은 일제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 독립운동가들을 후원했음에도 빠른 속도로 성장해
올해로 '창업 121주년'을 맞았다.
동화약품의 전신인 동화약방 창업자 민강 사장은 1920년대에 까스활명수를 팔아
얻은 수익으로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댔다.
그는 일제의 감시로 돈을 전달하기 어려울 때는 '생명을 살리는 물' 대접을 받으며 큰
인기를 끌던 활명수를 중국으로 보내, 독립운동가들이 직접 팔아 쓰게 했다.
또 민강 사장은 임시정부와의 연락책을 맡으면서, 자신의 약방을 서울 연통부 사무실로
사용하기도 했다. 현재 동화약품 본사가 있는 서울시 중구 서소문로9길 14가 실제 서울 연통부가 있던 곳이다.
안타깝게도 민강 사장은 임시정부에 발송할 비밀문서를 목판에 새기다 발각되는 등
독립운동 연루 사실이 드러나 두 번의 옥고를 치렀다.
그는 혹독한 옥고 생활 때문에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1931년 48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으나, 죽는 순간까지 나라를 위해 희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더 대단한 것은 민강 사장 사망 이후 그의 정신이 후대 동화약방 경영자들에게
이어졌다는 점이다.
5대 사장으로 동화약방을 인수한 보당 윤창식 선생은 민족 경제 자립을 목표로 하는
'조선산직장려계' 총무 활동을 하다 옥고를 치른 민족주의자다.
그는 빈민 구제 활동을 하는 '보린회', 민족 운동을 표방한 단체 '신간회' 등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7대 사장인 윤광열 명예회장은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재학 시절, 일본에
학도병으로 강제 징집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탈출해 상하이 주호지대 광복군 중대장을 맡았다.
요약 : 일제시절 까스활명수를 팔아 독립운동자금, 임시정부 군자금 지원하며 옥고까지
치름 -> 일회적인 지원이 아닌 그후 조선산직장려계, 신간회 등 계속된 독립단체 후원활동 -> 심지어 7대 회장은 직접 광복군 중대장
맡음
민강사장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자손분들 동화약품 임직원 직원님들 축복하며 응원하며 대한민국 희망입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시고 나날이 발전하고 지구촌 모든분들과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