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당초의 연구계획에 따라 2010년 9월 1일부터 2011년 8월 31일까지 "파스칼적 주제의 현대적 변용 :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연구를 수행하였으며 연구 결과 및 활용방안은 다음과 같다.
파스칼의 인간학은 치열한 해명의 열망으로부터 시작한다. 인간조건에 대한 탐구는 인식의 영역에 빛을 던져주기보다는 새로운 무지를 확인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앎에의 요구에 대한 좌절은 파스칼에게 ‘비참’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며, 이는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의 조건이 될 것이다. "인간의 인식에서 신으로의 이행"이라는 호교론적 구도에서 볼 때, 초월자의 개입이 필연적으로 상정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파스칼은 처음부터 신의 존재를 논의의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신을 배제한 채, 오로지 인간적인 차원에서 탐구를 시작하여, 데카르트가 말하는 모든 것의 중심에 인간이 위치할 수 있는지, 신 없이 인간이 이행할 수 있는 극단은 어디까지인지를 추적해나간다. 이는 카뮈식으로 표현한다면, "정신의 향수가 만들어내는 통일성" 속에 모든 것이 정돈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본 연구에서는 <시지프 신화>에 제시된 부조리의 잣대(세계, 인식, 자아)를 <팡세>에 적용해봄으로써 일종의 ‘부조리의 기원’을 역추적 해보았다.
부조리에 대한 동일한 인식에서 출발했으면서도 두 작자정신에게서 도출된 부조리의 귀결은 상당히 다른 만큼 본 연구에서는 두 작가 정신이 치열하게 밀고나간 논증의 과정에 주목하였다. 해명 불가능한 모순과 부조리 앞에서 파스칼은 그것을 딛고 "인간의 의식에서 신으로 이행"해 나갔으며, 카뮈는 그것을 견지한 채, 부조리의 벽 앞에서 멈추었다.
파스칼의 경우에는 부조리에 대한 해명의 과정에서 단계 별 인식을 거치게 되는 바, 첫 단계의 인식은 단순히 현상을 확인하는 차원이고, 두 번째 단계의 인식은 현상에서 모순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차원이며, 세 번째 단계의 인식은 확인된 ‘현상의 이유’를 발견하고 첫 단계의 당위성을 인정하는 차원을 의미한다. 단계 별 인식의 전환은 "정에서 반으로의 반전"에 의해 수립되며 마지막 차원의 인식은 "배후 생각(pensée de derrière)"에 의해 수립된다. "배후 생각"이란 외적 현상이 표상하는 바를 읽어내는 기술이다. 이 생각은 일차적인 현상이 지시하는 의미에 한정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는 또 다른 의미를 읽어냄으로써 모순의 이유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 관점으로부터 부조리의 원인으로 규명되었던 기만적 능력―습관, 위희, 상상력―이 잃어버린 본성의 기호가 된다.
카뮈는 부조리의 추론으로부터 한 실존이 감당해야할 세 주역, ‘비합리’, ‘인간의 열망’, 그리고 양자의 대면에서 솟아난 ‘부조리’를 등장시킨다. 카뮈의 부조리는 팽팽한 두 힘이 만들어낸 정신의 매듭이다. 카뮈는 이를 거대한 바위를 온몸으로 버티고 지탱하고 있는 시지프의 모습으로 형상화했다. 바위와 밀착한 시지프의 육체가 만들어내는 접점은 정신의 힘을 보여준다. 두 힘의 화해나 한쪽의 포기는 부조리 자체의 말살로 이어지기 때문에 카뮈는 부조리 자체로부터 역설적인 해법을 도출해낸다. 자신이 마주한 벽에 대한 자명하고 명증한 의식은 출구를 찾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오히려 더 확실하게 벽이라는 한계를 적극적으로 인식한다. 그 명증한 한계의식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버티는 대결구도로부터 ‘반항’, ‘자유’, ‘열정’이라는 부조리한 인간의 행동강령을 제시한다.
다음은 본 연구의 활용방안이다.
1) 문학개론 수업에서 : 첫째, <팡세>의 근원적 주제를 다양한 프랑스 현대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살펴봄으로써 새로운 각도에서 작품 분석을 시도할 수 있다. 둘째, 문학을 의도적으로 종교적 영감의 실험장으로 삼고 있는 현대기독교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팡세>의 주제들을 살펴보고 서구문학의 커다란 전통인 기독교문화를 개관해볼 수 있다. 셋째, 무신론 작가들에게서 파스칼적 주제를 검토해 보고, 어떤 변용과정을 거쳐 ‘신 없는 인간의 위대’라는 상반된 가치에 도달하게 되었는가를 분석해 볼 수 있다.
2) 문학 강독 수업에서 : 첫째, 파스칼과 카뮈의 문학적 위상을 소개하고, <팡세>와 <시지프 신화>에 나타나는 근원적 물음을 검토할 수 있다. 둘째, 카뮈 작품에 나타난 파스칼적 주제를 검토하고 부조리의 개념을 도입하여 "팡세"를 조명해볼 수 있다. 셋째, 두 작품에 나타난 인간, 세계, 신의 관계가 두 작가 의식 가운데 어떻게 해명되는가를 분석해볼 수 있다.
첫댓글 앗? 반가운 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