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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연수 후 몇자 정리한다
산학협력 벤치마킹 해외연수
글로벌 시대 무한 경쟁의 대열에서 노력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일본인의 장인 정신을 배우며 새로운 각오로 교단에 서야 진정한 마이스터고의 교사가 될 수 있다는 각오를 다지며...
2010년 7월 26일(월) 해외연수 워크숍 및 주제탐구활동(벤치마킹 포인트)
산학협력 벤치마킹 해외연수를 위해 오후2시50분에 인원점검하고 학생15명과 13명 인솔교사 총 28명이 마이스터고로 개교하면서 처음으로 해외연수를 일본으로 정하여 출발하는 첫날이다.
학교에서 출발하여 1시간여 후 인천대교(13km)를 건너가고 있었다. 이름 그대로 바다 위에 놓인 길 마치 파라다이스로 가는 참 아름다운 길이었다. 인간들의 토목공사가 자연과 어울어진 결정체라 토목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보는 시간이 되었다. 마침내 오후4시08분에 인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여 1025호에 배영열선생과 여장을 풀고 게스트하우스 비지니스룸에서 안강현 박사님과 안성희연구원님의 주재로 해외연수 때 지켜야 할 주의사항과 배워야 할 일들을 주의 깊게 토론하고 질의 응답하는 시간도 가졌다.
안강현 박사의 박수치는 방법과 떡에 관한 말하기를 배웠다. 학생과 교사의 시합도 했는데 역시 교사집단이 느리다. 이제 나이 탓으로 돌리며 웃을 수 있는 시간도 되었다. 인천공항 국제업무단지 월드게이트 1층 서경(西京)식당(전화 032-743-0080)에서 한식으로 식사를 마치고 JU-HOF에서 맥주 몇 잔을 마시고 당진에서 준비해온 면천 막걸리를 주인과 요리사에게 1잔씩 나누어 주며 넉살좋게 대화하는 마부장(박석우 선생)은 역시 입담이 대단하다. 내일을 위해 방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 잠을 청했다.
2010년 7월 27일(화) 산학협력 벤치마킹 해외연수로 매우 분주한 날의 시작
산학협력 벤치마킹 해외연수 겸 문화체험을 테마로 일본으로 가기위해 아침6시00분에 서경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짐을 꾸려 오전 7시05분에 인천공항으로 가는 승합차에 올라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아시아나 마일리지카드를 만들고 인천국제공항신한은행지점(전화032-743-5100)에서 외국환으로 환전을 했다.(100엔: 1419원) 여기에서 동시통역의 달인 박재숙님을 만나다. 안강현 박사님의 안내로 출국수속을 마친 뒤, 9시15분 아시아나 항공(OZ132)비행기에 탑승했다. 드디어 오전9시30분 비행기는 일본의 후쿠오카(福岡)를 향하여 이륙했다.
학생들 중에는 처음 타는 비행기라 무척이나 긴장되었나 보다. 비행고도9,120m, 비행속도835km/h, 바깥온도 -31℃ 바로 옆에 있는 나라지만 지금까지 마음속으로 아주 먼 나라였는데 기내식으로 샌드위치를 먹다보니 1시간 10여 분후 10시40분에 일본 후쿠오카현(福岡県)에 있는 1)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심사를 모두 마치고 공항로비에서 일본의 전통축제에 쓰이는 하카타 기온 야마카사(장식가마:博多祗園山笠振興會에서 기증)가 우리를 맞아주는 형상을 하고 있다.
기념촬영을 하고 공항을 나오자 공항 입구에 3박 4일간의 여행 내내 타야 할 2)西九州觀光 佐賀200 か.138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사는 깔끔한 유니폼에 모자를 쓴 (丸尾裕二 환미유이) 마루오 유우지(MARUO YUUZI)씨였다.
버스에 짐을 싣고, 첫 번째 점심을 먹기 위해 이동하는데 모든 차들이 우측통행을 하여 처음 약간 당황을 했는데 잠시 후 익숙해 졌다. 오전 11시50분에 도착한 곳은 峰松本家(미네마쯔 식당 본점)이었다 약 140여년의 전통을 갖고 있는 이 식당의 주 메뉴는 돈맨(豚麵 돈면)인데 가격은 1,200엔(한화17,028원)이다. 우리나라의 우동과 비슷한 맛을 내는데 갖가지 채소와 돼지고기를 얇게 썰어 넣고 육수를 돼지고기로 만들어 즉석에서 가스렌지로 끓여 먹는 것이 특징이다. 점심식사 후 규슈자동차도로로 가는데 좌우 산림이 우거져 있다 3)삼나무와 4)향나무가 잘 조성되어 있어 여러 가지 수종이 있는데 삼나무와 향나무를 심은 이유에 대해서 박재숙 동시통역가에게 질문을 했다. 삼나무는 습기에 강하기 때문에 이 지방에서 많이 재배되고 있다며 일본 어느 곳을 가더라도 인공조림을 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도시고속도로 표지판을 보니 최고속도가 80Km, 차간거리 200m, 우측통행 이라고 쓰여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벌금으로 1달의 월급을 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위법을 하지 않는 것이 생활화 되었다고 한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박재숙통역사님의 이야기를 들어 아시아의 선진국 일본 역사를 약간 소개한다.
일본
4개의 섬(北海道 : 홋가이도, 本州 : 혼슈, 四國 : 시코구, 九州 : 규슈)과 약3,900여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짐
면적 약37만8천Km2(남북한의 1.7배, 남한의 4배)
인구 : 1억2천만명
행정구역 : 1도(都)동경,1도(道)홋가이도,2부(府):오사카,쿄토, 43현(縣)
일본기[日章旗] : '닛쇼키' 또는 '히노마루노하타[日の丸の旗]', ‘히노마루’라고 한다. 국기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으나 1854년경 '다른 배와 구별하기 위해 일본 총선인(總船印)을 하양 바탕에 둥근 해를 그린 기'로 정한 것이 일본을 대표하게 된 최초의 일이라고 한다. 기의 의미에 관해서도 정설이 없으나 둥근 모양이 태양을 나타 낸다
기후 : 일본은 홋카이도와 혼슈 북부 및 중부 내륙고지(內陸高地)가 아한대다우기후(亞寒帶多雨氣候)에 속할 뿐, 그 밖의 모든 지역이 온대다우기후에 포함된다. 그러나 아시아대륙 동쪽의 몬순아시아 지역에 들어 있으나, 해양의 영향을 크게 받아 같은 위도에 있는 대륙동안보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더위가 심하지 않다. 한편 일본열도는 남북으로 길어 홋카이도 북단에서 난세이제도 남단까지는 위도차가 22도나 되고, 따라서 연평균기온도 홋카이도의 와카나이[稚內]에서 6.3℃, 오키나와섬[沖繩島]의 나하[那覇]에서 22.3℃를 보여 남북차는 16℃에 달한다.
혼슈의 육지 너비는 최대 300km 정도인데, 중앙부를 척량산맥이 종주(縱走)하기 때문에 겨울에 동해 쪽 사면은 북서계절풍의 바람받이가 되어 강설일수가 지속되고, 태평양 쪽 사면은 건조한 바람이 불면서 청천(晴天)일수가 지속되는 대조적인 기후분포를 보인다. 기후구(氣候區)는 겨울의 기후차이에 의해 동해 사면과 태평양 사면 및 그 중간지역의 셋으로 나뉜다. 연강수량은 1,600∼1,700mm로 세계의 연평균강수량 1,000mm에 비해 상당히 많다. 특히 그와 같은 많은 강수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는 것은 장마와 태풍이다.
장마와 태풍이 가져오는 강수량은 해에 따라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장마가 연강수량의 10∼40%, 태풍이 10∼35%로서, 비율은 남쪽으로 갈수록 커진다. 그 외 남부와 중부지방에서는 초여름에 장마가 잦다. 장마와 태풍은 일본의 수자원 확보에 크게 기여하는 반면 자연재해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즉, 장마가 길어지면 동북일본을 중심으로 냉해가 발생하고, 또 태풍이 잦거나 강한 태풍이 내습하면 상습적인 풍수해를 일으켜서 세계적으로 기상재해가 많은 나라가 된다.
겨울에는 시베리아 기단, 여름에는 오가사와라(小笠原)기단에 덮인다.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을 받는 겨울은 현저하게 한랭하고, 또 동해사면은 북서계절풍이 가져오는 강설로 해서 세계 굴지의 적설지(積雪地)를 이룬다. 여름에는 전국토가 오가사와라 기단의 영향아래에 들어 고온다습한 날씨가 지속된다. 봄·가을에는 양쯔강[揚子江]기단이 이동성 고기압이 되어서 일본을 덮고, 그 뒤를 저기압이 이동해 오기 때문에 날씨가 주기적으로 변화한다. 장마는 오호츠크해 기단의 영향에 의한 현상이고, 열대성 저기압(태풍)은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연평균 4·5회 정도의 빈도로 혼슈·규슈에 내습한다
종교 : 종교별 신도수는 불교가 8,400만 명, 신도(神道:자연숭배·조상숭배를 기본으로 하는 일본의 고유종교로, 神社를 중심으로 발달한 神社神道가 주류)가 9,200만 명을 차지하여 일본의 양대 종교가 되고 있고, 그밖에 신·구교를 합친 그리스도교가 약 84만 명.
일본 문화의 상징
다도(茶道), 스모(일본 씨름), 가부키(歌舞伎, 일본의 전통연희(演戱)), 천황제(天皇制) 등을 꼽는다. 그러나 일본의 ‘장인정신'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일본의 상징이며, 일본인의 우수한 장점의 하나다.
고대의 일본
일본의 고대사회는 야마토조정[大和朝廷]이 지배하는 국가가 성립되고, 뒤이어 율령제도(律令制度)에 입각한 국가체제가 유지된 4세기 초에서 12세기 말에 이르는 시대이다. 긴키내(內)을 중심으로 하여 오진왕릉[應神王陵], 닌토쿠왕릉[仁德王陵] 등 거대한 능묘를 비롯한 많은 분묘가 조영된 고분시대인 4세기 초에는 긴키내의 야마토를 중심으로 하여 기타큐슈까지를 포괄하는 통일국가가 생겨나서 점차 전국을 지배하게 되었으며, 세습제를 확립한 오키미[大君 : 王]가 군림하였다.
소국(小國)의 수장(首長)들은 조정 내부에서 귀족계급을 형성하여 성(姓:한국의 姓에 해당하는 氏 위에 덧붙여서 가문의 격을 표시했던 세습적인 칭호)을 수여받고, 광대한 토지와 백성을 소유하였다. 4세기 말엽에 백제에서 한자(漢字)·유교가 전래되고, 6세기 중엽에는 역시 백제로부터 불교가 전래되어 일본의 문화수준이 급격히 높아졌으며, 불교를 정치기조로 삼은 쇼토쿠태자[聖德太子] 등에 의해 각지에 많은 사찰이 건립되었다.
뒤이어 645년에 씨성(氏姓)사회를 타파하고 중앙집권적인 율령국가를 수립할 것을 목적으로 다이카개신[大化改新]이 단행되었으며, 덴무[天武]왕의 강력한 지도력으로 왕의 신성(神聖)이 강화되어 왕을 정점으로 하는 중앙집권적 율령체제가 확립되었다. 그리하여 공지공민제(公地公民制)의 원칙이 수립됨으로써 농민은 일정한 토지를 배당받아 조(租)·용(庸)·조(調)의 세(稅)를 부담하게 되었다. 그 뒤 견당사(遣唐使)의 파견에 의해 당문화(唐文化)를 흡수한 조정은 710년 나라[奈良]에 광대한 도읍 헤이조경[平城京]을 건설하였다.
그 후 교토[京都]로 천도하기까지의 약 80년 간을 나라시대라고 부른다. 그 시대에 조정에서는 국력을 기울여서 도다이사[東大寺]의 대불(大佛) 및 여러 거찰(巨刹) 조영을 추진하였기 때문에 현란한 불교문화가 꽃피었다. 일본의 고대사에서 조몬 시대로 부터 야요이 시대로의 전환이 전적으로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의 선진적인 문화의 영향에 힘입은 결과였다. 그 후 일본이 그 정치중심지를 긴키 지방으로 옮겨 통일국가를 이룩한 고분시대에서 나라시대에 이르는 시기의 문화 역시 한국의 고대문화의 절대적인 영향 밑에 자라난 문화였다.
그 시대에는 백제, 고구려 등, 특히 백제가 일본과 활발히 교류하였고, 또 백제 멸망 후에는 그 유민(遺民)이 다수 일본으로 건너갔기 때문에 그들 백제인과 고구려인 등이 한학, 유학, 불교 및 회화, 불상조각, 사찰건축 등의 문화예술 외에, 생활용품 제조기술, 관개시설 축조기술 등을 일본인에게 전수함으로써 그 문화개발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당시의 중심적 정치무대였던 나라분지[奈良盆地]를 중심으로 구다라[百濟], 와니[和爾 : 王仁의 音譯] 등 지명이나 구다라사[百濟寺 : 大安寺의 옛이름이자 별칭], 구다라사지[百濟寺址], 구다라관음[百濟觀音:法隆寺에 있는 목조 관음보살상으로 일본의 국보] 등으로 불리는 문화적인 유적·유산이 많이 남아 있는 사실로도 백제를 비롯한 한국 고대문화의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현존하는 두드러진 문화유산 중 백제인·고구려인의 손으로 된 것도 적지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승려의 정치개입 및 다이카개신에 공이 있었던 후지와라[藤原] 일문을 비롯한 귀족계층의 실권 장악으로 왕 중심의 율령제는 난국에 직면하게 되었다.
794년에 간무[桓武]왕은 교토[京都]에 헤이안경[平安京]을 조영하여 도읍을 옮기고 율령체제의 재편성을 시도하였으나,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율령체제는 점차 붕괴되어 갔다. 후지와라 일문은 외척(外戚)관계를 이용하여 섭정(攝政) 또는 간파쿠[關白:왕을 보좌하여 정치를 한 令外의 관직]로서 왕의 권능을 대행하는 셋칸정치[攝關政治]를 자행하였다. 후지와라 일문 등 상류귀족은 광대한 장원(莊園)을 소유하고, 중·하류의 귀족은 고쿠시[國司:지방관]가 되어 임지에서 수탈을 자행하였다. 그리하여 율령제는 완전히 붕괴되고, 각지에 무사단(武士團)이 지반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12세기 중엽 이래 다이라[平] 일족, 미나모토[源] 일족의 두 무가(武家)가 각축하다가 미나모토가 정권을 획득하여 가마쿠라[鎌倉]에 바쿠후[幕府]를 개설하였다. 교토 천도 이후부터 가마쿠라 바쿠후가 개설되기까지의 기간을 헤이안시대[平安時代]라고 하는데, 그 시대에는 승려 사이초[最澄]에 의해 천태종(天台宗)이, 구카이[空海]에 의해 진언종(眞言宗)이 크게 보급되었고, 사찰은 광대한 사령(寺領)을 소유하면서 권세를 부렸다. 또 귀족들 사이에 국풍문화(國風文化)가 일어나서 가나 문자[假名文字]가 보급되었다
센고쿠 시대 (戰國時代)이전
이 지역에 성이 축성된 것 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 오가타 다이젠노스케(大膳亮)가 이 지역 영주였을 때인 분에이 연간(1264년 ~ 1274년)으로 보고 있다. 이후 스오(周防), 나가토(長州)를 중심으로 세를 확장하는 오우치(大內)가문의 관리하에 있었고, 히젠의 쇼니(小貳)가문과 분고의 오토모(大友)가문의 삼파전이 벌어져 영주가 차례차례 바뀌었다.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安土桃山時代)
1569년 주고쿠 지방의 패권을 장악한 모리 가문이 규슈 북부로 진출해 현재의 고쿠라 성터에 성을 쌓아 지배했지만, 규슈에서 모리 가문이 물러가자, 오토모 가문의 가신 다카하시 아키타네가 성주로 부임해 지배했다.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규슈가 평정되자, 그의 가신 모리 가쓰노부가 부젠 국 고쿠라를 영지로 받아 입성한다. 그리고, 그 중 일부를 아들 모리 가쓰나가에 주었다. 이 시기 성의 모습에 대한 기록이 없어 자세히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후 모리 가문은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에 가담했기 때문에 영지가 몰수된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에 가담해 공을 세운 호소카와 다다오키(細川忠興)가 부젠(豊州)국 고쿠라 번 40만석을 영지로 받아 나카쓰(中津)성에 입성하지만, 1602년부터 7년에 걸쳐 고쿠라 성을 개축해 거처를 옮겼다. 이 시기 성하 마을도 정비하였고, 무라사키가와 강을 양분해 서쪽에는 사찰을, 동쪽에는 상공업자와 무사마을을 조성했다.
에도 시대 (江戶時代)
1632년 2대 번주 호소카와 다다토시가 히고 국 구마모토 번으로 가증 이봉되자, 하리마 국 아카시 번에서 오가사와라 다다자네가 15만석을 배령받아 입성한다. 이후 메이지 유신기까지 후다이 다이묘 오사가와라 가문 10대의 거성이었다.
오가사와라 가문이 번주였을 때, 고쿠라 지역은 규슈 각지를 연결하는 도로의 기점이 되었고, 5대 오가사와라 다다미쓰가 번주였을 때에는 성 주변에 다이묘 정원을 조성했다. 하지만 1837년 성내의 화재로 혼마루 어전을 비롯 성의 건조물이 전소되어 2년 후인 1839년 재건되지만, 천수는 재건되지 않았다.
1866년 제2차 조슈 정벌에서 고쿠라 번은 막부측에 가담해 조슈 번과 전투를 치렀고, 조슈 번의 공세 앞에 고쿠라 성으로 퇴각했다. 이에 더해 음력 8월 1일에는 성에 불을 놓은 후, 번주는 구마모토 성으로 피신했다. 1867년 조슈 번과 고쿠라 번은 화친이 성립된 후, 번청은 가와라에 있는 관아로 옮겨 갔다.
메이지 시대(明治時代)이후
1873년(메이지 6년) 구마모토 진다이 산하 고쿠라 분영소가 설치된 후, 성터에는 군부대가 주둔하였고, 태평양 전쟁 후, 미군에 매수되지만, 1957년(쇼와 32년) 해제되었다. 1959년(쇼와 34년)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천수가 재건되었으며, 향토자료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1990년(헤이세이 2년) 천수 내부가 리모델링 되었고, 1998년(헤세 10년) 고쿠라 성 정원 및 마쓰모토 세이초 기념관이 개관했다. 2004년(헤이세이 16년) 외측해자의 원형을 알 수 있는 우네보리와 쇼지보리가 발견되었고, 2007년(헤세 19년)에는 지붕의 기와 약 9만장이 교체되었다고 한다.
마침내 1시간 30여분을 버스로 이동하여 도착한 곳은 기타규슈(北 九 州 )에 있는 5)고쿠라성(小倉城)이었다. 성의 돌담은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 쌓아 올려 소박하면서도 호쾌한 풍정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 고쿠라성의 정원으로 가는 길에 일본 제12사단 사령부 부지의 건물이 있던 땅에 비와 정문의 흔적으로 보이는 적벽돌이 우리를 먼저 맞아주었다.
한 동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일제침략시대 우리나라를 침입한 군부대라서 더욱 마음이 아파옴을 느끼며 우리 선조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다시는 이런 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다시 마음을 다스리며 고쿠라 성안으로 들어갔다 입장료는 350엔(한화 약5,000원)이었다. 성안에 들어가자 日本家紋 80개의 휘장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잠시 후 자원봉사자 荒牧(황목: 아라마키)여 해설사가 다가와 설명을 해 주었다. 고쿠라성은 일본인의 열망에 의해 天守閣이 1559년에 높이47.5m로 재건되었다. 특히 천수각은“ 카라츠쿠리의 天守”라고 불려 4층과 5층 사이에 처마가 없고5층이 4층보다 크게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처음에 들어오는 곳에 수컷 호랑이(迎り虎 - 千客万 : 무카에토라: 맞아들이는 호랑이)가 나가는 곳에 암컷 호랑이(送り虎 - 麗虎招褔 :오쿠리토라: 보내는 호랑이)가 있었는데 이는 昭和 34년(1559년)에 그려진 높이4.7m, 폭2.9m이며 명실공히 일본제일의 호랑이라고 불리고 있다고 한다.
또한, 고쿠라성을 중심으로 열려지는 축제와 행사에 대해 설명하였는데 7월에 고쿠라기온 북치기(세번째 주 토요일 전후 3일간)와 11월 기타규슈 고쿠라성 축제가 세 번째 토요일과 일요일에 열린다고 한다. 1층 역사관은 소창의 성시, 역사와 문화, 당시의 영주에 대한 귀중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으며 파노라마 형식으로 약 1,500여개의 화지 인형을 제작하여 무역선으로부터 소창성, 하정의 모습을 재현하고 고쿠라성 특설 판매장과 무료 휴게소 코너 2층의 제후 가마를 타보며 앞뒤로 흔들려 군주의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한 지혜와 출진전의 작전회의 모습을 만들어“島原의 亂” 출진전야의 작전회의 모습을 리얼한 꼭두각시로 재현한 코너, 3층의 영화체험 코너에서 꼭두각시의 해설을 넣은 박력있는 대형 와이드 화면과 CG영상들을 즐길 수 있도록한 코너, 4층은 고쿠라성과 기타규슈지방의 시민들의 아이템으로 전시와 이벤트를 할 수 있는 공간 코너, 5층의 전망대에서 동서남북을 관망할 수 있도록한 코너, 1층부터 5층 까지 장애인을 위한 의자식 승강기 등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도 관광 수입을 올리는 일본인의 지혜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본의 엽서를 몇 장 구입하고 안강현 박사와 제일 늦게 15시40분에 버스로 돌아왔다.
약 10여분 후에 도착한 곳은 新門司港(신문사항 :모지항mojiko)이었다.
15시50분에 모여 단체기념촬영을 하고 모지코 레트로,가이드맵을 구하여 6)門司驛(모지코 역)을 지나며 주마간산격으로 바라보고 지나 7)出光美術館(이데미쓰 미술관)에 들어가 도자기와 바다 및 석양을 주제로 한 사진전시회를 감상하고 방명록에 축 발전 대한민국 충청남도 당진군 합덕읍 소소리 합덕제철고 이인학이라는 글을 남기며 스탬프를 찍어 왔다.
바닷가 산책로를 따라서 친수광장(親水廣場)으로 걸어가다 모지항을 배경으로 단체기념촬영을 했다.
이어서 旧門司稅關(구모지세관)건물을 지나며 보고 다시 8)旧門司三井俱樂部(구모지 미쓰이 클럽)에 들어갔다. 1921년에 미쓰이 물산의 접객, 숙박시설로 건축 된 것으로 1922년에 아인슈타인박사 부부가 숙박하였다.1층은 레스토랑과 이벤트 홀, 2층에는 아인슈타인 기념관과 작가 9)하야시 후미코(林芙美子)의 자료실이 있으며 방마다 물건들이 옛것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다. 그 이유하나만으로 수많은 관람객을 유치하고 있는 그들의 생각은 놀랍기보다 경이로웠다. 옛 건물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자손 대대로 지켜가는 장인정신도 대단했지만 溫故而知新을 행하는 그들이 부럽기만 했다.
다음으로 旧大阪(구오사카)상선을 보고 “연인들의 성지”라 불리는 블루윙모지 도개교 앞에서 단체기념촬영을 하고 일본의 대표되는 건축가 쿠로카와 키쇼씨가 설계한 고층맨션“레트로 하이마트”의 31층에 10)門司港 レトロ展望臺(모지코 래트로 전망대)에 올라가려고 출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자원봉사자로 보이는 65세 정도의 아주머니가 빨간 베레모를 쓰고 반기며 열심히 인사를 한다. “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아리가또 고자이 마쓰 : 감사합니다 !” 를 연발하고 있다. 사방이 유리구조의 개방형공간속에서 사시사철 아침저녁으로 아름답게 변하는 해협의 파노라마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모지항을 사방으로 살펴보고 모지항구 사진을 찍고 스탬프를 찍고 나서 엘리베이터로 내려왔다. 밖에서 살펴보니 유리창을 닦고 있는 모습이 보였는데 안전을 제일로 한다는 이유를 여기에서 알 수 있었다. 사람이 떨어지지 않도록 벽에 레일을 설치하고 안전망을 끌어 올리고 내리며 청소하는 모습속에서 일본인의 인간존중 정신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나라도 빨리 빨리 보다는 안전제일 주의로 모든 일에 임했으면 좋겠다.
오늘의 마지막 코스 關門터널을 지나 신일본제철이 제작한 關門橋를 가기로 했다. 박석우 선생님의 현수교와 트러스교의 차이점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신일본제철이 만든 철강피아노 선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잠시 따끔한 다리를 보았더니 일본 모기가 물고 간다. 침을 바르고 물파스를 준비하지 못한 나를 원망하며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내리던 비는 우리가 버스에서 내려 견학할 때는 잠시 멈추어 시원한 바람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하늘도 우리를 돕는 모양이다. 혼슈쪽에서는 39.2℃로 약40여명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참으로 다행이다. 다시 버스로 이동하는데 비가 내려 기온을 나춰주었다. 학생들이 묵을 JYUH(コ-スホステル)유스호스텔에 가는데 무궁화가 피어있다. 외국에서 무궁화를 보니 그것도 일본에서 보니 감개무량했다. 안성희, 이자영, 이우영 선생님과 학생 15명을 입소시키고 16시 50분에 11)龜の井 ホテル(카메 노 이 호테르)에 도착했다. 샤워를 마치고 17시30분에 SHIBAKA에서 저녁밥을 먹었다.
한국의 청국장과 비슷한 낫토(納豆)를 먹었다. 미질(米質)은 우리나라 것 보다 더 좋은 것 같았으나 대체로 음식이 짜지 않고 단맛이 난다.
프론터 직원 여성 2명이 서툴지만 한국어를 한다. 받침소리는 내지 못하지만 뜻은 이해할 수 있었다. 309호실에 들어와 내일을 위해 배영렬 선생과 잠자리에 들었다.
2010년 7월 28일(수) 산업체 견학(닛산자동차공장)과 규슈대학 및 하카다공업고 방문하는 날
아침 6시 기상하여 샤워를 마치고 07시에 SHIBAKA 식당에 들어가는데 직원들이“오하요 고자이마스!”하고 아침 인사를 한다. 우리도 “오하요 고자이마스!”로 대답을 하고 아침밥을 먹었다.
07:50분에 마루오 기사는 정확하게 버스에서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닛산자동차공장과 하카다공업고등학교 방문, 원숭이산 관람하는 날이다.
도로를 지나다가 박재숙 동시통역가에게 일본의 장례문화에 대하여 질의를 했다. 일본은 매장문화보다 화장 문화가 발달했는데 국법으로 매장은 국왕만 묘지를 만들 수 있고 일반인은 반드시 화장을 해야 한다고 정해져있는데 아마도 서양문물을 일찍부터 받아들여 그럴 것으로 사료된다고 한다. 아파트 옆에 비석과 꽃이 있어서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이 풀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 옆에 공동묘지가 있으면 뭐라고 할까를 생각하며...
우리 연수단들의 처음 계획은 토요타(TOYOTA) 자동차공장을 방문하려했는데 토요타 자동차의 리콜상태로 공장 일이 너무 바빠서 외래손님의 방문을 한동안 거절한다고 하여 닛산자동차공장을 견학하기로 했다. 토요타의 로고에 대해서 설명했는데 내용은 아래와 같다.
①원은 소비자를 생각하는 마음
②원은 직원들의 정열
③원은 세계를 무대로 천하제일(오다노무라)을 꿈꾸며 세계로 뻗어 나가는 8(八)획을 사용하였으며 후지중공업에서 스바르 자동차를 처음 만들었으며 미쯔비시에서는 현대의 갤로퍼 모델을 먼저 만들었으며 닛산, 혼다, 자동차도 열심히 연구하여 세계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후지 중공업은 처음 자전거생산부터 출발하여 오토바이, 자동차, 비행기를 제작하여 한국의 현대중공업보다 약1.2배의 순이익을 남기고 있다고 한다. 특별히 한국과 일본이 다른 점을 말한다면 일본은 심도있게 연구하고 한국은 확장형으로 연구를 한다고 할 수 있다.
도로는 우리나라보다 크지 않은데 넓게 보이는 이유는 경차를 사용하기 때문이라한다. 차번호판을 살펴보면 750CC이하는 경차는 바탕색이 노랑색, 750CC이상 영업용은 검은색, 750CC이상 택시는 녹색, 중형자가용은 흰색으로 지정되어 있다.
12)일본어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중심언어이며 음이나 훈으로 발음하는 한자와 이두문자의 조합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가다가나는 주로 외국어 표기용으로 히라가나는 간단하게 사용하는 모방글자다. 또한 항상 상대방을 경계하기 때문에 말수가 적다 따라서 사무라이(侍) 정신은 욕설이 별로 발달하지 못했다고한다.
안강현 박사님은 학생들의 팀활동으로 일본의 저력에 대해 연구하고 일본어 몇 마디를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일본어 인사
おはようございます(오하요-고자이마스) 아침인사
こんにちは(곤니찌와) 낮인사
こんばんは(곤방와) 저녁인사
おやすみなさい(오야스 미나사이/안녕히 주무세요) 밤인사
すみません (스미마셍) 미안합니다.
行(い)ってきます (잇떼끼마스) 다녀오겠습니다.
行(い)っていらっしゃい (잇떼이랏샤이) 다녀오세요.
ただいま (타다이마) 다녀왔습니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아리기또고자이마시타) 고마웠어요
おかえりなさい (오카에리나사이) 다녀오셨어요.
이렇게 일본말을 배우다 보니 박재숙 통역가님으로 부터 퀴즈문제가 나왔다.
< 일본에서 한국인으로 유명한 사람 ?>
MARU HAN(마루 한)-한창우 전라도 순천사람으로 빠찡꼬의 대가로 경제부호가 되었으며 피겨의 여왕 김연아를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인으로 일본제일의 부호는?>
IT업계의 손정의 사장. 즐겁게 퀴즈를 풀다 보니 09시15분 규슈에 있는 13)닛산자동차 공장( 日産自動車工場 )에 도착했다. 안내는 HAZE YAMA MEGUMI(櫓 山 惠)양이 하기로 했다. 먼저 공장 연혁부터 설명하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33년 본 공장을 창립
1973년 규슈공장 준공, 직원 3600명, 2교대(오전06:30~16:00, 오후 16:05~다음날03:55)하며 1주 간격으로 교대 시간이 바뀜
1975년 엔진생산개시
1976년 차량양산개시
2004년 차량생산 누적대수 100만대 달성
2005년 닛산규슈공장 30주년
1공장 주력 생산 자동차 <3가지 : 무라노(MURANO), 듀아리스(DUALIS), 티아나(TEANA)
2공장 주력 생산 자동차 <4가지 : 엑스트레일(X-TRAIL:녹색보조대사용), 라페스타(LAFESTA), 로그(ROGUE: 핑크색보조대사용), 아르메 이며 로그(ROGE: 핑크색보조대사용), 아르메 는 주로 수출용
DVD관람 자동차공정 5단계 소개
1. 프레스 공정
2. 차체공정
3. 도장공정
4. 조립공정 : 로봇 약400대(용접용으로 6개의 관절로 이루어 짐)
5. 검사공정
이동 중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곳에서 센서의 작동으로 자동 운전하는 것을 보아 전력 소모를 최소화 하고 있다. AGB(바퀴달린 무인 반송차)
1일 생산량은 2200여대로 닛산자동차 주문방식은 소비자 주문에 따라 프레스 공정을 제외하고 16시간에 1대 생산하며 소비자가 좋아하는 차색을 골라 도장하는데 좋아하는 1순위는 회색, 2순위 흰색, 3순위 검정색이라 한다. 닛산자동차부품회사는 약 6일전에 정보를 전달받아 BODY 입고 전 1~4시간 전에 부품을 조달받으며. 타이어는 요코하마 것으로 출고 전 최고속도 120Km/h로 테스트하여 이상이 없으면 소비자에게 인도한다. 또한 닛산자동차공장에 잇는 체육관 및 시설은 지역주민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며 쓰레기는 45종이 발생되는데 분류 배출하여 공업용수와 리사이클링하여 100%를 재사용하여 환경을 보호하는데 앞장서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부채를 선물을 전달해 주었다. 비록 값진 물건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닛산자동차를 사주세요 하며 닛산 자동차 직원임을 암시하는 HAZE YAMA양을 보며 직업정신이 투철하다고 느꼈다. 우리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며 미소를 보내는 HAZE YAMA 양을 뒤로하고
10시55분 출발하여 규슈대학에 12시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규슈대학식당에서 여러 가지 메뉴가 있는데 나는 돈까스를 1,200엔(한화 18,000원)주고 사먹었다. 100주년 행사 캠퍼스 투어에 나섰다. 규슈대학교 종합전시관을 살펴보았는데 세계 각국의 곤충들을 채집하여 전시하고 또 다른 이벤트로 4층 건물 특별 전시장에 흑요석을 비롯한 옛 물건과 수생 물방개까지 어항에 전시하여 관찰 할 수 있었다.
13시55분 출발하여 14시 30분에 번화가에 도착하여 학생들은 이자영, 이우영, 안성희 선생의 지도로 일본 물건구입 현장체험활동을 실시하였다.
교사들은 하카다공업고등학교(博多工業高等學校)견학 및 토론을 위해 출발하였다. 14시30분에 도착하여 회의실로 들어갔는데 태극기와 일장기가 같이 그려진 현수막에 환영 합덕제철고등학교라고 쓰여 있어 태극기를 바라보니 마음이 흡족했다. 이래서 외국에 나가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고 한 모양이다. 깨끗하게 정돈된 탁자위에 음료수와 학생들이 아크릴로 직접 제작한 고양이 모양의 마스코트를 준비해 두었는데 학생들이 현장체험활동을 하는 사이에 교사와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다음 겨울 연수 때는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적용해야겠다. 교두(敎頭: 교감)사이키(佐伯:좌백)씨의 진행과 박재숙님의 통역으로 17시까지 ppt자료와 현장을 둘러보며 대화를 했다. 주로 학생들의 취업프로그램 및 진로와 학교교육과정에 대하여 토의했다. 이충호 교장과 요시이 마타시와(吉積 正孝)교장이 준비해간 선물을 서로 교환하고 악수를 하며 웃을 수 있어 참 좋았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골프선수가 찾아와 촬영하는 날이라서 요시이 마타시와(吉積 正孝)20대교 장이 몹시 분주함을 느꼈다. 그래도 끝까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고 모든 교사들이 방학인데도 불구하고 각 부장들과 교사들이 출석하여 여 교사 한 분은 손목을 다쳐 깁스를 하고도 인사를 하고 설명하며 안내하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요시이 마타시 교장은 이 학교의 1년 예산은 10억엔 정도되며 기초실력향상에 노력하며 취업 면접은 선배와 자원봉사자들이 도와 인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프로그램을 소개하며 양국간 양교간 좋은 인연이 되었으면 오늘의 만남을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충호 교장은 답사를 통하여 기초와 기본에 충실한 거세 감명을 받았다며 많은 것을 배워 간다고 인사를 했다. 우리들이 버스에 타고 출발하는데 보이지 않을 때 까지 그 자리에서 손을 흔들어 배웅하는 모습이 우리와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16시 30분에 天神(Ten jin)에 있는「하카다 토쿄 호텔」프론트에서 체크 인 후 3층 309호실에 짐을 풀고 샤워를 했다. 19시10분에 「idori 彩」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지나가는 동안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天神中央公園을 지나 다리를 건너는데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들이 있다. 강에서는 배가 지나가며 아름다운 조명은 마치 프랑스 세느강에 온 것처럼 착각이 들었다. 드디어 도착한 「idori 彩」식당 1인당 5,000엔을 내면 21시 까지는 무한리필이 가능하다.
마침 오늘이 채희철 선생의 생일날인데 외국에서 생일을 맞는 특별한 날 특별한 일본의 흑우쇠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일본술 등 맛있게 먹고 마시며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天神의 야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피곤한 마음에 잠을 청했다.
2010년 7월 29일(목) 신일본제철 견학과 자연동물원관광 및 벳부 온천욕 하는 날
06시 기상 모닝콜
07시 아침식사-낫토, 빵, 쌀밥, 날계란, 과일
08시 오이타현(大分)에 있는 新日本製鐵로 출발 출근길의 일본 학생들과 직장인의 모습을 살펴 보았다. 여학생들은 세라복을 입었는데 교복을 변형하지 않고 직장인과 일반인들 옷 색깔이 상의는 흰색 하의는 검은색이고 가방색도 검은색이었다. 일본인들은 일본어를 발음할 때 음과 훈으로 읽기 때문에 국어전자사전을 필수로 가지고 다닌다고 한다. 같은 글자인데도 서로 다르게 읽기 때문에......
신호등 질서도 철저히 보행자 우선으로 신호등을 사람이 직접 조작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옆길에서 나오는 차를 우선 양보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프랑스, 독일에서 보았는데 일본에서도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 이런 점은 우리나라에서도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생각 된다.
< 오이타현 가는 길에 일본역사 교육 및 박재숙님의 퀴즈?
관동지방 도쿠가와 이에야쓰(徳川家康), 관서지방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풍신수길) 1,600년 경에 세키가와 전투
- 사무라이(侍)-성씨 사용
- 일반인 : 성씨 사용 불가
한국성씨 약260본
일본성씨 25만본
명치천왕 정권을 잡은 후 일반인에게 이름 지어주기 시작함
小林-산에 사는 사람
田中- 밭 가운데 사는 사람
池近- 연못가에 사는 사람
퀴즈 : 일본의 3대 명물은? 메실(うめぼし:우매보시), 니뽄도(劒), 낫토(納豆)
서울대 문용진 교수의 「글로벌 스탠다드」이야기를 안강현 박사님이 해 주었는데 한국은 글로벌 스탠다드는 세계 30~40위 정도, 경제는 세계 10위권이라고 한다. 그 잣대는 정직, 약속, 용서, 책임, 배려, 소유를 말하는데 일본인의 경우 소유를 예로 들면 내 것, 네 것, 우리 것이라하는데 우리나라 사람은 여기에 한 가지 더 소유한다고 한다. “먼저 본 사람 것”. 넌센스 같지만 공감이 가는 말이다.
웃고 즐기는 사이 11시 10분 오이타현(大分) 新日本製鐵에 도착했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각반(脚絆)을 찬 田子(전자: 타고)씨의 안내가 시작되었다. 다리에 오늘 대한민국 학생과 교사가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태극기를 게양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박수로 화답했다.
11시15분 영상실에서 DVD감상
시버스- 원료야드-제선-제강-압연-후판
고로 : 선철, 환원반응 : 코크스, 석회석
제2고로의 용적 :5775M3 로 세계 제일이란다.
전로3개를 보유하고 연속주조(세계에서 제일 먼저 실시), 슬래브 고형화, 사이징 밀, 압연시간
- 실리콘, 망간 1/100만 도금
- ROLL 1개당 40 TON 후판 길이 63m×5.3m
- CLC PROWESS
-오이타(大分)현의 입지조건은 공업용수 풍부, 바다에 선박이 접안하기 용이,
- 친환경정책으로 그린벨트 조성 5.4m×20Km 80만 그루 나무를 식재하여 지역주민에게 환경보존정책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매년 4월에 지역주민에게 제철소를 견학시켜 공생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으며 지역의 플라스틱을 수거하여 재활용 100%한다고 한다. 플라스틱을 재활용하여 페인트, 그릇 등 을 만드는데 사용한다며 “물과 녹음과 태양의 도시” 라는 주제로 001을 강조한다. 재해사고0, 환경사고0, 세계제일이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신일본 제철직원들은 즐겁게 근무한다고 한다.
신일본제철의 크기는 도쿄돔야구장의 150배 크기라고 하며 한국의 포스코와 같은 공정이라며 라이벌 의식을 갖게 되었지만 신일본제철이 더 좋은 철을 생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田子(타고)씨는 고교 졸업 후 20세에 타 회사에서 5년 동안 기술을 배우고 25세에 입사하여 40년을 근무하고 퇴직하였으나 다시 재취업되어 안내를 하며 기쁘고 즐겁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는 65세인데도 얼굴의 미소는 마치 30대처럼 보였다.
강판 제작하는 생산 공정을 보았는데 우리나라의 현대제철보다 기계가 노후화된것을 알 수있었으며 특히 야적장에 철광석 원료에 물을 뿌리며 비산을 방지한다고 하는데 녹슨 물이 보여 현대의 밀폐식이 한결 더 위생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버스에서 창밖을 보니 우리나라 선박이 후판을 싣고 있었다 한국에서 생산하고 있지만 부족분은신일본제철이 수출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외빈 접견실 앞에서 기념촬영을 마치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13시 버스에 몸을 맡겼다. 역시 일본인 특유의 배웅하는 모습은 끝까지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13시20분 벳부(別府) おさい 一番館 食堂(오사이 일번관 식당)에 도착하여 우리나라의 삼겹살 먹는 타입의 식당이다. 마침 오늘이 고기 먹는 날 (肉の日)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초밥과 회, 육류, 채소류, 음료수, 커피류 등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지만 남기면 벌금이 부과 된다.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학생들은 여러 번 접시에 날라 먹고 즐거워한다. 점심식사 후 벳부항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高崎山(타카사키야마)自然動物園으로 향했다. 전체 개체수가 1,222마리였는데 A群은 도망가고 지금은 526마리의 B群이 상주하고 있다고 한다. 원숭이들이 인간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이상하게 느꼈지만 새끼들을 품고 예뻐하는 것을 보니 영장류임에 틀림이 없다. 먹이는 고구마를 주었는데 제일 높은 위치에 있는 왕 원숭이의 식사가 끝나기 전에 옆에도 가지 못하는 원숭이들의 위계질서는 대단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벳부 YJH유스호스텔에 학생들과 안성희, 이자영, 이우영 선생을 숙박시켜 주고 교사들은 14)“세이후우 호텔(벳부 淸風)”1319호에 짐을 풀고 안강현 박사로부터 온천예절을 배웠다. 유카타(浴衣)착용방법을 배워 즉석에서 갈아입고 3층 남관 花月(KAGESU)식당에서 우리나라 한정식 같은 카이세끼(会席:かいせき) 일본 전통 요리다. 이 카이세키 요리란 한 가지씩 접시에 담아내어 놓는 술자리용 음식을 말하는데 그릇마다 조금씩 아름답게 만들어진 회를 먹기에 너무나도 예술적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 후에 일본해외 연수 평가회를 가졌다.
일본에서 배워야 할 점을 2조로 나누어 브레인스토밍 방식으로 했는데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1조)
1. 친절한 자세의 일본인, 2. 기초질서를 중요시 하는 정신, 3. 전통을 계승하는 정신, 4.기초 기본을 중시하는 교육정신,5. 지역주민과 상생하는 기업 정신, 6.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는 장인 정신
(2조)
1. 철저한 끝 마무리, 2. 주변환경 청결, 3.사람을 맞이하는 친절한 태도, 4.허례허식 없는 문화, 5. 온고이지신 정신 6. 안전한 사회 시스템
평가회를 마치고
배영렬, 채희철, 최성관선생과 함께 호텔 바로 옆에 있는 백화점을 돌아보았는데, 거의 모든 물건이 중국산이다. 우리나라 물건은 고급매장에 진열되어 있었다. 특히 삼성전자, LG전자의 TV 등, 구경을 하는데 한국어를 하는 학생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몇가지 물건 구입 방법을 설명해주었는데 알고 보니 경기도 안산의 고잔고등학생들이다. 질서를 잘 지켜 어글리 코리언 이라는 욕을 먹지 말자고 했더니 바로 질서를 지키는 학생으로 변했다.
호텔로 돌아와 2층의 대온천장에 가서 배영렬 선생과 함께 온천욕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고잔고 학생들 몇 명이 계속 떠들어 댄다. 대단히 불쾌했지만 참기로 했다 그 시각이 새벽 1시30분이 넘었는데...
2010년 7월 30일(금) 유하나 동네 방문 하는 날
오늘이 일본을 떠나는 날이다. 아침에 5시에 일어나 3층 대온천장에서 온천욕을 하고 남관12층 라메르 식당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이수구 행정실장님이 김을 가져왔는데 일본 김은 우리나라 김맛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아침 식사 후 여유롭게 시간을 갖고 벳부(別府)호텔 淸風을 09시에 오이타현의 유후인(由布院 = 湯布院) 전통마을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09시26분 유스호스텔에서 학생과 이자영, 이우영, 안성희 선생 태우고 해발 600m에 위치한 고속도로는 해발 734m의 높이 까지 고도로 가는데 여기저기에서 수증기가 나온다.
화산이 언제 폭발 할지 모르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 고속도로는 해발고도 때문에 날씨가 싸늘하다. 박재숙 통역가님의 한국의 선비정신과 일본의 사무라이 무사도의 차이점을 예를 들어 설명해 주어 이해가 빨리 되었다.
한국의 선비이야기 : 조선시대 한선비가 어느 집에서 하루를 묵고 가게 되었다. 마침 이집에 아름다운 구슬이 있었는데 그 것을 잃어 버렸다.
주인은 이 선비를 도둑으로 생각하여 창고에 가두었다. 하루가 지난 다음 주인이 물었다. 구슬을 어디에 감춰두었느냐고...
그때서야 그 선비는 저기 있는 오리의 똥 속에 있습니다 라고 대답 하였다.
오리 똥을 헤집어 보니 정말로 구슬이 있었다. 주인이 미안해하며 어째서 오리가 먹었다고 어제 이야기하지 않았소 하고 질문하자 그 선비는 웃으며 대답했다.
어제 오리가 구슬을 주워 먹었다고 이야기 했더라면 구슬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저 오리는 어제 죽었을 것이요. 이런 정신이 바로 상생의 길을 걷는 한국 선비의 도리요 길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사무라이정신에 대한 이야기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해주었다.
사무라이 아들이 떡집을 지나다녔다. 배가 고팠지만 아버지의 명에 따라 사무라이 가족의 명예 때문에 도둑질은 안 하도록 교육받은 아들이었다. 마침 졸고 있던 떡 장수는 항상 떡을 세어 보니 1개가 부족하다며 떡집 앞을 다니던 사무라이 아들을 의심했다.
떡값을 내라, 먹지 않았다 하며 옥신각신할 때 사무라이 아버지가 아들에게 정말로 훔쳐 먹지 않았느냐고 물어보자 예 먹지 않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배를 갈라 보일 수 있느냐하자 아들은 예 하고 대답하였다. 사무라이는 자기아들의 배를 갈라 보여 주었다. 떡도 먹은 흔적이 없었다.
사무라이에게 모욕을 주었다며 떡 장수를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했다.
이는 떡 하나로 인해 3명의 생명을 앗아간 상생보다 명예를 더 중시하는 그런 이야기로 들렸다.
사무라이는 4등급이 있는데 제1등급이 하타모또 마지막4등급이 아시가두(보병)이라하는데 윗사람에게 복종 및 충성을 해야 하는 것이 사무라이 정신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사노 영주의 충신작의 47명 이야기도 즐겁게 들었다.
재미있게 이야기를 듣다보니 유후인에 도착했다.
유후인(由布院 = 湯布院) 전통마을은 아기자기한 크기의 온천들이 밀집한 동네였는데 과거 전통을 중시하고 새로운 대형마트와 아파트 건립을 거부하는 집단 조직이 매우 강한 일본인의 정신을 갖고 있다.
옛것을 지키며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일본과 각국의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우리들이 제일 먼저 金鱗湖(금린호)를 구경하기로 했다. 빗방울이 간간이 내린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금잉어를 보고 우렁이 살아 숨 쉬는 그런 곳 바로 금린호였다. 기념촬영을 하고 이 동네 구석구석을 살펴보기로 했다. 빵 만들기 전국금상 수상자가 자신의 집 앞에 상장을 걸어 놓고 자랑스럽게 일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한국관광객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는데 대체로 부모와 함께 온 가족단위 여행객이었다.
화장실을 찾아가고자 고 건물을 찾았는데 그 건물이 마침 조선시대 도자기와 고려시대 도자기를 전시하는 기간이었다. W.C라고 써 있는 것을 보니 화장실이 틀림없었다.
우리나라도 요즘은 Toilet이라고 사용하지만 70년대만 하더라도 W.C라고 문에 팻말이 붙어 있었던 기억이 나 어린 시절로 잠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을 했다.
유후인에서 11시에 출발하여 식당으로 와 가마솥 밥을 먹는 시간이 되었다.
마치 우리나라 돌솥밥을 먹는 느낌이었다. 즐겁게 밥을 먹고 13시05분에 규슈국립박물관으로 향했다.13시20분에 도착하여 자원봉사자 해설사 2명을 만나 한국어를 조금 구사하는 일본의 소학교 영어교사였다. 얼굴 모습이 한국여성과 비슷하다고 하니까 다른 사람에게 여러 번 그런 말을 들었다며 웃었다.
나의 명함을 주고 한국에서 대백제전이 9월부터 열리는데 부여와 공주로 관광오라고 했다. 여기에 있는 물건들은 공주, 부여 박물관에 있는 것 보다 질이 떨어진다고 말했더니 정말이냐고 반문한다. 일본이 이제 강점기 때 가져간 물건이 일보의 국보급이라고 하며 우리나라로 반환하는데 앞 장 서 달라고 부탁도 했다.
윤정호 선생님이 간다라 지방(현 파키스탄)불상 앞에 가서 학생들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윤정호 성생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을 했다.
내 생각에는 이 간다라지방 불상은 실외용이 아닌 실내용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실내의 조각상은 아래에서 위쪽으로 조명을 해야 하는데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조명을 해서 마치 항상 눈을 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하고 일본 자원봉사 해설사에게 조명을 고칠 수 있도록 안내해주었다.
조동연 선생과 윤정호 부장과 함께 규슈박물관 명패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규슈박물관을 떠나게 되었다. 자원 봉사자들은 출입문 밖으로 나와 손을 흔들며 바라보는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14시50분 후쿠오카 시내 관광하며 며느리가 부탁한 유노하나(湯の花=·湯の華, ゆのはな :入浴制)를 안성희 선생의 도움으로 2,600엔을 주고 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었다.
16시 후쿠오카 공항으로 출발하여 돌아오는 시간에 안강현 박사의 퀴즈 문제 일본의 3대 온천은?
1. 벳부(別府 :오이타현 [大分縣(대분현), Oita], 2. 로보리데츠(ほっかいどう[北海道] 3. 아따미(熱海) 동경근교 위치
이 퀴즈를 맞힌 학생에게 부채로 된 엽서를 주었다. 또한 공부(工扶)에 대해 설명해주었는데 일본은 칼싸움을 배우는 것 즉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공부라고 한다. 특히 면백이란 단어에 대해 설명해주셨는데 면백(面白: 깨닫는 것, 알아서 얼굴에 기쁨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새롭게 아는 것은 재미있는 것이라며 꿈과 목표를 세워 공부하라고 조언해 주셨다.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윤정호 선생님이 특별히 이번 연수를 통해 창조적, 발전적인 한국의 자랑스런 학생으로 철두철미한 일본인의 장인정신을 배우자며 우리나라, 일본, 중국의 미술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일본통치시대에 한국의 민족혼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광화문을 부수자고 했다고 한다. 이때「야나기무네요시」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을 부수지 말자고 하며 말린 장본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보존되어 우리들이 광화문을 가까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명치유신 시대 유럽에서 오카쿠라텐신(岡倉天心)이 교육을 받고 27세에 교장이 되어 일본만의 「요코하마 다이킹」색채원근법으로 일본화를 개발했는데 특별히 니혼까(日本畵)는 외곽선 위주로 뽀샤시한 그림을 그림으로써 30년 만에 일본화를 완성했다. 그래서 일본화는 아름답고 깨끗하다고 느끼며 중국은 먹과 색을 중심으로 그려 안정적인 느낌을 주고 한국은 여백과 선의 아름다움으로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따라서 여러 분들은 물음을 가지고 창조적인 쇠를 만드는 그런 학생이 되고 특별히 창조적이고 발전적인 한국의 자랑스런 마이스터가 되며 모든 일의 마감처리를 잘하는 일본인의 철두철미한 정신을 배우라고 당부하며 설명을 마쳤다..
마지막으로 이충호 교장선생님은 한국에 돌아가서 최고의 장인이 되는 그날까지 노력할 것과 기초기본에 충실한 일본의 田子(타고)같은 장인의 정신으로 늘 준비하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면 회사에서 다시 불림을 받는 그런 쓸모있는 학생이 되기를 희망하며 학교에 돌아가서 매사에 솔선수범을 하기를 바란다며 총평을 마쳤다.
17시 30분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하여 Duty Free Shop Shopping Card(면세점 쇼핑카드)를 받아들고 화과자(花菓子)와 토산품 등 선물을 준비하느라 바쁜 학생들과 선생님들 적은 가격으로 최대의 효과를 노리라고 강조하며 불필요한 물건은 구입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18시 10분 후쿠오카 공항을 OZ133아시아나 항공으로 출발하여 기내식으로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했다. 최성관 선생의 휴대폰으로 집식구에게 무사히 도착했다는 전화를 하고 19시 15분 한국 인천공항 도착하여 수화물을 찾아 20시05분에 버스에 몸을 실었다. 고속도로가 꽉 막혀 있다. 그래도 생각보다 일찍 22시 합덕제철고에 도착하였다.
당진으로 가는 남윤동, 송정원, 최준우를 싣고 당진에 도착하여 학부모님께 인도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시간이 22시30분이었다. 가족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는데 특별히 281일된 손자 현서(晛瑞)가 제일 반긴다.
4박5일 동안 고락을 함께한 안강현 박사님과 일과 능력연구컨설팅 임직원, 최고의 동시통역가 박재숙님과 함께한 소중했던 추억을 기억하며 일본에서 배워온 장인정신과 늙었어도 젊게 살아가는 자원봉사자들의 서비스 정신 및 일본인의 배려정신과 기술을 나부터 실천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해 본다.
※ 이외의 일본의 장인정신관련 사이트
http://blog.naver.com/japan5001?Redirect=Log&logNo=80056465018
※ 알아두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일본어 공부(http://www.ebs.co.kr/index.js)
대면 인사
はじめまして (하지메마시테) 처음 뵙겠습니다.
わたしは ____ と もうします (와타시와 _'이름' 토 모우시마스) 저는 _'이름'_라고 합니다.
よろしく おねがいします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 잘 부탁 드립니다.
また, おあいしましょう (마따, 오아이시마쇼우) 또 만납시다.
いいです (이이데스) 좋습니다.
わかりました (와까리 마시타)알겠습니다.
わかりません (와까리 마셍)모르겠습니다.
けっこうです (겟코우데스) 괜찮습니다.
식사할 때
いただきます。 (이타다끼마스) 잘 먹겠습니다
ごちそうさまでした。 (고찌소우사마데시다) 잘먹었습니다 <고찌소우 란 '진수성찬'의 뜻>
감사할 때
どうも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도우모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고맙습니다
どういたしまして。 (도우이따시마시떼) 천만에요
いいえ、とんでもないです。 (이이에 톤데모나이데스) 아닙니다. 별거 아니예요 (특히, 칭찬을 받았을 때..)
사과와 부탁할 때
しつれいします (시츠레이시마스) 실례합니다. .
おねがいします (오네가이시마스) 부탁드립니다.
ちょっと まって ください (춋 토 맛 테 구다사이) 잠깐 기다려 주세요.
もういちど いってください (모우이치도 잇 테 구다사이) 한 번 더 말해 주세요.
もっと ゆっくり はなして ください 못 토 윳 쿠리 하나시테 구다사이. 좀 더 천천히 말해 주세요.
ここに かいて ください (고코니 카이테 구다사이) 여기에 써 주세요.
メニューを みせて ください (메뉴 오 미세테 구다사이) 메뉴를 보여 주세요.
コーヒを おねがいします(ください) (코히 오 오네가이시마스).(구다사이)커피 부탁합니다. (주세요)
おさけと おみず ください (오사케토 오미즈 구다사이). 술과 물(냉수)을 주세요.
やすくして ください (야스 쿠시테 구다사이) 싸게 해 주세요.
ごしんせ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고신세츠 아리가토우고자이마스)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お世話になりました (오세와니 나리마시타) 신세졌습니다.
少々お待ちください。(쇼-쇼-오마찌구다사이)잠시만 기다려주세요
少々おまちくださいませ。(쇼-쇼-오마찌구다사이마세)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おねがいします (오네가이시마스) 부탁드립니다
少々お待ちいただけますか。(쇼-쇼-오마찌이따다케마스까?)잠시 기다려주실수 있으세요?
どうぞ、ごゆっくり。(도-죠, 고육^꾸리)그럼 편히쉬세요.
マネージャーは夜9時からですので、9時頃フロントまでにもう一度いらしてくださいませんか。
(마네-자-와 요루쿠지까라데스노데, 쿠지고로 후론토마데니 모- 이찌도 이라시떼구다사이마셍까?) 매니저님이 저녁9시에 나오시니까 9시쯤에 프론트에 다시한번 들려주시겠어요?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またのご利用をお待ちしております。
(아리가또-고자이마시따. 마타노 고리요-오 오마찌시떼오리마스)
감사했습니다. 다시 이용해 주실 것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또 찾아주세요~ )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체크인은 **일이고 체크아웃은 **일 인데 맞으신가요...?
ご確認いたします。(고카꾸닝 이따시마스)확인해 드리겠습니다.
チェックインは**で、チェックアウトは**のようですが、それでよろしいでしょうか。
(체크인와 **데, 체크아우또와 **노 요-데스가, 소레데 요로시-데쇼-까?)
체크인은 **고, 체크아웃은 **인 것 같습니다만, 괜찮으실까요?
日本語がよく分からなくて、おっしゃる意味がよく分かりません。
(니혼고가 요꾸 와까라나꾸떼, 옷^샤루 이미가 요꾸 와까리마생 )제가 일본어를 잘 몰라서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본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말씀하시는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
へ-や を 開けて ください (헤야오 아케테 쿠다사이) 방좀 열어 주시겠어요?
わたしのへ-や番号(ばんごう)はOOOです 와타시노 헤야반고와 000 데스 : 제방 번호는 000입니다
チェックアウト お願いします。(체크아우또 오네가이시마스 ) 체크 아웃 부탁드립니다
お冷 ください(오히야 구다사이)시원한 물을 주세요
お ちゃ ください(오챠 구다시이) 차 주세요
日本酒 ください(니혼슈 구다사이) 청주주세요
おさけ ください (오사케 구다사이 : 정종주세요
焼酎(しょうちゅう) ください(쇼주 구다사이) 소주주세요
ビール ください(비르 구다사이) 맥주주세요
生(なまビール)ください (나마(生) 비르 구다사이) 생맥주 주세요
お水ください。(오미즈 구다사이) 물 좀 더 주세요
わかりません (와까리마셍) 잘모르겠습니다
すみません。(스미마셍) 실례합니다)
いいえ、だいじょうぶです。(이이에 다이죠부데스)아니요,괜찮습니다 (상대가 정중히 사과할 때))
どうぞよろしくおねがいします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 : 잘 부탁드립니다
どうぞ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도-조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는 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보다 더욱더 정중체 입니다.
いらっしゃいませ。(이랏^샤이마세)어서오세요.
何かお手伝いしましょうか。(나니까 오테쯔다이 시마쇼-까?)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뭔가 도와드릴까요?
お泊りですか。(오토마리데스까?)숙박 하실꺼에요..?
お支払は今でよろしいですか。(오시하라이와 이마데 요로시-데스까?)지금 숙박요금을 지불하시겠어요?
お泊りは何日間でよろしいですか。(오토마리와 난니찌칸데 요로시-데스까?)숙박은 몇 일이나 하실꺼에요?,
お泊りはどれぐらいでよろしいですか。(오토마리와 도레구라이데 요로시-데스까?)숙박은 며칠이면 되시겠어요? 숙박은 어느 정도가 좋으시겠어요?
ルームレート(room rate)は***ウォンです。(루-므레-토와 ***원데스)숙박요금은 ***입니다.
お支払金額は***ウォンです。(오시하라이킹-가꾸와 ***원데스)지불금액은 ***원입니다.
질문할 때
あのひとは だれですか (아노히토와 다레데스까?) 저사람은 누구입니까?
あの方(かた)は どなたですか(아노가타와 도나타데스까?)저 분은 누구십니까?
いつ いきますか (이츠 이키마스까? )언제 갑니까?
どこに ありますか / いますか (도코니 아리마스카?(무생물) /이마스카?) (생물)어디에 있습니까?
どこまで いきますか (도코마데 이키마스카?) 어디까지 갑니까?
これは なんですか (고레와 난 데스까?) 이것은 무엇입니까?
にほんごで なんと いいますか (니 혼 고데 난 토 이이마스까?) 일본어로 뭐라고 합니까?
どのくらい かかりますか (도노 쿠라이 가까리마스카?) 얼마나 걸립니까?
どうすれば いいですか (도우 스레바 이이데스카?) 어떻게 하면 됩니까?
いくらですか (이쿠라 데스카? )얼마입니까?
おいくつですか (오이쿠츠 데스카?) 몇 살입니까?
どちらですか (도치라 데스카?) 어느 쪽입니까?
감사와 사과
どうも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도우모 아리가토우고자이마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すみません / ごめんなさい (스미마셍./고멘나사이) 미안합니다./죄송합니다.
だいじょうぶですか (다이죠 우부데스카?) 괜찮습니까?
どういたしまして (도우이 테시마시테)천만에요.
ごしんせつ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고신세츠 아리가토우고자이마스)친절에 감사드립니다.
おせわになりました (오세와니 나리마시타) 신세졌습니다.
1) 북서쪽으로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 북으로는 시모노세키 해협[下關海峽], 서쪽으로는 쓰시마 해협[對馬海峽], 남쪽으로는 아리아케 해[有明海]와 접해 있다. 바다로 흘러나가는 강들이 광활한 평원을 이루고 있다. 서쪽 해안은 해안선이 복잡하다. 남부에서 농업이 이루어지지만, 북부에 집중되어 있는 탄광과 석탄산업이 주요산업이다. 1963년 모지[門司]·고쿠라[小倉]·도바타[戶畑]·야하타[八幡]·와카마쓰[若松] 등 5개 도시가 합병되어 규슈 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종합산업도시인 기타큐슈[北九州]가 되었다.
2) (西九州觀光バス株式會社 : 九州運輸局 一般貸切免許第575号, 우편번호 849-2302 佐賀県 武雄市 山內町大字鳥海8780-2 전화0954-45-2258, 팩스0954-45-5315, 휴대전화 090-5481-7394)
3) 삼나무(Cryptomeria japonica) [ Japanese cedar, 杉─ (すぎ : 스기 ]는 측백나무과의 나무이다. 일본 원산의 상록교목으로 높이 40m, 지름 1-2m에 이른다. 줄기는 곧게 뻗으며 수관은 원뿔모양인데 노목에서는 둥글게 된다. 수피는 적갈색이며, 세로로 갈라져서 가늘고 얇은 조각이 되어 벗겨진다. 잎은 바늘꼴이고 나선모양으로 밀집해서 붙는다. 암수한그루이며 3~4월에 꽃이 핀다. 수꽃은 전년의 작은 가지 끝의 잎겨드랑이에 이삭모양으로 모여서 붙는데 노란색이고 타원형이며, 길이는 5~8㎜이다. 암꽃은 전년의 작은 가지 끝에 1개씩 아래를 향해 붙는데, 녹색이고 공모양이며 길이 5~6㎜이다. 구과는 목질이고 달걀꼴이며, 길이 2~3㎝이다. 처음에는 녹색이지만 10월 무렵 성숙하면 벌어져서 갈색이 된다. 목재는 변재와 심재의 경계가 뚜렷한데, 변재는 백색, 심재는 담홍색 또는 암적갈색이다. 재질이 좋고 특유의 향기가 있어 가구재·건축재·장식재 등으로 사용된다. 씨는 각 실편 속에 3-6개가 들어 있다.
4) 향나무 (Juniperus chinensis こうぼく 코우보쿠 )1년생의 가지는 초록색, 2년생은 적갈색, 3년생은 자갈색을 띠며, 오래된 나무의 수피(樹皮)는 얇게 벗겨지고 흑갈색을 띤다. 잎은 바늘처럼 생긴 침엽(針葉)과 비늘처럼 생긴 인엽(鱗葉)의 2종류가 달리는데, 침엽이 먼저 나온 뒤 인엽이 나온다. 침엽은 3개씩 모여나거나 어긋나며 인엽은 마주난다. 꽃은 15년 정도 지나야 피는데, 4월경 암꽃과 수꽃이 따로따로 한 그루에 피며 그 이듬해 10월에 열매가 흑자색으로 익는다. 예로부터 줄기에서 암홍갈색의 질이 치밀하고 향기가 나는 심재를 잘게 쪼개서 곽란(癨亂) 또는 심복통(心腹痛) 치료에 쓰거나, 제사나 의식을 지낼 때 분향료(焚香料)로 사용했다. 이밖에도 심재로 가구·조각품·연필 등을 만들었다. 가장 널리 심는 관상수 가운데 하나로, 야생 변종을 비롯해 여러 품종들이 있다. 양지바르고 배수가 좋은 기름진 토양뿐 아니라 그늘진 곳이나 메마른 토양에서도 잘 자란다. 흔히 심는 품종으로는 가이즈까향나무(J. chinensis var. kaizuka)가 있다.
5) 慶長7년(1602)細川忠興공이 축성한 명성, 소창성(고쿠라성),당시에는 카라츠쿠리 라고 불러 전국유일의 진귀한 명성이었다. 지금의 성은 昭和34년에 지난날의 명성을 재건한 것이다. 고쿠라 성은 13세기 중반 무라사키가와 강 하구 서안의 언덕에 축성된 것으로 근세성곽으로 재탄생한 것은 모리 가쓰노부가 성주로 부임할 무렵인 1590년대이며 호소카와 가문이 성주로 부임한 후, 현재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혼마루를 중심으로 남으로는 마쓰노마루, 북으로는 기타노마루를 두었으며, 그 주위를 니노마루와 산노마루가 둘러싼 제곽식 평성이다. 건물은 대천수와 소천수 각각 1기, 단층 망루 117기, 2층 망루 16기를 두었고, 성문 12곳과 총안인 사마가 3271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또, 성의 동쪽으로 흐르는 무라사키가와 강을 천연의 해자로 삼았다. 현재 석벽의 일부와 해자가 남아 있으며, 천수, 망루, 정원과 무가저택이 재건되어 있다. 우편번호803-0813 北九州市 小倉北區城內2番1号, 전화 093-561-1210, 팩스093-561-5246)
6) 1914년 2월 1일에 구 모지역으로서 좌우 대칭된 모습의 역사는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목조건물로서 1988년 철도역사로는 일본 최초의 구가 중요문화제로 지정되었다. 영업시간 09:00~18:00. (12/29~1.1)연말연시 휴일. 문의 전화 093-321-6110
7) 2000년에 탄생한 “이데미쓰 미술관(모지)는 이데미쓰 흥산의 창업자 이데미츠 사조씨가 수집한 도자기와 회화 등의 미술품을 소장한 사립미술관임. 옛 창고를 개축한 미술관은 타이쇼기의 창고 분위기를 전하는 건물외관을 남기고 있음. 영업시간10:00~17:00 (월요일 휴관. 요금: 일반600엔(한화 약 9000원)20명 이상 단체 100엔 할인.문의 전화 093-332-0251
8) 화려하고도 그리운 도시 번성했던 도시 입장료 100엔(한화 약1,500원) 개관 09:00~17:00연중 무휴, 전화 093-321-4151
9) 하야시 후미코(林芙美子: 1904 ~ 1951)본명은 미야타[宮田] 후미코. 도회지 근로자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다루었다. 화류계 출신인 어머니는 어린 후미코를 포함하여 아버지가 다른 3명의 아이를 데리고 결혼하게 되었는데, 이때 후미코는 사생아로 입적되었다. 어머니의 자유분방한 생활로 그녀는 계속 불안정한 생활을 하다가 1916년 오노미치[尾道]로 가서 1922년 여고를 졸업할 때까지 머물렀다. 외로운 어린시절에 문학에 대한 애착심을 키웠던 그녀는 여러 직장에 다니는 동안 여가시간에 시와 동화를 썼다. 배고픔과 멸시의 경험이 그녀의 첫 작품 〈방랑기 放浪記〉(1930)·〈청빈의 서 淸貧の書〉(1931)를 쓰게 했다. 타락하고 불안정한 삶 속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 여인상을 그린 하야시의 소설은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그녀의 소설은 때로 감상적으로 흐르는 듯했지만 사실적이고 직설적인 문체로 주목을 끌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그녀의 문학은 절정기를 맞이했으며, 이때 씌어진 〈도심지 ダウンタウン〉(1948)·〈뜬구름 浮雲〉(1949) 같은 작품에는 전후의 황폐한 양상이 반영되어 있다. 그녀는 프롤레타리아 문학 대두기에도 사상적인 공감을 표현하지 않고 〈인생 도처에 여인숙뿐 人生いたるところ木賃宿ばかり〉과 같이 성장기에 입각한 실감을 중시하여 시정의 애환, 남녀의 심리를 상세히 묘사했다. 그녀는 과로로 인한 심장판막증이 악화되어 갑자기 죽었다.
10) 입장료 300엔(한화 약4,500원), 학생은 150엔(30명이상 단체 20% 할인) 영업시간 및 휴일은 10:00~22:00(입관은 21:30) 연 2회 휴뮤 부정기적임, 전화 093-321-4161
11) 福岡県 北九州市 8幡 東區東田1丁目7-7号에 소재하는 호텔. 전화 093-663-3301
12) 일본에서는 구석기 시대 초기에 일본 국토에 인류가 있었던 흔적이 있고 당시부터 언어가 말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지만, 어떤 언어가 쓰였는지는 여전히 정확히 알수가 없다. 말한한지에 붙어 여전히 불명이다. 석기 시대의 유적에서 문자로 추정되는것이 발견되고 있지만, 어떤 언어로 발전했는지는 여러가지 설이있다. 어떤 언어가 쓰였는지를 보여주는 문학은 2세기 지나서 중국의 역사서에 나온다. 이후 일본어는 중국어를 바탕으로 된 한문을 사용하도록 하고, 그 한자를 이용해서 히라가나와 가타카나가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류큐어에 대해서는 중국에서 한자가 전해지는 13세기가 되어 있기 때문이고, 그 이전의 언어에 대해 상세한 것은 알고 있지 않다. 또한 14세기에 류큐에서 발견된 중국의 문서에는 히라가나로 적혀있었다. 아이누어는 아이누어를 바탕으로 한 일본어와 일본의 지명 등이 많이 존재하기에서 옛부터 일본에 존재했다고 하며, 일본어보다 더 오래 쓰였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문자의 기재는 16세기 경부터이다. 19세기 무렵부터 가타카나를 이용한 아이누어 가나를 본격적으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13) 우편번호220-8686 神奈川縣(신나천현)Kanagawa 橫濱市(횡빈: yokohama, 요코하마시) 西區高島 1丁目1番1号, 전화 +81(0)45-523-5547, Http://nissan.co.jp, 공장 부지는 236만제곱킬로미터(약72만평)
14) 전화 0977-24-3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