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7년 9월 하순의 어느날, 런던은 보기 드문 폭풍우에 휩쓸렸습니다.
바람은 아침부터 야수와 같이 울부짖으며 휘몰아쳤으며, 밤이 되어도 전혀
그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빗방울은 총알같은 소리를 내며 하숙집
유리창을 두들겨 댔습니다.
추리 기계같은 셜록 홈즈도 이 같은 대장연의 맹위앞에서는 개미 새끼보다
도 무력했습니다. 그는 하루종일 거실의 난로 앞에 붙어 앉아 범죄 기록의
정리에 열중했습니다.
나도 달리 할 일이 없었으므로 해양 소설을 읽고 있었는데, 밖의 폭풍우가
마치 대양의 파도처럼 책 속으로 뛰어들어오는 것 같아, 소설의 박력을 크
게 더해 주었습니다.
아내가 며칠 전에 아주머니 댁에 다니러 갔으므로, 홈즈의 하숙집에서 신세
를 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
나는 문득 고개를 들었습니다.
"홈즈, 초인종이 울렸잖아. 손님인 모양이야. 자네 친구인가 봐."
"폭풍우 부는 날, 더우기 이렇게 밤늦게 찾아와 줄만큼 다정한 친구는 자
네밖에 없네."
"그럼 사건을 부탁하러온 사람이겠군. 그것도 매우 긴급한...."
이번에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홈즈는 서둘러 손님 접대용 의
자를 챙기더니,
"들어오십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방으로 들어온 사람은 21,2살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었습니다. 금테 안경을
끼고, 복장도 잘 갖추어 입은데다가 어딘지 모르게 기품이 있어 보였습니
다. 머리가 온통 헝클어지고, 손에 들고 있는 우산이나 레인코트에서 계
속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으로 보아 폭풍우가 생각보다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 구두 속도 흠뻑 젖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램프 불빛에 비친 청년의
창백한 얼굴에는 육체적인 불쾌감보다 더 큰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음이 뚜
렷이 나타났습니다.
"홈즈씨, 이런 날에 갑자기 방문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청년은 어깨를 움츠리며 사과했습니다.
"뭘요, 그런 건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 우산을 구석에 놓고 레인
코트를 벗으시지요. 난로 옆에 걸어 두면 곧 마를 겁니다. 그런데 당신은
남서부 쪽에서 오셨군요."
"예, 그렇습니다. 서색스주의 호오셤에서 왔습니다.
대답을 하고 난 청년은 문득 깨달은 듯,
"그런데 어떻게 그걸...."
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당신의 구두 끝에 묻은, 그 지방 특유의 점토와 백토가 섞인 흙을 보고
알았습니다."
"아하, 그걸로 알아 내셨군요. 실은 프랜더어개스트 소령의 소개로 찾아왔
습니다."
"프랜더어개스트 소령이라.... 아, 생각이 나는군요. 그와 알게 된것은 카
드놀이에 얽힌 사건때문이었지요."
"소령은, 홈즈씨가 손댄 사건치고 해결 안 된 사건은 하나도 없다고 말씀
하시더군요."
"그건 좀 과찬이군요.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니까, 패배하는 수도
있습니다. 지난번에도 전직 여배우에게 깨끗이 당했습니다. 그외에는 다
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럼 제 경우도 문제가 아니겠군요."
"아뭏든 이야기부터 들어 볼까요."
"아주 색다른 사건입니다."
"저는 색다른 사건이 아니면 다루지 않습니다. 거긴 추울테니까, 좀더 불
옆으로 가까이 다가와 발을 말리시죠."
청년은 순순히 의자를 난로 곁으로 가까이 끌어다놓고, 젖은 발을 말리며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청년의 이름은 존 오픈쇼입니다. 그러나 사건의 주인공은 그가 아니라 그의
큰 아버지와 아버지 입니다.
존의 조부는 서섹스주에서도 꽤 이름이 알려진 지주였습니다. 할아버지에게
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이 일라이어스, 작은 아들이 존의 아버지인
조셉입니다.
조셉은 아주 우수한 타이어를 발명하여 공장을 세운 후, 세계 각국에 수출
하여 상당한 재산을 모았습니다.
일라이어스 역시 청년 시절에 신천지인 미국으로 건너가, 남부에서 큰 농장
을 경영하여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861년에 남북전쟁이 시작되자, 일랑이어스는 남군에 가담하여 용감하게 싸
워서 대령으로까지 승진했습니다. 그러나 1865년, 남군이 그랜트 장군이 이
끄는 북군에 패배하여 항복하자, 다시 농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다가 4,
5년후에 영국으로 돌아와, 서섹스주의 호우셤에 땅을 사서 정착했습니다.
일라이어스가 미국에서 상당한 재산을 모았으면서도 미국에 영주하지 않은
까닭은, 흑인 문제에 매우 불쾌한 생각을 가졌던 탓입니다.
그는 술고래인데다가 성질이 급해 화를 잘 냈으며, 말씨도 매우 거칠었습니
다. 그래서 이웃 사람들과도 교제가 전혀 없었습니다.
아우인 존의 아버지와도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으나, 어떻게 된 셈인지 조
카인 존을 무척 귀여워했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았을땐 존을 상대로 체스하기를 좋아했으며, 존이 16살이 되
었을 땐 비서로 채용했습니다. 집안 열쇠도 모두 존에게 맡겼으므로, 존은
큰 아버지의 넓은 저택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큰 아버지집에는 다락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 방에만은 특별히 만든 자물쇠를 채워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어릴 때, 존은 큰아버지가 집에 없는 틈을 타서 열쇠 구멍을 통해 안을 들
여다 본 적이 있는데, 다락방에 어울리게 낡은 트렁크와 잡동사니가 잔뜩
쌓인 것이 조금 보일 따름이었습니다.
1883년 3월 어느 날 아침, 외국우표를 붙인 편지가 배달되었습니다.
존은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큰아버지에게 그 편지를 가져 갔습니다.
큰아버지는 편지를 받아 겉봉을 살피더니.
"오, 인도에서 온 것이로군. 퐁디세리의 소인이 찍혀 있군."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봉투를 뜯자, 그 안에서 말라빠진 오렌지 씨앗 5개가 접시 위로 떨어졌습니
다.
"아니, 어째서 이런 걸 보냈을까요? 누군지 별난 취미를 갖고 있군요."
존은 엉겁결에 웃음을 터뜨렸으나, 큰아버지의 얼굴을 본 순간 얼른 웃음을
그쳤습니다.
큰아버지의 얼굴은 마치 금붕어처럼 튀어나왔으며, 흙빛으로 변한 얼굴에서
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 봉투를 든 채.
"공포의 케이케이케이(KKK)야!"
하고 피를 토해 내듯이 외치더니, 다음 순간엔 의자에서 미끄러져 마룻바닥
에 털썩 주저앉으며 힘없이 중얼거렸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존은 깜짝 놀라 큰아버지를 안아 일으키며,
"큰아버지, 웬일이십니까! 도대체 무엇이 온단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큰아버지는 ,
"존, 죽음이 닥쳐왔어."
하더니 그대로 이층으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존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큰아버지를 공포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편지의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봉투의 되접어 꺽은 곳의 안쪽, 즉 풀 붙이는 부분 바로 위에 K자 3개가 붉
은 잉크로 씌어 있었습니다. 그밖에는 말라빠진 오렌지 씨앗 5개가 들어있
을 뿐이었습니다. 글씨도 없거니와 편지지도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일이군. 어째서 이 따위 것에 그렇게 겁을 내실까?'
존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층계를 다 올라갔을때, 다락방에서 막 내려오는 큰아버지와 마주쳤습니다.
큰아버지는 낡은 놋쇠 상자를 꽉 끼고 있었습니다.
그는 정신이 나간 듯한 얼굴로,
"올테면 와 보라지. 죽여 버릴테니까!"
하고 혼자서 중얼거렸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이 들었는지.
"존, 메어리에게 내 방에 불을 피워 놓으라고 일러라. 참, 그리고 호오셤
시에 있는 포오덤 변호사를 불러다오."
하고 말했습니다.
몇 시간 뒤, 존은 변호사와 함께 큰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불이 활
활 타오르고 있는 벽난로에는 많은 양의 종이를 태운 듯 부드럽고 검은 재
가 수북히 쌓여 있었습니다.
벽난로 옆에는 이층에서 마주쳤을때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놋쇠 상자가 두
껑이 열린 채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두껑에는 KKK라는
글자가 뚜렷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큰아버지는 어제보다 10년은 더 늙어 보이는 듯한 얼굴로,
"존, 나는 방금 내 모든 재산을 너의 아버지에게 물려 준다는 유언장을 썼
다. 그러니까 언젠가는 이 재산이 네 것이 될 거다. 그러나 한 마디 주의
해 두겠는데, 내가 죽은 뒤에 만약 악마 같은 녀석이 나타나서 재산을 내
놓으라고 하면, 아낌없이 줘 버려라. 이렇게 재수없는 재산을 물려 주게
된 게 유감이지만, 만일 행운이 계속된다면 넌 평생을 안락하게 살 수 있
을 거야. 자, 포오덤씨가 가리키는 곳에 입회인의 서명을 해."
존은 얼떨떨하여 뭐가 뭔지도 잘 모르면서 백부의 유언장에 서명을 했습니
다.
2. 첫번째 죽음
큰아버지의 생활은 그 다음부터 딴판으로 달라졌습니다.
전에도 술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이제는 아침부터 술을 퍼마시고는 하루종
일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방에서 갑자기 뛰어나와 권총을 들고 정원이나 숲속을 멧돼지
처럼 달리며,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희생의 제물이 아니란 말이야!
악마 같은 놈! 올 테면 와!"
하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총을 쏘아 댔으므로, 집안 사람들은 겁이 나
서 밖에 나갈 엄두도 못 냈습니다.
그러나 그 미치광이 같은 발작이 가라앉으면, 이번에는 거꾸로 비관적이 되
어 다시 자기 방에 처박히곤 했습니다.
존은 우연히 그런 때의 큰아버지 얼굴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진눈깨비가 오는 추운 날이었는데도, 머리와 얼굴, 목덜미까지 온통 땀투성
이인 것이, 마치 수영장에서 막 나온 사람같이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큰아버지는 다시 발작을 일으켜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밖
으로 뛰어나갔습니다. 그런데 보통때는 30분이 지나면 지칠 대로 지쳐 돌아
오곤 했는데, 2시간이 지나고 3시간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존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큰아버지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뜰 한구석에 있는 작은 연못에 죽은 듯이 엎드려 있는 큰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달려가 안아 일으켰지만,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습니다. 폭행을 당한 흔적
은 전혀 없었습니다.
큰아버지의 최근 행동을 알고 있는 경찰에서는, 자세히 조사해 보지도 않고
발작적인 자살이라고 판정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존은 큰아버지의 자살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큰아버지는 어느누구보다도 죽음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즉 절실하게 오래 살고 싶어했습니다. 그런 큰아버지가 발작적으로 자살을
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건은 그것으로 일단락되고, 존의 아버지는 큰아버지가 남긴 넓은
토지와 막대한 은행 예금을 상속 받았습니다.
오랫동안 잠자코 듣고만 있던 홈즈가 이윽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과연 여태까지 들어 본 적이 없는 괴상한 사건이군요. 큰아버님이 편지를
받은 날짜와 돌아가신 날짜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 괴상한 편지가 온 것은 1883년 3월 10일이고, 돌아가신 것은 그로부터
7주일셉인 5월 2일 밤이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뒤 당신들은 큰아버님의 놋쇠상자를 조사했겠죠? 그때
의 상황을 자세히 얘기해 주십시오."
"나와 아버지는 호오셤의 저택으로 이사하자마자 다락방으로 들어가 보았
습니다. 한쪽 구석에 그 놋쇠 상자가 놓여 있었는데, 안은 텅텅 비어 있었
습니다. 뚜껑의 뒤쪽에는 KKK라는 붉은 글씨와 <편지. 메모 수취 명부> 라
고 쓰인 종이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 밖에도 다락방 안에는 큰아버지가 미
국에 계실때 쓰시던 서류와 수첩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습니다.
개중에는 남북전쟁의 기록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그것을 대충 훑어보더
니,
"형님은 남군을 위해 맹활약을 하셨나 보군."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시더군요.
"음, 그밖에 다른 것은 또 없었습니까?"
홈즈는 무엇인가를 간파해 내려는 듯 날카로운 눈초리로 물었습니다.
"예, 또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남부 여러 주의 부흥 시대의 것도
있었습니다. 거기 나타난 것을 보면, 큰아버지는 북부에서 온 정치가들에
게 반감을 품고 저항 운동을 했습니다. 또 흑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큰아버지가 미국에서 돌아온 이유가 거
기 에 있으며, 그런 이유 때문에 살해된 것 같아 몹시 불안했습니다. 그
러나 그 뒤 평온한 나날이 계속되었으므로, 어느사이엔가 오렌지 씨앗도
KKK라는 붉은 글씨에 대한 근심도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사건이 또 일어났습니다."
3. 두 번째 죽음
존과 아버지가 호오셤의 저택으로 이사한 것은 1884년초였습니다.
그 이듬해인 1885년 1월 4일 아침, 식탁에 앉아 있던 아버지가 별안간 찢어
지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아니, 이런!"
존이 달려가 보니, 아버지는 한쪽 손에 막 뜯은 봉투를 들고, 다른 한 손에
는 말라빠진 오렌지 씨앗 5개를 쥐고 있었습니다.
"존, 형님에게 온 것도 이것과 똑같은 것이었니?"
존의 가슴은 매우 두근거렸습니다.
"아버지, 봉투의 이음매 안쪽을 조사해 보십시오. 만약 붉은 글씨로 KKK라
고 씌어 있으면 틀림없습니다."
아버지는 봉투의 이음매를 살펴보더니.
"존, 네 말대로야. 그런데 이건 또 뭐지?"
하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니, 뭐가 씌어 있나요?"
"그래, '우리 비밀 서류를 정원에 있는 해시계위에 놓아 두라.'고 적혀
있어. 존, 비밀 서류란 뭐지? 해시계는 또 뭐야?"
"아버지, 해시계라면 정원 구석에 있습니다. 비밀 서류라는 것은 아마 놋
쇠 상자에 넣어 두었던 것을 말하는 모양인데, 그건 큰아버지가 벽난로에
넣어 모두 태워 버리셨습니다."
"모두 태워 버렸다구?"
아버지는 낙심한 듯 길게 한숨을 토해 내었지만, 이내 용기를 불러일으켰습
니다.
"이 나라는 법과 질서를 소중히 여기는 문명국이야. 이런 야만적인 일은
용납되지 않아. 그런데 편지는 어디서 부친 거냐?"
"소인이 찍힌 곳은 스코틀랜드의 댄디입니다."
"그래? 좌우간 해시계나, 서류니 하는 것은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야. 무시
해 버리는 수밖에 없지."
"하지만 아버지, 일단 경찰에 신고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존, 그런 짓을 하면 웃음을 살 뿐이야. 누가 그 말을 믿겠니? 신고하지
말아라."
그러나 존은 큰아버지의 기묘한 죽음이 생각나, 불안한 마음을 누를 수 없
었습니다.
편지가 온 지 사흘째 되는 날, 아버지는 포츠다운산의 요새에 있는 옛친구
프리보디 소령을 만나러 갔습니다. 군이들이 많이 있는 요새였으므로, 집에
있는 것보다 안전하리라 생각하여 존은 굳이 말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떠나고 이틀째 되는 날, 피리
보디 소령으로부터 존에게 요새로 오라는 전보가 왔습니다.
존이 급히 달려가 보니, 이미 아버지는 의식이 없었습니다.
요새 부근 일대에 파 놓은 깊은 구덩이에 추락하여, 두개골이 깨지는 바람
에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만 것입니다.
현장 부근은 '지옥의 벌집'이라 불릴 만큼 위험한 장소였습니다.
깊은 구덩이에는 목책도 없고 위험표지판도 없는 데다가 미끄러지기 쉬워,
그 고장 사람들조차 가까이 가기를 꺼리는 장소였습니다.
"당신 아버지는 이곳 지리에 밝지 못해 이런 변을 당하신 것입니다. 산책
하시는 도중에 호기심이 일어 들여다보다가 추락한 거죠."
지방 경찰은 이렇게 말하며 단순한 사고로 처리해 버렸습니다.
존은 아버지가 변을 당했을 당시의 상황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저녁때 사고가 일어났으므로 목격자가 한 사람도 없었습
니다. 또한 폭행을 당한 흔적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존은 아버지가 겁장이로 불릴 정도로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
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낯선 고장에서, 더구나 저녁때 그런
위험한 곳에 접근했으리라곤 아무래도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의문의 죽음이 두 번씩이나 일어났기 때문에 마음이 별로 내키지 않
았으나, 존은 아버지의 전재산을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존이 이 불길한 재산을 처분하지 않은 것은,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도리어
배짱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어디로 도망가든 어차피 그 검은 마수는 쫓아올 것이므로, 그 자리에 그냥
눌러앉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아버지가 불행한 최후를 마친것이 1885년 1월이었는데, 그로부터 2년 8개월
가까이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습니다.
그 동안 존은 호오셤의 저택에서 평온한 생활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저주의 마수가 큰아버지와 아버지만으로 그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달콤한 생각이었습니다. 바로 어제 아침, 그 마수는 큰아버
지와 아버지의 경우와 똑같은 형태로 존에게도 닥쳐온 것입니다.
4. 세 번째 협박장
청년은 긴 이야기를 마치더니, 조끼 호주머니에서 꾸겨진 봉투를 꺼내어 탁
자위에 5개의 마른 오렌지 씨앗을 뚝뚝 떨어뜨렸습니다.
"홈즈씨, 이게 그 봉투입니다. 소인은 런던의 E지구 우체국 것입니다.
내용은 아버지가 받은 것과 똑같이 붉은 글씨로 KKK, 그 위에 '서류를 해
시계 위에 갖다 놓아라.' 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홈즈는 봉투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했죠?"
하고 물었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구요?"
"사실은....."
청년은 희고 가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습
니다.
"전 어떻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뱀에게 잡아먹히기만을 기다리는
개구리 같은 처지입니다."
홈즈는 딱하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그렇게 기운을 잃으면 못써요."
하고 나무라듯이 말했습니다.
"용기를 내야 하오. 그러면 이러한 위기쯤은 꼭 극복할 수 있을 거요. 경
찰에는 신고했겠죠?"
"물론 신고 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에선 제 이야기를 웃어 넘겼습니다. 담
당 경감은 큰아버지나 아버지의 죽음이 돌발적인 사고로 인한 죽음이 틀
림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편지와 오렌지 씨앗은 못된 녀석의 장난이지.
사고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 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들인가!"
홈즈는 벌떡 일어서서 주먹을 휘두르며 분개했습니다.
"제 태도가 심각해 보였던지, 그래도 호위 경관을 한 명 보내 주더군요."
"그 경관은 이곳으로 당신과 함께 왔겠군요?"
"아닙니다. 날씨가 너무 나빠 미안한 생각이 들어, 저택에 남겨 두고 왔습
니다."
홈즈는 다시 주먹을 휘두르며,
"오픈쇼씨, 당신은 경찰에 가지 말고 진작부터 이리로 왔어야 했소. 왜 일
찍 안 오셨죠?"
하고 나무라듯이 말했습니다.
"생각다 못해 플랜더어개스트 소령에게 털어놓은 것이 오늘 아침의 일입니
다. 그랬더니 소령이 여길 소개해 주시기에...."
"그렇다면 할 수 없죠. 아뭏든 세 번째의 협박장이 온지 벌써 이틀이 지났
소. 재빨리 방비 태세를 갖추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밖에 뭔가 적의 정체
를 알 수 있는 자료가 없을까요?"
"있습니다."
존은 양복 호주머니를 뒤지더니, 색이 바랜 파란 종이 쪽지를 꺼내어 탁자
위에 놓았습니다.
"큰아버지가 서류를 태워버린 이튿날 큰아버지의 방에 들어갔더니, 구석에
이게 떨어져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놋쇠 상자 속에서 나온 겁니다. 다른
것과 함께 태우려도 모르고 빠뜨린 것 같습니다."
홈즈는 그 종이 쪽지를 등불에 비춰 보았습니다.
나도 들여다 보았는데, 가장자리가 들쑥날쑥한 것이 스프링으로 철한 일기
장의 한 페이지를 잡아 뜯은 것 같았습니다.
맨 위에, '1869년 3월'이라 적혀 있고, 그 밑에 다음과 같이 수수께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4일 : 허드슨 오다. 늘 하던 대로 강경하게 자기 설을 주장함.
7일 : 맥코오리, 팰러모어, 스웨인등 3명에게 씨앗을 보냄.
9일 : 맥코오리 떠남.
10일 : 스웨인 떠남.
12일 : 팰러모어를 방문, 해결.
"귀중한 자료군요. 소중히 간직하십시오."
하며 홈즈는 종이 쪽지를 청년에게 되돌려 주었습니다.
"이것을 보니, 사태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절박합니다. 당신은 지금 곧
호오셤으로 돌아가십시오."
"이런 폭풍우 속을 말입니까?"
"그렇소. 돌아가서 곧 이 종이쪽지를 놋쇠 상자 속에 넣어 두십시오. 그리
고 편지지에다, '다른 서류는 모두 큰아버지가 태워 버렸으므로, 이것 한
정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라고 적어서, 역시 놋쇠 상자안에 넣어야 하오
. 성의를 다해서 쓰면 상대방도 믿어 줄 것이오. 그리고 그것을 상대방이
지정한 대로 뜰에 있는 해시계위에 놓아 두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행여 큰아버지나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고 생각지 마십시오. 지금은 오로
지 당신몸에 닥쳐오고 있는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생각만 하십시오..
수수께끼를 푸는 것과 상대방의 체포 같은 것은 우선 뒤로 돌립시다."
"예,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청년은 일어서서, 레인 코트를 입었습니다.
"홈즈씨의 자신에 넘치는 말씀을 듣고 있는 사이에 새로운 희망이 생겼습
니다. 그럼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무쪼록 조심하십시오. 돌아가실때엔 역시 기차를 이용하겠죠?"
"예, 워털루역에서 탈 예정입니다."
"아직 9시 전입니다. 지금은 사람 왕래도 있을테니 괜찮을 것입니다. 내일
부터는 나도 행동을 개시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호오셤으로 와 주시겠단 말입니까?"
"아니오, 이 사건의 뿌리는 런던에 있소. 나는 그 뿌리를 찾아 내어 송두
리째 뽑을 생각입니다."
"잘 부탁하겠습니다."
존 오픈쇼 청년은 힘찬 걸음으로 돌아갔습니다.
밖에선 여전히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있었습니다.
5. 보이지 않는 적의 정체
셜록 홈즈는 잠시 활활 타오르는 난로불을 바라보다가, 파이프에 불을 붙였
습니다.
"와트슨, 우리가 이처럼 기괴한 이야기를 들은 것도 오래만이지?"
"응, < 공포의 4 > 사건이래 처음인것 같아."
"그래, 와트슨, 자넨 오픈쇼 청년에게 닥쳐오는 위험이 어떤 것인지 예측
할 수 있나?"
"음...... KKK라는 것이 오픈쇼일가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 있는것 같군.
그리고 그들은 오픈쇼 대령이 미국에서 가져온 놋쇠 상자 속의 서류에
이상하리만큼 집념을 가지고 있군. 그런데 대령은 그걸 태워 버렸기 때문
에 제 2의 비극이 일어났고, 바야흐로 제 3의 비극이 일어나려 하고 있
어."
"와트슨, 멋진 추리야. 이처럼 기압이 낮으면 자네의 뇌세포는 오히려 활
발하게 활동하는가 보군. 하지만 자네가 방금 한 추리는 매우 단편적이
야. 뛰어난 동물학자, 예컨대 귀비에(프랑스의 동물학자)는 뼈 하나만 보
아도, 그 뼈의 임자인 동물의 생김새를 생생하게 그려 냈어. 나도 똑같은
일을 할 수 있어."
"그럼 이번 사건의 전모를 그려 보게."
"응, 그런데 그보다 먼저 복습삼아 할 일이 있네. 자네는 나와 알게 된 지
얼마 안 되어, 내 재능 일람표 비슷한 것을 만들어 준 일이 있었지?"
"그래 그래, 거기 있는 책장 구석에 꽃혀 있을걸. 누가 건드리자만 않았다
면..... 아, 여기 있군 그래."
나는 한 장의 도표를 펼쳤습니다.
< 홈즈의 재능 일람표 >
식물학 : 광범위하게 공부했지만 깊이는 불충분.
화 학 : 부분적으로 강함.
지질학 : 런던 주변 100킬로미터 이내라면, 옷이나 구두에 묻은 흙이나 먼
지를 보고 그 지역의 이름을 알아맞힐 수 있음.
해부학 : 자세하지만 계통적으로 공부하지는 않았음.
문 학 : 순문학은 어설프지만, 범죄 기록에 관해선 걸어다니는 사전.
법률학 : 변호사도 상의하러 옴.
철 학 : 아는 바가 없음.
천문학 : 거의 모르는 상태임.
정치학 : 전혀 관심이 없음.
예 술 : 바이올린은 수준급.
무 술 : 권투는 4회전 선수 정도. 목검술은 영국인으로서는 대적할 상대가
없음. 유도는 검은 띠를 둘렀음.
경제학 : 백지에 가까와, 싸구려 하숙집에서 쪼들리고 있음.
건 강 : 지나친 흡연으로 니코틴 중독 증세가 있음.
"와트슨, 이 일람표엔 가장 중요한게 빠져 있어."
홈즈는 파이프를 놓으면서 말했습니다.
"아니, 그게 뭔데?"
"그건 내가 문명의 이기인 백과 사전을 누구보다도 잘 활용한다는 사실이
야. 백과 사전 출판사의 선전을 하는 건 아니지만, 인간의 두뇌란 다락방
과 같아서 곧 차 버리거든. 그래서 나는 기억하고 있어 봐야 도움이 되지
않는 건 되도록 잊고 있다가 필요한 때마다 백과사전 신세를 지고 있어.
말하자면 백과 사전 애호가라고나 할까. 이번 사건에서도 당장 도움을 받
기로 하세. 자, 백과 사전의 K항을 찾아 볼까."
내가 백과 사전을 꺼내어 탁자위에 놓자, 홈즈는 그 위에 손을 얹고 말했
습니다.
"책장을 펼치기 전에, 왜 오픈쇼 대령이 기후가 좋은 플로리다에서 이 추
운 영국의 시골로 돌아왔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세. 존 오픈쇼 청년
은 아까 남북 전쟁 후의 정치 활동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처럼 말했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리고 오픈쇼 대령이 영국에 돌아온 다음에도 이웃
과 교제를 하지 않고 틀어박혀 있었다는 사실을 뼈대로 해서 추리를 발전
시켜 보세. 대령은 편지가 오기 전부터 어떤 일을 두려워하고 있었어. 그
것이 무슨 일일까.... 내 생각으로는, 대령은 전쟁 후의 활동에서 처음
에는 선두에 나서서 일하다가, 나중에 동지들을 배반했을 거야. 그 때문
에 동지가 거꾸로 적이 된거야. 그 적의 정체는, 오픈쇼 일가가 받은 세
통의 편지로 알아 낼 수 밖에 없어. 와트슨, 자넨 세 통의 소인이 찍힌
곳을 기억하고 있나?"
"음, 처음 것이 인도의 퐁디세리, 다음것이 스코틀랜드의 댄디, 그리고 마
지막 것이 런던의 E 지구로부터였어."
"세 지점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어. 알 수 있겠나?"
"아, 알겠어! 셋 다 항구야! 편지 보낸 자는 배를 타고 있어."
"맞았네. 적이 배를 타고 있다는 건 확실해. 자, 큰 실마리가 잡혔어. 그
럼 이번에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세. 대령의 경우엔 협박장은 인도에
서 보내졌는데, 그것이 대령에게 도착한지 7주일 후에 변을 당했어. 다음
은 청년의 아버지 경우야. 협박장은 스코틀랜드에서 부쳐졌고, 배달된 지
나흘 뒤에 비극이 일어났어. 7주일 대 4일! 여기에 수수께끼를 풀 수 있
는 열쇠가 숨어 있다고 생각되지 않나?"
"음, 인도는 영국에서 머니까 7주일의 공간이 생기고, 스코틀랜드는 가깝
기 때문에 나흘밖에 걸리지 않았어. 즉 거리에 비례하고 있어."
"거리가 문제가 아니야."
"그래? 그렇다면 왜 그렇게 사이가 벌어졌을까? 더 이사은 모르겠는데..."
"그럼 설명해 주지. 협박자들은 범선을 타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놈들은
범행을 저지를 때에는 꼭 협박장을 희생자에게 미리 보내기로 돼 있는 것
같아. 이번 경우에도, 그 관습인지 규칙인지를 충분히 지켜 기항지에서 협
박장을 보냈어. 아마 배달된 직후에 곧 실행하려고 생각했겠지. 그러나 오
늘날 세계의 교통 기관은 눈부신 발달을 거듭하고 있어. 협박장이 실린 배
는 빠른 속력을 자랑하는 기선이었지. 그래서 협박자들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빨리 희생자의 손에 그것이 도착했어. 이에 비해, 협박자들의 배는
바람에 의지해서 가는 속력이 아주 느린 범선이었어. 따라서 그들이 가까
스로 영국의 항구에 도착했을 때는, 협박장이 대령에게 배달되고 나서 7주
일이나 지난 뒤였어. 맥주 같으면 김이 빠진 격이지만, 협박자들은 예고대
로 희생자를 죽여 버린 거야. 스코틀랜드에서 부쳐진 협박장도 역시 기선
에 실렸겠지만,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에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았어. 그러
니까 나흘 뒤에 실행할 수가 있었던 거야."
설명을 다 듣고 난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홈즈,이번에 온 협박장은 런던에서 부친 거야. 앞서의 두 번에 걸친 예로
본다면, 오늘이라도 참극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셈이야. 아, 얼마나 무
서운 일인가! 등골이 오싹해 지는군. 홈즈, 자네는 이 잔혹한 협박자의 정
체를 알고 있나?"
"응, 대략은 알고 있지. 먼저 있은 두 번에 걸친 완벽한 솜씨로 미루어 본
다면 한 사람이 아닌 것만은 확실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책략에 뛰
어난 놈들이 두 명이상, 아니, 아마 서너 명은 될 거야."
"그런데 어째서 서너 명이나 바다를 건너와, 시골에 사는 약한 인간을 죽
여야 할까?"
"만약 오픈쇼 대령이 갖고 있는 서류가 공표될 경우, 놈들은 지위도 명예
도, 혹은 생명까지도 잃어 버릴지 몰라.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손에 넣
으려고 하는 거야. 이젠 KKK라는 것이 개인이 아니라, 어떤 단체의 약칭이
라는 걸 알 수 있겠지?"
그러더니 홈즈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어.
"와트슨, 자네 큐우 클럭스 클랜이란 소릴 들어 본적이 있나?"
하고 은밀히 물었습니다.
"아니, 못 들었는데..."
내가 고개를 젓자, 홈즈는 백과 사전의 책장을 넘겼습니다.
"오, 역시 실려 있군!"
하며 홈즈는 소리를 내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백과 사전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씌어 있습니다.
큐우 클럭스 클랜 : 약칭은 KKK. 비밀 결사의 이름이다.
총의 격철을 당겨 일으킬때 나는 소리에서 비롯된 이
름이라고 한다. 이 무시무시한 비밀 결사는 남북 전쟁
종료 후, 남부 여러 주의 재향 군인의 일부가 결성한
것으로, 순식간에 전미국으로 펴져 각지에 지부가 설
치되었다.
특히, 테네시, 루이지애나, 남북 캐롤라이나, 조오지
아, 플로리다주에서 활발히 움직였다.
이들의 세력은 정치적 목적, 주로 흑인 유권자에 대한
협박, 나아가 결사의 방침에 배반하는 자의 살인이나
국외 추방에 쓰이었다.
결사의 실력 행사 방법은 매우 기발하였다. 먼저 제거
대상자에게 오렌지 씨앗 또는 떡갈나무의 작은 가지를
보내어 경고를 한다. 만일 이것을 받는 자가 자기의
주장을 버리거나 자발적으로 국외로 도망하거나,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을 경우엔 즉각 죽음의 사
자를 보내는 것이 상례였다.
죽음의 사자가 상대를 죽이는 방법은 죽일 때마다 다
르기 때문에 예측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결사 대원끼리의 단결은 쇠사슬처럼 단단하고, 조직은
강대했으므로 경고를 무시하고 죽음을 면한 자는 아무
도 없다. 또 죽음의 사자는 전혀 증거를 남기지 않기
때문에 검거된 기록도 거의 없다.
KKK는 미국 정부 및 남부 여러 주의 용감한 시민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러 해 동안 주로 남부에서 맹위
를 떨치다가, 뜻밖에도 1869년에 갑자기 무너져 버렸
다. 그러나 그 뒤, 각지에서 비슷한 단체가 생기고 있
다.
홈즈는 사전을 덮으며 말했습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비밀 결사가 무너진 것과 오픈쇼 대령이 미국에서
서류를 가지고 떠나온 시기가 거의 일치한다는 걸 알 수 있어. 오픈쇼 대
령이 미국에서 서류를 가지고 떠나온 시기가 거의 일치한다는 걸 알 수 있
어.오픈쇼 대령은 미국에 있을 때 KKK에 관계하고 있었던 거야. 더우기 상
당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단체의 중요한 비밀을 쥐고 있었
어. 아까 존 오픈쇼가 보여 준 노트의 한 페이지도 그 단체의 비밀 장부의
일부였던 것이 틀림없어. 분명히 A, B, C 세 사람에게 오렌지 씨앗을 보
냈다고 씌어 있었는데, 이것은 KKK가 경고장을 보낸 걸 말해. 그리고, 에
이, 비이, 시이가 떠났다는 건 시키는 대로 국외로 도망간 것을 나타내고
있어. 맨 마지막에 방문하여 해결했다고 씌어 있었는데, 그건 죽였다는 것
을 의미해."
"놋쇠 상자 속에 들어 있었던 것은 KKK가 저지른 협박과 범죄의 기록이었
군."
"대령이 태워 버린 서류에는 틀림없이 지금 남부서 지도적 지위에 앉아 있
는 자의 이름도 적혀 있을 거야. 그자들은 기록을 되찾을 때까지는 안심하
고 살 수가 없기 때문에 오픈쇼 일가를 집요하게 노렸던 거야."
"들을수록 무서운 이야기로군."
"그러나 이제 그 괴상한 사건의 뿌리는 드러났어. 내일은 과감하게 그들의
정체를 드러내 줘야겠어. 내일의 활동에 대비해서 휴식을 하는게 좋겠어.
미안하지만, 그 바이올린 좀 집어 주겠나?"
6. 지옥선 론스타아호
이튿날 아침에는 폭풍우가 거짓말같이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홈즈의 하숙집으로 가 보니, 그는 부드러운 햇살을 받으며 아침 식사를 하
고 있었습니다.
"밤새 안녕한가, 와트슨? 오늘은 먼저 런던의 중심부부터 조사를 시작하겠
어.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호오셤으로 달려갈지도 몰라. 참, 자네 식사
도 가져오게 해야 겠군."
아침 식사가 올 동안, 나는 신문을 읽으려고 접힌 채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신문을 집어 들었습니다. 신문을 펼치자, 중간 크기의 활자가 일면의 표제
활자 만큼이나 크게 비치며 내 눈에 뛰어들어왔습니다.
"이봐,홈즈! 이미 늦었어!"
나는 놀라 소리쳤습니다.
"뭐라구!"
홈즈는 커피잔을 내려 놓더니, 급히 내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아침 잠에서 깨어났을 때 불길한 예감이 들었어. 어
떤 방법으로 죽었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강한 충격을 받았다는것을 뚜렷이 알 수 있었습니다.
"오픈쇼씨의 이름과 <워털루 다리의 비극> 이란 표제만 보았어. 기사를 읽
을테니 잘 들어봐."
어젯 밤 9시에서 10시 사이에. H 경찰서의 쿠크 순경은, 워털루 다리 부근
을 순찰하던 중 사람 살리라고 외치는 소리와 허위적거리는 물소리를 들었
다. 그러나 밤이 깊은데다가 샔마침 불어닥치는 폭풍우 때문에 구조가 불
가능 했다. 그래서 경보를 발하고, 수상 경찰서에 라안치(조그만 증기선)의
출동을 요청하여 수십 분 뒤에 물에서 건졌지만, 조난자는 이미 죽어있었
다.
그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봉투로, 호오셤의 존 오픈쇼 청년으로 판명되었다.
조난자는 아마 워털루역을 떠나는 마지막 열차를 타려고 길을 서둘렀던 것
같다. 그러나 너무 어두웠던 탓으로 발을 잘못 디뎌, 템즈강 증기선 선착장
에서 강으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체에 폭행 흔적이 전혀 없으므로 실수로 인한 죽음인 것이 확실시되며,
이처럼 위험한 장소가 주요 역근처에 있다는 데 대해 시 당국의 맹성(크게
반성하여 깨달음)이 촉구한다....
홈즈가 낙담하는 모습은 곁에서 보기가 안타까울 정도였습니다. 그는 한도
안 잠자코 있더니,
"내 자존심은 완전히 상처를 입었어. 이렇게 된 이상 나는 목숨을 내걸고
라도 이 죽음의 사자들을 붙잡아 보이겠어. 모처럼 나를 믿고 멀리 호오셤
에서 찾아 온 청년을 죽음의 길로 돌려 보내다니......"
하고 탄식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벌떡 일어나 방안을 빙빙 돌아다녔습니다.
"참으로 책략에 뛰어난 놈들이야. 어떤 방법으로 그처럼 위험한 장소에 오
픈쇼를 끌어들였을까? 아무리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밤이라도 통행인이 있
었을텐데..... 좋아, 이렇게 되면 책략에는 책략으로 대할 수 밖에.
와트슨, 놈들이 이기나,내가 이기나 두고 보게. 자,그럼 난 나가 보겠네."
"아니 어디로 가겠다는 건가? 경찰서로?"
"무조건 단순한 실수로 처리해 버리는 경찰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이
렇게 되면, 내 자신이 경찰이야. 내 손으로 그물을 쳐야겠어. 경찰이라도
파리쯤은 붙잡을 수 있겠지만, 내가 잡는 건 거물이야."
그날 하루종일 본업인 병원 일로 분주했기 때문에, 내가 베이커 거리로 간
것은 밤이 뮊어서였습니다. 그러나 홈즈는 그때까지 돌아와 있지 않았습니
다. 그는 10시가 가까와져서야 지친 얼굴을 하고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굶주린 이리처럼 빵을 마구 씹어 삼켰습니다.
"몹시 시장한 모양이지?"
"응, 사실은 점심과 저녁 식사를 완전히 잊고 있었어. 생각할 틈도 없었
어."
"그럼, 수확이 있었겠군."
"놈들은 내 손아귀에 꽉 쥐어 있어. 오픈쇼 청년의 원한을 푸는 것도 시간
문제야. 와트슨,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테니 보고만 있게. 내가 협박자가
되어 놈들에게 죽음의 경고장을 보내는 거야."
" 뭐라구?"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는데 내 눈 앞에서 홈즈는 선반에 있는 오렌지를 잘게
뜯었습니다. 그리고 씨앗을 빼내어 그중에서 5개를 가려 봉투에 넣고, 봉하
느 곳에 '존 오픈쇼의 대리, 셜록 홈즈.'라고 붉은 잉크로 적었습니다.
겉봉에는 '미국 조오지주 사배나항에 입항 예정인 범선 론스타아호 선장.
제임스 카알푼씨 앞'이라고 적었습니다.
"이 편지가 먼저 기선에 실려 도착해 있다가, 범선 론스타아호의 입항을
기다리게 되는 셈이지."
홈즈는 소리죽여 웃더니.
"이 편지를 보면, 아무리 신경이 굵은 선장이라도 잠을 못 일룰 걸세. 오
픈쇼 대령이 무서워 벌벌 떤 검은 예고의 공포를 자기가 맛보게 될 테니
까 말이야."
하고 말하였습니다.
"카알푼 선장이란 누군가?"
"갱들의 두목이지. 다른 놈들도 해치워 버리겠지만, 먼저 두목부터야."
"홈즈, 어떻게 이놈의 범행이란 것을 알았지?"
홈즈는 날짜와 배의 이름이 잔뜩 적힌 종이 쪽지를 호주머니에서 꺼냈습니
다.
"나는 오늘 하루종일 걸려 로이드 선박 협회의 기록과 낡은 신문을 뒤져,
1883년 1월에서 2월에 걸쳐 퐁디세리항에 기항한 모든 선박의 그뒤의 행선
지를 조사했어. 그 2개월 동안에 퐁디세리항에 기항한 외항선은 모두 36
척있었지. 그중에 론스타아호라는 이름이 내 주의를 끌었어. 런던을 향해
출발했다고 적혀 있었는데, 론스타아란 미국 텍사스주의 애칭이니까 우선
미국계의 배라고 단정할 수 있었어. 그리고 일라이어스 오픈쇼가 죽은 것
은 그해 5월 2일이니까,시기적으로도 들어맞아."
"그래서?"
"다음에는 스코틀랜드의 댄디항에 대해 조사해 보았더니, 그 론스타아호가
1885년 1월에 기항한 사실이 있었어. 이건 오픈쇼 청년의 아버지가 죽은
것과 같은 달이야. 이로써 짐작은 확신으로 변했지. 더 나아가 런던항에
정박중인 배를 조사해 보앗더니...."
"있었군. 론스타아호가!"
"맞았어! 지난 주부터 계속 머물러 있었지. 즉시 앨버어트 독에 가 보았더
니, 오늘 아침 밀물 때 템즈강을 내려가, 사배나 항으로 향한 것을 알았
어. 살인자들은 목적을 이루었으므로 철수한 거야. 강 어귀에 가까운 그레
이브샌트에 조회 전보를 쳤더니, 조금 전에 통과했다는 답전이 왔지. 지금
쯤 와이트섬 근처를 항해하고 있을거야."
"이대로 놈들을 놓아 줄 셈인가?"
"천만에! 이미 그물을 쳐 놓았어. 론스타아호의 선원 구성은, 선장과 두
사람의 항해사가 미국인이고, 나머지는 핀란드와 도이치란드 사람이야. 더
구나 이 3명의 미국인은 어젯밤 모두 상륙해서 밤 11시가 넘어서야 귀선했
어. 이쯤 증거가 갖춰지면 충분해. 론스타아호에 짐을 실은 노무자들에게
들었는데 다음 기항지는 사배나항이 틀림없다고 했어. 그래서 사배나항에
속달 우편을 보냈지. 또한 사배나의 경찰에 전보를 쳐서, 이러이러하여 세
살인범이 귀하에 도착할 것이니, 즉시 체포하라고 부탁해 놓았어. 물론 경
시청에도 정식으로 의뢰가 가겠지. 살인자들이 이 5개의 오렌지 씨앗을 보
고 깜짝 놀라고 있을 때에 경찰관들이 들이닥치겠지."
그러나 홈즈도 인간입니다. 아무리 완벽한 계획을 세웠다고 해도,
인간의 운명을 바꿔 놓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사배나 항으로부터의 통지를 목이 빠지게 기다렸으나, 결국 허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그해의 폭풍우는 전에 없이 집요했습니다. 대성양 위를 미친 듯
이 휩쓸고, 수많은 배를 바다 밑으로 가라앉혔습니다.
론스타아호도 그중에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는 소식을, 정보통인 홈즈가 선
원 클럽에서 듣고 왔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선원이 대서양을 항해하다가 론스타아호라 새겨진 보트의 조각이 바다
위에 떠돌아다니는것을 보았다는것 뿐이었습니다.
론스타아호의 운명은?
그리고 세 살인범들은?
이것은 지금도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아마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