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차(綠茶) 부국(富國) 담의(談義) Ⅱ-
우리 동차는 어디로 갔는가?
하동군 쌍계사입구에 차의 시배지비문이 있다. 시배지라함은 녹차를 처음 재배한 곳이라는 뜻인데, 중국사대주의와 왜의 식민지 정책의 표상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
우리 녹차는 동차(東茶)라함이 마땅하다.
동차는 두륜산(해남)일대 (대흥사)와 보성읍 징광사 그리고, 지리산의 고산 준령에서 고려 때부터 찬연한 자태와 내용으로 발달되어왔다.
대만의 「동방미인」이라는 상호(브랜드)가 붙은 넓적한 찻잎의 "오룡차"도 아니고, 순수 신차(新茶)인 「작설차」가 조선조 이후의 왕실전용차 이었으며, 고려시대는 녹차를 국가경영의 수단으로 삼았던 송(宋)나라와 교류되었던 각차(角茶)외 「뇌원차」가 유명했다.
각차라하면 덩어리차를 의미하는데 보이차(푸알차)와 다르다.
묵은 찻잎이 곰팡이가 실어 발효된 「보이차」는 우연한 산물이었지 당초부터 잇던 녹차종류는 아니다.
중국 당나라 때부터 이름을 날렸던 황제만이 즐겼던 공차(貢茶)의 순종은 지금 중국에서도 「대홍포」라는 브랜드로서 그 명맥이 전할 뿐인데, 우리 고려의 동차의 원조이자 암차(岩茶)의 토종일 소위 「뇌원차」는 안타깝게도 실종되고 말았다.
뇌를 맑게 해서 "뇌원차"인가? 아니면 보이현의 보이차같이 「뇌원」이라는 차 생산지의 고지명(옛 지명)을 따서 뇌원차라고 불렀는지는 학계간의 논의가 분분하다.
중국 역대 황제만이 애용했던 공차(貢茶)와 대결했던 옛 고려의 자랑 「뇌원차」는 어떤 것이었을까?
뇌원차를 찾아내는데 부수조건 즉 지남철은 1)조선쑥을 알아야 되며 2)토종 적송 소나무를 알아야 하며 3)고려 산삼을 투철하게 알아내야 수수께끼가 풀린다.
고려의 국교가 불교였던 고로 고려 명차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차로서 마음을 씻고 성불했던 고승대덕과 그들이 머물던 고찰 예컨대 쌍계사, 대흥사 그리고 징광사(보성 소재)를 검증해 봐야 된다.
원래 고급 녹차 즉, 공차(貢茶)는 불로장생의 원망과 염원이 침전된 양생목적 불로초였지 마시며, 노니는 기호품은 아니다.
진시황이 중국 토종 "녹차"가 없어 동방에 동남동녀 5백을 보내어 불로초인 녹차를 찾게 했던가? 실마리는 여기서 풀어야 된다.
우리나라 고지명(古地名)은 우리나라에 숨겨진 보배의 보물섬 찾기, 지도의 암호이다. 그것이 「왕실양명술」을 이경화선생에게서 홀로 전수받은 필자의 비밀이다.
예컨대, 울진(경북)군은 예전엔 강원도에 속했으며, 고구려의 영토였다. 고지명은 "우진"이었다. 우는 아! 라고 소리치는 감탄사요, 진은 보배진(珍)인데, 우진이 울진으로 변음이 된 것이다.
왜? 고구려인들이 만주 백두산일대의 산삼을 두고 남녘 울진 땅을 <아! 보배>라고 힘주어 말했던가? 그것은 미래지향적으로 그곳이 금강송인 토종 적송나무의 고향이라는 뜻과 고려산 「자수정」이 매장되었다는 지명(地名) 암호에 해당된다.
또 하나의 사례를 들자면 강원도 춘천 춘성군 동명 월곡리에서 연옥인 백옥이 채광되어 웬만한 가정에는 춘천옥 반지, 춘천옥 팔찌 등이 다 있을 만큼 수년전까지 온 나라에 유행 보선 행세를 했다.
월곡(月谷)이란, 뜻은 바다를 연상시키는데 달의 인력관계로 바다 조수간만의 차이가 생기고, 달의 리듬이 지구상 생명체의 바이오리듬과 무관하지 않다.
즉, 백옥과 연옥은 고대로부터 바다 속에서 융기와 침몰을 반복했던 마그네슘성 규소광물이다.
춘성군 동면 월곡리 야산에는 토종 소나무가 숲을 이루어 무성하다. 즉, 옥광산의 필수조건은 토종 소나무 숲인 것이다.
호박색, 비취색, 쪽빛 물감의 색채는 이미 색채로 인간심층의 깊은 병뿌리를 치유하고, 안정시켰던 것이다.
옛 중국황제의 전유물인 공차(貢茶)인 신차(新茶)의 찻물빛깔은 은은한 호박색이었다. 호박은 엄밀하게 말해서 광물이라기보다 큰 소나무 송진이 뿌리 부근에 수천년 이상 흘러내려 화석과 같이 된 "송진"의 변형이다.
호박보석속에 모기 같은 벌레가 같이 화석이 되어 있음을 본다.
일본인들이 일제 36년간 조선의 불가사의로 숙제를 가졌는데 1)왜? 왕가에서 황토를 애지중지하고 궁전을 짓는 땅이 황토층이라야만 되었고, 왕이 행차(행궁)시 미리 약황토를 행선지에 뿌렸던가? 2)고려 시대 도자기(청자)와 함께 동방의 보물일 「뇌원차」의 정체는 무엇이었으며 3)고려청자, 이조백자의 도기 굽기의 비결은 무엇이고 4)고려 유밀과는 어떻게 만들었던가? 등 4대 숙제를 갖고 있었다.
중국 송나라는 도자기 굽기가 녹차개발에 국력을 기울여 그런 풍조가 고려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황제의 애용 공차(貢茶)는 황실 재테크의 상징이었다.
중국 무이산 제6봉, 제7봉에서 아침 안개와 이슬을 먹고 자란 절벽위의 5백년 이상 된 차나무의 새순을 따서 만든 신차는 이런 차가 움직이는 곳에 정치가 돌아간다. 즉, 권력의 향배가 결정된 1년에 1kg밖에 생산 안 된 「대홍포」라는 암차(岩茶)의 조상이었던 것이다.
도연명시인이 만년에 뽕나무밭 갖기를 소원했다면 모택동은 만년에 스스로 가꾸는 다원(茶園)에서 옛 황제의 하사차(下賜茶)라는 암차(岩茶)-용정차-밭 가꾸며 이런 장생불로초로 90객의 건강을 가꾸려 했던 것이다.
스위스의 닐한스 세포 치료 연구소, 루마니아 장수 연구소, 소련의 여류생화학자의 중탄산수 장수법 같은 것을 전부 도입하고, 치료받았던 불로장수 마니아라면 모택동이 암차(岩茶)의 "불로장수효능"을 놓칠 리가 없다.
명나라시대 대표적인 공차(황제 전용 녹차)는 소주산 「호구차」, 「천지차」, 강소성산 「양차차」, 안휘성의 「송몽차」, 강서성산 「백로차」등이어서 현재도 그 내림밥상인 「여산운무차」, 「계평서산차」등으로 브랜드가 남아있다.
그런데, 조선조 개국 초기 이성계, 이방원 부자에서 세종 임금 때까지 명나라 황제가 특히 탐냈던 대차, 각차, 뇌원차가 2백근씩 명황제와 황태자에게 국가적 선물로 동지사 등을 통해 호송되었던 것이다. 가치 없는 조선차라면 명황제가 왜 몹시 탐을 냈을까?
옛 송·원·명·청제국에서 환관 즉 내관에 의한 측근정치는 유명해서 정승과 황제를 조정·전복시킨 내관들의 행각은 권력게임의 표본이었거니와 그런 내관들의 파워보다 한수 우위의 배우실력자는 바로 황제에게 공차, 하사차를 수집·납품했던 차장수(차상(茶商))들이었다는 것이다.
중국황제는 그런 하사차 즉, 공차를 가지고 주변 강대한 호적(오랑캐)을 녹차선물로 다스리고, 자기 막료와 변방 도호부사를 손아귀에 넣고 마음대로 조정할 수가 있었다.
고려의 황제는 개국공신 등에게 재물(財物)대신 대차, 각차를 하사했다.
중국의 예사 암차(岩茶)밭 무위산 골짜기에서 5백년 이상 된 차나무 새잎차는 현재 1년에 1kg을 생산하여 ⅓은 최고 권력자에게 전해지고 ⅓은 동남아 VIP(경제왕들)의 선물로 전해지며, 나머지 ⅓은 국가공무원들이 보관했다가 봄철에 20g단위로 국제입찰공매에 붙인다는데 20g당 이천오백만원에도 그런 「대홍포차」 순정품이 없어서 못 판다니 옛 고려홍삼의 희귀성은 「공차」와 가격비교가 안되는 것이다.
중국차의 슈퍼브랜드인 녹차는 절강성산 「서호용정차」, 강소성의 「벽라춘차」, 안휘성산 「황산모봉」, 청차인 경우 복건성산 「무이암차」, 황차로는 호남성의 「군산은침차」등이다. 옛 중국송담에 "정치가 움직이면 차(녹차)도 따라 움직인다."는 말이 있다.
또, 이런 속담의 뒷받침으로 「흑면족」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즉 악랄한 상법으로 가짜차를 만들어 팔고, 호아제를 상대로 농간을 부려 치부하는 차장수를 말했다.
암차란 보랏빛 안개가 자욱한 지리산 천왕봉 부근 같은 환경하의 절벽바위틈에서 5백년이상의 수령을 가진 녹차나무의 봄의 새순으로 만든 것을 말한다. 그런 바위의 희귀원소(Trace Element)를 흡수한 생명나무를 뜻한다. (중국 맥반석과 관계가 있다.)
분명 옛 「뇌원차」는 한국 서남해안 두륜산, 지리산의 절벽에서 채취했을 것이고, 계절풍을 타고 한반도로 약바람을 가장 먼저 맞이한 차나무였을 것이고, 거제도 기암괴석위의 천년송, 낙락장송같이 차나무의 나이가 5백년이상 되어야 했을 것이다.
혀바닥밑 침샘을 녹이는 듯한 그런 차의 「단맛」 이 맛이 인간의 몸을 알칼리성으로 돋구어주고, 만 가지 병의 뿌리를 삭혀 없애며, 늙음의 원인인 체내 과산화지질을 분해·배출시키는 공능(功能)있는 그런 차라야 미래 한국의 달러박스를 채워 줄 수 있다.
그런 분야에서 최전방에 나선 것이 중국 녹차 행정이고, 대만의 오룡차대책이며, 일본이 혈안이 되어 세계적으로 개최하는 시즈오까현 주최 오·차국제심포지엄이다.
기후는 완도, 보길도, 해남 암석은 화강암 사질토(운모성 점토광물)로 오대산, 설악산, 외금강의 암석 이런 환경조건이 딱 들어맞는 곳에서 옛 「뇌원차」가 재발굴 될 수 있겠다. 그런 아젠다를 위하여 필자는 전심전력 하고 있다,
"요산당 고려다원"의 하구씨와 고려차 재현에 착수 했다.. "동차 재발굴" 中 !
홍어삭힌 식문화가 백제식문화인것이 톡쏘는 홍어를 먹고나면
혀밑 침샘에서 달디단 침이 흘러 나온다. 이런 타액을 삼키면 "옥액"이라하여 체내 모든 독소를 독풀이한다.
높은" 명상=믁상"의 경지에 이르르면 이런 타액이 입안에 고인단다.
또같은 <옥액>현상이 바위틈에서자란 50년이상된 바위차=옥명, 옥선차<하구씨의 요산당 다원 특산> 고려차를마실때 다른고급녹차보다 더 강한 엄청난
분량의 단침이 고여 흐른다.
저작권자 : 이 원 섭(http://www.tao-heali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