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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김인숙
27년. 그녀는 남편과 27년을 함께 살았다. 25주년 기념식을 치르고도 2년을 더. 그 2년 동안 그녀는 거실 벽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을 무시로 바라보곤 했다. 청소기를 돌리다가도 문득 서서 한참 동안, 설거지를 하다가도 느닷없이 뒤돌아서서 또 한참 동안. 어떤 때는 외출을 하고 돌아와 자신도 모르게 서 있는 곳이 바로 그 앞이기도 했다. 2년 전, 기념식 무렵에 찍은 사진이었다. 그녀와 남편이 사진관의 소파에 앉아 있고, 딸과 아들이 그 뒤에 서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사가 공을 들여 보정을 해놓은 사진 속에서 그녀와 남편은 나이보다 젊어보였고, 실제보다 더 평화로워 보였다.
25주년 기념식을 은혼식이라 부른다고 했다. 그것이 특별하기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마찬가지여서 서양에서는 그날 25년 전의 결혼식을 똑같이 재현하는 풍습이 있다는 것을 책에서 읽고 알았다. 그녀의 결혼식은 재현을 하며 축하할 만한 것이 못 되었다. 가진 것 없던 시절의 결혼식은 보잘것없었고, 신혼여행도 제주도는 고사하고 고작 경주로 가서 이틀 밤을 자고 왔을 뿐이다. 결혼식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신혼여행지에서도 그녀가 툭하면 울어 남편은 항상 그녀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 서서 쩔쩔매기만 했다. 주변머리 없는 남편이 한심하고 서운해 그녀는 또 울었다.
그러므로 은혼식이 다가왔을 때, 그녀에게 특별하게 여겨졌던 것은 그들이 재현해야 할 오래전의 어떤 날이 아니라 그후의 시간들이었다. 25주년이 되던 날 아침, 그녀는 잠들어 있는 남편의 얼굴을 내려다보다 말고 문득 놀라운 마음으로 생각했다.
세상에, 내가 아직도 이 남자랑 살고 있네.
그다음 날 아침의 기분은 더 경이로웠다.
25년하고도 하루를 더 살았어, 내가 이 남자랑.
물론 그 경이로움과 감격이 하루 이틀을 넘기고 일주일을 넘기고 그리하여 그후 이 년 동안이나 내리 지속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익숙한 감동 같은 것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 익숙한 느낌 속에는 약간의 애잔함도 섞여 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 일을 나가는 남편의 어깨를 털어주다 말고 그녀는 문득 생각하기도 했던 것이다. 자신이 지금 털어내고 있는 것이 남편의 어깨에 수북이 내려앉은 비듬인지, 비듬처럼 묻은 세월인지, 그 세월에 더께처럼 내려앉아 가슴 속에 응고되어 있는 무엇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분명한 것은 지나간 세월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사실이었다. 넉넉지 못했던 삶을 등에 지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듯 땀을 흘렸던 기억이나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던 기억들뿐만 아니라 입안에서 흑설탕이 녹는 것처럼 달콤하고 목마르던 기억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나는 것을 보며 느꼈던 매 순간의 전율 같던 행복, 내 집을 장만한 첫날 거실 바닥을 닦다가 젖은 자국이 자신의 눈물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거의 고통에 가까웠던 기쁨, 어렸던 아이들을 이고 지고 피서를 떠났던 계곡에서 물난리를 만났을 때 함께 느꼈던 공포와 함께 내질렀던 비명, 그리고 절대로 놓을 수 없었던 손과 손의 기억……. 그 모든 것들은 이제 지나간 세월들 속에 있으며 다시 다가오지 않으리라. 삶은 계속되겠지만 그것은 더는 전율도 고통도 아니리라. 서운하고 허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느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편안한 느낌이라는 쪽이 더 옳았다. 25주년 기념식 후, 그녀는 자신의 시간들을 두둑이 얹어진 덤처럼 여겼다. 그것은 그녀가 안간힘을 다해 살아왔던, 지나간 삶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죽순처럼 자라났다. 아들아이는 대학을 휴학하고 군대에 가 있었고, 딸아이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직을 했다. 떠들썩하게 자랑을 할 만한 직장은 아니지만 지 앞가림은 할 만한 곳이었다. 그녀의 25주년 결혼기념식이 특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잘 자라준 아이들 때문이었다. 그날 아침 남편과 딸아이가 출근을 한 뒤, 그녀는 식탁 위에 꽃무늬 봉투 하나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봉투의 꽃무늬가 어찌나 화사하던지 꽃바구니가 놓인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비죽거렸다. 말수 적고 잔정도 적은 남편이긴 했지만 무슨 날만큼은 잘 챙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남편의 선물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다 늙어가지고 남사스럽게 꽃무늬 봉투는 또 다 뭐람.
뜻밖에도 봉투는 딸아이가 남긴 것이었다. 호텔의 하루 숙박권과 뷔페 이용권, 그리고 카드의 속지에는 빨간 내복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비죽거리던 그녀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첫 월급을 타고 두 번째 월급을 탈 때까지 아예 작정이라도 한 듯 입을 씻어버렸던 딸아이였다. 양말 한 켤레도 필요 없다고 말했던 건 자신이었음에도 서운한 마음이 종내 가시지 않았었다. 혼자 있을 때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래도 그렇지, 나쁜 년.” 소리가 새어나오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날 아침, 그녀는 마침내 외치듯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만하면 잘 살지 않았는가!
잘 커준 것은 아들아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날 밤, 호텔방의 전화벨이 울렸다. 호텔이란 곳이 당최 낯설어서 남편과 그녀가 동시에 겁을 먹었다. 아들아이였다. 핸드폰으로 걸어도 될 것을 일부러 호텔방으로 전화를 걸어, 군인인 아이가 “충성!” 외치기부터 했다. 그 소리가 전화기 바깥으로까지 울려나와 전화를 받은 남편에게뿐만 아니라 그녀에게까지 들렸다. 30주년 기념식은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아들아이가 또 외쳤다. 남편의 얼굴에 주름 가득한 웃음이 퍼지는 동안, 그녀는 또 생각했다. 이만하면 정도가 아니라 이건 정말로 잘 산 게 아닌가라고.
그날 밤, 엄마 아버지의 외박을 틈타 깜찍하게도 딸아이 역시 외박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그녀의 기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소한 행복처럼 사소한 말썽들은 언제나 있는 법이었다. 그녀는 딸아이가 다 큰 성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고, 자신과 남편이 충분히 나이 들었다는 사실도 받아들였다. 남편은 일찌감치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해 오십이 되기도 전에 거의 맨머리나 다름없는 대머리가 되었다. 그녀는 볼썽사납게 벗겨진 남편의 머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그런 남편의 어울리지 않게도 근육질인 몸도 받아들였다. 머리보다는 몸을 받아들이는 데 더 시간이 걸리기는 했다. 그녀는 남편의 잔정 없는 성격이나, 요령이라고는 약에 쓰려고 해도 찾아볼 수 없는 세상살이며, 좀스럽기 그지없는 태도들보다 더, 그의 근육질인 몸에 익숙해지는 것이 어려웠다.
남편은 평생 동안 이삿짐과 화물운송을 했다. 워낙에도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기는 했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몸에 기름기가 남아날 여지도 없었을 것이다. 나이 오십이 넘은 지금도 그는 웬만한 냉장고 하나쯤은 혼자서 번쩍번쩍 들었다. 한창 때에는 밧줄 하나만 묶어서 장롱을 5층 창문으로 내리고 또 끌어올리고도 할 수 있던 사람이었다. 노동으로 단련된 그의 근육들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빠져나가는 머리카락과는 달리 요지부동으로 단단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남편의 근육질 몸을 언제부턴가 그녀는 자랑스럽다기보다는 불편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는데, 남자가 말이야, 배도 나오고 좀 그래야지. 그래야 좀 있어 보이는 거지, 저건 뭐……. 머리는 다 벗겨진 주제에……. 그런 중얼거림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흘러나오곤 했던 것이다.
남편은, 그녀가 친구들과 함께 수다를 떨 때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좀생이’ 과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술도 담배도 안하고 화투판에 끼어들 줄도 모르고 딴 데 한눈을 팔 줄도 몰랐다. 돈을 크게 벌 줄도, 크게 쓸 줄도 몰랐다. 평생 동안 그 어떤 모임에서도 그녀는 남편이 가장 먼저 계산대 앞으로 나서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구두쇠여서인 것이 아니었다. 남편은 언제나 무엇엔가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생일이며 아이들의 생일을 그토록 잘 챙기면서도 당당히 눈 맞추고 선물을 내밀어본 적이 없었다. 혹시 마음에 들지 않는 선물을 골랐을까 봐, 혹시 어울리지 않는 짓을 한다는 말을 들을까 봐, 선물을 고를 때 최종 순간에 만 원 더 비싼 것을 선택하지 않았던 걸 들킬까 봐, 선물을 내미는 그의 손이 늘 부끄러웠다.
얌전한 사무원으로 살았어도 그는 출세줄을 잡을 만한 타입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물며 노동판에서였으니 출세는 고사하고 변변한 친구 하나 만들기가 어려웠다. 그는 어디에서나 늘 주변에 있는 사람이었고, 어디에서나 늘 잘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이 들면서는 마침내 완전히 사라져 보이지 않을 듯했다. 그가 회사를 관두고 개인화물을 하고 싶어 했을 때, 만만치 않은 차량 구입 비용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규모 이삿짐을 부리는 고객들은 대개 알음알음으로 그를 찾는 독신자들이었고, 젊거나 어린 여자애들이 많았다. 그 애들은 이 머리 벗겨진 아저씨에게 자신의 원룸 열쇠를 맡기면서 어떤 걱정도 하지 않았다. 인터넷을 통해 주문이 들어오는 이사 일거리는 대개 그런 아이들로부터였다. 아들아이가 군대에 가기 전까지 블로그 관리를 대신해주었기 때문에 남편은 젊은 여자들이 찾는 것은 자기가 아니라 사실 아들아이인 거라고 농처럼 말을 하곤 했지만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그야말로 친절했고, 친절하다기보다는 공손했고, 공손하다기보다는 때때로 비굴하게 보일 정도이기까지 했다. 이사가 끝나면 어린 고객들은 값을 깎아달라고 요구하기는커녕 몇 번씩이나 반복해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다음 번에도 꼭 아저씨를 부르겠다는 약속은 대개 지켜졌다.
그의 어린 고객들이 그에게 버릇없게 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실은 버릇 있게 굴 이유도 없고, 버릇없게 굴 이유도 없는 관계인 것이다. 남편은 달랐다. 일하는 내내 얼굴에 그려 붙인 듯한 미소가 떠나지를 않았다. 마치 안 웃으면 끝장이라는 듯이 그 무거운 짐을 들어 올리고 들어 내리면서도, 헉헉거리는 숨을 몰아쉬면서도, 기회가 닿을 때마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미소를 짓고 또 지었다. 한 어린 여자아이가 웃음을 터뜨리던 것을 그녀는 기억했다. 친구 딸의 결혼식이 지방에서 있어서 남편의 일이 끝나면 그 차를 타고 갈 요량으로 일터에 동반을 했던 날이었다. 차 안에 앉아 있기만 했는데도 남편의 일하는 모습이 거슬리고, 자신의 잘 차려 입은 옷도 거슬리고, 마침내 아이의 웃음소리가 거슬렸다. 그녀가 차에서 내려 마치 싸움을 걸듯이 아이에게 왜 웃느냐고 딱딱거리며 물었다. 깜짝 놀란 아이가 죄송해요, 먼저 말해놓고는, “아저씨가 자꾸 웃으니까 나도 웃겨서요.” 덧붙였다. 생글생글 웃을 때는 전혀 나쁜 기분이 아니었을 텐데 느닷없이 나타난 그녀 때문에 기분이 확 상해버린 얼굴이었다. 병신 아냐. 돌아서면서 아이가 욕설을 내뱉는 것이 그녀의 귀에까지 들렸다.
그날 그녀는 친구 딸의 결혼식에 가지 않았다. 남편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지도 않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녀는 욕설을 내뱉던 여자아이의 머리채를 휘어잡지 못한 것에 부아를 삭이지 못해 끝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여자아이의 욕설을 분명히 들었을 터인데도 못 들은 척 이삿짐만 들어 올리던 남편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자아이가 자신에게 했던 욕설을 고스란히 남편에게 해줘야만 했었다.
병신 아냐.
마누라가 욕을 먹고 있는데도 그걸 못 들은 체하다니. 그깟 코 묻은 돈이 얼마나 된다고 그 와중에도 굽실댈 줄밖에 모르다니. 그깟 코 묻은 돈으로 아이들을 키웠고, 쌀을 샀고, 또 집을 샀다는 사실을 그녀는 그 순간에 생각도 하지 않았다.
택시 기사가 룸미러를 통해 그녀를 자꾸 힐끗거렸다. 그러다가 마침내 물었다. 아줌마, 자꾸 뭐라고 그러시요? 그녀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자 택시기사가 라디오 볼륨을 높이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상한 아주머니시네. 택시 기사의 그 말이 순식간에 그녀의 들끓던 속을 가라앉혔다. 가슴속에서 다른 것이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노보다 더한 혐오였다. 이유도 없이 자꾸 웃는 대머리 아저씨는 미친년처럼 혼잣말이나 중얼거리는 아줌마와 살고 있고, 그 아줌마는 또 그 아저씨와 같이 살고 있는 것이다.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그후부터 그녀의 입매가 내리 단단했다. 멀미도 하지 않았는데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택시를 집 근처 마트 입구에 세웠다. 그리고는 만원짜리 지폐 몇 장을 넣었다 빼냈다 하기를 거듭했던 축의금 봉투를 전부 털어 장을 봤다. 성미가 급하기는 했지만 그걸 또 빨리 풀어버리는 것이 그녀의 장점이기도 했다. 급하지 않으면 빨리 풀 것도 없겠지만, 그러면 그것이 장점이 될 것도 아니겠지만, 그녀는 언제나 자신을 호탕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호기롭게 텅 빈 축의금 봉투를 마트의 쓰레기통 속에 던져 넣었다. 그러나 1분도 안 돼 다시 그걸 주워들어 잘 펴서 백 속에 넣었다. 봉투가 아직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새것이란 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오후에 일거리 하나가 더 생겼다고 문자를 보내왔던 남편은 저녁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 대구에 있는데 이삿짐에 문제가 생겨 하루 자고 가야 할 것 같다는 전화가 밤에 또 걸려왔다. 그녀는 다시 부아가 끓어올랐다. 기껏 비싼 돈 들여 만들어놓은 반찬들을 고스란히 냉장고에 넣게 생긴 것이다. 그녀는 전화를 끊으려는 남편에게 느닷없이 영천 집 얘기를 꺼냈다. 대구와 영천이 가깝기도 했지만 실은 반찬거리에 쓴 아까운 돈 때문에 떠오른 것이었다. 크든 작든 돈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그녀는 언제나 영천 집 문제를 들고 나왔다.
남편에게는 영천에서 홀로 살다가 죽은 고모부가 남겨준 집이 있었다. 그게 벌써 5년 전인가 10년 전인가 그랬다. 남편에게 혼자 사는 고모부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고, 그가 어린 시절의 남편을 예뻐했다는 얘기도 몇 번 들은 적이 있었지만, 설마 남편에게 집을 물려주기까지 할 줄은 몰랐다. 살면서 로또에 당첨이 되도 오천 원 이상의 배당금을 받아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남편의 친가 쪽 살림이 다들 고만고만하니 고모부가 남긴 집이라는 게 엄청난 유산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만 얼마라도 목돈이 되지는 않을 것인가. 밤에 잠을 설칠 정도로 달콤했던 꿈은 그후 며칠이 되지 않아 산산조각이 났다. 남편을 채근해서 당장 달려가 살펴본 그 집은 고작 폐가를 면한 수준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유산이 아니라 꼬박꼬박 지불해야 하는 세금과 함께 거대한 덩치의 쓰레기를 남긴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고모부가 집을 남겼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제사를 맡겠다고 선뜻 했던 약속을 그녀는 그후 단 한 번도 지키지 않았다. 그랬음에도 그녀는 잊을 만하면 영천 집 얘기를 꺼냈다. 집이 팔리기를 기대해서도 아니었고, 그 집 부지가 느닷없이 재개발구역이 되었다는 또 한 번의 로또 당첨 같은 소식을 기대해서도 아니었다. 푼돈에 지나지 않는 세금에 대해서는 지겹게 말을 했으므로 새삼스럽게 그 사실을 다시 확인시키려는 것도 아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 일종의 싸움을 거는 방식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마도 욕설이었을 것이다. 유산을 받아도 기껏 쓰레기 따위나 받는 남편, 그 쓰레기를 헐값에나마 팔아치우지도 못하는 남편, 말하자면 쓰레기를 이고 사는 남편.
딸아이까지 귀가가 늦어 텅 빈 집에 홀로 있던 그 밤, 그녀는 저녁 찬거리들을 전부 냉장고에 집어넣고 자신은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은 후, 소파에 누워 책을 봤다. 그녀로 말하자면, 이제는 두둑이 접히는 뱃살을 가진 쉰다섯 살의 중년여자였고, 정기적으로 뽀글뽀글 파마를 했고,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면 쉼 없이 앉을 자리가 생기는 데를 찾아 눈동자를 굴리는 사람이기는 했지만, 그리고 저녁 한 끼 못 굶어 고추장에라도 밥을 비벼 먹어야 기운이 나는 사람이기는 했지만, 반면에 그 나이에는 어울리지 않게도 여전히 독서가 취미인 사람이었다. 그녀에게 이것이 얼마나 큰 자부심인지는 그녀뿐만 아니라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주민도서관의 작가 낭독회를 빠짐없이 찾아갔고, 항상 맨 앞자리에 앉았으며, 작가의 사인을 받기 위해 꼬박꼬박 줄을 섰다. 그때마다 그녀는 자신이 특별하게 여겨졌다. 노안이 와서 돋보기를 사야 했을 때도 그녀는 자신의 노화가 슬프기보다는 돋보기를 쓰고 책을 읽는 자신의 모습이 우아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녀는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기는 했지만 그중에서도 공포소설이나 추리소설을 좋아했다. 달콤한 로맨스소설이나 징징 울음을 짜대는 가족소설보다도 하드코어인 추리소설이나 공포소설을 더 좋아한다는 것 역시 오십이 넘은 그녀의 자긍심 중 하나였다. 스티븐 킹, 존 그리샴, 히가시노 게이고, 그런 작가들의 소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습게도 그런 영화를 볼 때 범인을 가장 늦게 알아차리는 것이 그녀여서 놀림감이 되기도 했는데, 자칭 추리소설 전문가인 그녀는 정작 그런 놀림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친구들이 “넌 아직도 깜짝 놀랄 일이 필요하니?”라고 물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추리소설의 진짜 재미를 모르는 것이다. 추리소설은 범인을 알아내거나 깜짝 놀라기 위해서 읽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추리소설의 묘미는 과정의 심리를 읽어내는 데에 있었다. 범인의 심리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심리, 그 관계와 상황의 심리까지. 때로는 사물의 심리까지. 그러니까 추리소설 속에서는 스테이크나이프의 상표와 모양과 놓여진 자리까지 다 심리이고 대사인 것이다. 그 어떤 것도 배경이 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없다. 추리소설에 빠져 있는 동안에는 그녀 역시 주인공이었다. 떨어져 있는 곳의 독자가 아니라 그녀 역시 범인이거나 피해자이거나 증인이었다. 혹은 식탁 위에 놓인 스테이크나이프였다.
아내는 남편과 27년을 살았다.
이 문장을 그녀는 읽고 있던 추리소설 속에서 발견했다. 단순한 문장이었지만 27이라는 숫자가 주는 쾌감이 짜릿했다. 그래, 나도 27년을 살았지. 일찌감치 대머리가 된 남편과 참 잘도 살았지. 그 대머리 남편의 차고에서 비밀상자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살해된 여인의 사진을 발견할 때까지는 모든 게 다 평범하고 괜찮은 결혼생활이었지. 그 책을 읽던 날 밤, 소설 속의 문장과 자신의 삶이 마구잡이로 뒤엉켜 그녀를 묘한 흥분 상태로 몰아넣었다. 남편에게도 그런 게 있다면……. 어딘가에 숨겨놓은 비밀상자 같은 게 있다면……. 물론 자신의 남편이 소설 속의 남편처럼 연쇄살인범이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남자가 말이야. 남자라면 말이지……. 하다못해 양말 속에 숨겨놓는 비상금 정도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27년을 함께 산 남편, 25주년 기념식을 치르고도 2년을 더 같이 산 남편, 그 남자에게서 비밀을 발견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거의 없다고 말하는 편이 더 옳겠으나, 그녀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 ‘한 번도’라고. 자신에겐 물론 그런 것이 있었다. 그것도 매우 심각한. 자신이 실은 남편을 경멸한다는 사실. 심지어는 잠자리를 할 때조차 그러하다는 사실. 욕설을 내뱉고 싶을 때마다 결코 그렇게 한 적은 없으나, 대신에 매번 영천 집을 떠올린다는 사실. 남자가 쓰레기 하나 못 치우고 말이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린다는 사실. 그러나 그녀가 단 한 번도 그 사실을 들키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랬다. 그녀는 들킨 적이 없었다. 때때로 싸우고, 때때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욕적인 말을 내뱉기도 했겠지만, 보통의 부부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정도에서 지나친 적이 없었다. 이혼을 진심으로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가출을 꿈꿔본 적도 없었고, 아침에 일을 나간 남편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 적은 물론 천만 없었다. 남편과 자식들을 대신해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자신에게 애완동물에 대한 혐오증이 있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어떻든 그녀는 가족 이외에 아무것도 키우지 않았고, 오직 그들만을 아끼고 돌봐왔던 것이다.
언젠가 남편이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온 적이 있기는 했었다. 고객의 이삿짐 사이에 그 개가 있었다고 했다. 고객은 자신의 개가 아니라고 했고, 그 개 역시 고객을 쫓아가려고 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진돗개 같다는 남편의 말을 그녀가 믿었던 것은 아니다. 이삿짐이 진도에서 왔다니까. 남편이 어울리지 않게 농담을 시도했을 때에도 그녀는 자신이 치워야 할 개똥이며 개털 따위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더라도 예쁜 강아지라는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었다. 모든 강아지가 그런 것처럼 그 개 역시 귀여웠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강아지를 품에서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어디 갖다 줄 데를 찾을 때까지만 집 안에 강아지를 두기로 했는데 그게 한 달이 넘고 두 달이 넘었다. 강아지는 그야말로 쑥쑥 자라났다. 처음부터 진돗개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자라면서는 진돗개는커녕 잡종개 티가 확연했다. 강아지 태를 벗으면서는 못생긴 구석들이 속속 드러났다. 그냥 못생긴 정도가 아니라 눈에 띄게 못생긴 개였다.
그녀는 항상 그 개를 ‘저놈의 개’라고 불렀다. 저놈의 개 좀 빨리 어디다 갖다 주라고 그녀가 성화를 부릴 때마다 남편의 대답은 언제나 “응, 응.”이었다.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별다른 취미도 없는 남편이 뜻밖에도 개를 키우는 일에는 열성이었다. 그녀가 팔짱을 끼고 바라보고만 있는 동안 남편이 아이들과 함께 개를 목욕시키고 산책을 시키고 주사를 맞히기 위해 병원에도 갔다. 한 번인가, 그녀가 병원에 맡겨져 있던 개를 찾으러 간 적이 있었다. 젊은 수의사가 그녀를 “누구 어머니”라고 불렀는데 그게 개의 이름이어서 그녀를 기겁하게 만들었다.
가족들과 함께 공원 나들이를 할 때에도 그녀가 개를 돌본 적은 없었다. 개의 목줄을 붙잡지도 않았고, 킁킁거리는 개의 콧등을 쓰다듬어준 적도 없었다. 공원 풀밭에 쭈그리고 앉아 똥을 싸는 개를 그녀는 늘 눈살을 찌푸린 채 바라보았다. 그야말로 똥 마려운 개라더니……. 똥 눌 자리를 찾아 맴을 도는 개를 볼 때마다 그녀는 자신도 똥이 마렵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개가 똥을 다 싸기를 기다렸다가 냉큼 그 똥을 치우는 남편을 볼 때는 더욱 눈살이 찌푸려졌다. 못생긴 개도 싫었지만 그 개의 ‘밑을 닦아주는’ 남편은 더 싫었다. 누가 봐도 잡종견이 분명한 개를 끌고 거리를 산책하는 근육질의 대머리 남자는 무슨 까닭인지 지나치게 의기양양했다.
사람들이 자주 멈춰 개를 바라보고, 그다음에는 그 개의 주인인 늙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건 무슨 개예요, 묻기도 했다. 진돗갭니다. 남편이 대답하면 물었던 사람도 웃고, 개도 웃었다. 진도에서 왔거든요. 남편이 말을 덧붙이면 말을 건넸던 사람이 한 번 더 웃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얼굴이 달아올랐고, 창피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남편은 사람들의 관심을 즐기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그가 못생긴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이유는 오직 사람들이 “이건 무슨 개예요?” 물어봐주기를 기대해서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또 한 번 대답할 수 있기를. “이 개가 진도에서 왔거든요.” 마치 세상에 둘도 없는 농담을 자신만이 알고 있는 것처럼.
개는 교통사고로 죽었다. 남편이 사람들에게 의기양양하게 농담을 하고 있는 동안 목줄에서 풀려난 개가 차도로 뛰어들었던 모양이다. 남편이 죽은 개를 품에 안은 채 돌아왔다. 개도 남편의 몸도 피투성이였다. 그녀는 비명을 질렀고, 잠깐 공황 상태에 빠져 이게 슬퍼해야 할 일인지 놀라워해야 할 일인지 분간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역시 아무것도 분간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걸 집 안으로 끌고 들어오면 어쩌느냐고 악을 쓰기 시작했다. 남편은 한동안 꼼짝도 않고 현관에 서 있다가 마치 내던지듯이 죽은 개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걸 거기다가 내려놓으면 어쩌느냐고 그녀가 다시 악을 썼지만 남편은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 그가 신발을 신은 채로 안으로 들어와 쓰레기봉투를 찾았다. 남편이 죽은 개를 쓰레기봉투 속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개는 한 번에 들어가지 않았다. 봉투 바깥으로 삐져나온 다리를 남편이 봉투 속으로 쑤셔 박았다. 그러는 동안 남편의 몸은 피범벅이 되었고, 현관 바닥에도 피가 뚝뚝 떨어졌다.
“뭐 하는 거야? 당신 미쳤어!”
그녀가 다시 악을 썼다. 남편은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다리 한쪽이 쓰레기봉투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녀는 우두둑, 뼈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쓰레기봉투를 들고 현관문을 나서는 걸 바라보며 그녀는 더럭 겁이 났다. 무슨 까닭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맨발로, 이미 엘리베이터를 타버린 남편을 쫓아 미친 듯이 계단을 뛰어 내려가, 마침내 쓰레기통 앞에 서 있는 남편을 찾아냈다. 맨발인 그녀가 피투성이가 된 늙은 남자의 근육질 가슴을 두 주먹으로 때려가며 악을 썼다.
“내가 뭘 어쨌다고! 내가 죽였어? 내가 죽였냐고!”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장 꺼내서 묻어줘! 묻어주란 말이야!”
남편이 그녀의 두 손목을 거머쥐었다. 손목이 부서질 듯한 악력이었다. 그녀는 또 한 번 공포를 느꼈고, 더는 비명을 지를 수도, 악을 쓸 수도 없었다. 남편은 곧 그녀의 손목을 놔주었다. 그리고는 언제나 그런 것처럼 일상적인 목소리였다.
“여기 묻을 데가 어디 있다고 그래.”
맨발인 여자와 개의 피로 온몸이 젖은 남자는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고 더는 싸우지 않았다. 저녁때 집에 돌아온 아이들에게는 개를 남의 집에 보냈다고 말했다. 머리가 굵은 아이들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채는 듯했으나,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묻지도 않았고, 울고불고 난리를 쳐대거나 하지도 않았다. 개 짖는 소리 없는 하루가 그렇게 저물었다.
애완동물에 대한 혐오증이 그 전부터 있었던 건지 아니면 그때부터 생긴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확실한 것은 그후로는 다시는 그 무엇도 키우려고 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남의 강아지를 쳐다보는 것조차 내켜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편 역시 다시 뭔가를 들고 들어온다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그는 다시 집과 일터를 오갔고, 친구를 만나거나 술 마시는 일이 없어 남보다 더 많이 한가한 시간들에는 티브이 리모컨만 돌려댔다. 오락 프로를 보면서 빙그레 웃음을 띠었고, 뉴스를 보다가는 쯧쯧 혀를 찼다. 죽은 개를 쓰레기봉투 속에 욱여넣던 사나운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남편의 단단한 등과 뒤통수까지 벗겨진 머리를 식탁에 앉아 바라보며, 다시 중얼거렸다. 무슨 남자가 취미도 없어. 취미도 없고 돈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
늘 조금씩 부족했고 늘 조금씩 불만스럽기는 했지만, 그러나 평화로운 삶이었다. 남편의 작업복 주머니 속에서 용도를 알 수 없는 열쇠를 발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무슨 열쇠야? 물었더니 원룸 이사를 하고 열쇠 돌려주는 걸 깜빡 잊었다고 했다. 나중에 전화를 걸었더니 자물쇠를 이미 바꿨다며 버리라고 했는데 그걸 또 깜빡 잊은 모양이라고 했다. 당장 버리라고, 그녀가 인상을 찌푸린 채 말을 했었다. 기분 나쁘게 왜 남의 집 열쇠를 가지고 있느냐는 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열쇠를 혼자 있던 그 밤에 다시 발견했다. 이튿날 세탁소에 가져다 줄 옷들을 정리하다가 남편의 점퍼 주머니에 들어 있는 그것을 다시 찾아낸 것이다. 남편의 점퍼는 세탁소에 맡길 옷은 아니었다. 남편에게는 그럴 만한 옷이 아예 없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였다. 수도 없이 물세탁을 해서 후줄근하다 못해 아예 너덜너덜해진 점퍼는 딸이 조심성 없게 세탁기 앞에다 던져놓은 실크블라우스 밑에 깔려 있었다. 그녀는 그 쓰레기 같은 남편의 점퍼를 벌써 몇 번이나 내다버릴 작정을 하다가는 못하곤 했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그래도 아직은 두어 번 더 입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 아니라 그 점퍼가 느닷없이 특별하게 여겨져서였다. 젊은 아가씨의 원룸 열쇠가 들어있던 점퍼였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점퍼는 그대로 두고 열쇠만 쓰레기봉투 속에 던져 넣었다. 문득 개가 떠올랐다. 남의 집 열쇠라는 찜찜한 기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아직 더 채워 넣을 여분이 남은 쓰레기봉투를 그대로 꽁꽁 묶어 밖으로 가져 나왔다. 냄새가 풀풀 나는 대형 쓰레기통 옆에서 또 개가 떠올랐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대형 화물트럭 하나가 쓰레기통 옆에 주차되어 있는 게 보였다. 남편의 작은 용달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거대한 트럭이었다. 그녀는 다가가 운전석의 문을 당겨보았다. 당연히 문은 잠겨 있었다. 그러나 화물칸에는 걸쇠만 걸려 있었다. 아마 안에 든 것이 아무것도 없는 모양이었다. 무슨 작정도 없이 그녀는 그 화물칸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계단을 밟아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야말로 엄청나게 큰 화물칸은 텅 비어 있어서 그녀의 발자국 소리가 쿠웅, 쿠웅, 공명하는 소리를 냈다. 이런 화물트럭이라면 세상 전체의 비밀이라도 너끈히 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의 작은 용달이 덜덜거리는 리어카 수준이라면 이건 그야말로 벤츠가 아니겠는가. 그녀가 어둠 속에서 바닥에 놓여 있던 음료수 캔을 건드렸다. 빈 깡통이 데구르르 굴렀다. 그러니까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소리였다. 리어카든 벤츠든 빈 소리를 내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어둠 때문에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공구 상자가 맨 안쪽에 놓여 있는 것이 차츰 보였다. 그녀는 그 공구 상자에 엉덩이를 걸터앉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두운 거리를 내다보았다. 외진 곳에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바라보는 밤의 거리는 자동차 불빛으로만 빛났다. 모두들 집으로 돌아오는 불빛이었다. 생의 모든 고난들이, 사소한 말썽들이, 해소되지 못한 불만과 욕구들이 차근차근 집으로들 돌아오고 있었다. 그리하여 방과 거실과 욕실과 옷장과 신발장과 찬장 속에, 재활용 박스와 쓰레기봉투 속에 차곡차곡 쌓여지거나 쟁여지기 위해.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의 스위트홈으로.
바로 그때 그녀는, 27년 동안이나 깨닫지 못했던 비밀 하나를 깨달았다. 남편의 작은 용달 하나쯤은 거뜬히 싣고도 남을 것 같은, 누구의 것인지도 알 수 없는 대형화물차의 화물칸 안에 도둑처럼 앉아서, 그 화물칸에서 서서히 풍겨 나오는 참을 수 없게 퀴퀴한 악취를 맡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남편의 쓰레기 같던 점퍼를 다시 떠올렸고, 그 옷을 입고 짐을 나르는 대머리의 늙은 남자를 떠올렸고, 그 남자의 근육질로 가려진 늙은 몸이 사실은 아주 작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어쩐 일인지 순간, 가슴이 먹먹해져서 견딜 수가 없는 지경이었는데, 그때 그녀가 깨달은 사실은 자신이 남편을 경멸할 뿐만이 아니라 사랑하기도 한다는 사실이었다. 사랑이 별것이겠는가. 누군가를 하루도 빠짐없이 기다린다면, 그 기다림이 안타깝고 애절하지 않다고 해도, 27년의 그날들은 사랑이었다. 그 남자가 집에 없는 밤이 대형 화물칸의 텅 빈 어둠처럼 저물고 있었다. 쓸쓸하고 고독했다. 그것은 오십이 넘도록 독서가 취미인 여자가 아니라면 결코 발견하지 못할, 깨닫지 못할, 비밀 같은 사랑인 것이 틀림없었다.
찰칵, 열쇠가 돌아가면서 문이 열리는 소리. 그는 언제나 그 소리에 희열을 느꼈다. 마치 전기가 오는 것처럼, 몸속의 모든 핏줄과 힘줄에서 반짝하고 불이 켜지는 것처럼. 그것은 영천 집에 들를 때마다 느끼는 그만의 기쁨이었다.
왕왕, 개가 짖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어둠 속에서 흰색 꼬리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저놈은 확실히 진돗개가 틀림없다. 백구야. 그가 부르자 개가 달려와 그의 발등과 손등과 턱을 핥기 시작했다. 곧 온몸이 개의 침투성이가 됐다.
충직한 개다. 그가 없는 동안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으면서 그의 모든 것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놈을 이집에서 키우기 전까지 그는 소리를 내는 것을 키워본 적이 없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는 아무것도 키우지 않았다. 그런 것도 키운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가 키우는 것은 열쇠들이었다. 그가 영천 집에 열쇠를 하나씩 가져다 놓을 때마다 원룸들이 그곳에 자리를 잡고, 그가 열쇠를 갖지 않은 이웃의 원룸들까지 불러들여 스스로 번식했다. 그리하여 몇 년 사이 영천 집은 집이 아니라 무한 번식하는 세계가 되었다. 세계의 어느 구석에서는 어린 여자아이들이 소리 죽여 몸을 씻고 잠을 잤다. 소리 죽여 생글생글 웃기도 했다.
왜 자꾸 웃니.
아저씨가 자꾸 웃으니까 나도 웃겨서요.
하늘에 맹세코 그는 그 여자아이들을 데리고 불순한 상상을 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실은 하늘에 맹세할 필요도 없다. 그가 있는 곳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 그만의 세계였으므로. 그는 분주히 집을 옮겨 집을 짓고, 집을 빼내 다시 집을 넓혔다. 자꾸 웃어서 걸리적거리는 여자아이들은 차갑게 내쫓아버렸다. 교통사고로 죽은 개가 그 집에 자리를 잡고 그 집의 모든 빈집들을 지켰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가 키우는 것은 세계였고 공간이었다.
아주 간혹 신경에 거슬리는 문짝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자신의 세계를 키우기 위해 내쫒은 모든 것들이 다시 집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문을 긁어대는 것이다. 그는 열쇠 하나씩을 문 밖으로 던져 그들의 허기를 달래주거나 놀잇감을 제공해주었다. 어느 날인가는 아내가 열쇠를 던지는 그의 손등을 물고 놓지 않았다. 처음에는 손을 저어 쫓아버리려고 했지만, 손등에 박힌 이빨이 빠지지 않았다. 그는 아내의 머리통을 때리고 허리를 걷어차야만 했다. 비로소 피투성이가 된 아내가 구슬피 울며 떠나가는 것을 볼 때 그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기는 했다.
너무 심하게 팼군.
그러나 괜찮았다. 그는 곧 다시 돌아갈 것이고, 돌아가서는 묵묵히 아내의 모든 상처를 치료해줄 것이므로.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힘을 다 짜내서라도 그렇게 할 것이므로. 사랑한다고 말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다. 지나간 27년 그는 아내를 사랑했고, 영천 집이 생긴 지난 7년 동안에는 특히 더 그랬다.
비밀이 사랑을 키웠다. 그가 세상의 한구석에서 세상 전체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특히나 아내는 모르는 것이다. 그는 세상 한가운데에 있었고, 또 무덤 한가운데에 있었다. 죽은 자의 목소리가 가끔 들렸다. 그것은 평생을 혼자 살다가 가난하게 늙어 죽은 고모부의 목소리였다.
뭐, 이만하면 잘 죽은 거 아니냐.
그 와중에도 열쇠들은 분주히 서로의 몸을 부대껴가며 교미를 하고 번식을 하고 있었다. 세계가 세계를 무한 확장했다. 그가 영천 집에 머물 때마다 보름달이 환했다. 세상에서 가장 풍성한 고독을 가진 한 남자의 밤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구효서의 사족: <빈집>의 남편을 저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이라고 보렵니다. ‘아내는 남편과 27년을 살았다.’라는 문장도 스티븐 킹의 <굿 메리지>에서 온 것일뿐더러, 작중에 그 작품의 내용도 조금 언급하잖아요. 남편은 연쇄살인범이라고요. 물론 <빈집>에서는 남편을 연쇄살인범으로 확정하지는 않아요. 아무래도 그건 소설이 스릴러로 확 가버리는 걸 경계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하지만 연쇄살인범의 유무만으로 스릴러냐 아니냐를 나눌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작중 남편을 연쇄살인범으로 보겠다는 겁니다. 사실 저는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 그러니까 남편이 화자로 등장하는 짧은 장이 맘에 안 들었어요. 이건 김인숙의 문장도 아닐뿐더러 무엇보다 헷갈렸으니까요. 김인숙이 어쩌자고 이런 문장들을 용인했을까. 그것도 아주 중요한, 마지막 순간에. 자꾸 질문을 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다시 읽었고요, 결국 거칠고 공격적이면서도 유약한 망상으로 착종된 사이코패스의 성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 문장으로 이해했습니다. 여러 번의 반전이 놀랍습니다. 남편을 경멸하면서도 사랑한다는 아내의 비밀 같은 사랑고백이 그렇고, 고백의 대상이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이 그렇습니다. 남편의 정체를 전혀 모른 채 자신의 교양만을 과신하며 사랑 운운하는 아내를 보면서, 자신이 구축한 세계에 살며 그것만이 전부라 믿는 나와 우리를 함께 보게 하는군요. 영천의 빈 집으로 끝없이 도피하면서도 아내를 27년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한다는 남편의 마음은 또 뭘까요. 흔하고 쉬운 방식으로 말하자면 그런 사랑이란 다 가짜일 뿐이라고 해야겠으나, 이 소설에선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뜻이 없어 보입니다. 알고 보면 서글프고 불편할 수밖에 없는 진실 혹은 사랑. 그것을 굳이 가짜라 해서 내친다면 무엇이 남아 진짜라고 이름 할 수 있을까요. 빈 집. 건축물의 본질은 벽과 기둥과 외양 따위가 아닌, 그 안의 텅 빈 공간에 있겠지요. 그 안으로 우리를 은밀히 초대하는 작품이라면 남편이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이든 아니든 우리는 끔찍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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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산다는 것, 자신의 삶은 자신 혼자 살야내야 하는 것, 부부..가장 작은 공동체를 이루어 한 공간에 사는 사람. 서로를 가장 잘 안다면서도 정작 아는게 없는,
여기 이 남편,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남편인거 같아요. 묵묵히 열심히 살면서도 외로움을 감당하기 힘든.
그래서 일탈, 도피가 필요한..안쓰럽네요. 저는...그냥, 자신의 삶은 자신이 책임지고 살자. 남탓하지 말고.^^*
저도 학원을 빈집처럼 이용하는 거 같아요. 학원의 아이들..열쇠???....아흐..!
읽긴 했는데 내용을 모두 잊었네요.
「다음 번에도 꼭 아저씨를 부르겠다는 약속은 대개 지켜졌다.」까지 읽고 말았습니다.
이거 '수필인거야?' 싶을 만큼 지루해서 보다 말았죠.
맨아래로 내려와 구효서 선생님의 '사족' 이라 된 글을 읽으며 이런 반전이? 싶었지만,
내일 보자 포기하고 누웠는데 보다 만 다음 문장이 궁굼해서 못자고 다시 들어와 읽었습니다.
좀 아리송한 헷갈림, 그리고 찝찝함. 딱히 잡혀지는 맛을 모르겠는.
공연히 구실을 찾습니다. 가을비에 취해 인사동에 나갔다가 좋아하지도 않는 막걸리를 한 병이나 마신 때문이라고.
그래서 집중력이 몽롱해 명쾌한 느낌이 없는 거라고.
55세의 여자라. 내 인생도 '단편 하나는 되겠구나.'도 싶은.
크~! 이 솔직함!
단편으로 한편만 되겠어요?
착한 가장의 모습을 보다가 반전에 놀랐습니다. 사이코패스인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는 세상에 살기가 무서워집니다. 빈집으로의 끝없는 도피! 전 어디로 도피를 잘 하는지 생각 해 봐야겠습니다. 글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
끔찍하죠!
아내는 어둠 속 텅 빈 트럭 켄테이너에서, 남편은 죽은 자가 남긴 빈 집에서..... 결국 그들 자신이 텅 빈 집이라 여겨집니다.
나도..... 우리도?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 읽고나니 머리가 좀 무거워졌어요...
제게는 너무 사랑스러운 남편의 모습이 그려지는 구절이었죠. 사실 그 부분에서 엉엉 울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