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말하는 "실전에 강한 무술"이란, 어떤 무술일까요?
한때는 단일 무술만으로도 충분히 강함을 증명할 수 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만,
요즘같은 시대는 타격기와 유술을 병행한 소위, "종합무술"식의 수련을 하지 않으면 격투에서 절대적인 우위는 유지할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수련자의 무술베이스가 타격기가 되었던 유술기가 되었던 마찬가지입니다.
한때는 푸른 눈의 서양인들에게는 경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태권도의 가공할 발기술,
당시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마술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 가라테의 맨손 벽돌격파.
그리고, 체구가 작은 동양인이 거구의 서양 장사들을 유린하는 "물리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유도 기술. 이러한 동양의 비기들은, 오랜 세월에 걸친 홍보와 전파에 의하여 전세계인에게 매우 익숙한 격투의 고전이 된지 오래입니다.
브라질리언 쥬짓츠의 등장또한, 이러한 선대 무술들과 동일한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발달된 메스미디어 덕택에 선대들 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보급, 일반화되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브라질리언 쥬짓츠를 배우는 일반 수련생들이 그 단일 무술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싶다면 별로 달가운 일일수는 없겠지요.
호이스 그레이시의 UFC시합. A급 격투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기세등등하던 파이터들이 별로 강해보이지도 않는 호이스에 의해 차례차례로 탭아웃 당했으며, 경기를 관전하는 대부분의 관중들도 지금 도대체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호쾌한 격투기를 보러온 일반관중들에게 있어서는 이해불능을 넘어서서 짜증이 날만한 일이었지요. 그레이시가 이길때마다 관계자들이 아닌 일반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연발했지만, 거꾸로 말하면, 일반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던 바로 이때가 브라질리언 쥬짓츠의 황금기였습니다. 말 그대로 "비기(秘技)"였던 것이지요.
그럼 이러한 현상이 그레이시 쥬짓츠에서만 일어났을까요? 물론 아닙니다.
최영의씨가 가라테 기술로 미국에서 거구의 격투가들을 차례차례로 쓰러뜨릴때에도 마찬가지로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빗발쳤습니다. 그러고보면, 가라테/태권도/쿵후 등의 타격기의 신비적인 우위는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무술을 수련하면, 체구가 작고 힘이 약한 수련자들도 거구의 근육질 프로레슬러를 쓰러뜨릴 수 있다. 그러한 환타지는 발차기 격기를 수련하는 모든 일반 수련자들의 신앙에 가까운 믿음이었지요. 숙련된 발은 손보다 3배에서 5배 가까운 위력을 발휘한다. 고로, 자신은 멋진 발차기로 거구의 근육질 프로레슬러나 복서를 쓰러뜨릴 수 있다.
마찬가지의 믿음이 지금 그레이시 유술이나 그래플링 수련자들 사이에서도 만연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혀 근거없는 믿음이 아닙니다. (물론 파워풀한 발차기로 거구의 레슬러를 쓰러뜨리는 것도 근거없는 믿음은 아니지요) 예전같으면 무슨 기술을 걸어도 도저히 꼼짝할것 같지도 않던 완력을 가진 상대방에게서 탭을 받아내게 되었을때의 기쁨...
예전 같으면 필사적으로 서서 싸우려고 했겠지만, 이제는 오히려 자발적으로 그라운드로 끌고 들어가려하는 자신의 변화...
저도 사도관에서 유술적인 몸쓰는 법을 터득했을때는, 타격기보단 유술기를 자기의 주특기로 하고 싶을 정도로 강한 매력을 느꼈었지요.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처음으로 종합 격투기룰의 시합에 나간 이후로 느낀점은, 유술은 복싱의 펀치와 마찬가지로 이제는 누구나 구사하는 기술에 불과하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수단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지요. 유술을 전혀 터득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래플러와 맞붙으면 상당한 고전을 하겠지만, 유술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테이크 다운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껏 자신의 특기인 타격기술을 펼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메리트였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자신의 베이스가 유술인 사람들이 종합 격투기룰에서 마음껏 유술기술을 쓰고 싶다면, 당연히 유술을 맘놓고 쓸 수 있을 만큼 타격기를 수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종합격투기라는 시합... 상당히 일반 막싸움과 비슷합니다. 아마츄어 시합이 되면 될수록 더 그렇습니다.
처음에 시합을 한번 하고나면 싸움하고나서 온몸이 쑤시고 아픈것과 동일한 현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매일매일 스파링을 하고 그렇게 운동을 했어도, 역시 실전이란 아픈것입니다. 유술가들이건, 타격계 무술가들이건 한번 해보면 아, 실전이란 이런거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되지요. 특히 요즘 들어서는, 그라운드에서 유술만으로 화려한 공방전을 벌이는 일은 여간해선 일어나지 않습니다. 누구나 유술에 대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며, 포지션 싸움과 병행해서 타격기를 쓰기때문에, 룰에 따라서는 결국은 미친듯이 손으로 발로, 팔굽으로 상대방을 치게 되며, 본능적으로 타격의 센스가 좋은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상대의 얼굴을 완전히 짓이겨놓기도 합니다. 저도 근 2년간 수련의 반이상을 유술에 할애할 정도로 상당히 집중적으로 수련했지만, 암바를 걸려다가 여의치 않게되자 발뒷축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짓이겨버린 적도 있습니다. 실전이란 그런 것입니다. 유술 스파링이라면 물론 암바를 시도하다가 트라이앵글 쵸크, 치킨윙 등... 여러가지 술기를 계속해서 내겠지만, 실전에선 그런 시도보단 효과적인 타격이 훨씬 유효할때가 더 많습니다.
그레이시 유술, 매우 효과적인 무술임에는 틀림없으며 수련을 통해 약한자는 반드시 강하게 변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면은 그레이시 유술뿐만이 아니라, 풀컨택트를 하는 다른 무술또한 다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됩니다.
게다가, 그레이시 유술은 지금 세상에선 더 이상 비기(泌技)가 아닙니다. 종합격투에 마음을 두고 있는 수련자들이라면 유파를 막론하고 누구나 수련하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더 이상 유술 수련만으론 상대적인 우위를 점유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일반인들의 "막싸움"에서 일반 수련자의 유술 기술이 얼마만큼 효과를 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미친 말처럼 날뛰는 상대방에게 몇번이나 안면공격을 당해서 피투성이가 되거나 심지어는 이빨이 몇개 나간 상태에서도 엘리오나 호이스처럼 이를 악물고 침착하게 관절기를 걸 수 있는 일반 수련생들이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되고 싶어하며, 그것이 무술이란 상품이 수련생들에게 부여하는 "믿음"인 것 입니다.
저는 유술을 좋아하며, 유술을 즐겨 수련하지만, "같은 기간 수련했다면 유술이 강하다"라는 생각은 추호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만약 그런 말을 공공연히 하는 유술 수련가들이 계시다면 묻고 싶습니다. 극진을 비롯한 풀컨택트 공수의 정권 "몸빵"을 견뎌본 적이 있습니까? 양손을 머리위에 놓고 동체를 오픈시킨채로 맨주먹의 보디 스트레이트와 훅을 인정사정없이 맞습니다. 처음에는 죽을 맛이지만, 나중에는 동체에 들어오는 펀치 정도는 일일이 손으로 방어하지 않아도 몸으로 흘릴 수 있게 됩니다. 무에타이의 로우킥, 가라테의 로우킥을 견뎌본 적이 있습니까? 제대로 로우킥을 차는 사람한테 맞으면, "아프다"라는 단어로는 그 느낌을 도저히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싸우고 싶은 투지가 있어도 움직일 수가 없게 되어버리지요. 그리고 정신없이 들어오는 복서의 잽의 연타를 얼굴에 맞아 보셨습니까? 타격기를 경험하지 않은 일반 유술 수련자들이라면 절대로 방어할 수 없습니다. 일단 얼굴에 몇방 맞아 주고 나서, 파고 들어가서 이런 기술을 걸겠다라는 작전은, 정말 무수히 맞아본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습니다. 일반인을 비롯해서, 소위 무술 좀 했다하는 사람들도 실전 싸움에서 선방으로 얼굴 몇방 정통으로 맞고도 싸움을 끈기있게 속행하는 사람은 저는 그리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때리고 차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격투 수단이며, 타격기의 무술들은 이러한 인간 본연의 무기를 강력한 흉기로 변신시킵니다. 최영의씨가 실전 격투로 명성을 날릴때, 상대방은 전부 가라테가였습니까? 태반이 유도가나 레슬러였으며, 그들은 막강한 정권지르기와 발차기 앞에 차례로 실려나갔습니다. 상대가 유도가나 레슬러였는데도 말입니다. 그 유명한 마에다 미츠요도 웨스트포인트에서의 시연시에 무명의 사관생도의 레슬링에 고전을 면치 못했으며 (주장격이었던 토미타는 패배했지요), 전설의 엘리오 그레이시도 기무라 마사히코의 강도관 유도에 압도적인 패배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유도나 레슬링이 가지는 강력함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지만, 한때 그들이 타격기의 희생물이 될때가 있었다는 점을 잊으면 안됩니다. 오늘날 타격기가 더 이상 그래플러를 쓰러뜨릴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타격기가 약해서가 아니라, 이미 타격기의 수련은 상식중의 상식처럼 되어버린 시대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아무리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타격기를 수련하지 않는 일반 그래플링 수련생들은 옛날 타격기 앞에서 무력하게 무릎을 꿇던 거구 레슬러의 신세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수련을 통해서 강해지는 것은 유술 뿐만이 아닙니다.
타격기는 타격기 나름대로의 어렵고 고된 수련이 있으며, 그 과정을 통과한 사람은 누구나 강하게 변합니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짧은 기간동안의 유술 수련을 통해 강해졌다면, 다른 유파의 사람들도 유술을 배우면 그만큼 짧은 기간안에 강해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매우 성가신 사실이지만요..
그리고, 타격계통의 근육과 그래플링의 근육, 즉 몸만들기는 매우 다릅니다.
그래플링을 장시간 문제없이 지속할 수 있는 몸을 지닌 선수라도 킥복싱은 1라운드도 못버티고 마우스피스를 토합니다.
반대로, 킥복싱만 하던 선수들을 그래플링룰에 던져놓으면 금방 지쳐서 어쩔줄을 몰라하지요.
문제는 이 두가지를 다 해야 (말은 쉽지만...) 격투가의 몸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쪽 의 수련이 더 고통스러울 것 같습니까?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실겁니다.
저는 가끔씩 컨디션이 나쁘거나 피로한 날에 도장에 갔을때, 사범께서 "오늘은 그래플링 수련이다"라고 말하면 속으로 만세를 부릅니다. 킥복싱을 수련하는 날이면 몸이 쉴수가 없으며 고통스럽지만, 그래플링은 그야말로 "젠틀 아트"이기 때문에 몇 라운드 풀로 돌아도 마지막 근력수련까지 여유 있게 끝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어려운 수련은, 그만큼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들이 한다는 사실은 잊으면 안됩니다.
마지막으로, 요즘의 그레이시 유술은, 유혈낭자한 종합격투기보다는 올림픽종목의 정식등록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결국, "실전 최강" 전략에서 명성을 얻은 그레이시들은 더 이상 헝그리한 아웃사이더로 남기보다는, "안전성"을 어필해서 유도처럼 올림픽 정식 종목의 지위를 얻고자 하고 있는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누구나 수련하기 쉽고 안전한 격투기이기 때문에 그런 움직임에도 충분히 설득력은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욕심은... 그레이시 유술은 계속 비기로 남아줬더라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도 듭니다. 아니, 비기까지 안가더라도, 최소한 그렇게 전세계적으로 마케팅까지는 안해도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어쨌든, 그레이시 유술 덕택에 전세계의 무술판도는 엄청나게 변했습니다. "실전성"이란 단어. 어떻게보면 극진이 전세계를 향해 최초로 방아쇠를 당긴 테마이지만, 전세계에 존재하는 실전의 모든 비기가 공개된 작금... 어떻게 보면 참 재미없는 세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