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찰공 할아버지의 외아들 영기(英沂)와 장손 징원(徵遠)을 모시는 지운재 묘사는 음력 10.14인데 금년에는 코로나로 지운재실에서 묘사를 지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외부 사람들이 집단으로 왕래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상을 생각하는 의미에서 지운재 산소와 관련하여 몇 가지 정보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1)우선 지운재 재실과 산소의 위치는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평촌리 지화마을에 들어서면 마을 입구에서 왼쪽으로 가면 지운재 재실이 나오고, 재실 위 가까운 산에 산소가 있습니다.
(2)지화마을은 원북을 지나 태실 마을에서 고개를 넘으면 이반성면이고 옛 평촌역을 지나 이반성초등학교를 찾아야 합니다. 초등학교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조금 들어가면 지화마을이 나타납니다. 마을 입구 왼쪽 저수지 끝에서 왼편으로 100미터쯤 가면 몇 집과 함께 지운재실이 있습니다.
(3)넓은 산비탈에 위치한 산소에는 중앙에 감찰공(조민도)할아버지의 외아들인 18세 주부공(조영기)할아버지와 상주김씨 쌍분묘가 있고, 그 위에는 주부공의 장남인 19세 조징원 할아버지와 후배 파평윤씨의 합분묘가 있습니다. 그리고 주부공 묘소 아래 담 밑(제일 아래)에는 조징원 할아버지와 혼인하기로 하여 사주를 주고받은 후 병으로 돌아가신 청주한씨 처녀할머니의 산소가 있습니다.
(4)주부공 할아버지께서는 군자감 주부(군 자금관리)를 지냈고, 병자호란 때 의병장으로 공을 세웠다. 첫부인은 상주김씨이고, 둘째 부인은 김해김씨이시다. 슬하에 5남5녀가 있는데, 5남은 조징원, 조징구, 조징휴, 조징례, 조징신이고 5녀는 한시중, 하달도, 이방현, 하달영, 이흔이다.
(5)주부공의 장남 조징원의 첫 부인은 청주한씨, 둘째 부인은 파평윤씨, 셋째 부인은 진주류씨이시다. 자녀는 3남1녀로 대윤, 창윤, 형윤, 이대를 두시었다. 대윤의 후손은 홍래 용래 우제 등이고, 창윤의 후손은 용섭, 용호(대구) 용태와 부산, 무주 등에 있고, 형윤의 후손은 안의 오락정에 있다.
(6)주부공의 차남인 조징구 할아버지는 순흥안씨와 함께 세실에서 하림으로 이장하여 새터 뒷산에 집안 공동묘지에 안장되셨다. 슬하에 경윤 정윤 수윤 의윤의 4남인데, 경윤의 후손은 금제 도제 용직 용호(마산) 준제 찬제(태래) 희제 일제(마산) 태제(율래) 임제(성래) 영제(병래) 웅제(증래) 승제(경래) 백제(상준) 용문 용승 명래 춘래 장래 직래 광제 용삼 용출 병규 완규 선규(부산) 식규(서울) 등이고, 정윤의 후손은 정제(부산)와 백사정에 있으며, 수윤과 의윤은 후손이 없다.
(7)조징휴에게는 조전벽의 1남이 있는데 후손은 의령 무전에 있고, 조징례에게는 조방윤의 1남이 있는데 후손은 우계에 있으며, 조징신에게는 조계윤과 조보윤의 2남이 있는데 후손은 문현, 거창, 고령에 있다. (끝)
첫댓글 조우제 아제님, 지운재 묘사와 감찰공파 후손의 계보에 관한 좋은 정보를 올려주심에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이런 글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서 작성된 글임을 우리 모두 알아야겠습니다.
수고로움에도 마다 하지않고 알려주시니 고개숙여 인사 올립니다!
감찰공파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해주시고, 몰랐던 집안 내력들을 깨우쳐주심에 늘 감사드리며 형님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항상 댓글을 달아주는 조원래 님이 감사하고, 오래간만에 댓글 달아주는 조광제 선생님, 반갑습니다. 지운재 관련 내용은 수년전부터 지운재 묘사 지낼 때마다 여러 자료를 보고 조사한 것을 여러 종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던 자료들일 뿐입니다.
저는 40대 말부터 저 자신의 뿌리에 대해 관심을 갖고 조사했습니다. 그리하여 1990년에 <함안조씨 세계표와 조선의 내력>이라는 필사본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을 보신 서욱아저씨(조용수 : 율래 할아버지)께서 대단한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처음에 한자를 몰라 고생을 좀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