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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른을 소개합니다. - 봉은사 주지 명진스님
2009.9.4.금요일/파토
이제 바보도 가고 인동초도 졌다. 시절은 점점 암흑으로 치닫고, 민주주의의 영광은 기억 저편으로 서서히 사라지는 듯하다. 와중에 김대중 대통령 장례 후 이명박의 지지율은 다시 오르는 등, 이 모든 상황은 그저 현실로 받아들여지고 또 익숙해지고 있다. 실로 반역의 세월이요, 통곡의 세월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갈 곳을 잃은 우리들에게 지금 필요한 존재는 무엇일까? 많은 다양한 답이 가능할 것이고 그 모두 맞는 말이겠지만, 나는 주저 없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우리에겐 어른이 필요하다.
그렇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주먹이나 돈의 힘이 아닌, 진정한 양심에서 나오는 권위를 통해 우리를 꾸짖을 수 있는 어른이 택도 없이 부족하다.
바보와 인동초는 물론이고, 우리는 얼마 전 그런 어른 중의 한 사람으로 시대를 풍미했던 김수환 추기경도 잃었다. 비록 말년의 언행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없지는 않으나 한국 사회의 어른으로서 그가 고비마다 미친 영향과 발휘한 리더쉽, 이끌어낸 결과들의 긍정성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유신 시절부터 87년의 직선제를 이끌어 낸 반독재 투쟁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학생에서 시작해서 국민을 통해 완결되었다고들 생각하지만, 실은 수많은 종교계, 학계, 예술계 어른들의 힘찬 목소리가 그 뒤에 있었다. 필자의 세대라면 익숙할 문익환 목사와 백기완 선생 등은 물론 과거 함석헌 선생 같은 분 등 이름을 열거하자면 한이 없다. (지금은 망가진 김동길이나 김지하씨도 그때는 그런 입지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사람은 곱게 늙어야 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분들이 사라지고 있다. 물론 나이가 너무 들어서 돌아가신 경우도 많고 위 괄호 안의 모씨들처럼 스스로 바닥을 드러내며 어른이기를 포기한 경우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지금의 상황은 설명하기 어렵다. 아마도 과거에 비해 계산이 빨라지고 몸을 사리는 전반적인 사회 풍조의 만연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자신이 교만해져서 이미 존재하는 어른을 알아보지 못하고 섬기지 않는 태도에도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다.
각설하고, 사회의 양심적 구심점들이 다 붕괴되어 가는 이 시대, 그리하여 황색 언론의 대명사인 본지가 과분하게도 그런 입지에 놓이게 된 이 비참한 현실 속에서, 사회의 진정한 어른들을 길러 뫼시고 찾아 섬기는 일은 현재의 총체적 난국의 해소는 물론 본지가 그 분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여 이 가당찮은 짐을 벗고 다시금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는 날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터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시간에는 최근 거침없는 언행으로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한 인물을 소개해 드릴까 한다.
바로 봉은사 주지인 명진스님이다.
봉은사(奉恩寺)...
이곳이 어떤 곳이더냐?
강남 금싸라기 땅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사찰. 면적 2만 1천 90평. 공시지가 1천7백2십억 원. 그러나 인근 지역 땅값 평당 1억 원이니 개발 시 추정 땅값 대략 2조원. 신도 수 25만 명에 연 수입 120억...
한때 우리나라 부자 사찰의 대명사이자, 세속적인 불교, 심지어 부패한 불교의 상징같이도 일컬어지곤 했던 이곳. 그래서인지 과거 그 관할권(?)을 둘러싸고 각목부대와 승려들 간의 폭력이 난무하여 우리나라 불교의 난맥상을 만천하에 드러내기도 했던 바로 그 곳이 아닌가.
그러나 지금의 봉은사는 더 이상 그런 곳이 아니다. 아니 정 반대로, 세상이 다 거꾸로 돌아가는 와중에 어쩌면 봉은사만이 부처의 뜻을 전하는 순수하고 정대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로 오늘의 주인공 명진스님이 있다는 사실이다.
명진스님은 2006년 11월 21일 봉은사의 23대 주지로 취임했다. 그리고는 취임 후 한 달도 되지 않은 12월 5일부터, 불과 며칠 전에 끝낸 장장 천일간의 기도에 돌입한다. 지금까지 봉은사 주지 생활의 대부분을, 봉은사 문밖으로 한 발짝도 나올 수 없는 천일기도만으로 보낸 거다.
머 9년 면벽했다는 스님도 있는데 봉은사 같이 큰 절에서 문 밖에 안 나오는 게 대수며, 그런 와중에 천일기도가 머 그리 어려운 거냐. 시간 맞춰서 중얼중얼 예불이나 하고 참선하는 듯 졸고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 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용을 알고 보면 전혀 그런 게 아니다.
기도 기간 동안 명진스님은 새벽 4시 30분, 오전 10시, 오후 6시 30분 3회에 나눠 매일 총 1천 배의 절을 올렸다. 다시 말하자면 거의 3년에 걸친 기간 동안 3일에 3천배씩을 연속해서 한 거다. 3천배는커녕 3백배라도 시도해 본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알 수 있다. 한창 때의 청년도 감당하기 벅차고 한번 하고 나면 자리에 눕기 일수다. 하물며 60 연세에 매일 이런 정진을 한다는 것은 범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와중에 주지로서의 각종 업무와 결정들은 물론, 무엇보다도 봉은사의 이미지와 성격을 탈바꿈시키는 개혁의 손길을 놓지 않았다. 그 결과 그 동안 신도의 수도 30% 증가했고 매주 일요일 하는 일요법회도 기존의 50여명에서 30배인 1,500명으로 급증했다. 주요 회의에 재가 불자들을 참여시키는 파격을 단행하고, 사찰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연 80억의 재정 규모가 오히려 120억으로 늘어났다.
이 모든 것이 우리나라 보수의 중심지라고 할 강남에서, 한때 순잡음(복음) 교회와 함께 종교계의 부자 & 보수의 대명사로 군림했던 봉은사가 단 3년 동안 신도들과의 신뢰를 회복하고 그들을 깨우치는 과정에서 얻어낸 성과다.
그래서 지금의 봉은사는 불전함마저 신도들이 직접 관리하고 있다. 원래 주지가 자기 주머니처럼 사용하던 것이 불전함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명진의 행보가 얼마나 파격적이고도 놀라운 것인지 알 수 있다.
사실 애초 명진스님이 봉은사의 주지가 된 것만도 놀라운 일이다. 그는 원래 전국의 산하와 거리를 누비던 佛敎界의 野人이자 實踐運動家이기 때문이다.
대입 준비를 하던 18세 때 우연히 만난 화두를 붙잡고, 1969년 백련암으로 성철 스님을 찾아가 법명을 받았지만 성철이 일본어 공부를 하라고 하자 도망갔던 일화, 그리고 5년이 지나서 법주사를 찾아가, 굳이 그를 탐탁히 여기지 않는 탄성 스님을 골라 상좌가 되겠다고 우겨 출가하고, 불교계 내에서도 스승과 제자의 인맥이 중요하던 시대에 철원의 초가집에 은거하던 여백우 처사를 찾아 배움을 받던 일 등 그의 행보는 그야말로 만화나 영화에 나오는 求道의 괴짜 스님 그 자체다.
1985년 전두환 정권의 서슬이 퍼럴 때 10.27 법난 규탄대회로 감옥에 가기도 했고, 1994년 조계종 宗團改革 때는 수많은 스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승복을 벗어 불전에 올린 뒤 宗團改革이 성공하지 못하면 이대로 옷을 벗겠다고 해 많은 스님들을 울리고 宗團改革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돈과 지위 따위에 초연하고, 거대 사찰인 봉은사 주지가 되어서도 대전 마당을 직접 빗질할 정도의 소박함을 간직한 이가 바로 명진스님이다.
이만큼만 해도 그 쿨함에 인간적인 매력이 동할 수밖에 없을 터... 그러나 관세음 딴지 섹션을 아직 갖추지 못한 본지의 입장에서 이런 불교계 내에서 행보만으로 그를 이 시대의 어른으로 추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의 진가는 오히려 불교계 바깥의 행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사실 그가 세인들의 관심을 본격적으로 끌기 시작한 것은 故 盧武鉉 大統領의 葬禮 狀況에서였다. 千日祈禱 期間 中임에도 결국 山門을 나와 고인의 영결식에 참여, 불교계 의식을 치른 것. 이것은 사실상 기도의 맹약을 깨는 것으로, 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라는 교계 안팎의 비난이 나올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래서 권양숙 여사의 청을 듣고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재차 부탁을 받고는 잠을 이루기 힘든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가령 부처님이 1만일 기도를 하다가 9,999일째 이런 상황을 맞았다고 하자. 어찌 하셨을까. 나는 부처님께서 산문 밖으로 나가셨으리라고 본다.
우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大乘的 깨달음의 간지 아니냐. 기도라는 형식도 중요하지만, 용맹정진도 소중하지만 그 모두가 결국 중생을 위한 행위일 뿐이며 이를 위해서는 언제든 깨 버릴 수도 있다는 뜻. 그 뜻이 오롯이 서 있지 않다면 어찌 이런 말이 나올 수 있으며 또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단 말인가.
거기에 영결식장에서의 祝願文조차도 인간과 세상에 대한 자신의 뜻을 뚜렷이 밝히는 名文章으로, 과거 보수불교시대의 어정쩡한 회피형 선문답과는 크게 대조를 이루었다. 아래는 그 全文이다. 길지 않은 글이라 그대로 개재한다.
제16대 大統領 광주후인 盧武鉉 靈駕시여!
盧武鉉 靈駕시여! 盧武鉉 靈駕시여!
이제 당신의 육신은 지수화풍 사대(四大)로 흩어져 돌아갑니다.
흙으로, 물로, 불기운으로, 바람으로 흩어집니다.
그러나 그 육신을 움직이던 주인공, 영혼은
어느 곳에, 무엇으로 계십니까?
일락서산 월출동(日落西山 月出東)입니다.
해가 서산에 지니 달은 동녘에 뜹니다.
지는 해와 같이 육신은 우리 곁을 떠나지만
당신의 고결한 정신은 떠오르는 달처럼 환하게
빛날 것입니다.
노무현 靈駕시여!
당신은 우리에게 미안해 하지 마라 하셨습니다.
미안해하지 않겠습니다.
원망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불가(佛家)의 소신공양(燒身供養)처럼
온 몸을 던져 당신이 지키고자 했던 그 뜻만은 잊지 않겠습니다.
그 어떤 불의에도 타협하지 않고 나아갔던 당당함,
자신의 이익을 버리고 지역주의를 허물기 위해
몸을 던졌던 대원력 보살행,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도 사람답게 사는 평등세상의 꿈,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뚜벅뚜벅 걸어 나가던 발걸음...
그 어느 것 하나도 잊지 않겠습니다.
검은 구름 흩어지면 밝은 달 비추듯이
당신의 참뜻은 천강에 달이 비추듯
우리 가슴에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떠나시는 길,
이천만 불자의 정성을 모아서 반야심경 한 편을
올리겠습니다.
본지 외에 어떤 사람이 서슬 퍼런 이 시대에 감히 이런 말을 권력과 국민 앞에 내뱉을 수 있더냐. 꽃나비 춤추는 극락에서 행복하소서 운운하는 가소로운 웅얼거림을 예상했던 이들에게 명진의 이런 일갈은 한줄기 단비와도 같은 신선함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터.
그의 이런 행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억하는 분들도 있었겠지만 봉은사 앞에는 이후 아래와 같은 현수막이 걸렸다.
그렇다. 위의 축원문과 마찬가지로 그는 단지 고인의 죽음을 수많은 망자 중 하나를 대하는 승려로서 애석해만 한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중수부 검사들의 봉은사 출입을 거절함으로써 그는 전직 대통령을 자살로 내몬 정권의 시녀에 대해 일종의 파문이라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점잖은 사찰에서 내건 이 플래카드의 그 문장 끝에는 (잘 보면) 느낌표까지 찍혀 있다. 이는 불순한 세상에 내뱉는 명진스님의 뜨거운 사자후인 것이다.
아마 이때까지만 해도 음, 이 스님이 상당히 정치적이군 하고 넘어갔던 분들이 있을 거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의 불교 홀대 정책으로 불교계가 열이 많이 받았구나 했던 분들도 꽤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의 계속되는 행보는 절대 그게 다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주지라지만 보수 신도들이 많은 봉은사에서 그의 이런 모습에 대한 불만이 없을 수 없다. 기도 중인 스님이 왜 정치적인 일에 관여하느냐는 문제 제기에 대해 그는 아래와 같이 대답했다.
정부의 불교 차별에 대해 20만명의 불자가 서울광장에 모여 항의 집회를 했다. 자기들이 당한 불이익에 대해선 그렇게 분노의 목소리를 내면서 사회의 약자들이 당한 일에 대해선 정치적인 일이라며 입을 다물어야 하는가?
또 왜 진보 편만 드느냐는 지적에 대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켜야 할 전통의 가치를 지키는 보수도 가치가 있다. 문제는 보수냐, 진보냐가 아니라 ‘정직하냐? 정직하지 않느냐?’에 있다.
또 며칠 전 기도가 끝나기 직전, 사실상 감옥살이나 다름없는 천일기도 중의 심정을 토로하는 인터뷰를 통해서는 다음과 같은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광우병 촛불 집회에 대해) 촛불과 재협상을 통해 건강 주권을 찾자는 외침이었다. (중략) 광화문 나가고 싶었다.
기도 중에도 (용산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조의금을 조금씩 보냈다. 과일 떡도 자주 보내서 위로했다.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덜고 싶어 용산참사 현장에 가야겠다.
용선참사 수사기록 1만여 쪽 가운데 3천 쪽을 감추는 것은 앞으로 이 정권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올바른 검찰상이 요구된다. 천성관 내정자를 봐라(중략). 1분 뒤에 드러날 거짓말을 하고 있다(중략).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적용한 혐의를 천성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
MB는 피 묻은 손으로 화해의 손을 내밀면 안 된다. 허언필망(虛言必亡 : 거짓된 말을 하는 자는 반드시 망한다) 이다.
씨파... 이것이야말로 사회의 큰 어른에게서 우리가 듣고 싶었던 바로 그 말씀이 아닌가.
그리고 당연한 소리지만 스님의 이런 마음은 언론을 통한 말로만 표현된 것이 아니다. 천일기도가 끝나자마자 그는 실제로 지난 30일 용산 참사 현장을 찾았다.
이어 순천향병원의 빈소와 한강로의 희생자 분향소를 찾은 그는 대 봉은사 23대 주지로서의 체면도 잊은 채 슬픔의 뚝뚝 눈물을 줄줄 흘렸다. 천일기도의 결과 어떤 희로애락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얻었을 법도 한데, 아니었다.
하지만 과연 불교가 그런 것이었던가. 남이야 어떻게 되든 자기 맘만 편하면 그만인 의미에서의 부동심을 얻는 게 부처가 되는 거라면, 차라리 영겁의 세월 후 개과천선의 여지라도 남아 있을 나찰이 되는 게 낫다.
또 이 자리에서 그는 "천일기도 끝에 부처님의 자비와 사랑을 설파해야 하는데 용산에 와보니 도저히 그게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내가 죄가 많은 것 같다" 고 분개하면서 이명박 정권은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정권,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 이라며 오만한 정권에 준엄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심지어 천일기도 기간 동안 시주금 등을 모아 스스로 만든 물경 1억 원을 유가족에 위로금으로 전달하고 불자의 몸으로 고 이상림씨의 부인을 한동안 말없이 안아주기까지 했다고 하니, 그의 이런 용기 있고 진정 어린 행보 앞에서 사특한 무리들의 잡소리나 시시한 형식과 체면 따위는 이미 아무 장애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잠시 세상에 나온 스님은 9월 3일 강원도의 선방으로 가서 다시 두 달간 참선할 계획이란다.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으로 빠진 천일기도 중 하루를 보충하는 결제를 하기 위해서다. 단 하루를, 빠질만한 충분한 명분이 있었던 것을, 그것도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가 있는 중차대한 시기에, 산간 오지에서의 60일의 참선으로 갚겠다는 대찰 주지 명진의 이런 모습은 그가 어떤 맘가짐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60일은커녕 60년, 600년간 치러야 할 엄청난 죄과를 단 하루로 무마하려고 하는 자들이 넘쳐나고 있는 이 세상에서 말이다.
그의 이런 모든 깨달음과 용기는 부처 본인이 그러했듯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의 어머니는 여섯 살 때 자살했고 3개월 후 재혼한 아버지도 20대 때 세상을 떠났다. 유일한 혈육 동생도 군대에서 사고로 사망했다.
"진짜 슬퍼봤소? (중략) 밥을 먹다가도 울고, 잠을 자다가도 울컥 울음이 쏟아져 이불을 적시는 것이오."
그 슬픔과 고통을 견디다 못해, 피하기보다는 이겨내기 위한 방편으로 승려의 길을 택했을 명진. 그러나 그는 이미 30년 전 화계사에서 춘성 선사가 열반했을 때 춘성의 애창곡 나그네 설움을 선창한 후 상가를 노래자랑과 춤판으로 만들 정도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이후 한 보살(여신도)이 그의 호방하고도 깊은 모습에 반해 사랑을 고백하며 매달리자, 죽은 동생 묘지에 데려가 동생을 살려내면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고 조용히 말한다. 이로써 남녀의 사랑보다 훨씬 깊은 삶과 죽음의 화두를 얻은 여신도가 눈물을 흘리며 돌아간 일은 전설적인 일화로 남아 있다.
그가 진짜인 것은 아래와 같은 그의 말에도 담겨 있다.
"부대사(497-569)는 밤마다 부처를 안고 자고 아침마다 함께 일어난다고 했는데 나는 밤마다 망상으로 잠이 들고, 아침마다 망상과 함께 일어난다오."
소위 깨달은 척, 진리를 아는 척 떠들어대는 일부 승려나 목사 등과 비교했을 때 이 얼마나 솔직하고 털털한 말씀이냐. 이런 양반이 봉은사의 주지가 된 것은 어쩌면 노무현이 우리나라 대통령이 된 것 같은 열라 파격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 만큼 과거의 행적만큼이나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됨은 말할 것도 없다.
짧은 이 지면에 스님의 일대기나 행적을 몽땅 다 쓸 수는 없는 일이니 이 정도 하자. 대신 명진스님의 주옥 같은 말씀을 아래에 일부 소개했으니 열분들 스스로 그 통쾌무비함은 물론, 때로 본지에 버금가는 엽기적 언변을 즐기시길 바란다.
● (중수부 검사 출입금지 현수막에 대해) 남의 통화까지 엿듣고, 메일까지 공개해 남의 생각까지 통제하려 드는 그들에게 잘못 보여 좋을 것이 없겠지만, 권력의 주구가 되어 함부로 칼을 휘두르는 그들도 남에게 당하는 아픔을 조금이나마 느껴보라고 그랬습니다.
● 힘없는 사람들은 모조리 고소고발해서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힘 있는 사람들은 법망을 다 피해가게 하는 것. 그게 정상적인 법치인가요? 저는 천성관 검찰총장 같은 사람, 뇌물죄로 구속 수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해야 존경받고 무섭고 그런 거지, 힘 있는 사람들 다 빠져나가는 법이 무슨 법입니까. 깡패세계와 같은 것 아니에요?
● 단풍놀이, 물놀이 가자는 말이 있습니다. 기차놀이 한다고 해서 애들이 허리띠에 새끼줄을 매서 칙칙폭폭 다니는 놀이가 있습니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문동 재래시장에 가서 뻥튀기도 하나 들고 어묵 들고 다니는 것이 서민놀이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민놀이.
● 시아버지는 시위하는 망루에 올라가 있다가 불에 타죽고 자기 남편은 과격시위로 감옥에 들어가 있는 여인도 있습니다. 이것 어떻게 할 겁니까. 이런 문제는 국가가 해결 안 합니까? 서민정치를 한다면 용산 현장에 가서 그 사람들을 달래고 그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 사람들의 문제를 풀어야 되는 게 대통령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 부끄럼 모르는 배부른 돼지들이 활개 칩니다.
● 그 동안 불교가 권력 앞에 비루했습니다. 잘못된 것은 지적해서 고쳐야 합니다. 봉은사가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가사 벗고 산문 떠나는 심정으로 해야 합니다.
● 한국불교 문제점 굉장히 많습니다. 한국불교는 禪宗으로 봅니다. 그런데 과연 禪宗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지금은 祭祀宗, 祈禱宗, 觀光宗, 入場料宗입니다.
● (천일기도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에 대해) 천일기도는 쇼입니다. 쇼를 하려면 이렇게 하라는 겁니다. 좋은 모습 보이면 따라올 것입니다. 불교미래 밝히는 모델이 될 것입니다
물론 나는 명진스님과 일면식은 물론 어떠한 간접적인 관계조차 없으며, 심지어 불교도도 아니다. 그저 아직 이 땅에 우리가 뫼시고 사표로 삼아야 할 어른, 행동하는 양심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여러분께 실감나게 알려 드리고 희망을 드리고 싶다.
비록 바보와 인동초는 떠났어도, 멋진 인물들이 다 죽은 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래서 이런 그들의 삶을 알고 배워, 부족한 우리도 나중엔 이렇게 멋진 사람이 함 되어 보자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아래는 덤이다. 천일기도를 마친 명진스님에 대한 조선일보의 기사인데, 이 글에서 소개한 스님의 주요 행적이나 정권에 대한 죽비 같은 꾸짖음의 말씀 등 핵심은 몽땅 빠뜨린 채 신변잡기성 중얼거림과 봉은사 신도 및 예산 확장 관련 잡담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냥 오랜만에, 얘들 이런 애들이라는 거 다시 한 번 상기시켜 드리고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8/27/2009082702089.html
“병역은 기피할 수 있으나 진실은 기피할 수 없다.”
[133호] 2010년 04월 05일 (월) 10:31:58정희상 기자
3월25일 저녁 <시사IN>과 인터뷰에 응한 봉은사 명진 주지스님은 “불교가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요”라며 한숨을 내쉬면서 말문을 열었다.
안상수 원내대표와 자승 총무원장의 만남이 왜 부적절했다고 보시는지요?
우리나라 문화재 가운데 불교 관련 문화재가 60%나 됩니다. 사찰마다 문화재를 보호, 수리하는 데 정부 예산을 얻어 써야 해요. 예산은 사실상 권력자 손에 달려 있어서 종단이 어느 정도 정부 입맛에 맞출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있어요. 그래서 그날(지난해 11월13일) 안상수 원내대표와 자승 총무원장이 만나 식사하면서 템플스테이예산 같은 것을 지원 요청했다는데, 관행적인 일로 이해할 수 있고, 그걸 야합이라 보지는 않아요. 문제는 그 자리에서 집권당 원내대표가 주지 인사 문제를 언급했다는 게 불교계를 깔보는 것이고 굉장히 불쾌해할 일이지요. 더욱이 안 원내대표가 ‘좌파 주지’를 내보내라고 했다는데 그는 병역기피자로서 좌파 우파 따지고 공격할 기본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안상수 원내대표가 그런 말할 자격조차 없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내가 베트남전에 참전할 당시 안상수 대표는 속칭 ‘군 도바리’(병역을 피해 다니던 일) 치던 사람입니다. 국민의 4대 의무 중 탈세와 병역기피를 한 사람은 국가 지도자 되면 안 돼요. 옛날 한국전쟁 때도 전선의 병사들이 오죽했으면 ‘빽! 빽!’하고 죽어갔다(빽 없는 사람만 총알받이로 나간다는 뜻)는 웃지못할 말이 나돌았겠어요. 그만큼 우익을 자처하는 지도층 가운데 자격이 없는 사람이 많은 현실을 개탄해서 나온 말 아닙니까. 그런 사람이 국가 지도자로 들어앉아 있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식으로 말하면 ‘국격’의 문제예요.
현 정부 지도층 전반에 그런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고 보나요?
이명박 대통령도 그래요. 경제만 잘되면 국격이 높아질 것처럼 말하지만 지구상에는 가난해도 도덕적·정신적 가치를 높이 여기며 행복하게 사는 그런 국민과 국가도 있는 법이고, 대부분 일정 정도 부가 축적되면 정신적·도덕적 가치를 추구하는 그런 국가로 나아가면서 지구촌에 서로 공존하는 것 아닙니까. 정신적·도덕적 가치를 추구하는 종교 수행자의 활동을 ‘좌파’라고 몰아붙이면 그것은 부처님 전에 벌 받을 말이지요. 이 정부 들어 물질 가치만을 최고로 치니까 도덕적 가치는 없어지고 있어요. 대통령부터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그러면서 어떻게 국격을 높이자는 것인지 이해가 안 돼요. 약속 같은 건 언제든지 뒤집어버려도 종국에 배만 부르면 된다는 건 돼지나 하는 짓이지 철학적 성찰을 하는 인간이 할 짓은 아니잖아요.
안상수 대표는 끝내 명진스님을 모른다고 주장하는데요?
안상수씨가 머리가 어떻게 된 것 아닌지 의심스러워요. 차라리 처음부터 ‘봉은사 주지가 대통령을 자꾸 비판해서 듣기 거북하니 원장스님이 좀 말려주십시오’라고 했다면 어느 정도 이해는 했을 겁니다. 이번 일은 어떻게 보면 안상수 대표의 거짓말로 비롯되어서 사태가 눈덩이처럼 커졌다고 볼 수 있어요. 연주암에서 내가 11년 간 선원장 하면서 10여 차례나 만난 사람이 안상수씨예요. 그런 나를 한 번도 못 본 사람이라고 공개적으로 계속 시치미를 뗀다? 그런 사람이 집권당 원내대표라는 것은 나라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자기 입장 곤란하다고 아는 사람도 모른다고 거짓말해버리는 이런 정치인은 기본적 도의도 없는 것이지요. 이렇게 나라를 운영하는 지도층이 별거 아닌 것부터 거짓말하는 것에 익숙하니 거짓말이 상습이 된 거예요.
총무원과 안상수 대표 모두 외압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원장스님이 불교 예산 지원을 요청하는 자리에서 좌파 주지 내보내라고 한 것이 압력이 아니고 뭔가요. ‘봉은사 주지는 반드시 짤라라’ 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해야만 압력인가요. 안상수씨가 이제 와서 농담 비슷하게 한 말이라고 발을 뺀다는 소리도 들리던데 그럴수록 우리 종단 체면을 우습게 만드는 짓입니다. (나를 열 번이나 만나고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머리도 나쁜 사람이 계속 거짓말을 하려다보니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된 꼴이지요. 천년 고찰 봉은사에서 천일기도한 사람을 두고 안상수가 좌파 주지 운운하며 나가라는데 부처님 전에 벌 받은 거라 생각하고 직을 내놓아야 합니다. 직을 놓고 쉬는 것도 그가 지은 업을 닦는 길이지요.
안상수 대표의 외압 발언을 확인한 김영국 거사의 기자회견은 사전에 조율한 것인가요?
봉은사 직영사찰 결정 직후 내가 외압을 공개 거론하니까 주변에서 법률자문을 하는 사람들이 ‘현장 목격자인 김영국 거사를 불러 다시 녹취라도 뜹시다’라고 권했어요. 나는 “그것은 수행자로서 할 도리가 아니다. 세상이 아무리 험해도 수행자는 불자를 믿어야 한다. 만일 김영국 거사가 곤란해서 아니라고 발을 빼더라도 그것은 다 내 업으로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라고 했어요. 김영국 거사가 고마운 것은 한나라당 당원으로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나에게 귀띔해준 사안이었는데도 진실을 밝혀야 할 때가 오자 용기를 내줬기 때문입니다. 안상수 대표가 자승 원장스님 앞에서 ‘좌파 주지 교체’ 운운하며 압력을 넣는 것을 지켜보면서 김 거사는 불자로서 충격을 받았지만 한나라당 당원이기에 고민하다가 ‘자승 원장스님이 곤란한 내용이니까 그냥 알고만 계십시오’ 하고 내게 말해준 내용이거든요.
어제 수경 스님과 도법 스님이 봉은사를 찾았는데 무슨 말이 오갔나요?
두 분 스님은 봉은사 사안이 커지다보니 수습 좀 해보자는 차원으로, 봉은사와 총무원 양측 의견을 좁혀보자고 온 겁니다. 나는 그분들께 ‘이 상황에서 무조건 좁힌다고 될 일이 아니니 이 사태를 초래한 원인을 밝힌 뒤 정도로 원위치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다. 그런 다음 나랑 자승 원장스님이랑 봉은사 법당 부처님 전에 함께 가서 참회하면 다 해결된다’고 말씀드렸어요. 총무원장 스님이 앞으로 봉은사 사부대중과 협의·화합하면서 일을 처리해나가겠다고 하면 되는 일입니다.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단이 봉은사 직영 지정에 외압은 없었다며 명진스님을 종법 위반이라고 표현했는데요?
안상수 대표가 자승 원장 앞에서 불교를 능욕한 말을 한 데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종회 표결 과정에 외압이 없었다는 주장만 하는 것을 보고 한마디로 어이가 없습니다. 내부 분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비칠까봐 여기서 더는 말하지 않겠지만 종회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일이지요.”
불교 단체들이 연합해 봉은사 직영 지정 파문을 공론의 장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수용하십니까.?
내 생각도 그래요. 총무원, 중앙종회, 중앙신도회, 재가불자연대, 봉은사 신도회 등이 한자리에 모여서 직영을 왜 해야 하고, 무슨 이점이 있는지, 직영화하지 않고 이대로 놔두면 뭐가 잘못되는 것인지에 대해 공론화해보자는 겁니다. 총무원 기획실장 원담 스님이 ‘봉은사가 모범 사찰이기 때문에 직영화했다’고 말했다는데 그렇다면 다른 절은 불량 사찰인지, 또 도선사와 봉은사를 같이 직영사찰로 하려고 했다가 도선사를 뺀 것도 거기는 불량 사찰이어서 그런 것인지 등 모든 궁금증을 납득할 수 있게 풀어내야 할 것입니다.
40여 분의 인터뷰가 끝나고 저녁노을 진 봉은사 앞마당으로 나선 취재진을 배웅하던 명진스님이 마지막으로 이 말은 꼭 강조해달라고 했다. “병역은 기피할 수 있으나 부처님 법에 의지한 진실은 기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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