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여행(7)-영국의 팝과 음식문화
영국에 가 보면 길거리에서 자주 눈에 띠는 건물이 있다. 고풍스런 건물양식에 가로등처럼 생긴 멋진 문패의 술집, 바로 ‘팝(Pub)’이다.
팝은 ‘퍼블릭 하우스(Public House)’의 준말이라고 하는데 대략 150년 전인 빅토리아여왕시절부터 대중화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건물이나 내부장식도 대부분 빅토리아시대의 건축양식을 재연하고 있다. 굳이 우리나라 식으로 따지자면 카페와 선술집을 합쳐놓은 듯한 장소인데 건물형태나 분위기는 우리나라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급이다.
팝은 영국인들에게는 삶이 배어있는 곳이다. 동네의 사랑방 역할도 하고 휴식처 역할도 한다. 맥주나 음료수가 중심이지만 스테이크나 피쉬 앤 칩스(Fish & Chips) 등 간단한 식사도 판다. 직장 근처에서는 점심식사 후나 퇴근 후, 동네에서는 저녁식사 후 심심하면 들러 이웃 또는 친지들과 부담없이 대화를 나누는 장소이다.
필자가 영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도 팝은 고객이나 지인들과 가장 만나기 편한 곳일 뿐 아니라 별 부담없이 교제를 두텁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였다.
재영 한국인들 간에도 서로 얘기할 게 있으면 어김없이 팝에서 만난다. 우리 선수들이 국제경기에서 좋은 성적이라도 올리면 기뻐서 자연스럽게 동네 팝으로 모이고, 한국에서 무슨 좋지않은 소식이 와도 팝에서 만나 울분을 토로하거나 마음을 풀곤 한다. 한국의 선거 때가 되면 재영 한인들 간에도 여당과 야당으로 나뉘어 고국의 정치적 잇슈에 관하여 팝에서 열띤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일반 생맥주를 영국에서는 라거(Lager), 흑맥주를 스타우트(Stout)라고 하며, 흑맥주 중 대표적인 것은 아일랜드산 맥주인 기네스(Guinness)이다. 팝에서는 맥주를 주문할 때 ‘파인트(Pint)’라는 단위를 쓴다. 1파인트는 568cc이다. 285cc 정도의 작은 사이즈 한 잔 만 마시고 싶으면 하프 파인트(Half Pint)를 주문하면 된다. 팝에서 주문할 때는 웨이터를 기다리지 않고 직접 바에 가서 주문한다.
영국에는 의외로 음식문화가 발달되어 있지않은 편이다. 영국의 가장 대표적인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마땅한 대답이 나오지않는다. ‘피쉬 앤 칩스(Fish & Chips)’를 영국전통음식으로 꼽기도 하는 데 요즘은 맥도날드나 켄터키치킨 등에서도 쉽게 사먹을 수 있는 간식 수준의 음식. 즉, 감자튀김에 생선튀김을 합친 것이어서 너무 간단하고 보잘 것 없다. 옛 선조들이 못살 때 끼니를 때우던 음식인지는 몰라도 영국을 대표할 만한 음식이라고는 할 수 없다.
길거리 음식점도 중국 음식, 인도 음식, 프랑스 음식, 이태리 음식 등은 종류도 많고 푸짐하지만 정통 영국음식은 종류도 다양하지않고 전문식당도 찾기 쉽지않다. 길을 가다 보면 팝이나 대중적인 길거리 레스토랑에 ‘영국 전통조식(Traditional English Breakfast)'이나 ’피쉬 앤 칩스(Fish & Chips)'라고 써 있는 식당을 만나기는 한다. ‘영국 전통조식’은 베이컨, 계란프라이, 소시지, 익힌 토마토, 익힌 버섯, 삶은 콩, 토스트 정도이다. ‘전통적인 아침정식(Full English Breakfast)'이라고 하면 위 식단의 개수를 늘리는 정도, 예를 들면 베이컨 한 개를 두 개로 늘리는 등 각각의 개수를 2-3개로 늘리는 정도이다. 레스토랑에 따라서는 간혹 감자튀김 등이 추가되기도 한다. 영국여행을 하다 보면 B & B라고 하는 간판을 볼 수 있다. 일종의 민박집이라고 보면 되는데 잠자리와 아침식사가 제공된다. 이름 그대로 Bed & Breakfast이다. 아침식사가 보통 위 방식대로 나온다.
‘피쉬 앤 칩스’는 생선튀김(대구나 가자미 등을 이용)과 감자튀김을 한 세트로 한 아주 간단한 음식이지만 영국사람들에게는 오랜 전통으로 자리잡고 있는 음식인 것 만은 사실인 것 같다.
영국에 살면서 음식문화를 연구, 외식산업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정갑식 씨는 영국 한인사회 주간지 ‘코리안위클리’에 연재해온 글에서 “‘피쉬 앤 칩스’가 영국의 대중음식으로 자리잡게 된 계기는 빅토리아 여왕시대 빠르게 진행된 영국의 산업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노동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공업 지역이나 바쁘게 살아야 하는 대도시가 딱 제격인 음식이다. 산업혁명과 더불어 영국 중부 그리고 북부 지역에서 많은 산업공단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런던을 비롯한 대도시들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면서 ‘피쉬 앤 칩스’의 수요가 갑자기 증가하기 시작했다. 가족 모두가 공장에서 일하는 가정에서 요리할 시간이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며, 빨리 한 끼를 해결하고 일터로 나가는 것이 상책이다. 이러한 지역의 ‘피쉬 앤 칩스’ 가게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루의 고단한 일과를 달래면서 음식을 양념삼아 잡담을 나누기에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이러한 전통과 모습은 아직도 지방에 가면 남아 있다. 증기기관차 그리고 스모그와 더불어 ‘피시 앤 칩스’는 힘차게 뻗어 나갔던 빅토리안 시대의 상징적인 모습들 중 하나이다. 그때 당시 만 하더라도 take away로 팔았던 ‘피쉬 앤 칩스’는 신문지에 담아서 먹었지만 1980년대 이후 위생상의 이유로 지금의 하얀색 봉지로 대체됐다. ‘피시 앤 칩스’는 1,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군들의 군량식품으로도 크게 한 몫을 했다고 한다. 그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윈스턴 처칠 수상은 ‘피쉬 앤 칩스’를 ‘아주 좋은 친구들’이라며 답례하기도 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생선가격 상승과 새롭게 등장한 인도 그리고 중국식 take away의 등장으로 영국의 ‘피쉬 앤 칩스’는 그 영향력을 잃고 급격한 쇠락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더구나 최근에는 햄버거, 프라이드 치킨, 피자 등의 다국적 편리식들이 들어와 예전의 그 영화는 다시 찾아 보기 어렵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기름에 튀긴 음식이 건강에 이롭지 않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과 수요에서 점점 더 멀어져가고 있는 것이 ‘피쉬 앤 칩스’의 현주소”라고 분석한다.
런던 테임즈 강변 ‘런던아이’바로 옆에는 ‘피쉬 앤 칩스’ 전문레스토랑이 있다. 가게에 들어서면 외벽에 제일 먼저 ‘Great British Fish & Chips’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표현이 거창하긴 하지만 ‘피쉬 앤 칩스’에 대한 그들 나름대로의 자부심이 서려있는 간판이다.
또, 구내 벽에는 “포르투갈인들은 ‘튀긴 생선’을 우리에게 주었고, 벨기에인들은 ‘튀긴 감자’를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 대영제국은 150년 전 이들 두 음식을 하나로 만들었다”고 새겨놓고 있다. 피쉬와 칩스를 한 세트로 만든 게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닌 것 같은 데 암튼 이 식당 벽 맨 아래에는 ‘The World's Greatest Double Act FISH & CHIPS'라고 적고 있다.
영국의 전통적인 조식이나 피쉬 앤 칩스는 공공연하게 내세우는 데 그렇다면 저녁 만찬이나 정식은 뭘까?
그건 아마 로스트 비프(Roast Beef)가 아닐까 생각된다. 두산백과에서도 영국의 대표적 요리로 로스트 비프를 소개하고 있다. 로스트 비프는 쇠고기를 요리한 음식중의 하나로 크게 자른 쇠고기 덩어리를 소금으로 만 양념을 하여 석쇠나 팬에 구운 것을 말한다. 이렇게 구운 후 여러 가지 소스(Sauce)를 뿌리거나 찍어서 야채 등과 함께 먹는다. 로스트 비프는 따뜻한 요리로 먹는 이외에 콜드 미트라고 하여 차게 해서 먹는 방법도 있다.
두산백과를 보면 “쇠고기의 등심살을 물기가 없게 행주로 닦아 내고 소금과 후춧가루를 뿌려 놓았다가, 통 모양으로 만들어 굵은 무명실로 묶어서 프라이팬에서 우선 겉만 익힌 다음 버터를 녹여서 쇠고기 위에 골고루 얹어 중불로 달군 오븐 속에 넣어 속까지 익도록 굽는다. 고기의 분량에 따라서 굽는 시간이 달라지는데 보통 50분 정도 굽는다. 고기를 굽기 시작하여 약 20분이 경과하면 수프 스톡을 1/2컵 가량 철판에 붓고 다시 10분쯤 지나면 고기를 뒤집어놓고 밑에 괸 국물을 끼얹어서 익혀야 맛있게 된다”고 요리방법까지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로스트비프를 익히는 정도는 각자 식성에 따라 다르지만, 고기가 속까지 완숙된 것보다는 속이 붉은색으로 약간 덜 익은 것이 연하고 맛이 좋다. 고기의 익은 정도를 알려면 대개 쇠꼬챙이로 찔러 보는데, 이때 붉은 국물이 흐르면 덜 익은 것이고 맑은 국물이 흐르면 완전히 익은 것이다.
두산백과에서는 또, “영국의 대표적인 요리는 로스트 비프로서, 그 구이 국물에 밀가루와 달걀을 넣어 만든 요크셔 푸딩을 곁들이는 것이 격식이다. 파이를 만드는 방법에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관습이 있다. 현재는 버터나 쇼트닝을 쓰는 것이 보통이나 영국에서는 망유(網油)를 다지거나 녹인 것에 밀가루를 섞어서 만든다. 또, 영불해협에서 잡히는 참서대는 유명한 것으로, 튀김이나 뫼니에르의 재료로 쓰인다. 이 밖에 훈제 연어도 명물이다”라고 적고 있다.
런던 사보이호텔 옆에 매우 오래된 고풍스러운 "심슨(Simpson's-in-the-strand)"이라는 로스트 비프 전문음식점이 있는데 이 집에 가면 가장 전통적인 로스트 비프를 맛볼 수 있다. 심슨 레스토랑은 1828년에 오픈, 역사가 무려 186년이나 된 식당으로,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그간 빈센트 반 고흐, 찰스 디킨스, 셜록 홈즈, 조지 버나드쇼 등 유명인사들이 다녀갔다고 홍보하고 있다. (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