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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아름다운 白頭大幹 丹楓
高 光 昌
나와 정동술 친구, 두 부부 커풀이 10월 말일 경에 2박 3일 일정으로 백두대간(태백산맥) 단풍 사냥에 나섰다. 目的地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단풍 구경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니까 단풍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면 모두 목적지인 셈이다.
첫째날, 푸르고 드높은 하늘이 정녕 가을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여행하기엔 아주 좋은 날씨였다. 88고속도로로 大邱에 간 후, 거기에서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安東에 도착했다. 먼저 7층 塼塔(전탑)과 石佛坐像을 관람한 후 35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다가 경북 봉화군 청량산도립공원 입구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淸凉山은 山밑을 감고 도는 맑은 물에 곱게 물든 단풍이 비쳐지고 있어, 淸涼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맑고 서늘한 느낌이 드는 좋은 곳이었다.
이곳에서부터는 예쁘게 물든 道路邊의 丹楓을 구경할 수가 있었다. 단풍 구경을 하면서 35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 太白시에서 다시 38번 국도로 바꿔 타고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 에는 사북읍을 통과했다. 鑛夫들 숙소로 지었다는 아파트에는 몇 군데만 불이 켜져 있을 뿐 도시 전체가 불 꺼진 港口나 다름없었다. 石炭 산업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사북읍에서 지방도로를 따라 정선군 東面에 위치한 정선 小金剛에 도착하였으나 날이 어두워 단풍 구경은 내일로 미루고 주변의 호텔에 짐을 풀었다. 공기도 맑고 주위가 조용하여 마치 山寺에 온 듯 포근함이 느껴지는 드는 곳이었다. 여기에서 며칠 푹 쉬면 모든 병이 다 나을 것만 같았다.
둘째날이다. 아침 일찍 小金剛을 둘러보았다. 奇巖怪石, 丹楓, 東大川이 어우러진 경관이 小金剛이라 불리 울만큼 빼어났다. 우리나라에서는 奇巖怪石과 숲이 함께 어우러진 산이라야 名山 대열에 낄 수 있다. 특히 이곳은 단풍의 고운 빛깔이 아침 햇살에 반사되어 더욱 아름답게 빛나 보였다. 소금강을 뒤로하고 오대산국립공원으로 가는 도중에 정선읍을 지나 강원도 아리랑 전설의 由來地인 아우라지에 들렸다. 두 河川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나룻터가 바로 아우라지였다. 이쪽 北平面에서 강 건너 北面으로 통학하던 학생들을 실어 날랐다던 나룻터에 뱃사공과 학생은 간곳없이 줄 배(삿대 없이 줄잡고 가는 배)한 척만 매여져 있고, 전설의 유래에 얽힌 노래 말이 標識石에 새겨져 있었다.
정선에서 오대산까지 가는 59번국도 주변은 가을 丹楓의 壓卷이었다. 이곳의 단풍은 한 마디로 白眉 바로 그것이었다. 은행, 단풍, 잡목 등 모든 나무들이 나름대로의 고운 빛깔로 아름다운 姿態를 뽑내고 있었다. 아니 온 산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곳 단풍 빛깔로 볼 때, 우리 일행이 最適期에 온 것 같았다.
丹楓으로 곱게 繡놓은 山이 淸明한 가을 하늘을 머리에 이고, 깊은 골짜기에 흐르는 맑은 냇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고, 自然의 大饗宴이며, 그 자체가 하나의 詩요 노래였다. 이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야아!, 아름답다. 정말 아름답다’고 표현 할 수밖에 없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메마른 詩心과 부족한 美的 感性이 아쉬울 뿐이다.
銀杏과 丹楓, 그리고 雜木들까지 모든 나뭇잎의 빛깔이 선명하기도 하려니와 그 빛깔도 創造主만이 빚어낼 수 있는 形形色色의 오묘한 빛깔이었다. 이 세상의 누가 이처럼 莊嚴한 모습을 그려낼 수 있다는 말인가? 이는 自然만이 빚어낼 수 있는 傑作品으로서 가을 단풍의 決定版이고 아름다움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人間은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의 품에 안겨있을 때가 가장 幸福한 순간인 것 같다. 우리가 自然을 찾는 이유도 幸福, 바로 그것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닐는지?
나무들은 봄부터 여름까지 꽃을 피울 때는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서로 경쟁을 하지만 가을이 되면 잎의 고운 빛깔로 이웃과 더불어 아름다움의 하모니를 이끌어 내고 終局에는 다음 세대를 위해 落葉歸根을 몸소 실천한 후 生을 마감한다. 꽃을 獨奏에 비긴다면 단풍은 오케스트라인 셈이다. 이처럼 나무는 일생을 獨奏와 오케스트라를 잘 調和시키면서 사는 것이다. 나무의 일생을 보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참삶인지 나무한테서 한 수 배우고 간다. 아침에 뜨는 해 보다 빨갛게 지는 저녁놀이 더 황홀하고 아름답듯이 온 산을 빨갛게 물들이는 가을 단풍이 봄 여름철의 꽃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내 나이 탓만은 아닐 것이다.
정선에서 오대산 가는 데는 길이 좁고 커브가 많아 차가 빨리 달릴 수도 없지만 아름다운 단풍을 놓치지 않고 보기위해서도 천천히 갈 수밖에 없었다. 산모롱이를 돌아설 때마다 자연이 빚어내는 웅장한 파노라마가 새롭게 펼쳐지고, 그럴 때마다 우리 일행은 야아! 하고 탄성을 내지르곤 하였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
태백산맥을 따라 남북으로 縱斷하는 여행에서는 이런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가 없었다. 정선에서 진부IC 방면으로, 즉 태백산맥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橫斷해야만 이처럼 아름답고 신비스런 태백산맥 단풍의 속살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상원사 입구는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움직일 줄을 몰랐다. 朝鮮시대 世祖 임금이 자주 찾았을 정도로 유명한 寺刹이라기에 단풍 구경 가는 길에 들렸다 갈 생각이었으나 도로위에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할 수가 없어 상원사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그 바로 옆에 있는 월정사로 방향을 바꾸었다. 曹溪宗 敎區의 總本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규모가 큰 寺刹이었다. 경내를 잠깐 관람하고 월정사를 출발, 다시 59번 국도를 타고 구불구불한 진고개를 넘어 38선 휴게소에서 황태탕으로 점심을 먹은 후 7번 국도를 타고 이번 여행의 최북단 지점이라 할 수 있는 고성 통일전망대를 향해 차를 몰았다. 도로 주변에 軍部隊가 많이 보여 前方임을 실감케 해 주었다.
통일전망대 바로 남쪽에서는 現代측에서 추진 중인 금강산 관광도로 포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통일전망대에 올라 오른쪽 동해안을 보았다. 푸르다 못해 짙푸르기까지 한 동해 바다가 망망대해로 펼쳐져있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탁 트인다. 日本이 자기네 바다라고 욕심낼만하다. 바다 끝 멀리 보이는 水平線에는 하늘과 바다가 하나로 맞닿아 있다. 머리를 돌려 북쪽을 본다. 금강산의 主峰인 비로봉은 앞산에 가려 보이지 않고 枝峰인 듯한 산의 한 자락이 동해안쪽으로 길게 뻗어 내려와 있고, 그 동쪽 바다위에는 海金剛의 바위섬들이 오순도순 다정하게 떠 있다. 남북을 잇는 도로 주변에는 남과 북 양측의 경비초소가 마주하고 있고 그 사이에 남북을 人爲的으로 갈라놓은 철조망이 높이 서있다. 하늘과 바다는 둘이 하나가 되어있는데 철조망은 어찌하여 삼천리강산을 둘로 갈라놓았는가? 聖母 마리아像과 石佛은 아무 말 없이 북녘 땅만 쳐다보고 있고, 동해안의 파도는 아직도 남아있는 6.25 전쟁의 흔적을 씻어내려는 듯 흰 혀를 날름거리며 모래밭을 계속 핥고만 있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면서 7번 국도를 따라 내려오다가 이승만, 이기붕, 김정일의 別莊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는 화진포에 들렀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김정일 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별장은 원래 元山에 있던 軍人 별장을 日本軍이 이곳으로 옮겨 놓았는데, 김정일이 어렸을 적에 자기 生母와 이곳에 들러 2-3일 쉬어간일이 있어서 그 이후부터 이 별장이 김정일 별장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 당시 찍었다는 사진과 함께 김일성 一家의 系譜와 衣類 몇 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내려오다 날이 어두워져 주문진에서 차를 멈추었다. 다음 날 아침 日出을 보기에 적합한 여관을 골랐는데 週末을 구실 삼아 평일보다 숙박비를 더 많이 요구 했다. 부두에는 많은 고깃배들이 정박해 있었고, 환하게 불을 밝히고 손님을 기다리는 건어물 상점과 골목 안에 늘어선 회센터가 이곳이 漁港임을 실감케 해주었다.
셋째 날,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일출 시간에 맞추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埠頭로 나갔으나 하느님이 도와주시지 않아 일출은 보지 못하고 燈臺까지 걷는 운동만 하고 돌아왔다. ‘물곰지리’(해물탕)로 아침을 먹고 7번 국도를 따라 강릉 시내를 거쳐 正東津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보아 正東에 위치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오늘날은 日出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동해안이면 어디서나 바다 日出을 볼 수 있는데도,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까지 오는 데는 이곳 주민들과 관광회사의 商魂이 함께 작용된 듯 하다. 日出 못지않게 落照 또한 壯觀이 아닐 수 없음을 생각할 때, 다음에는 觀光 商魂이 기어이 正西津을 개발해 내고 말 것이다.
正東津에 들어서니, 높은 산위에서 동해안을 바라보고 있는 선쿠르즈호(호텔)가 먼저 눈에 띈다. 다른 호텔들도 방안에서 日出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모두 동쪽을 향해 늘어서 있었다. 대형 모래시계는 모래 무게만 40톤으로, 1년 내내 쉬지 않고 모래를 흘러내 보낸다고 한다. 1년용 모래시계인 셈이다.
툭 터진 쪽빛 바다와 멀리 가물거리는 해안선을 보면서 고운 모래가 깔린 긴 해수욕장을 거닐어 보았다. 바닷가 모래밭에서는 어린이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한편에서는 어떤 사람이 모래위에 그림(砂畵 ?)을 그려 사진을 찍은 후 지워버리고, 또 그려서 찍고 지워버리고를 계속하고 있었다. 砂畵(?) 이런 것도 예술의 한 장르가 되는 가 보다.
또 어떤 사람은 파도가 찰싹거리는 바닷가 모래 위에 글씨를 쓰고, 파도가 밀려와 지워버리면 다시 쓰고를 계속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十誡命을 써 주실 때에는 영원히 잊어버리지 말라는 뜻으로 돌 위에 새겨 주셨는데, 인간의 罪는 빨리 잊어버리기 위해 일부러 모래 위에 쓰셨다는 이야기를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문득 나는데, 그렇다면 지금 모래 위에 글씨(砂書?)를 쓰고 있는 저 사람도 자기의 가슴을 아프게 한 사람의 이름을 가슴에 새겨두지 않기 위해, 그 사람 이름을 모래 위에 썼다가 파도가 지워버리면 다시 쓰고를 계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래 위에 쓴 글씨처럼 남의 허물을 깨끗이 지워버리고 사는 것이 내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며 건강하게 사는 길이 아니겠는가? 自問自答해 본다. 이곳 正東津에서는 砂畵(?)와 砂書(?)에 대한 느낌을 가지고 떠나는 것이 하나의 所得이었다.
다시 7번 국도를 따라 시원한 동해를 왼쪽으로 바라보면서 동해시와 삼척시를 지나 울진까지 내려와 36번 국도로 바꿔 타고 불영사 계곡 군립공원에 자리한 佛影寺를 찾았다. 山에 있는 부처(佛)의 그림자(影)가 연못에 비추어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불영사는 많은 人波로 붐볐다. 불영사 계곡 군립공원 단풍 구경에 나섰다. 佛影川을 따라 구불구불한 길을 돌아설 때마다 펼쳐지는 파노라마는 경이로움 바로 그것이었지만 정선에서 월정사가면서 고운 단풍을 너무 많이 보아 온 탓에 이제는 탄성을 지르기에도 지쳤을 뿐이다. 불영사 계곡을 빠져나와 봉화군 법전면 노동에서 다시 31번 국도로 바꿔 타고 봉화터널과 영양터널을 지나 일월산의 아기자기한 단풍을 구경하고 영양읍에 도착하여 늦은 점심을 먹고 곧바로 周王山국립공원으로 향했다.
31번 국도를 타고 포항 쪽으로 내려오다가 지방도로로 바꿔 타고 공원입구 3-4킬로미터 전방에 도착했을 때, 도로변에 주차를 시켜놓고 걸어서 주왕산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주왕산 단풍 관광이 쉽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공원에 도착해 보니 입이 딱 벌어질 만큼 차와 사람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경북도민 모두가 와있는 느낌이었다.
중국 周나라 王이 나라가 망한 후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곳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는 전설에 따라 周王山이라 이름 붙여진 것이라 한다. 주왕산이 국립공원으로 널리 알려진 터라 꼭 한 번 와보고 싶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으로 붐빌 줄은 미처 몰랐다. 이곳 단풍이 얼마나 좋으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렸을까? 호기심이 발동했다.
主峰의 기암괴석과 바위 사이사이에서 고운 빛깔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단풍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었으나,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니 아름다움을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었다. 마음은 바쁘지만 관광객이 너무 많아 걸어 다니기도 어려워, 할 수 없이 제일 瀑布까지만 구경하고 내려왔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다시 와야 할 과제를 안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해는 서산 너머로 모습을 감춘 지 오래고 광주 갈 길은 멀기만 했다. 청송에서 경주로 가는 31번 국도를 타고 더 내려오다가 현동에서 현서까지 가는 지방도로를 탔는데 도로 사정이 매우 안 좋았다. 볼거리가 있을 때는 국도나 지방도가 좋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고속도로를 타야 시간을 절약하는 것인데, 거리상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지방도로로 들어선 것이 후회스럽기도 했다. 현서에서 다시 35번 국도를 따라 영천시로 빠져나와 대구 포항 간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고속도로의 고마움을 다시 느끼는 순간이었다.
대구에서 88고속도로로 접어드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깜깜한 밤이라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고속도로에서의 운전은 지방도보다는 한결 쉬웠다. 광주에 도착하니 밤 12시경이었다. 2박3일의 일정으로는 좀 무리한 것 같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서 나를 찾고 내 생각을 살찌우는 보람차고 소중한 여행이었다고 생각한다. 學校를 나타내는 School의 語源이 古代 西洋 支配층 자녀들이 ‘餘暇’를 즐긴다는 데서 유래되었고, 新羅의 花郞徒 교육 방법도 名山大川을 찾아다니면서 心身을 단련하고 武術을 연마하는데 중점을 둔 것으로 보아 旅行은 단순한 즐김의 차원을 넘어, 자신의 心身을 수련하고 情緖를 함양하는데 있어서 더 없이 좋은 교육 방법 중의 하나라는 생각을 이번 단풍 관광을 통해서 다시 느끼게 되었다. 여행에서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큼 보이고, 생각한 것만큼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