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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태우고 있는가?출27장1,2절030601
너는 조각목으로 장이 오규빗, 광이 오규빗의 반을 만들되,
여러분 반갑습니다. 당회장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두렵고 떨리지는 마음이지만 하나님께서 이 종과 함께하시리라 믿고 이 강단에 섰습니다. 불충하고 부족한 종을 어여삐 보시고 강단을 허락하신 목사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 동안 성령이 충만하시고 훌륭하신 문용권 목사님의 진수성찬 영의 양식을 많이 드셨는데 오늘 저녁에는 입에 때글때글한 보리밥을 한번 잡수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천안공업대학 선교목사로서 또 DFC(제자들선교회)지도교수로서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하다가 은혜 받은 말씀이 있어서 여러분들과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 성도 여러분들은 고차원적인 신앙인들이기 때문에 감히 제가 무슨 설교를 하겠습니까? 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라고 채찍질하는 말씀이라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산다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려운 문제이며 각자의 답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산다는 것은 늘 새로운 것을 찾아 도전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저의 좌우명으로 삼고 그렇게 살려고 많은 노력을 해 왔고 저의 사랑하는 딸레미 은영이에게도 자주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자식은 승어부해야한다 먼 훗날 너가 이 아빠 보다 훨씬 더 훌륭한 사람이 되려 한다면 현재에 만족하지 말고 늘 새로운 것을 찾아 도전하고 최선을 다하여라.
그러면 여러분 신앙생활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 가지 미사여구를 사용하여 답변 하시겠지요 =>저는 신앙생활이란 기쁘고 즐겁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늘은 “기쁘고 즐겁게 불태우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 저는 성경 본문 말씀에 의지하여 나를 태우고 있는가? 라는 제목으로, 세 가지로 나누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번제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지금의 예배에 해당하는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제사에는 몇가지 종류가 있습니까? 무엇 무엇이지요? 예,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입니다.
번제(燔祭불사를 번, 제사 지낼 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제물을 불에 태워 드리는 제사는 같은데 번제는 다른 제사와 무엇이 다릅니까?
번제는 올라간다, 오른다는 동사에서 유래해 온 명사로서 희생제물로서 드릴 가축이나 새 등 그 전부를 제단위에서 불태워 제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온전한 번제입니다.
또 하나는 끊임없이 계속한다는 뜻입니다. 항상 드리는 번제 즉 날마다 조석으로 끊임없이 드리는 번제를 말 합니다.
제단에 놓인 희생제물이 불에 태워지면 그 연기와 냄새가 하나님께 향하여 위로 올라간다는 뜻이며 하나님께 드리는 전소의 희생제사이며 특징은 전부 하나님께 드려지는데 있습니다.
예배 요소는 올라가는 요소와 내려오는 요소가 있습니다.
올라가는 요소는 무엇입니까? 찬송, 기도, 헌금, 무엇보다도 우리의 중심이 올라가야 합니다. 태워져서 올라가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마음과 정성을 쏟아 하나님께 나의 마음이 온전히 드려져서 올라가기를 사모하고 있습니까? 그저 마음속에 머물다가, 아니면 교회의 공간에 머물다가 사그러지지는 않습니까?
올가다 말고 중간에서 교회의 천정에 막혀 중단되지는 않습니까?
번제는 제물의 네다리를 묶어서 드렸는데 성도들도 손과 발을 묶어 다른데 가지말고, 세상일 하지 말고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이며
가죽을 벼꼈는데 우리의 겉 사람, 즉 교만과 세상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다 벗어버리고 온전히 속사람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거나, 사람을 즐겁게 하거나, 환심을 사기 위하여 호의를 베풀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 즐겁게 해드려야 합니다.
번제는 공적예배의 중요한 부분이며 그 요지는 하나님과의 정규 관계 즉 하나님과의 이상적 관계 유지하며, 날마다의 헌신을 의미(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과 정성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뿐 만 아니라 가정에서, 직장에서 , 사업장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거나 흐트러지면 예배시간에 예배가 제대로 드려지지 못하며 성공적인 예배를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음은 조각목입니다. 조각목은 어떤 나무입니까?
어느 젊은 목사님이 출애굽기 25장 10절에 법궤를 '조각목'으로 만들었다고 되어 있는데 이 '조각목'을 조각 조각 조각난 나무로 잘 못 알고 하나님께서 법궤를 조각목으로 만드신 것 같이 교회도 여러 사람(조각)의 집합체라고 설교했다가 나중에 알고 정정했다고 합니다.
‘아카시아’나무를 히브리 이름으로는 ‘싯딤(Shittim)’나무라고 하는데 그러면 ‘조각목’이란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아카시아 나무는 바로 된 이름이 “아카시”입니다. 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할 때 ‘아카시아’ 나무가 중국에는 없기 때문에 ‘아카시아’나무와 비슷한 조각자 나무, 즉 ‘조각목’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 한글로 번역할 때 이를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지조가 굳고 자생력이 강한 솔 나무를 다 죽이려고 아카시나무를 심었다고 들었는데 요즈음 산에 가면 천지가 아카시(우리는 아카시아라고 부름) 나무이고 솔 나무는 자꾸 죽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렇게 다른 나무를 못 살게 굴고 자라봐야 쓸모없는 조각목인데
하나님께서는 레바논의 백향목이나 상수리나무 또는 잣나무(노아의 방주) 같은 좋은 나무로 번제단을 만들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이 조각목으로 법궤도 만들고, 번제단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왜? 백향목이나 잣나무를 지시하지 않으시고 그렇게 흔하고도 천한 쉬띰나무를 지적하셨을까요? 그들의 광야 생활에서 귀한 재료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을까요?
이사야 53장 2절 말씀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는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법궤나 번제단은 궁극적으로 구속의 주 그리스도 예수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사막의 마른땅에서 고운 모양도 없고 아무런 풍채도 없이 자라난 천한 쉬띰 나무는 예수 그리그도의 인성을 예표 함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며 한 걸음 더 나가서 그 쉬띰이라는 가시나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험난한 고난을 예표 함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그 가시나무에는 많은 진액이 흘러 그것은 아라비아인들의 약품이 되었다고 하니 아! 이것은 우리 주님 그리스도의 보혈의 구속을 예표함이 아니겠습니까? 또 그 나무의 특징은 썩지 않는데 있다고 합니다. 70인역 성경에는 썩지 않는 나무라고 번역되어 있다고 하니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무죄성과 영원성을 예표함이 틀림없습니다.
한편으로는
사사기 9장8절15절 하루는 나무들이 나가서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려 하여 감람나무, 무화과 나무, 포도나무, 가시나무--나를 너희의 왕으로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여러분들은 어떤 나무입니까?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우리 모두는 왕 되기 좋아하고 높아지기 좋아하는 가시나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조각목은 가시나무로 창세기 3장에 나오듯이 죄로 인한 저주의 상징이며 죄로 인하여 가치를 잃고 저주 아래 있는 인간, 저와 여러분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조각목처럼 보잘 것 없고 가치 없는 사람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죄 용서함 받고 의인되고 하나님의 자녀 되어 하나님의 사역을 위하여 귀하게 쓰임 받는 성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정의 모든 기물들을 다른 나무를 쓰지 않고 조각나무를 사용하였습니다. 조각목이 아닌 사람은 교회에서 쓰임 받지 못한다는 뜻도 있다고 봅니다.
우리 모두는 보잘 것 없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조각목입니다. 끝으로 번제단입니다.
성경 본문 말씀에 조각목으로 번제단을 만들고 그 겉을 놋으로 싸서 만들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번제단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보잘것없는 조각목으로 번제단이 된 저와 여러분은 보이지 않도록 놋으로 쌓인 것입니다. 보잘 것 없는 조각목아, 자기를 나타내려고 하지 말고 놋 속으로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않 들어가려고 한다면 번제단이 될 수도 없고 들어가서도 나 보잘 것 없는 조각목인데 나 좀 알아주어, 하며 자기를 나타내려 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번제는 아침, 저녁으로 쉴 새 없이 제물을 태워 드려집니다. 어디서 태워집니까? 번제단 위에서 태워집니다. 겉에 있는 놋쇠가 뜨겁게 달궈지고 그 위에서 번제가 활활 타지만은 놋쇠 속에서는 조각목이 타고 있는 것입니다. 끌음이 생기고 뜨겁고 견딜 수 없이 괴롭고 아프지 만 아무 소리하지 않고 묵묵히 타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만 타는 것이 아니라 번제 드릴 때 마다 타고 또 타고 쉴 새 없이 타도 참고 또 참는 것입니다. 탄다고 해서 조각목의 연기와 냄새가 하나님께 올라갑니까? 놋쇠 속에서 맴돌다가 제물이 다 탄 다음에 식어지면 숯불이 되고 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를 태우고 있습니까?
주님 앞에 나아가서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릴 때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추하고 악하고 가증스런 부분은 제거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잘 한다고 생각하는 것, 즉 깨끗하고 착하고 좋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살려두기를 원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사무엘 상 1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사울 왕에게 보내어, “아말렉의 모든 소유를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 왕은 아말렉 성에 이르러 그 백성을 진멸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왜 결국 저주를 받았습니까? 그것은 바로 가치 없고 쓸모없는 것은 진멸했지만, 양이나 소 중에서 자신이 보기에 살찌고 좋은 것은 살려두어 불순종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자신의 추하고 가증된 모습, 가치 없고 낮은 것이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려지는 것에 대해서 마음에 별로 부담이 안 됩니다. 그러나 자기 보기에 선하고 아름답고 귀한 부분을 드리는 것은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가치 없고 천하고 쓸모가 없어서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가장 귀한 아들이셨으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유일한 종이셨고, 또한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성취하는 선지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스럽게 하실 수 있는 분이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가치 없고 쓸모없는 인간을 제단에 불태우기를 원치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가장 아끼신 아들, 아름답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죄를 위한 제물로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장 옳다고 여기는 생각, 주장, 경험, 지식, 선 그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불태워져야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것이 가장 바른 것인 양, 자기 생각이 가장 옳은 것처럼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는 있어도 제단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에 귀하게 여겨지는 모든 것을 불태워드리는 참된 제단이 없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교회가 인간의 생각으로 운영되고, 인간의 방법과 주장, 경험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대신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제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가장 아끼시는 아들을 제물로 삼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셨습니다.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정결한 양을 불태워서 제사를 드렸던 것처럼, 우리 속에서 귀하고 좋았던 생각들을 흔적도 없이 불태워 버리고, 다만 하나님의 뜻만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게 될 때, 하나님이 우리를 기쁘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온 교회 안에, 각 심령 안에 이 번제단으로 말미암아 육신의 생각과 소욕이 불태워지는 역사가 일어나, 육신의 생각은 무너지고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뜻만이 살아 역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번제단 속에 들어 가 있는 조각목 같이 나를 태우고 있습니까?
태우고 또 타고, 새까맣게 타서 숱 껌장이가 되었습니까? ->나 타서 숱 껌 장이가 되었으니 이제는 그만 두고 번제단에서 나올 거야=> 조각목이 그럽니까? 타고 또 타고 골 백 번 태워져도 그 자리에 그대로 묵묵히 주님의 일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태우면 생명을 살립니다. 내델란드(히딩크감독의 나라)의조그마한 어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남매를 낳아 행복하게 살던 어부가 있었는데 하루는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먼바다로 고기 잘이를 하려 나갔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잡으며 야, 오늘은 고기가 괘 많이 잡히는 구나 재수가 좋은 날인가 보다. 그런데 갑자기 날씨가 돌변하여 구름이 끼고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점점 더 악화되어 어두워지면서 바람까지 새차게 불었습니다. 폭풍과 씨름하며 싸우며 이제는 많이 잡은 고기가 문제가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가 문제였습니다. 잡은 고기도 다 버리고 사투를 벌리며 육지를 향하여 필사의 노를 저었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바다는 죽음의 공포 가득했고 살길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때 멀리서 불빛이 보였습니다. 흐미하지만 분명히 불빛이었고 점점 더 밝아 졌습니다.
야, 이제 살았다 어서 가자 어서 가, 해변에 도착한 아버지와 아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배에서 내렸는데 뜻밖에도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어둠속에서 그 비를 맞으며 추워 떨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이들은 아니 집에서 기다리지 않고 걱정이 되어 바닷가에 나왔단 말이야,
여보! 어떻게 해요 집에 불이 나서 다 타버렸어요.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요. 아!! 그 불빛이 우리집 타는 불이었구나 실망은 됐지만, 여보! 그러나 그 불빛이 우리 생명을 살려 주었으니 얼마나 삼사한 일이요,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 성도 여러분!
다음 주일은 무슨 주일입니까? 창립 21주년 기념주일 새생명 전도축제 주일입니다. 한사람이 한사람씩 전도하여 효도하기로 하였습니다. 작정된 사람수가 500명도 않 된다고 들었습니다. 나는 전도 못해, 나는 예외야, 하는 사람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일만 성도, 100목장, 1000순이 되려면 나를 태워야 되는 것입니다. 번제단 위에 있는 제물아 잘 타거라 그래야 번제의 연기와 향내가 하나님께 상달된단다. 나는 않 탈거야, 번제단 속에서 아무리 조각목이 발버둥 쳐대도 타는 것입니다. 말없이 소리도 없이 타고 있는 것입니다. 너는 해라 나는 않 해도 남들이 다 하는 데,
현재 있는 순이 다 목장이 되어야 하고 현재의 순장이 다 목자가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세계적인 교회가 되도록 전도하십시다.
우리 모두 번제단 속의 조각목과 같이, 몸 된 교회와 영혼구원을 위하여 충성, 봉사, 헌신으로 불태워 하나님께 영광 돌리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