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2017년 10월 01일 별세하신 박 봉자 여사 님 의 아들인 황선영입니다. 우선 상조를 담당했던 조성우 팀장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글을 올려야 할 듯 합니다.조성우팀장과 저는 어릴 적부터 30채 남짓한 시골의 자그마한 동내에서 죽마고우,부랄 친구였습니다. 그렇게 우정은 변함없이 20대 후반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둘 사이에 어떤 문제로 인하여 마음이 너무 상한 일이 생겼고 그 일로 서로 연락을 끊었고 세월이 너무도 빨라 10년이 부쩍 넘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17년 02월 어느 날 건강하시던 엄마가 옆구리가 통증이 있다고 하셔서 병원을 가서 검사를 한 결과 암이라는 믿기지 못할 검사결과가 나왔습니다. 그것도 암중에서 0.2%미만에서 발생하는 희귀 암 인 요관 암 이었고 자각증세가 없어 진행도 상당히 진행된 상태여서 수술도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가족들로서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으며 엄마는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하지만 포기는 할 수 없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길로 바로 서울아산병원에서 항암치료를 진행하였고 시간은 흘러 어느덧 6개월이 흘렀고 엄마는 점점 좋아지지는 않고 야위어만 갔고 9월부터는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매일매일 야위어가는 엄마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고 아팠습니다. 위험한 순간이 발생하면서 병원에서 준비하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앞이 깜깜했습니다. 한국의 상조문화는 까다롭고 격식도 복잡하기에 서둘러 아는 지인을 수소문한끝에 조성우팀장이 상조에서 일을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갑자기 엄마가 조성우팀장한테 당신 가시는 길을 맏길려고 부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해서 옛적 좋지 않은 일은 뒤로하고 연락을 취했습니다. 엄마의 상황을 이야기했더니 당장 병원으로 찾아와 주었고 위로를 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20여일을 매일같이 전화를 해서 위로를 해주고 장례절차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으며 자기 일같이 챙겨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암이라는 고통에서 벗어나 고통 없고 행복한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저는 조성우팀장에게 연락을 하였고 조팀장은 마치 본인의 어머니가 돌아 가신 듯 슬퍼하며 위로해주고 엄마 가시는 길 잘 보내드려야 한다며 여기저기 연락을 취했습니다. 저는 너무 경황이 없고 여기 저기서 전화는 빗발치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조성우팀장은 일사천리로 장례식장부터 지인 연락까지 옆에서 챙겨주고 준비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었습니다. 엄마가 염을 마치고 가족들 만나는 시간 전에 엄마한테 가서 인사도 드리고 우리엄마 잘해달라고 요청까지 해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염을 마치고 난 후 가족 지인들과 엄마를 만나는 순간 엄마의 얼굴이 생전 아프지 않으셨던 얼굴과 너무 흡사하고 평온한 겁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암으로 돌라가신 분들은 먹지를 못해서 얼굴이 많이 안 좋습니다. 다들 주변에서 엄마가 너무 착하게 살아서 그런 거라 고들 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 만 고인의 살을 엄청 주물러주면 생전 모습에 가깝게 되는걸 알았습니다. 여름도 아니고 그날 염을 하시는 분들이 얼굴에서 땀이 비 오듯 흐르는 이유를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아직도 살아 있을 것 같은 엄마가 자꾸 떠오르네요… 엄마! 이제는 하늘나라에서 부디 아프지 마시고 행복하게 편히 쉬세요. 저를 나아주고 길러주셔서 너무너무 감사 드리고 사랑합니다. 엄마 가시는 길 평온하고 행복한 곳으로 갈수 있게 아침 일찍 나와서 밤 늦은 시간까지 집도 가지 않고 옆에서 도와준 조성우 팀장 및 하얀리본 관계자 여러분 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