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의 사자성어(27)>
형설지공(螢雪之功)
반디 형(螢), 눈 설(雪), 형설이라함은 ‘반딧불과 눈’을 의미한다. 어조사 지(之), 공로 공(功), 지공이라함은 ‘그러한 공로 또는 노력함’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형설지공이라 함은 “반딧불과 눈을 가지고 공부함”을 의미한다.
여기서 반딧불 螢자는 개똥벌레를 말하는 것으로 물체가 고유의 빛을 발하는 것인데, 옛날 시골에 가면 뚝길이나 숲길에서 흔히 볼 수가 있었다. 그렇게 빛을 내는 전구를 형광등(螢光燈)이라고 한다.
형설지공(螢雪之功)은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었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고생을 기꺼히 하면서 공부를 해서 뜻을 이룬 것을 나타낼 때 쓰이는 말이다.
태어날 때 부유하고 넉넉한 환경에서 고생을 모르고 공부하는 행운아도 있다. 이른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의 경우이다.
반면에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사람도 있다. 중국집에서 짜장면 면발을 뽑으면서도 책을 읽어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청년은 감동적이다.
사실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는 가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태어났으나, 어려운 환경에서 굴치않고 힘써 노력해서 성공하는 사람이 칭찬을 받을만하다. 이러한 사람들을 입지전적(立志傳的)인 인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는 시대가 변해서 옛날처럼 개천에서 용이 나는(개천용출:開川龍出) 경우가 드물다. 보잘 것 없는 집안에서 탁월한 인물이 나왔을 때 개천에서 용이 났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미꾸라지가 용이 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형설지공이라는 말은 후진(後晋)시대 이한(李瀚)이 지은 <몽구 蒙求>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반딧불로 공부한 사람은 차윤(車胤)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노력가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러나 집안이 가난해서 둥불을 켜는데 사용하는 기름조차 없었다. 차윤 소년은 밤을 새워 책을 읽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 끝에 엷은 명주주머니를 벌레통처럼 만들어 그 속에 반디를 수십마리 집어넣어 거기서 나오는 빛으로 책을 비추어 읽었다.
이렇게 열심히 노력한 끝에 차윤은 후일 이부상서(吏部尙書)에 까지 벼슬이 올랐다. 이부상서라면 지금의 행정안전부 장관 격이다.
눈빛으로 책을 읽은 사람은 손강(孫康)이라는 소년이었다. 손강은 어릴 때부터 나쁜 무리들과 사귀지 않고, 열심히 공부에 전념했다. 인생의 승부를 공부에 걸었다. 그러나 손강 역시 집이 찢어지게 가난해서 등불을 켤 기름을 살 수가 없었다. 소년은 궁리 끝에 겨울 날, 추위를 견디며 창으로 몸을 내밀고 하얗게 쌓인 눈에 반사되는 달빛을 의지하여 글을 읽었다.
후일 소년은 어사대부(御史大夫)라는 벼슬까지 오르게 되었다.어사대부라면 지금의 감사원장과 같은 벼슬이다.
이 이야기에서 고학하는 것을 ‘형설’이니 또는 ‘형설지공’이라고 말하고, 공부하는 서재를 가리켜 ‘형창설안(螢窓雪案)’이라고 한다.
형창(螢窓)은 ‘반딧불 창’을 뜻하고 설안(雪案) ‘눈 책상’ 이라는 뜻이다.
차윤이 반딧불을 모아 그 빛으로 글을 읽은 것을 차윤성형(車胤盛螢)이라고 한다. 손강이 눈빛으로 공부한 것을 손강영설(孫康映雪)이라고 한다.
차윤의 반딧불과 손강의 눈을 합쳐서 차형손설(車螢孫雪)이라고 하는데, 이는 형설지공과 같은 의미이다. 형설지공 대신에 차형손설이라는 말을 쓴다면 그 사람은 고급한문을 하는 사람이라고 보아야한다.
어떻게 반딧불과 흰 눈에 비친 달빛을 가지고 글씨를 읽을 수 있겠는 가하고 의문을 품을 수 도 있다. 그러나 후진시대는 지금으로부터 1500년전인데 당시 서책(書冊)들의 글씨는 큰 붓글씨체로 글자가 컸던 이유도 있고, 차윤과 손강 소년들의 눈의 정기가 그만큼 남달리 좋게 타고 났기 때문이었다.
엄동설한에 겨울 산행을 하다보면 온통 눈으로 뒤덮힌 산야를 걷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얀 눈에도 이러한 인생의 교훈이 깃들여 있는 것이다.
차가운 곳에도 꽃이 피듯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 나갈 때, 인생의 승리자가 된다. 서양 속담에 ‘어려움이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우리 속담에도 ‘젊어 고생은 금을 주고도 못 산다’고한다.
비바람 폭풍 속에서 강인한 인간이 길러진다. 얼음장을 깨고 맨몸으로 바닷물에 들어갈 때 강인한 체력이 길러지는 것과 같다. 가난과 어려움을 탓할 것이 아니라, 이를 극복해 나갈 때 진정한 자기성취가 이루어진다. (2022.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