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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봉 산행후기 2007년 9월 2일 박 광 호
전날까지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지난 여름 무더위를 생각하면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으나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일요일 모처럼 산행 계획을 잡았는데 가야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이 된다.
아침에 일어 나서 제일 먼저 하늘을 쳐다 보았다. 날씨는 흐리나 비가 그쳤다. 이제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산에 많이 다녔지만 비가 오다가 그쳤을 때가 맑은 날씨보다 더 흐뭇하다.
집사람은 일요일에 나가는 것이 좋아서인지 점심 도시락을 정성껏 만들어 준다. 만약에 대비한 비옷도 챙기고, 산에서 가장 중요한 물도 챙겼다. 등산복을 차려 입고 집을 나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종합운동장에 도착하니 정문 앞에 관광버스가 있다. 한눈에도 저 버스가 미인봉을 가는 것을 알 수 있겠다. 처음으로 참석한 참산악회이니 사람들을 알 턱이 없다. 그러나 나의 소중한 친구들이 있으니 걱정될 일이 없다.
버스 승강장에서 잠시 머뭇거리자 창쪽에서 박승철이 창문을 두드려서 빨리 올라오라고 한다. 그러나 아직 출발하기까지 시간이 남아 있으므로 담배 한대를 피워 문다. 담배를 피는 데 저쪽에서 이운덕, 최하영, 박용정등이 온다. 악수하고 차에 오른다.
차에 오르니 아는 사람끼리 반갑게 악수와 농담도 건넨다. 견우와 직녀가 만나도 이렇게 반갑게 맞을수 있을까? 애인을 만나도 이렇게 활짝 웃을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샘도 나고 부러움도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처음 온 주제에.
이번 산행기는 나눠서 쓰고자 한다. 1부 저승은 다녀오셨나요? 2부 신선이 되는 길이 이렇게 힘드네요 3부 언니, 오빠의 해방구 순으로 쓰고자 한다. 이제 1부를 시작하겠다.
8시가 됐는데도 버스는 출발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잠실역에서 조금 늦게 온다는 연락이 온 모양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약속시간에 늦지 마세요. 나 혼자는 10분이지만 전체로는 400분(40명 x 10분)을 손해 봅니다.
30여분이 지나자 늦게 온 사람이 왔는지 차가 제천을 향해 출발한다. 이미 동북 친구들은 여러 번 왔는지 서로 농담을 주고 받으며 환하게 웃는다. 그래 많이 웃어라. 웃으면 엔돌핀이 생긴다. 소문만복래라고 하더라.
언제나 듬직한 이운덕, 모임에서 양념 역할을 하는 오경환, 산에 오면 먹을 것을 많이 나눠주는 박승철, 산 다람쥐이며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박용정, 걸걸하게 악의 없는 욕을 뿜어내며 웃음이 백만불인 최선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며 조용히 자기의 역할을 다하는 최하영, 박승철의 국민학교 동창, 김이사 이렇게 참석하였다. 이외에는 초면이거나 1번 본 사람이니 잘 모르는 관계로 생략하겠다.
이윽고 참산악회에서 진행하는 공식 멘트가 이어졌으며, 오늘 산행하는 곳에 산행지도도 한 장씩 나눠 주었다. 뒤이어 아침을 못 먹고 올 것에 대비하여 김밥도 주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아침에 밥을 달라지 말 것을.
뒤이어 매주 2째주 일요일에 산행을 한다는 청우산방 회장님, 매주 4째주 일요일에 산행을 한다는 건주(건강할 건과 술 주)산악회 회장님, 목요일날 산행을 한다는 우리산악회 회장님과 동산회의 이운덕 총무의 말이 이어졌다.
총무가 건강보험료로 2 만원씩 거둔단다. 보건복지부 건강보험료는 하는 일없이 많이 띠는데 여기는 왜 이렇게 싸요? 이렇게 인사말과 아침식사를 하는 사이 차는 중부 고속도로를 지나 영동고속도로로 진입하였다. 휴게소에 쉰다는 멘트에 차에서 내려보니 이슬비가 내린다. 이 정도 비는 산행에 도움이 될 것 같다. 화창한 날씨보다는 흐린 날씨가 산행을 하기에는 더 좋다. 그러나 흐린 날은 시계 거리가 짧아 경치를 감상할 수는 없는 단점도 있다.
이제 차는 남제천IC를 벗어나 구불구불한 국도를 달린다. 나는 빨리 달리는 고속도로보다 천천히 달리는 국도가 지방의 정취를 더 느낄수 있어 좋다. 구불구불 한 길이 마치 어머니의 가슴같이 포근하다. 그러나 운전할 때 주변 경치에 너무 빠지면 사고날 위험이 있으니 조심하세요. 길가에는 가을 철을 알리는 코스모스가 피여 있어 더욱 더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작년 친구들과 금수산에 왔을 때 구경한 금월봉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작지만 오·가는 사람에게 빼어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어 나타난 충주호는 변함없이 푸른 물결을 자랑하며 다목적 댐의 역할에 걸맞게 웅장하다. 충주호 안에 있는 왕건 세트장은 아직도 최수종이 아닌 고려시대를 말없이 대변해 주며 오·가는 사람을 즐겁게 하여 주고 있다. 저 멀리에는 도담삼봉과 전에 와서 노래를 부른 춤추는 분수가 보이고 있다. 여기서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주는 팁. 도담삼봉은 보러 가셔도 좋은데 춤추는 분수는 가지 마세요. 거기 물이 안 좋아요.
이렇게 제천을 두루 구경시킨 버스는 미인봉을 오르기 위한 자리까지 데려다 주었다. 입구에는 저승봉 등산안내도가 우리를 겁 주려는 듯 우뚝 서 있다. 내려서 갓길에서 산행 준비를 하는데 버스 한 대가 내 옆을 아슬아슬하게 비껴 간다. 순간 휴우하는 한숨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여기서 주는 두 번째 팁. 항상 안전 사고에 주의하세요. 다치면 나만 손해예요.
옆에 계곡은 전날에 비로 인해 물줄기가 세차게 흐른다. 벌써 산행준비가 끝났는지 한무리가 서둘러 앞서간다. 산행 준비를 마친 우리도 앞서서 가는 일행을 뒤쫓는다. 특히 산행에서는 무리지어 가는 일행을 놓치면 헤매일수 있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
계곡은 세찬 물줄기로 낯선 방문객을 위협하듯 군데 군데 길이 끊겨 있다. 한참을 뒤쫓아 맨 앞 선두에 되었을때 뒤에서 소리 친다. 다시 내려 오라고. 선두가 졸지에 맨 후미가 된 것이다. 다시 한참을 내려 오니 미인봉으로 오르는 조그만 오솔길이 나타났다.
입구에 저승봉이란 표지판보다 올라가는 입구에 표지판이 있으면 등산객이 더 편리할 것 같다. 이제는 후미에서 산세를 즐기며 쉬엄쉬엄 올라야겠다고 생각하고 느릿느릿 걸었다. 시발점부터 가파르게 올려 친다는 리더가 말했듯이 40여도 경사가 계속 이어졌다. 어느 정도 올랐을까. 벌써 포기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여기서 주는 세번째 팁. 올라 갈 때 미인이 아닌 분도 미인봉을 올라갔다 내려오면 누구나 미인이 된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속설이 있단다. 이 속설은 필자가 만들어 낸 말이니 믿는 사람은 미인되었을 것이고, 믿지 않는 사람은 미인이 안됐을 것이다.
이 미인봉은 옛날에는 저승봉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저승봉을 한번 다녀오면 저승을 한번 다녀 왔기 때문에 오래 장수한다는 전설이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고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 하는 얘기가 있다. 산에 오면 아주 가까이에 봉우리가 끝인 것같은 착각에 빠진다. 바로 위가 꼭대기이여서 이제는 능선을 따라 움직이겠지 하는 착각은 다가가면 다시 앞으로 오르는 시발점이 된다. 이 곳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렇게 몇 번을 가다 보니 넓은 바위에 사람들이 앉아서 쉬고 있다. 물 한 모금으로 가쁜 쉼을 몰아내고 최선준, 오경환, 최하영등과 사진을 찍었다.
비록 날씨가 흐려 아래가 조망은 안 되지만 대신에 자연은 우리에게 하얀 운무를 선사하며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올라가면서도 정다운 이야기로 웃음보따리를 선사하는 최선준. 경치 좋은 곳만 나타나면 들이대는 오경환. 무엇을 들이 대냐고? 카메라다. 또 다시 산행을 계속한다. 다시 오르막이다. 계속된 오르막에 어느덧 우리는 지쳐 가고 있었다. 얼마큼 왔을까? 앞서 간 것으로 추정되는 이운덕, 박승철, 박용정은 보이지 않는다. 의리없는 놈들.
계속 오르다 보니 미인봉, 신선봉을 안내하는 갈림길이 나타났다. 미인봉을 갔다 왔다고 신선봉으로 가는 선두를 보았다. 여기서 부터는 아주 평평한 길이 이어졌으며 약간 오르는 것도 경사도가 10도를 넘지 않았다.
이렇게 도착한 미인봉은 바위 아래 미인봉이란 표지판이 땅에 세워져 있었다. 이때껏 내가 오른 산 중에서 표지석이 없는 유일한 곳이였다. 이제 미인도 됐고, 저승도 다녀 왔으니 신선이 되고자 신선봉에 올라야겠다
제2부 신선이 되는게 이렇게 힘드네요.
미인봉을 거쳐 평범한 길을 아주 평범하게 산책하듯 계속 산행을 계속했다. 당초에 점심을 먹는다는 손바닥바위에는 아무도 없다. 계속 가다 보니 암릉구간이 나타났다.
청우산방 정회장님, 오경환, 최선준, 최하영 이렇게 무리를 지어 농담도 하며 낄낄 거리고 웃으며 걸었다. 하늘이 노해서 일까? 아님 신선되는 사람이 경망하다고 생각해서 일까?
바위에 밧줄을 매어 놓은 곳은 항상 등산객이 대기하고 있다. 문제의 사고지점. 바위가 있고 밧줄이 엉성하게 매어져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밧줄을 붙잡았을까? 그래도 밧줄은 군데 군데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하여 매듭이 져 있다.
밧줄을 다리 사이로 잡고 내려 가던 오경환이 오른쪽 발을 닿는 순간 흔들려 바위에 갈비뼈가 부딪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여기서부터 신선되는 것이 험난하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는 긴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아프다고 호소하는 오경환. 여기서 119를 불러 볼까도 생각하는 최선준. 가지고 있던 멘소**를 갈비뼈 부근에 흠뻑 뿌려 위생병 출신 선준이가 열심히 마시지를 해줬다. 경환이 배낭을 지고 앞에서 이끌어 주신 청우산방 정회장님. 이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조금 걷던 경환은 계속 통증을 호소한다. 그러나 좁은 길과 바위구간으로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얼마큼 갔을까? 다시 통증을 호소한다. 최선준이 의사인 안성훈에게 이동전화로 응급처지 방법을 물어 본다. 그러나 뾰족한 해답이 없는 것 같다. 어떤 분이 왜 그러냐고 묻는다. 그 동안에 경과를 말씀 드리니 압박붕대와 소염크림, 반창고를 선뜻 주고 연락처를 달라고 하여도 안 알려 주고 그 자리를 떠난다.
다시 2차 마사지를 최선준이 농담을 뿜어대며 하여 주었다. 다시 바위구간. 앞에서 정회장님이 올라서 경환이의 팔을 잡고 하영이가 뒤에서 밀고 이렇게 올라갔다. 하영이가 기운이 빠지자. 선준이가 뒤에서 민다. 이렇게 힘겨운 사투가 계속되었다.
조금 가다가 쉬고. 조금 가다가 쉬고. 이렇게 암릉구간을 헤쳐 나갔다. 이제 오늘에 하이라이트이기도 한 직벽 구간 앞에 서 있다. 경남인가 부산인가에서 왔다는 산악회 등산객이 계속하여 한참을 내려 온다. 그런데 내려 오는 사람이 윗 쪽 바위에서 오르던 사람이 떨어졌다고 말하고 내려 온다. 아까 압박붕대를 준 사람이 떨어진 사람이 어디서 온 사람이냐고 다급하게 묻는다. 뒤이어 내려오던 사람이 대전인 것 같다고 한다.
이에 그분은 일행인 것 같다며 바위를 급하게 오른다. 계속하여 내려 오는 사람들이 저 위 바위에서 밑으로 떨어졌는데 다행히 나무에 걸려 있다는 희망찬 소식도 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우리를 한층 더 긴장하게 한다. 어떻게 이 구간을 벗어날 수 있을까? 지금도 이때를 생각하면 등에 진땀이 난다. 이어 끝으로 내려 오는 사람도 다 내려왔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이 곳을 헤쳐 나갈 사람은 달랑 다섯 명인 것을. 저승을 탈출하는 엑소도스는 이렇게 시작 되었다. 직벽을 오르는 밧줄에 세 명이 매 달렸다. 맨 위에는 청우산방 정회장님, 그 뒤에는 다친 경환이, 다음은 최선준과 최하영이 번갈아 매달렸다. 먼저 오른 정회장님은 손으로 경환이를 끌어 올리고 뒤에 선준이와 하영이는 손으로 경환이를 밀어 올렸다. 이렇게 두 세번을 하니 갈비뼈가 아프다고 경환이가 내려가겠단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여기에서 해법은 기다리고, 달래는 방법 밖에 없다. 오죽 아프면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직벽바위에 세 사람이 매달려 한참을 기다렸다. 이제는 더 기다릴수 없다. 선준이가 올라 가기를 재촉한다.
다시 정회장님이 경환이 손을 잡고 밑에서 선준이가 어깨를 들이대며 경환이에게 발로 딛으라고 한다. 이렇게 하여 경환이를 앞에서는 정회장님이 손으로 끌어 올리고 밑에서는 선준이가 어깨로 밀어 올리는 작업이 계속 되었다. 하다가 쉬고, 하다가 쉬고 여러 번 계속하다 보니 어느덧 고지가 보인다. 거의 다 올라 왔으니 조금만 참으라는 정회장님의 말에 우리는 안도한다.
그러나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도 경환이는 무척 아픈지 이를 악 부는 소리가 들린다. 안타깝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빨리 이 곳을 벗어나야 한다. "젖 먹던 힘까지"란 표현이 있다.
바위에 밧줄을 붙들고 있는 세 사람을 상상해 보라. 그것도 안전사고도 무릅쓰고 연달아 세명이. 앞에서 한 손으로는 밧줄을 다른 한 손으로는 다친 아래 사람을 잡아 끌고, 다친 사람은 안 다친 왼손은 밧줄을 잡고 잘 움직일 수 없는 오른 손으로는 윗 사람에 내 밀고. 바로 아래에도 한 손으로 밧줄을 다른 한 손으로는 다리를 밀어 올리는 것을 생각해 보라.
산에서 바위 밧줄은 한 사람 이상 잡으면 위험하다. 그러나 어떠하겠는가. 한 손을 쓰지 못하는데다 갈비뼈가 나가 온 몸에 힘이 쪽 빠졌다고 하는데. 이렇게 끌어 올리는 대 장정은 이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마치 영화를 찍는 것 같은 상황이 우리에게 발생할 줄을 아무도 몰랐다. 직벽바위를 지나자 밧줄을 잡고 돌아야 하는 바위가 나타났다. 이 구간에서 밧줄을 놓쳐 조금 전에 등산객이 떨어진 구간이다. 정회장님이 앞서고 뒤에 경환이가 밧줄을 잡았다. 밧줄을 잡고 돌아서니 조그만 구릉지가 나타났다. 성공이다. 이제는 살았다.
대전에서 오셨다는 분들을 다시 만났다. 고생했다며 물 한 모금을 권한다. 암벽에 떨어진 사람도 압박붕대를 주신 분이 내려가서 구하셨단다. 다행히 다치지 않았단다. 떨어지는데 나무에 걸려 큰 상처가 없는 모양이다.
뒤에 떨어지신 분이 올라 온다. 장소가 좁은 관계로 우리는 서둘러 올라 왔다. 조금을 가니 용정이가 다친 소식을 듣고 뒤돌아서 마중을 나와 주었다. 이제 용정이에게 경환이를 인계했다.
위험구간이 지나자 어김없이 농담과 욕지거리를 내 뿜으며 우리를 웃기는 최선준. 정회장님, 하영이와 산행을 계속한다. 30여분을 내려오니 일행이 식사를 한 곳에서 운덕이, 승철이, 승철이동창, 김이사를 만났다. 밥을 먹으려니 비도 내리고, 라면 끓일 물도 없는 관계로 김밥과 과자로 허기를 채웠다.
고생했다며 걱정의 눈 빛으로 격려하여 주신 참산악회 회장님. 감사합니다. 이제는 평탄한 길로 다소 지리한 느낌이 든다.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하산 산행을 계속 했다. 비가 계속 내려 좁은 등산로까지 물로 그득하다.
옆으로는 계곡 물이 많이 흐른다. 날씨만 좋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내려 온다. 어느 정도 내려오자 지친 몸을 씻고자 계곡 물에 풍덩 빠진다. 계곡 물이 차다. 지치고 땀에 젖은 몸을 씻고 서둘러 하산한다. 조금 내려 오니 민가가 보인다.
고추밭에 빨간 고추가 탐스럽게 열렸다. 따고 싶다는 욕망을 억누르고 옆을 보니 깻잎이 싱싱하고 윤기가 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산을 가거나 어디를 가더라도 농작물에는 손대지 마세요. 우리가 장난삼아 딴 농작물이 농사꾼에게는 생계가 달려 있습니다.
차가 다니는 도로에 이르자 다시 신선의 세계에서 도시를 쫓아가는 한 사람의 필부로 돌아가는 섭섭함과 생존경쟁의 세상에 혼자 던져진다는 안타까움을 느끼며 버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정말 힘든 하루였다.
뒤이어 제3부 언니, 오빠의 해방구를 쓸 예정입니다.
제3부 언니,오빠의 해방구
수많은 산행을 했지만 하루 산행을 3부작으로 구성하기는 처음이다. 버스로 다가 오니 텐트가 쳐 있다. 총무단(총무, 부총무)인듯한 분이 고생했다며 두부와 김치, 돼지고기 삶은 것, 야채를 내어 놓는다.
음식이란 아무리 많이 장만하더라도 풀어 놓으면 금방 없어지고 뒤에 오는 사람이 먹기에 지저분해 진다. 그래서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음식을 남겨 두었다고 한다. 얼마나 속 깊은 배려인가.
오늘 하루 동안 김밥 2줄로 하루를 버텼다. 아침에 한 줄. 점심에 한 줄. 그러니 얼마나 배 고픈가. 거기에 두부와 김치, 깻잎등 야채와 돼지고기 정말 많이 먹었다. 소주를 한잔 마시니 주린 배에 들어가서 위장에서 짜르르하는 신호를 보낸다.
주위 분들이 우스개 소리를 한다. 전에 산행기에서 언급한 조은 물은 왕 기초고 전대통령 흉내를 내는 분은 아이스박스에 걸터 앉아 주위 여러 사람을 웃긴다. 아직 경환이와 후미는 안 내려 온다.
그러던 차에 경환이가 보이자 모두들 고생했다며 위로의 말을 건낸다. 마치 자기의 혈육이 고생당한 것 처럼. 그러고는 남은 음식을 내어 놓는다. 어느 분은 밥을 못 먹었다는 말에 밥이 남아 있다고 밥을 내 놓고, 승철이 친구 정옥(?)씨는 고생했다며 연신 깻잎에 두부를 싸서 친구들에게 먹여 준다. 이런 호사가 어디 또 있을까? 아무리 값 비싼 만찬이라고 하여도 이렇게 맛 있고 정성이 들어 갈 수 있을까.
이어서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를 타고 나니 참산악회에서 소주가 무한정 리필하여 준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와 박장대소 하는 웃음소리. 버스 안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으로 오는 내내 북새통 이였다. 뒤에 앉으신 분은 연신 전대통령 흉내로 주위를 웃기고, 뒤에서 존 물 달라고 하고, 어디서 나오는 지 연신 소주가 나온다.
도대체 2만원 내고 너무 하는 것 아닌가. 김밥에 두부에 김치, 더구나 돼지고기, 고추, 깻잎, 막걸리까지. 20만원 낸 듯한 착각이 들었다.
차에 계신 분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어려운 시대를 사신 분들이다. 언니들은 경제부흥기 전에 보리 고개를 겪었을 것이고, 시집살이를 하였을 것이고 이제는 자식들이 다 장성해 뿔뿔히 살아갈 것이다. 부모에게는 효도를 한 마지막 세대이며 자식한테는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일 것이다. 건강하십시오. 건강이 재산입니다. 그리고 즐기세요. 내 인생은 남이 살아 주지 않습니다.
나이 드신 오빠들은 전쟁을 겪었을 것이고, 경제 부흥기에 산업의 역군으로 조국 근대화에 열심히 노력했을 것이다. 열심히 돈 벌어 자기의 입보다는 자식의 입에 밥 들어 가는 것이 흐뭇하였을 것이다. 오빠들 이제는 자식 생각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위하여 즐기세요.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네.
박달재 휴게소에서 잠시 쉬는 사이 건주산악회 회장님이 패트병 맥주를 들고 휴게소 마당에 자리를 잡았다.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이 앉아서 소폭을 하고 있다. 소폭은 소주와 맥주의 폭탄주의 약자이며, 양폭은 양주와 맥주의 폭탄주의 약자이다.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한 후 버스는 출발했다.
노래방을 틀라고 아우성이다. 기사님은 노래방기기를 작동했다. 노래를 부르는데 하나같이 100점이다. 유일하게 99점은 내가 받았다. 어쩜 이렇게 노래를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차 복도에는 춤추는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어디에서 났는지 묵을 안주로 소주를 돌린다.
많은 산악회를 다녀 보았지만 이렇게 화기애애한 산악회는 처음 보았다. 차는 영동고속도로를 피해 여주 감곡을 향한 국도를 달리고 있다. 국도에서 여러 산악회 버스를 보았는데 좌석의 반도 안 차고 운행한다. 그런데 참산악회는 가운데 보조 좌석까지 활용하여 회원들이 앉았다. 이렇게 많이 참석하는 이유는 끈끈한 정인가 싶다. 계속 계속 참산악회 번창하십시오.
Y담을 많이 들었는데 머리가 나쁜 관계로 기억이 잘 안 난다. 이제는
필기구나 녹음기를 가지고 다녀야 할까 보다. 집이나 직장에서는 근엄하게 무게를 지을 나이인데 마치 어린아이처럼 해 맑은 웃음과 농담이 차 안을 훈훈한 온정으로 감싸고 있다.
헤어지는 것이 섭섭한 것을 아는지 감곡IC를 진입하는데 막히고 있다. 노래방기기에서는 계속하여 노래가 나오고 끊임없는 웃음소리는 그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날리기에 충분했다. 하루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참산악회, 청우산방, 건주산악회, 우리산악회, 동북16·18 더욱 번창하십시오.
괜히 두서없는 글로 읽는 사람에게 혼란을 주지 않았는지 또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는지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사심없이 글을 썼으니 한 번 그 때를 회상한다고 생각하고 읽었으면 합니다.
첫댓글 너무 리얼해서 지금도 그시간에 머무는 기분이네요~~~~~~광호님 감사합니다~~~~~~~~~
지두 장문의 산행기를 아주 실감나게 읽고 갑니다. 언젠가 저도 뵈올날을 기다리면서... 건강하십시요.
너무 현장감 넘치는 글 정말잘읽고 갑니다. 감사하고요.재미나요 ....
박광호님의 글을 읽고 다시 한번 죄송스럽게 생각 합니다!! 이번 등반중 불상사로 몸을 다치신 오경환님의 빠른 괘유를 빕니다... 송연봉.
이글을,여기서 다시한번접하니좋습........글구, 다친 오경환님 여러분들덕분에 완쾌하여 어제,시음주한결과..상태매우양호입니다.